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83화 (682/853)

제 683장. 길을 떠나다

양준이 나타난 것을 보고 창염 일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길을 떠났다. 네 호법은 각자 신법을 펼쳐 손쉽게 하늘을 날았다. 양준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들의 뒤를 쫓았다.

양준의 몸 상태를 살펴본 넷은 모두 흠칫 놀랐다. 양준은 혼원 족쇄를 몸에 지니고 있었는데 지금도 몇천 근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었다. 이제는 적응이 된 건지 평소와 마찬가지로 불편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녀석의 몸은 지나칠 정도로 좋군. 마족에 못지않은 것 같은데!’

네 명은 저도 모르게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창염이 나지막하게 ‘어’ 소리를 내더니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그와 동시에 양준도 아래쪽에서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의 옆에는 한 여인이 폴짝폴짝 뛰며 소리를 지르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두 장로야!”

창염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손을 저었다.

“아래로 내려가 보자.”

그를 따라 지면으로 내려가자, 아니나 다를까 연단사 협회의 두만과 미나가 서 있었다. 양준을 발견한 미나는 득달같이 달려오더니 씩씩거리며 말했다.

“나쁜 놈, 시간 나면 거석성에 날 보러 온다며? 왜 몇 달이 지나도록 안 오는 거야?”

“음… 좀 바빠서 잊어버렸어.”

양준은 난처한 얼굴로 얼버무렸다.

“내 연단술이 너보다 못하다고 무시하는 거 아니야?”

미나는 양 옆구리에 손을 얹고서는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니야. 정말 바빴어.”

양준은 다급히 손을 저었다.

“사실이길 바라. 안 그럼 확 물어 버릴 거야. 나 지금은 영급 하품의 연단사야. 너랑 같아. 그러니까 너 으스대지 마. 내가 금방 널 이길 수도 있어.”

미나는 그제야 화가 좀 풀린 듯했다. 두만은 웃는 얼굴로 이쪽의 상황을 살피며 눈을 반짝였다.

“미나야, 양준의 상황은 너와 다른 것 같구나.”

“뭐가요? 뭐가 달라요?”

미나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양준은 지금 적어도 영급 상품의 연단사인 것 같은데?”

두만은 형형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공수했다.

“죄송합니다, 두 장로님. 전에 연단사 협회에서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몇 달 전에 이미 영급 상품의 연단사였습니다.”

두만은 안색이 변하더니 놀란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미나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랬군.”

두만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자넬 얕본 것 같네.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해 줘서 고마울 뿐일세.”

“장로님께서는 제가 영급 상품의 연단사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양준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 호법들이 자네를 부운성(浮雲城)에 데려가는 게 아닌가? 그곳으로 갈 수 있는 연단사는 적어도 영급 상품은 되어야 한다네.”

두만은 미소를 지었다.

창염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두 장로도 그쪽으로 가는 길인가?”

“맞네. 나는 일부러 여기서 자네들을 기다린 걸세. 길이 머니 나도 호위들과 같이 길을 가고 싶어서.”

두만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 내가 거기로 가는 건 곧 필 천년마화 때문이 아니라 미나의 식견도 넓힐 겸, 수련하러 가는 것이네. 이 계집애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니까. 세상에 자질이 뛰어난 연단사가 자신밖에 없는 줄 안단 말일세. 이번 외출이 미나에게 큰 도움이 될 거네.”

“장로님, 저 이젠 그러지 않아요.”

미나는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

양준을 만나기 전까지 그녀는 콧대가 높았다. 그녀는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이미 몇 달 전에 현급 상품의 연단사 자격을 따냈다. 두만과 사부인 엽웅은 모두 그녀에게 큰 기대를 품고 거석성 연단사 협회의 후계자로 양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준을 만난 뒤로 미나는 여러 번 충격을 받았다. 특히 이번에 충격이 가장 컸다. 양준은 진작 영급 상품의 연단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작은 돌파에도 의기양양하지 않았던가! 여기까지 생각한 미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졌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찾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두만은 허허 웃더니 말했다.

“천년마화가 필 때가 되어, 자질이 뛰어난 연단사들이 부운성으로 모여들 것이네. 이건 천 년에 한 번 나타나는 기회이니 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네. 괜찮다면 우리 둘을 데리고 함께 가 주게나.”

“두 장로, 별말씀을. 부운성으로 가는 거면 같이 가게. 서로 의지도 되고 말이야.”

두만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의를 거친 뒤, 천소종의 네 명은 진원을 운행해 두만과 미나를 감싸고 함께 앞으로 날아갔다.

미나가 울적해 있는 것을 보자 양준도 마음이 걸려 다가가 물었다.

“너 왜 그래?”

“너무해!”

미나는 입을 삐죽 내민 채,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너무하다고?”

양준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미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너 너무 으스대지 마. 장로님께서 나만 열심히 하면 언젠가 널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하셨어.”

“내가 언제 으스댔어?”

양준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아도 속으로는 그랬잖아.”

양준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넌 세상 참 힘들게 사는구나.”

