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85화 (684/853)

제 685장. 비전의 진정한 실력

고요한 들판에서 사람들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앞으로 나아갔다. 창염은 앞에서 길을 이끌고 역완과 비우는 후방을 지켰다. 그리고 양준, 미나, 두만은 중간 위치에서 보호를 받았다. 미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덤덤한 얼굴이었다.

한참 길을 가던 중 양준의 안색이 바뀌었다.

어느 순간, 비전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샌가 사람들의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던 것이다. 양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밤바람이 불어오자 주변의 큰 나무들이 흔들리며 쏴아아,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귀신 같은 그림자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았다. 미나는 겁을 먹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안정감을 찾으려는 듯, 저도 모르게 양준에게 바짝 붙어 겁에 질린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양준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제야 미나는 안심이 된 듯했으나 양준의 곁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창염은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그는 이런 긴장되고 자극적인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무리의 후방을 지키는 역완과 비우도 냉소하며 수시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단사인 두만도 덤덤한 얼굴로 느긋하게 길을 갔다. 그는 네 명의 고수들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 듯했다.

이때, 킬킬거리는 괴이한 웃음소리가 주변에서 음산하게 들려왔다. 순간, 불어오는 밤바람마저 평소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곧 여러 명의 웃음소리가 사람들의 귓전을 울렸다. 그들의 심신을 무너뜨리려는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천소종 사람들은 여전히 겁먹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갔다.

반 시진이 지나자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는 점차 잦아들었다. 상대방도 이런 수단으로는 일행을 당황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시시한 장난을 거두었다.

“쥐새끼처럼 숨어서는 겁이 나는 모양이지?”

창염은 불만스러게 투덜거렸다. 그는 곧이어 큰 싸움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에 피가 들끓었다. 하지만 상대는 공격을 해오지 않고 귀신 놀음이나 하며 기웃거릴 뿐이었다.

이에 그는 기분이 매우 언짢아졌다.

“역완, 가 봐.”

창염이 분부했다.

역완은 잔인하게 웃더니 작은 몸을 날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처참한 비명소리가 수림에서 울려 퍼졌다.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였다. 비명 소리는 아주 짧았는데 반응할 시간도 없이 죽임을 당한 게 분명했다. 곧 다른 방향에서 비슷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눈을 빛냈다. 두 비명소리가 들린 곳의 거리는 최소 몇백 장 정도는 되었다.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정확하게 두 사람이 숨은 곳을 찾아내 일격에 죽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역완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잠시 뒤, 역완은 태연한 얼굴로 돌아와서 창염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초범 경지 1단계 두 명을 잡았어. 둘 다 잡놈이었어. 완전 성에도 안 차.”

그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입을 쩝쩝 다셨다. 그 말을 들은 미나는 눈을 뒤집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이 계집애… 간이 너무 작잖아.”

역완이 어이가 없어 하며 말했다.

양준은 고개를 젓고는 미나를 어깨에 둘러멨다. 비우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얘는 네가 사람을 먹은 줄 안 것 같아.”

역완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제야 자신이 한 말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해명해야 할 상대가 기절해 버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역완이 두 명을 죽여서인지 상대는 더욱 경계했다.

두 시진 동안, 주변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양준은 여전히 있는 듯, 없는 듯한 적의가 그들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경계를 푼다면 상대방은 반드시 머뭇거리지 않고 공격해 올 것이 분명했다.

창염은 기다리다가 짜증이 난 듯했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소리쳤다.

“사람을 죽이고 보물을 빼앗고 싶은 거면 아예 나와서 붙어 보는 게 어때? 이렇게 숨바꼭질을 할 거면 우린 그냥 떠날 거야.”

주변은 적막만 맴돌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창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매우 실망한 표정이었다. 곧이어 그가 손을 휘두르자 기다란 장검이 날아가 몇십 장 밖의 땅에 비스듬히 꽂혔다.

양준은 장검을 알아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창염과 비우가 그날 동굴 안에서 얻은 비보였다.

“이건 성급 비보다. 사실 내가 아직 미처 흡수하지 못한 거야. 이거 가지고 싶지 않아? 날 죽이면 이 비보는 너희들 거야. 성급 비보는 자주 보는 게 아니지.”

창염이 덤덤하게 말했다.

“나도 하나 있어.”

비우도 거들면서 자신의 성급 비보를 내던졌다. 아직 흡수하지 못한 두 성급 비보를 나란히 한데 두자, 순간 수많은 신식이 두 비보에 머물렀다. 주변에서 무겁고 탐욕스러운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봐, 너희 둘 언제 성급 비보를 얻은 거야?”

역완이 눈을 부릅뜨고 부러운 말투로 물었다.

“난 왜 몰랐지?”

“몇 달 전이야.”

비우는 생긋 웃으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사질을 데리고 오는 길에 얻은 거야.”

“너무하잖아. 내 몫은 없어?”

역완이 소리를 질렀다.

“두 개밖에 없어서 나랑 비우가 하나씩 나눈 거야. 하지만 비우에게 영급 상품짜리가 하나 더 있어.”

