제 678장. 백봉영진
이곳의 무인들은 뇌광신교처럼 밀집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수준은 뇌광신교보다 훨씬 강했다. 또한 이곳은 영기도 매우 짙어 양준은 들숨 한 번에 온몸이 개운하고 정신이 맑아지며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산골짜기는 생각보다 엄청 컸다. 양준은 공중에 뜬 채로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끝이 보이지 않는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곳은 산골짜기라고 하기보다 움푹 꺼진 평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했다.
산골짜기 주변에는 하늘 높이 솟은 산봉우리가 가득했다. 못해도 백 개는 넘는 것 같았다. 그 외에 산에는 짐승들과 영초, 영약들도 많아 생기를 가득 띠고 있었다. 수많은 산봉우리들은 산골짜기 주변에 흩어져 있는 듯했지만 왠지 특별한 방식으로 배열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천지 영기가 신비한 힘에 이끌려 수많은 산봉우리들을 통해 끊임없이 산골짜기로 흘러들고, 그 속의 영초, 영약들을 키우며 무인들의 수련에도 도움을 주는 듯했다.
창염과 비우는 서로를 마주 보더니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이 한눈에 이곳의 현묘함을 알아챈 것으로 봐서 안목이 보통이 아니었다.
“저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우리 천소종의 근본이네.”
창염이 설명했다.
“특별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
창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발견했다시피 바깥의 영기는 모두 우리 문파에 모여들고 있네. 바로 백봉영진(百峰靈陣)이라네. 주변의 101개의 산봉우리를 중추로 거대한 영진이 이루어진 거지! 산봉우리 중 절반만 천연적으로 생긴 것이라네.”
“다른 절반은요?”
“조사님이 만드신 거지.”
창염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양준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감탄했다.
“천소종의 조사님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그건 당연하지. 실력이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바다를 뒤엎을 수도 있고, 별도 딸 수 있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별 세계로 간 고수도 있다고 하네. 그곳에서 큰 기연과 조화를 찾는 거지.”
“별 세계로 간다고요?”
양준은 놀란 눈빛을 하며 말했다. 마치 눈앞에 커다란 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안에는 상상도 못한 신기한 것들이 가득할 것이다. 그는 저도 모르게 눈을 빛내며 창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맞네!”
창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두 장로가 가지고 있던 기이한 청색 돌을 봤었지? 그것이 바로 별 세계의 물건이네. 통현대륙엔 없는 것이지. 그 돌멩이는 아주 귀중한 것이네. 아쉽게도 망가졌지만. 또 별 세계에는 자네가 상상하지도 못한 각종 약재와 광물이 있다네. 그건 성급의 물건보다 훨씬 값지지. 심지어 입성 경지 고수보다도 더 강한 요수가 있네. 다들 하나같이 강하고 거대하지. 가장 작은 것도 우리 천소종의 산골짜기보다 크다더군.”
양준은 입을 떡 벌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허무맹랑해 거짓말인 것만 같았다.
“이건 다 전설이네. 별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나도 가보지 못해서 모르네. 누구도 자신이 별 세계에 다녀왔다고 입증한 고수는 없었네.”
창염은 코를 훌쩍이며 덧붙였다.
양준은 실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소종의 백봉영진도 아주 대단합니다. 제가 살던 곳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걸요.”
“자네가 살던 곳?”
창염이 깜짝 놀랐다.
“네, 전 작은 곳에서 왔습니다. 그곳은 작고 외딴 곳인데 이쪽 세상처럼 다채롭지도 않습니다.”
양준이 덤덤한 표정으로 해명했다.
“그랬군.”
창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봉영진은 대단하긴 하네. 통현대륙에서도 보기 드물 걸세. 이 영진은 천지의 영기를 모을 뿐만 아니라 재난이 닥치게 되면 방어 효과도 있네. 하지만 감히 우리 천소종을 건드리는 사람은 없으니 나도 백봉영진이 전부 열린 모습은 보지 못했네.”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고 얼른 내려가자.”
비우는 귀찮은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를 잘랐다.
“이 친구에게 소개 좀 해준 거잖아.”
창염은 양준과 친분을 맺기로 마음먹은 뒤로 호칭도 친근하게 변했다. 그는 더 말하지 않고 양준, 비우와 함께 아래로 내려갔다.
이곳의 영기가 지나치게 짙은 탓에 공중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현실감이 없었다. 산골짜기 아래쪽은 온통 구름에 덮여 왠지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잠시 뒤, 셋은 지면에 착지했다.
창염은 앞장서서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길에서 만난 천소종 제자들은 하나같이 공손한 모습으로 그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의 경지는 모두 낮지 않았는데 대다수는 신유 경지였다. 하지만 그들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동일한 경지의 무인들보다 훨씬 강했다.
양준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천소종의 제자들은 기운을 겉에 드러내지 않았지만 생명력이 강했다. 피와 살, 경맥까지도 모두 단단했으며 진원도 아주 짙고 강했다. 전투력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동굴에서 구해 온 다섯 제자들을 그들에게 맡기고 창염은 양준과 함께 약간 동떨어진 정원으로 와서 입을 열었다.
