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87화 (686/853)

제 687장. 수수께끼의 노인

“사부님, 여기가 부운성입니까?”

청년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이름이 바뀌지는 않았으나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구나. 천 년간 참으로 많이 변했군.”

노인은 감개무량해했다.

“그럼 저 산봉우리가 망천애가 있는 곳입니까?”

젊은이는 몇십 리 밖에 있는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천년마화가 저 산꼭대기에서 피지. 요아(耀兒), 이번에 널 데리고 온 것은 곧 피게 될 천년마화 때문이란다. 넌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를 따라 산에서 수련만 하느라 세상 물정에 대해 전혀 모르지 않느냐? 이곳에서는 절대 문제를 일으키지 말거라. 그리고 사람들도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청년은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 예전에도 천년마화의 약물을 제련했으니 저에게 그쪽의 상황을 자세히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너무 궁금합니다.”

노인은 미소를 지었다.

“말하기 어렵구나. 그날이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자, 먼저 이곳의 성주를 보러 가자꾸나. 이곳의 성주는 아마도 내 옛 친구의 3대 후손일 것이다.”

“사부님, 천천히 가시지요.”

요아라고 불린 청년은 노인을 살갑게 부축하며 공중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성안의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주목받지 않았다. 때가 때인지라, 지금은 부운성을 드나드는 무인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노인은 늙어서 행동이 굼뜬 게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는 고수의 기운이 느껴졌다.

*성주부(城主府).

인간, 요족, 마족의 고수들이 모여 있었다.

성주인 아우구(奧古)는 마족의 고수였고, 부성주인 주량(周良)과 금각(金角)은 각각 인간과 요족의 고수였다. 셋은 모두 입성 경지였다. 그들은 삼 년마다 대련을 하여 성주 자리를 쟁탈했다. 그리고 대련에서 패한 두 명은 부성주가 되어 셋이 함께 부운성을 다스렸다.

지금 세 종족의 고수는 중요한 일을 두고 논의를 하고 있었다. 천년마화가 곧 피게 되자 부운성은 사람들로 붐볐다. 큰 소란이 생겨 부운성에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 역시 적절하게 사람을 배치해야 했다. 그리고 이런 결정적인 시기에 그들은 입성 경지의 고수가 부운성 백 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했다.

천년마화는 부운성의 상징이자 부운성에 번영을 가져다줄 근본이었다. 천년마화가 피지 않는 천 년 동안에도 많은 이들이 망천애의 풍경을 감상하고자 다녀갔다. 이들은 모두 부운성에 큰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때문에 천년마화가 필 때, 그들은 입성 경지 고수의 기운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요족의 호위가 다급히 들어오더니 공수하며 말했다.

“아우구 대인, 저택 밖에서 한 노인이 뵙기를 청합니다.”

“노인?”

아우구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언짢은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안 만나. 물러가라고 해.”

호위는 물러가지 않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분께서는 아오아스(奧斯都) 어르신과 친분이 있다고 하면서 이것을 대인께 건네주라고 하셨습니다.”

아우구는 안색이 변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할아버지와 친분이 있다고?”

아우구는 미간을 찌푸리다가 물었다.

“무엇이냐? 가져와 보거라.”

호위는 얼른 물건을 바쳤다. 아우구는 단번에 안색이 확 바뀌었다. 그는 추억에 잠긴 듯, 얼굴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한참 뒤, 그는 물건을 갈무리하고는 주량과 금각에게 말했다.

“두 분, 오늘은 이렇게 끝냅시다. 제가 누구를 좀 맞이해야겠습니다.”

“편한 대로 하시지요.”

주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우구가 떠나자, 금각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문밖을 힐끗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우구의 할아버지와 친분이 있다고 하니 적어도 천 년은 산 게 아닐까요?”

주량은 그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세상에 괴물급 고수가 어디 적습니까?”

금각은 웃으며 말했다.

“적지는 않지만 아우구의 가문과 연관된 고수는 많지 않지요.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호위가 가져온 것은 아우구 가문의 영패였어요. 줄곧 그들에게 큰 공헌을 한 사람들만 영패를 가질 자격이 있었습니다. 아우구 가문에서 지금까지 내놓은 영패는 세 개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중 두 개는 마족의 손에, 즉 아우구 가문의 부하들이 가지고 있고 나머지 하나는 인류의 손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인간이겠군요.”

주량이 단정하며 말했다. 강한 요기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큰일입니다.”

금각의 표정이 바뀌었다.

“왜 그러시죠?”

“어떤 인간이 아우구 가문의 영패를 얻었는지 아십니까?”

주량은 생각에 잠겼다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아우구 가문의 가문 영패를 내놓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 평범하지 않을 겁니다.”

인간, 요족, 마족의 원한은 매우 깊었다. 그래서 그들은 중립 지대 밖에서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다. 아우구 가문은 작은 가문이 아니었다. 이런 가문에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은 인간 고수가 대단한 신통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주량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전 이런 전설들을 잘 모릅니다. 알고 있다면 얘기를 좀 해주시지요.”