“나 줘!”

역완은 다급히 비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비전은 어떡해?”

비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걔가 죽든 말든. 걔는 활만 하나 있으면 돼.”

“그럼 이러자. 너희 둘 중 사람을 많이 죽인 사람에게 비보를 줄게.”

비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완은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

“좋은 생각이야. 난 이미 둘을 죽였어.”

바로 이때, 주변에서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번개처럼 두 성급 비보를 향해 날아갔다. 창염은 번뜩이는 눈빛으로 지켜보다가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렸다.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에게서는 모두 초범 경지의 난폭한 기운이 느껴졌고 속도도 매우 빨랐다. 눈 깜짝할 새에 그들은 두 성급 비보 앞에 나타났다. 곧이어 수많은 손들이 비보를 향해 뻗어져 나왔다.

슈슈슉-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동시에, 양준은 곁눈질로 어둠 속에서 순간 사라지는 금빛을 보았다.

성급 비보 옆까지 다가갔던 무인들은 거대한 힘에 떠밀려 날아가 버렸다. 그들의 몸에는 모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구멍들은 모두 하나같이 심장이 있는 곳이었다. 허공에서 날아가던 무인들은 금방 생기를 잃었다. 단숨에 급소를 맞힌 것이었다.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이처럼 날카롭고 정교한 공격이 어디에서 날아온 것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역완은 안색이 변하더니 한 곳으로 달려가며 투덜거렸다.

“비전, 이 치사한 놈아. 당당하게 나와서 승부해. 몰래 화살을 쏘면 어떡해?”

비전은 대답하지 않았다. 짙은 파괴성이 담긴 화살만이 불가능한 각도에서 날아와 적이 미처 반응하지 못하는 동안 그들의 목숨을 취할 뿐이었다.

양준은 신식을 펼쳐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따라가 비전이 숨은 곳을 알아내려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제야 뻐드렁니 사숙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된 것이다.

싸움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끝날 때까지 고작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역완이 앞으로 뛰쳐나가 적 한 명을 죽인 뒤로 주변은 다시 고요해졌다. 오직 하늘을 찌르는 피비린내만이 사람들의 코끝을 맴돌았다.

이내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운 곳에 숨어 있던 두세 명의 적들은 급히 철수했다. 그들도 천소종 일행을 상대하기 버겁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두 명만 나섰을 뿐인데 그들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만약 네 명이 다 나선다면 결과는 어떨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방대한 신식의 힘이 끊임없이 양준의 머릿속으로 모여들었다. 양준은 마음을 가다듬고 잘 살펴보았다. 죽은 사람들은 모두 초범 경지 1, 2단계의 무인으로, 초범 경지 3단계는 없었다. 그는 못내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초범 경지 3단계면 이미 어떻게 입성 경지에 들어설 것인지 깨달음을 가지고 있을 터, 양준은 그것이 필요했다. 지금 그의 천도와 무도에 대한 깨달음과 심적 경지로는 입성 경지를 돌파하기 전까지 정체기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입성 경지에 진급할 건지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은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마신성에서 입성 경지 2단계인 저견을 죽이고 그의 깨달음을 얻었지만 입성 경지에 대한 그의 이해는 아직 깊지 않았다. 양준은 고수의 신혼이 대량으로 필요했다. 그들의 깨달음과 경험 중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탐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창염과 비우는 이미 비보를 다시 거두어들인 뒤였다.

“바보 아니야? 내가 성급 비보를 흡수하지 않았을 리 없잖아.”

창염은 냉소하며 비보를 몸속에 갈무리했다.

역완은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왔다. 그는 부러운지 한숨을 내쉬었다. 비전도 귀신처럼 나타나더니 비우에게 손을 쓱 내밀고 뻐드렁니를 드러냈다.

“나 줘.”

비우는 생긋 웃더니 전에 얻은 영급 상품의 비보를 비전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이번 전투에서 역완은 총 세 명을 죽였고, 비전은 단번에 대여섯 명을 죽였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비전이 이긴 경기였다.

양준은 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번 싸움은 매우 간단하게 끝났다. 하지만 이는 천소종의 고수들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초범 경지 3단계의 무인이었다면 이렇게 손쉽게 상대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초범 경지에서도 단계별로 실력 차이가 현저했다. 초범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 대경지는 아홉 개로 나뉘었고, 단계별로 차이가 작은 편이었다. 하지만 초범 경지는 달랐다. 1단계, 2단계, 3단계, 한 단계씩 진급할 때마다 비약적인 수준의 차이가 생겼다. 숨어 있던 적들은 자신과 천소종 사람들의 실력 차이를 감안하지 못하고 비보의 유혹을 못 이겨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미련하기 그지없는 짓이었다.

이번 싸움이 끝난 뒤, 주변은 많이 조용해진 상태였다. 가는 길에 눈에 띄는 싸움도 점점 줄어들었다.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모두 천년마화를 바라고 온 사람들인지라 천년마화가 피기도 전에, 불필요한 충돌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괜히 싸우다가 엉뚱한 사람만 이익을 본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