다른 일행은 두 젊은이가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번 여정이 따분하지 않게 느껴졌다.

천소종은 목적지인 부운성과 거리가 멀었다. 네 호법처럼 실력이 강한 사람들도 한 달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그것도 전력을 다해서 날아가야 한 달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천년마화가 피기까지 아직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일행은 느긋하게 움직였다.

한참 날다가 쉬고, 또 날다가 쉬고 이렇게 양준은 가는 내내 통현대륙의 광활함과 부유함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땅에는 크고 작은 세력이 수도 없이 많았다. 세력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멸문되었다가 또다시 우후죽순처럼 새롭게 생기고는 했다. 게다가 가는 길에 부운성으로 길을 재촉하는 초범 경지의 고수들도 많이 만났다. 그들의 옆에는 모두 연단사가 한 명씩 있었다.

그런 이들과 마주쳤을 때에는 서로 경계하며 피하기 바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부운성과 가까워질수록 공기 중에 떠도는 긴장된 분위기가 점점 더 짙어졌다. 일행은 시시각각 주변을 경계하며 양준과 두만, 미나의 안전을 보호했다.

스무 날 뒤, 일행은 초범 경지 무인들 사이 전투를 보게 되었다. 양측의 인원과 실력은 엇비슷했는데 각자의 무공과 비보, 기세는 어마어마했다. 싸움의 결과는 알 수 없었다. 일행은 남의 갈등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유유히 전쟁터를 꿰뚫고 지나갔다.

첫 번째 싸움을 목격한 뒤로 초범 경지 고수들 사이 싸움은 점점 더 잦아졌다. 거의 매일 지나가는 곳마다 싸우고 있거나 아니면 싸운 뒤의 흔적이 보였다.

창염은 그들 모두 부운성으로 가는 고수들로, 가는 도중 경쟁을 시작해 미리 적수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양준은 흠칫 놀랐다. 또한 천년마화가 초범 경지 3단계의 고수들에게 얼마나 큰 유혹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다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인간, 요족, 마족 3대 종족을 떠들썩하게 만든 큰일에 입성 경지의 고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양준이 의문을 제기하자 창염은 웃으며 대답했다.

“입성 경지의 고수는 끼어들지 않아. 이것도 암묵적인 규칙이지. 천년마화는 초범 경지에서 입성 경지에 진급할 때만 필요해. 인간이든, 요족이든, 아니면 마족이든 천년마화를 얻으려면 스스로의 실력으로 얻어야 해.”

“그것도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다른 원인도 있네.”

두만이 말을 이었다.

“음? 나도 들어 보고 싶군.”

창염은 깜짝 놀랐다. 그 역시도 또 다른 원인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양준과 미나는 눈을 빛내며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이런 비밀 이야기는 젊은이들이 혹할 만한 것이었다.

“천년마화는 통현대륙의 것이 아닌 것 같네.”

두만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우는 표정이 바뀌더니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별 세계에서 온 거란 말이야?”

“음, 듣기로는 그러하네.”

두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오래전인지 알 수 없지만 별 세계에서 종자 하나가 망천애에 떨어졌다고 하네. 그리고 세상에 없던 식물이 그곳에서 자라기 시작했다는 거지. 천 년 뒤에 그것에 꽃이 피었는데 누군가 무심결에 얻으면서 그 효용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걸세. 소식이 전해지자 인간, 요족, 마족들이 들끓었지. 입성 경지는 어디서도 보기 드문 존재니까. 그런데 천년마화가 마침 초범 경지 3단계의 무인이 입성 경지를 돌파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게 아닌가. 그 뒤로 또 천 년이 흐르자, 입성 경지의 고수도 끼어들었다네. 한바탕 전투를 치른 뒤, 결국 인간의 고수가 망천애에 올랐지. 하지만 뜻밖에도 활짝 피어야 할 천년마화가 순식간에 시들었다지 뭔가?”

“왜 그렇게 된 거지?”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도 알지 못하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뒤로 입성 경지의 고수는 더 이상 천년마화의 쟁탈전에 끼어들지 않았네. 일단 입성 경지 고수의 기운이 흘러들어가면 천년마화는 피지 않거든. 그래서 지금 망천애에는 거의 초범 경지밖에 없는 거라네.”

“기괴하군.”

역완이 감탄했다.

“별 세계의 것을 상식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되네.”

두만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두 장로, 정말 별 세계에 들어간 사람이 있나? 나도 별 세계에 관한 얘기를 많이 들었으나 별 세계가 어떤 세계라고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은 보지 못했네.”

창염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나도 잘 모르네. 마족의 말로는 한때 둘도 없이 대단했던 대마신이 성공적으로 별 세계에 들어갔다고 하더군. 인간과 요족들 사이에서도 이런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사실이 어떤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두만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양준은 눈을 반짝이며 끼어들지 않았다.

그는 대마신이 별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밝히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대 종족은 서로 엮이고 싶어 하지 않았고, 오히려 서로 죽이지 못해서 안달할 정도로 원수 같은 사이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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