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84화 (683/853)

제 684장. 운이 없군

천소종과 두만은 모두 양준을 잘 대해 주었다. 하지만 그가 고마 일족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그에게 고마 일족을 멸족시키라고 설득할 수도 있었다. 이는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마신성에 있는 동안 그는 려용과 한비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기에 고마 일족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한참 동안 한담을 나눈 사람들은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밤이 깊어지자 주변은 조용해졌다. 휑한 들판에는 오직 미약한 모닥불만 일렁이고 있었다. 미나가 몰래 양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양준은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따라와.”

미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르고는 어둠 속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양준도 일어나 그녀를 따라갔다.

몇백 장 걸어간 미나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 도착하자 나무에 기댄 채,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옆 자리를 두드리며 양준더러 앉으라고 눈치를 주었다.

“무슨 일이야?”

양준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별것 아니야. 그냥 너랑 얘기 좀 하고 싶어서. 저기서 얘기하면 자는 사람 깨울까 봐.”

미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데?”

양준은 풀을 뽑아서 가지고 놀며 물었다.

“그냥 이런저런 얘기.”

미나는 다리를 곧게 뻗고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너 지금 연단술 누구한테 배운 거야?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영급 상품의 연단사가 된 거야?”

“나 스스로 깨달은 거라면 믿겠어?”

양준은 웃으며 말했다.

미나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럼 하는 수 없고.”

양준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장로님은 분명 최고의 연단사가 널 가르치고 있대. 그분보다 훨씬 대단한 연단사가.”

“그런 셈이지.”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연단진결에는 수많은 연단사들의 경험과 깨달음이 담겨 있었다. 그의 연단술은 스스로 깨우친 것이라고도, 그들에게서 전수받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어? 장로님이 보고 싶으시대.”

미나는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외부인이 만나기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던데.”

“하하……!”

양준은 그 말에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두만이 존재하지도 않는 고수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의 연단술이 정체기에 들어선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면, 살아생전 다음 단계에 진급할 수 있을지 기대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번에 부운성에 가는 데는 이 목적도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실력이 강한 연단사도 많이 모였다.

“기회가 되면 장로님께 소개시켜드리면 안 될까?”

미나는 기대 어린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한참이나 침묵을 지켰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소개할 수는 없기에 그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왜 말을 안 해?”

미나는 양준이 말을 하지 않자 자신의 부탁이 과한 게 아닌가 싶어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사실 나한테 연단술을 가르쳐 준 분은 이미 돌아가셨어.”

“아……!”

미나는 입을 틀어막고 얼른 사과했다.

“미안해, 몰랐어.”

“괜찮아…….”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바로 이때, 둘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앞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앞에서 난폭한 신식의 힘이 신속하게 다가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의 머리 위에 이르렀다. 미나는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각종 비보를 꺼내 주변을 보호했다. 그녀의 싸움 경험은 매우 적었다. 하지만 반응이 빨라 허둥거리면서도 자신을 꽁꽁 잘 보호했다.

양준은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보았다. 그러고는 덤덤한 얼굴에 싸늘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신식의 힘은 일반적인 신식 공격과 달리 기괴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신식의 힘이 양준과 미나를 몇 바퀴 맴돌더니 곧 양준의 식해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양준!”

미나는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소리를 질렀다.

양준은 두 눈에 정기를 잃은 채,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솨아악-

이쪽의 인기척에 몇백 장 밖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깼다. 창염은 가장 먼저 다가와 나지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방금 전, 그도 신식의 힘을 느꼈다. 그리고 미나의 비명 소리를 듣고 바로 다가왔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미나는 당황한 얼굴로 다급히 사건의 경과를 말해 주었다.

“탈사?”

역완은 안색이 변하더니 바로 사건의 내막을 눈치챘다. 웬 고수가 근처에서 죽은 다음, 육신을 빠져나온 신혼이 우연히 양준을 발견하고는 그의 몸을 빼앗으려고 한 모양이었다.

“탈사라…….”

비우는 입을 가리고 웃더니 말했다.

“그럼 신경 쓸 필요 없겠네.”

창염도 한시름을 던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완과 비전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당신들… 당신들은 걱정되지 않아요?”

미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기세였다. 그녀도 탈사가 뭔지 알고 있었고, 탈사를 당한다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있었다. 잘못되면 신혼이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천소종의 네 고수는 걱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고소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두만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나! 진정하거라.”

“장로님, 저들이…….”

미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양준은 탈사당하지 않을 거다. 녀석이 뭘 가지고 있는지 잊었느냐?”

두만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미나를 바라보았다. 미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 참, 녀석의 신식이…….”

