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9장. 조사님?
천소종, 밀실 안.
창염은 공손하게 제자리에 서서 창시자에게 양준을 만나고 나서부터 겪은 일에 대해 보고했다. 양준이 하성음의 앞에서 단해와 허기를 죽였다는 말을 듣고 천소종의 창시자는 눈을 반짝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또 동굴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자 그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에게 신식의 불꽃이 있다고?”
창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님께서 모르고 계셨습니까?”
“몰랐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난 그저 은연중에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래서 너희들이 돌아올 무렵에 비우를 내보낸 것이었지.”
“조사님께서는 그 녀석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음, 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나와 좀 인연이 있단다.”
창염은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양준과 창시자 사이에 무슨 인연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에게 신식의 불꽃이 있다는 것은 너와 두만 말고, 하성음도 안다고 했지?”
노인은 덤덤한 얼굴로 물었다.
창염은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연단사 협회의 계집애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는 길에 비우도 보았습니다.”
“알겠다. 가 보거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창염은 허리를 숙인 채, 뒤로 물러났다. 밀실 밖으로 나온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뇌광신교의 방향을 힐끗 보았다. 이내 그의 입가에 냉혹한 미소가 걸렸다.
*양준이 천소종에 온 지 이틀이 지났다. 그 사이 비우만 그를 보러 한 번 왔을 뿐이었다. 창염은 어디로 갔는지 도통 보이지 않았다. 그를 불러내는 사람도 없었다.
비우는 양준에게 천홍화양 한 항아리를 주며 동굴에서 도와준 데 대한 감사의 선물이라고 했다. 그녀는 아주 방탕해 보였다. 양준을 찾아왔을 때도 그녀는 이미 술에 취해 술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많이 마시면 네 몸이 감당하지 못할 거야.”
비우는 웃으며 당부했다. 그녀는 술을 내려놓고 어디로 갔는지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양준은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서 정보를 알아내려고 했으나 입을 열 시간이 없었다. 그는 술을 검은 책 공간에 넣은 다음, 계속해 정원을 천천히 거닐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는 그저 편히 산책을 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의 피와 살은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큰 압력을 감당하고 있었다. 다만 이상하게도 그가 발을 디딘 곳은 평범하기 그지없었고,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사흘 뒤, 창염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더니 양준에게 손짓했다.
“조사님께서 뵙자 하시네.”
양준은 기쁜 얼굴로 다급히 다가갔다. 그는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았고, 또한 천소종의 창시자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었다.
얼마 가지 않아 창염은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힐끗 보더니 놀라며 물었다.
“긴장되나?”
“아니요.”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자네 진원이 왜 계속 분출되는 건가? 게다가 자네의 몸이 굳은 것이… 아니지…….”
창염은 안색이 변하더니 양준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비우가 자네에게 혼원 족쇄(混元鐐铐)를 주었나?”
“그게 혼원 족쇄인가요?”
창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진원을 주입할수록 족쇄의 무게는 무거워진다네. 자네가 지금 감당할 수 있는 무게는 얼마인가?”
“사오천 근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자네 참 이상하군.”
창염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전에 전문적으로 육신을 수련한 적이 있나?”
“네.”
육체편은 육신의 강도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지금 사오천 근 정도 되는 무게를 감당하고 있어도 양준은 약간의 불편함만 느낄 뿐, 평소와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길을 걸을 때도 땅에 흔적이 남지 않았다.
창염은 혀를 내둘렀다. 비우의 혼원 족쇄는 그도 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양준의 수준에 도달했을 때, 그는 이처럼 홀가분하게 다닐 자신이 없었다.
‘연단사의 육신이 이토록 강하다니?’
연단사는 오랫동안 연단술에만 빠져 살다 보니 수련할 시간이 적었다. 그래서 대다수의 연단사는 전투력이 강하지 않았다. 같은 등급의 무인과 연단사가 싸우면 연단사가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양준은 전에도 단해와 허기를 손쉽게 죽였고, 바람의 눈과 우레의 눈에도 들어갔었다. 창염은 은연중에 눈앞에 있는 젊은이가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 영급 연단사 정도의 간단한 인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뒤, 창염이 갑자기 한 집 앞에 멈춰 서더니 입을 열었다.
“들어가게. 조사님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신다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숨을 들이쉰 뒤, 성큼성큼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서 모퉁이를 돌자 깊숙한 곳에 밀실이 있었다. 밀실에는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일렁이는 촛불이 놓여 있었는데, 밀실 안을 그다지 밝게 비추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머리와 수염이 새하얗고 몸집이 왜소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기운에서 양준은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노인이 천소종의 창시자라는 것을 확신한 그는 훑어보는 한편, 노인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곧이어 가까이 다가간 양준은 허리를 굽히며 예를 올렸다.
“양준이 어르신을 뵙습니다.”
노인은 천천히 눈을 뜨고 양준을 보더니 자애롭게 미소를 지었다.
“자질이 출중하고 끈기가 있구나. 간도 크고 박력도 넘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보기 드문 젊은이일세.”
“칭찬이 과하십니다.”
“앉거라.”
양준은 가부좌를 틀고 앞에 놓인 방석에 앉았다. 이내 그의 안색이 살짝 바뀌었다. 공기 중에 남아 있는 은은한 피비린내가 느껴졌던 것이다.