“먼저 여기서 지내게나. 내가 먼저 조사님께 보고 드린 후 다시 찾아오겠네.”
“지금 어르신을 뵙지 않아도 됩니까?”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오자마자 바로 천소종의 창시자를 만나게 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그분을 만나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창염의 얘기를 들으니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조사님께서 부르시면 다시 찾아 뵙게.”
창염은 미소를 짓고 돌아서서 바로 떠나갔다.
비우는 양준을 바라보며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조사님께서는 너 같은 어린 녀석에게 악의를 품지 않으니까. 정말 널 해칠 생각이었다면 특별히 창염을 보내지도 않았을 거야. 음, 이걸 줄 테니 기다리는 동안 혼자 잘 놀아 봐.”
말을 마친 그녀는 양준에게 두 가지 물건을 던져 주었다. 양준이 받아 보니 무슨 돌로 만들었는지 모를 족쇄였다.
“이게 뭡니까?”
양준은 한참 훑어보았지만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무게는 대충 반 근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안에는 진법이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 그저 장난감에 불과한 것 같았다.
“최대 한도로 진원을 주입해 봐.”
비우가 귀띔해 주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족쇄 두 개에 진원을 주입해 넣었다. 그러자 곧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어찌나 무거운지 그조차도 감당할 수 없어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았다. 공중에서 몇 번 곤두박질칠 뻔한 걸 간신히 넘긴 뒤에야 겨우 민망한 상황을 면할 수 있었다.
쿠궁-
묵직한 소리와 함께 족쇄 두 개는 땅에 떨어지며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었다. 양준은 안색이 변한 채, 멍하니 뜻밖의 변고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비우의 은방울 굴리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절 놀린 겁니까?”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눈앞의 여인을 노려보았다.
여인에게서 악의가 느껴지지 않아 그도 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이토록 악랄할 줄이야. 족쇄 두 개는 일반적인 장난감이 아니라 대단한 물건이었다.
“남을 쉽게 믿지 말라고 가르쳐 준 거야.”
비우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양준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아주머니는 역시 음험하시군요.”
비우의 웃음소리가 뚝 끊기더니 화난 얼굴로 양준을 노려보았다. 호탕하게 웃는 소리가 옆에 있는 나무 위에서 들려왔다.
비우가 손을 내젓자 이빨을 드러낸 수룡(水龍)이 날아가더니 나무 위에 숨어 있던 사람을 물어 왔다.
“한 번만 더 웃어 봐. 네 아가리를 찢어줄 테다.”
비우는 차가운 눈으로 그 사람을 노려보았다.
그 사람은 목을 움츠리더니 더는 웃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을 튕겨 비우의 수룡을 산산조각 내고는 번개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오직 목소리만 멀리서 들려왔다.
“녀석, 오래 살려면 저 미친 여인하고는 멀리해.”
“역완, 너 딱 기다려.”
비우는 신형을 날려 그를 쫓아갔다.
양준은 안색이 변했다.
또 한 명의 초범 경지 3단계의 고수였다. 그가 기운을 어찌나 완벽하게 숨겼는지 양준은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얼핏 스쳐 보았지만 양준은 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 몸집이 왜소하고 키가 작았으며 입가에는 팔자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야비한 인상은 기억에 남기 충분했다.
오는 길에 창염은 천소종에 초범 경지 3단계의 호법이 네 명 있는데 자신과 비우도 각각 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했다. 역완도 그중 한 명일 가능성이 컸다. 나머지 한 명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지금 보니 네 명은 특정 분야에서 자신만의 장점이 있는 것 같았다. 창염은 불, 비우는 물, 역완은 속도나 힘인 것 같았다. 방금 전, 순간적인 힘을 또렷이 지켜보았기에 그의 강함을 알 수 있었다.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자, 양준은 어정쩡하게 제자리에 서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이렇게 강한 문파에 온 그는 왠지 불편했다. 하지만 생각을 많이 해도 소용없었다. 지금은 그저 궁금증을 풀어줄 천소종의 창시자를 얌전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시선을 돌린 양준은 깊은 구덩이에 빠진 족쇄 두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것을 주워 왔다. 줍는 순간, 놀랍게도 족쇄는 전처럼 반 근 정도밖에 안 되는 무게로, 그리 무겁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전 그가 휘청거릴 정도로 무거웠던 것도, 땅에 깊게 구덩이가 파인 것도 사실이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다가 다시 족쇄에 진원을 주입했다. 곧 그는 눈썹을 위로 치켜세웠다. 예상대로 진원을 주입하자 족쇄는 점점 무거워졌다. 무거워서 어깨가 떨릴 지경이었다. 진원을 주입할수록 무게감이 점점 더 강해졌다.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는데도 족쇄는 들고 있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졌다. 적어도 오육천 근에 달하는 듯했다. 그 때문에 양준이 서 있던 곳에는 갑자기 바닥에 거미줄 같은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땅도 이렇게 무거운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족쇄의 오묘함을 발견한 양준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문득 비우가 그에게 준 물건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분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또 육신의 힘도 키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