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8장. 무역 지역
이튿날, 좌선하고 있던 양준은 옆방에서 움직임이 느껴지자 신식을 살짝 펼쳐 감지해 보았다. 창염, 역완, 비전이 망천애 쪽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아침 일찍 움직이는 듯했다.
비우는 어젯밤 마신 술에 취해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옷자락이 허벅지까지 다 올라갈 정도의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침대에 가로 누워 있었다. 하얀 그녀의 피부가 양준의 눈을 어지럽게 자극하고 있었다.
양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이불을 가져다 비우를 꽁꽁 덮어주었다.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비우는 나른하게 몸을 일으키더니 기지개를 켜고서 창가에 한참 동안 조용히 서 있었다.
“우리 밖에 나가 보자.”
비우가 제안했다.
“창염 사숙께서 여인숙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양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괜찮아. 부운성에서는 그리 위험하지 않을 거야. 설령 싸움이 있다고 해도 성주부의 사람들이 제지할 테고.”
비우는 다가오더니 양준의 곁에 찰싹 붙어 앉으며 말했다.
“나가자. 부운성에 언제 또 와보겠어. 계속 방 안에 처박혀서 뭐 하게? 창염도 며칠은 지나야 돌아올 거야. 며칠 동안이나 방 안에서 계속 기다릴 거야?”
그녀는 말하는 한편, 거리낌 없이 양준의 팔을 잡아끌었다.
양준은 얼굴빛이 시커메지며 말했다.
“그래요. 나갑시다. 근데 저하고 좀 거리를 두셨으면 좋겠네요.”
“나쁜 자식!”
비우가 이를 악물며 흘겨보았다.
두 사람은 방을 정리하고 여인숙에서 빠져나와 떠들썩한 거리를 거닐기 시작했다. 사실 비우가 말하지 않아도 양준은 나가서 돌아볼 생각이었다. 두만은 천년마화가 필 때가 되면, 이곳에 뛰어난 연단사들이 많이 모일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각지의 무인들도 이곳에 모여들기 때문에 사람이 많아지면 자원 또한 많을 터였다. 따라서 평소 볼 수 없는 희귀한 약재나 영초, 영약도 나타날 수 있었다.
양준은 아직 일부 약재를 수집해야 했다. 지금 그는 천소종에서 제공하는 약재들로 연단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필요한 약재가 따로 있었다. 우선 스스로의 수련에 필요했고, 다음으로 마신성의 고마 일족을 위해 필요했다. 마신성을 떠날 때, 려용은 그에게 성급 단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 목록을 적어 주었다. 그동안 양준은 그럭저럭 많이 모았지만 아직 수집하지 못한 것도 적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이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부운성 안,
점포가 즐비하게 늘어섰고,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비우는 살갑게 양준의 팔을 잡고서 거리를 노닐었다. 두 사람은 선남선녀라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숙, 좀 떨어져 주실래요?”
양준은 어쩐지 불편했다. 길을 걷다가도 가끔씩 신체적 접촉이 있을 때마다 그는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왜 그래? 난 너를 보호해야 한단 말이야. 나쁜 녀석, 사숙에게도 반응하는 건 아니겠지?”
비우가 그를 바라보며 방그레 웃었다.
양준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전 젊은 사내입니다. 정상적인 반응이라고요.”
“다른 생각 안 하면 됐어.”
비우는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이런 모습을 즐기는 듯이 걸으면서 양준과 귓속말을 나누었다. 비우가 알려 준 덕분에, 양준도 이제는 마족과 요족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통현대륙에서는 인간, 요족, 마족 세 종족이 대립하고 있었다. 그중 인간의 수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마족, 요족의 순서였다. 요족이 가장 적은 것은 요족을 위한 화생지가 드물기 때문이었다. 화생지는 요족의 뿌리이자 토대였다. 요수는 실력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화생지를 통해 인간의 몸을 가지면서 인간에 못지않은 지능을 얻을 수 있었다. 때문에, 인간의 몸을 가진 요족은 모두 강자였다. 이는 다른 두 종족과 다른 점이었다. 하지만 요족이라도 모두가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강한 요족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자질이 빼어난 요족은 화생지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사람의 몸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자들은 모두 요족 중의 정예로 강자 중의 강자였다.
양준은 문득 견식을 많이 넓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운성 연단사 협회에서 개설한 점포에 이르자, 양준은 몇 바퀴를 돌고 나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필요한 약재는 없었다.
“몇 번을 둘러보고서 아무것도 안 사는 것을 보니, 혹시 우리 점포의 물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가?”
점포 주인이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모두 좋은 물건이지만 제가 찾는 것이 아닙니다.”
“자넨 연단사인가?”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연단사 명패를 꺼내 보였다. 점포 주인은 명패를 받아 감지해 보고는 살짝 놀라더니 표정이 살갑고 친근해졌다.