금각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주량에게 다가서서 낮게 몇 마디 말했다. 그러자 주량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금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주량과 금각은 눈을 마주치더니 벌떡 일어나 아우구를 뒤쫓아 나갔다.

아우구는 다급히 성주부 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인을 본 그는 한참 멍하니 있다가 공손하게 큰절을 올렸다.

“정말 어르신께서 오신 줄 몰랐습니다. 미리 마중을 나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저택 밖의 호위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족은 가장 강하고 난폭한 종족이었다. 때문에 마족의 고수는 쉽사리 다른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특히 아우구는 더욱 그러했다. 그동안 그는 누구에게도 이렇게 공손하게 대한 적이 없었다. 그것도 상대가 인간이지 않는가?!

‘이 늙은이는 정체가 뭐기에 아우구 대인이 이렇게 굽신거리는 거지?’

호위들은 순간 어리벙벙해졌다.

노인은 껄껄 웃더니 말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더니 예전의 녀석이 이렇게 컸군. 아직도 내 모습을 기억하는구나. 아오아스는 지금 어떻게 지내느냐?”

아우구는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백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옛 친구들이 다 떠나고 나만 목숨 질기게 살아 있군. 어휴.”

“어르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르신의 존재는 우리 세 종족의 행운입니다.”

“허허, 늙어서 이젠 그렇지도 않네.”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친구는…….”

아우구는 옆에 있는 청년을 훑어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적요(翟耀)가 인사 올립니다. 저는 사부님의 제자입니다.”

적요는 공손하게 예를 올리며 이름을 밝혔다.

아우구는 눈을 반짝이며 흥분된 얼굴로 말했다.

“어르신께서 제자를 들이셨습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갈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아서 제자를 두었네. 이 아이는 자질이 나쁘지 않아서 옆에 두고 가르치고 있다네.”

“젊은이, 운이 참 좋군. 어르신 같은 분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다니. 천하의 사람들이 부러워 죽으려 하겠군.”

아우구는 감탄하며 말했다.

적요는 인류가 아닌, 요족이었다. 다만 몸속의 요기를 완벽하게 숨겨서 실력이 아우구 정도가 아니라면 눈치채기 어려웠다. 아우구는 노인의 너그러운 마음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인간이 되어서 요족을 제자로 들이다니!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인간과 마족, 요족은 구분 없이 모두 세상의 생명이었다. 바로 이런 생각 때문에 노인은 천하의 존경을 받았다.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말하는 사이, 주량과 금각도 다급히 성주부에서 뛰어나왔다. 노인의 앞에 선 그들은 공수하며 인사를 올렸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자네들은 부운성의 부성주 주량과 금각이겠군?”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안목이 예리하시군요.”

주량과 금각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이 같은 큰 인물이 자신들을 알아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좋네, 좋군. 부운성은 자네 셋이 관할하고 있어서 이렇게 번성한 것 아니겠나? 자네들도 애를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세상에 자네들 같은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네. 종족 사이의 거리감과 갈등도 줄어들고 나중에는 모든 생명이 한 가족이 되는 거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 광경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군.”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희가 노력하겠습니다. 다른 곳은 장담할 수 없으나 부운성에서만큼은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주량과 금각이 얼른 대답했다.

“그럼 기대하겠네.”

노인은 미소를 지었다.

“어르신, 안으로 드셔서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아우구는 다급히 안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는 주량과 금각이 노인과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적요는 옆에서 살뜰하게 노인을 부축했다.

주량과 금각은 서로를 마주 본 뒤 다급히 따라갔다. 둘은 속으로 이번 기회에 노인에게서 성급 영단 몇 알을 얻어낼 생각이었다.

*성주부 안,

아우구는 연회를 차려 노인과 적요를 반갑게 맞이했다. 술상 위에는 온갖 술과 산해진미, 영과로 가득했다.

노인은 영과 몇 알을 먹은 뒤, 더는 먹지 않았다. 적요만 옆에서 신이 나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 주량과 금각은 이를 보고 자세를 낮춰 적요에게 술을 권했다.

술을 어느 정도 마신 뒤, 아우구가 물었다.

“어르신께서도 천년마화 때문에 행차하신 겁니까?”

“그렇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 난 이곳의 규정을 파괴하거나 남의 이익을 해치지 않을 것이네. 가장 중요한 건 어린 제자를 데리고 세상 구경을 하려는 것이네.”

“저희는 어르신의 인품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우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신분으로 정말 천년마화를 원한다면 말 한마디로 그와 경쟁하는 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망천애의 천년마화도 당연히 그의 것이 될 터였다.

“자네를 보러 온 것도 다른 의도가 아니네. 적요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것일세. 난 더 이상 힘들게 후계자를 찾고 싶지 않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운성 안에서 적요를 해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목숨으로 장담하지요.”

아우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부탁하네. 참, 사례로 자네 세 명에게 성급 단약을 하나씩 만들어 주겠네.”

이 한마디에 세 명의 얼굴은 흥분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주고받다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