“궁금한 것이 많을 거다. 먼저 물어보지 말고 앞에 있는 보따리를 풀어 보아라.”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양준이 고개를 숙여 보니 앞에는 정말 보따리가 놓여 있었는데, 보따리 위에는 피가 배어 나와 있었다. 피비린내는 바로 보따리에서 나는 것이었다. 양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보따리를 풀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다급히 고개를 들고 놀란 얼굴로 천소종의 창시자를 바라보았다.
보따리 안에 있는 것은 사람의 머리로 뇌광신교의 교주 하성음의 머리였다.
“네가 다 성장하기 전에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는 비밀을 발설할 자는 없을 것이다.”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르신께서 해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준은 다급히 인사를 올렸다.
그는 일단 초범 경지에 오른 뒤, 다시 뇌광신교를 찾아가 하성음을 죽일 계획이었다. 그런데 천소종의 창시자가 먼저 일을 해결해 줄 줄이야. 양준은 마음속의 돌덩이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그는 하는 수 없이 신식의 불꽃에 대해 털어놓은 것이었다. 그에게는 고마 일족과 관을 멘 사람의 정보가 더 중요했다.
“별것 아니다.”
노인은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의 수단과 실력으로 초범 경지 3단계의 뇌광신교 교주를 죽이는 것은 작은 일이었다. 하성음은 뭔가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목이 잘렸다.
“어르신! 도대체 왜 이러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왜 창염을 시켜 절 찾으셨고, 그더러 절 보살피라고 하셨습니까? 또 왜 저를 위해 뇌광신교의 교주까지 죽이셨습니까? 저희는 만난 적이 없지 않습니까?”
양준은 담담하게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허허.”
노인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당연히 이유가 있지. 음, 내 이름은 초능소(楚淩霄)다. 이러면 뭔가 떠오르는 것이 없느냐?”
양준은 표정이 변했다. 뭔가가 떠오른 듯한 그의 눈은 경계하던 눈빛에서 점차 반짝이기 시작했다.
“생각이 났나 보구나. 다만 확신을 못 하겠지. 그럼 내가 증거를 보여주마.”
초능소는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뻗어 기운을 내보냈다. 기운은 양준의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양준은 미처 반응하지도 못했는데, 짤랑이는 쇠사슬 소리가 밀실에서 울려 퍼졌다.
곧이어 금빛 찬란한 쇠사슬이 기괴하게 허공에 나타났다. 초능소는 그것을 단숨에 잡았다.
“쇄마련!”
양준은 높은 소리로 외쳤다.
이것은 그가 능소각 곤룡골 바닥에서 얻은 양기가 매우 강한 비보였다. 양준은 그것을 얻은 뒤 지금까지 딱 두 번 사용했었다. 한 번은 흉살사동 안에서 마장 몽과의 분신을 죽일 때였고, 다른 한 번은 중도의 지하에서 양백을 대적할 때 사용했었다.
양백이 죽은 뒤, 그는 쇄마련을 거두어들였었는데, 지금 천소종의 창시자에 의해 쇄마련이 다시 소환된 것이다.
“이건 내 물건이다.”
초능소는 싱글벙글 웃으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궁금증이 모두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헤실헤실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조사님?”
초능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몇백 년이 지난 지금, 그곳에서 통현대륙으로 온 사람을 만나게 될 줄 몰랐단다. 너도 고생을 많이 한 것 같구나. 힘들었겠어.”
“고생은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오는 내내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양준의 기분은 미묘하게 흥분되었다. 초능소를 보면 영문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다. 고향 집으로 돌아온 듯한 따스함이었다.
“그럼 다행이고.”
초능소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몇백 년 전에 나도 너희 쪽에 간 적이 있어 그쪽의 자원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네가 지금의 경지까지 이른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구나.”
“그럼 능소각은 정말 조사님께서 창건하신 겁니까?”
양준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래.”
초능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으로 문파의 이름을 지었지. 그때 나는 마장 하나를 쫓고 있었는데, 우연히 허공 통로를 넘어 너희 쪽 세상에 도착했었다. 그곳에서 그와 전쟁을 벌이고 결국 그의 신혼을 흐트려뜨렸지. 하지만 그의 육신은 아무리 애를 써도 파괴할 수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쇄마련으로 묶어 두었단다. 그렇게 그를 산골짜기의 아래쪽에 봉인했지. 능소각을 세운 건 누군가 마장의 육신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였어. 그곳에서 몇십 년 지내다가 마장의 신혼이 완전히 흩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되돌아왔단다.”
초능소는 설명을 마친 뒤 탄식했다.
“세월이 참 빠르구나. 넌 능소각의 제자냐?”
“그렇습니다.”
“잘됐구나. 사실 능소각의 제자가 아니어도 괜찮아. 쇄마련을 얻은 걸 보면 너와 내 사이는 인연이 있는 거니까.”
초능소는 껄껄 웃다가 잠깐 멈추더니 다시 물었다.
“지금 그곳의 상황은 어떠하냐? 문파도 무사하냐?”
“지금은 그나마 괜찮은데 몇 년 전에는 문파가 멸문당할 위기에 놓였었습니다.”
“그래? 말해 보아라. 내가 자신이 세운 문파에 책임을 다하지 못했구나.”
양준은 능소각이 그동안 겪은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았다. 그는 오랫동안 누군가와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지 못했었다. 더욱이 천소종의 창시자이자 능소각의 창시자이기도 한, 자애로운 얼굴의 노인을 마주하자 그는 숨길 게 하나도 없었다.
초능소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그쪽 세상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