두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입성 경지의 고수가 신혼을 빼앗으러 온 것만 아니라면 양준은 무사할 거다. 조금 기다리기만 하면 돼.”

“그 인간도 참 운이 나빠. 하필이면 사질을 고르다니. 나라면 너 같은 야들야들한 소녀를 고를 텐데.”

역완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잇값을 못하시네요!”

“이봐, 난 아직 젊다고.”

역완은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식해 안,

양준은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쳐들어온 뒤 안절부절못하는 신혼을 바라보았다. 그는 원래 양준의 신혼을 삼키고 육신을 빼앗으려고 했었는데 뜨거운 식해 안에 들어서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제 발로 지옥에 들어선 꼴이었다.

주변은 온통 활활 타오르는 불바다였다. 뜨거운 기운에 그는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그의 신혼은 이런 열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영혼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그는 몸부림 쳤다.

“죽기 싫으면 신혼 영체를 드러내시죠.”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신혼의 힘이 살짝 움직이자 곧 또렷한 사람의 모습이 양준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일그러진 표정을 한 채 이를 악물고서 두려운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오육십밖에 안 되어 보였다. 하지만 경지는 초범 경지 2단계였다. 생전에 아주 강한 고수였던 것은 틀림없었다.

“정말 운이 없군요.”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양준의 적의를 눈치챈 그는 억지로 고통을 참으며 웃어 보였다.

“젊은이, 오해가 있는 것 같군.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닐세.”

“아, 그런가요?”

양준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불길이 이글거리며 점점 더 뜨겁게 식해를 달구었다.

“해명할 기회를 줘.”

그는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하지만 양준은 못 들은 척했다. 자신의 몸을 탈사하려고 한 이를 당연히 봐줄 리가 없었다. 곧이어 식해 안이 흔들리더니 뜨거운 신식의 불꽃이 상대방의 신혼으로 다가갔다.

“잠깐, 날 살려주면 비밀을 말해 줄게.”

“별로 관심없는데요.”

양준은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의 생명에 관한 거야.”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양준은 실눈을 떴다. 흔들리던 식해가 점차 조용해졌다. 그는 상대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시간을 끌려고 날 속인 거면 당신을 죽이지 않고 죽음보다 못한 고통을 맛보게 해 줄 겁니다.”

“아니야, 아니야.”

양준이 공격을 멈추자, 그는 한시름을 놓으며 다급히 말했다.

“너희들도 부운성에 가는 길이지?”

“그렇다면요?”

“그렇다면 여기서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앞에서 고수들이 부운성으로 가는 사람들만 노리고 있어. 이미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지. 우리도 부운성으로 가던 길이었는데 지금은 다 죽고 나 혼자만 신혼이 빠져나와…….”

“그들은 몇 명이에요?”

“열 명이 넘어. 그중 초범 경지 3단계의 무인도 많고. 게다가 모두 흉악한 자들이야.”

“인원이 적지는 않군요.”

양준이 중얼거렸다.

“그래, 젊은이. 내가… 내가 사실대로 고한 걸 봐서 날…….”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는 짙은 경계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양준이 손가락이라도 까닥하면 덤비려는 듯했다. 이런 경고와 협박이 담긴 눈빛은 사람들에게 겁을 주기 충분했다. 그는 자신보다 경지가 낮은 양준에게도 먹힐 거라고 생각했다.

양준은 미소를 짓더니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는 흠칫 놀라더니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출수하려고 했다. 이때, 공중에서 금빛이 쏘아졌다. 그리고 그의 신혼은 소리 없이 정화되었다. 정화된 뒤의 기운을 흡수한 양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호기심 어린 눈들이 초롱초롱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녀석 맞네. 그 사람이 운이 없었던 거야.”

역완은 손뼉을 치더니 웃음보를 터뜨렸다.

“괜찮아?”

비우가 걱정 어린 말투로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양준은 고개를 젓고 나서 자신이 전해 들은 바를 말해 주었다.

“열 명이 넘는다고? 인원이 적지 않군.”

창염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걸 모르고 무모하게 들어가다가 공격당했다면 정말 큰일났을 수도 있겠어.”

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다른 곳으로 돌아가야 하나요?”

미나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굳이 돌아가?”

역완이 낄낄 웃었다.

“어… 그러면 이렇게 그냥 가게요?”

“좀 쉬었다가 계속 갈 길을 가는 거야. 그놈들이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정말 우리를 공격한다면…….”

말하는 와중에 창염의 기운이 변하더니 눈빛도 날카로워졌다. 온몸이 얼음으로 변한 것처럼 무시무시한 한기를 내뿜었다.

그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되었다. 역완과 비전도 마찬가지였다. 여인인 비우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양준은 눈앞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은연중에 천소종의 네 사숙이 모두 호전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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