“혹 어떤 약재가 필요한지 말해 줄 수 있겠나? 내 한번 유의해 보지.”
양준이 약재 몇 가지를 말했다.
점포 주인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약재들은 자라는 환경이 까다로워서 보기 드물고 귀중하다네. 우리 점포에는 확실히 없네. 그것들을 얻으려면 쉬운 일이 아닐 걸세. 아니면 자네, 무역 지역에 가보게나. 운이 따르면 거기서 찾을 수 있을지도.”
“무역 지역이라고요?”
“이번 축제를 위해, 성주들께서는 전문적으로 지역을 따로 지정해 연단사들의 거래 장소로 만들었다네. 그곳에서는 많은 연단사들이 물물교환을 할 테니 한 번 가보게나.”
“무역 지역은 어디쯤에 있습니까?”
점포 주인이 위치를 알려주자,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하고 비우와 함께 무역 지역으로 걸어갔다.
반 시진이 지나, 양준은 눈앞의 널찍한 장소와 북적이는 광경에 추억에 빠진 듯 아련한 미소를 떠올렸다.
“뭘 떠올린 거야?”
비우가 양준의 묘한 미소를 보고서 물었다.
“문파에 있을 때 일들이 떠올라서요.”
양준이 엉겁결에 대답했다. 그는 눈에 익은 북적이는 광경, 수많은 가판대와 사람들을 보면서 당시 능소각에 있을 때 갔던 흑풍시장을 떠올렸던 것이다. 비슷한 거래 방식과 광경에 그는 친근감을 느꼈고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다만 이곳에는 숲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능소각, 풍우루, 혈전방의 최우수 제자들도 없었다.
양준은 한번 휙 둘러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가판대의 주인들은 모두 연단사였다. 그들은 연단사 명패를 가슴에 걸고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부는 실력이 강한 무인들인 듯했다. 그들은 밖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하면서 얻은 괜찮은 약재들을 팔고 있었다.
장내는 물건을 사고파는 소리로 떠들썩했다. 또한 팻말을 걸고 연단사에게 단약을 만들어 주기를 부탁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곳의 모든 것은 거의 약재, 단약과 연관되어 있었고 공기 속에도 짙은 약 향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양준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가판대마다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수확이 있었다. 시장에서 찾을 수 없는 약재도 이곳에서는 거의 다 찾을 수 있었다. 판매자 대다수가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고, 대부분은 정석으로 살 수 있었다. 양준에게는 정석이 많았다. 대부분의 정석을 고마 일족에게 남겨 주었지만, 남긴 것만 해도 꽤 큰 재산이었다.
양준은 가격 흥정을 하면서 얼마 안 되어 약재 몇 가지를 살 수 있었다. 그 과정에 비우가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녀는 양준이 생각한 이상으로 말재주가 뛰어났다. 비우가 가격을 여지없이 깎은 다음, 내친 김에 미색을 드러내면서 유혹하면 판매자들은 모두 달갑게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내놓았다.
반나절이 지나 양준은 귀중한 약재를 여러 가지 사게 되었다. 그것들은 모두 성급 단약을 만들 때 필요한 약재였다. 그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내가 정석을 적지 않게 절약할 수 있게 해줬는데 무엇으로 감사를 표할 거야?”
비우는 여전히 양준의 팔을 잡고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술을 사 드리겠습니다.”
“역시 사질이 내 마음을 알아준다니까.”
“하지만 취하면 안 돼요. 또 취하면 다른 사숙들이 돌아오자마자 이를 거예요.”
“알았어.”
비우가 입을 삐죽거렸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 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대단한 물건이 나타난 듯했다. 동시에 공기 중에 은은한 향기가 풍겨왔다. 상큼한 향기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만 같았다.
양준과 비우는 동시에 눈이 번쩍 뜨여 서로 마주 보았다. 보물이 나타난 것이 틀림없었다.
두 사람은 다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 근원지를 바라보았으나 그곳은 이미 인파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다. 감탄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인파 사이로 은은한 무지갯빛이 피어나는 것이 보였다.
“가 보자.”
비우는 말하면서 양준을 잡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한참이 지나도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때, 인파 속에서는 가격을 묻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얼마에 팔 건가?”
“성급 단약 열 알이오.”
세파를 겪어 지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경꾼들이 탄식했다.
“너무 비싼 거 아닌가? 성급 단약은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잖소. 세상에서 성급 단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가 손에 꼽을 정도인데, 한 번에 열 알이라니. 터무니없는 가격인 것 같구먼?”
“그러게 말이오. 다른 약재나 정석으로 바꾸면 안 되겠소?”
“비보는 어떤가? 영급 상품 비보 몇 개가 있는데 마음대로 골라도 되오.”
“성급 단약 열 알만 필요하오. 성급 단약이 없으면 자리를 내주시오.”
“거 참 사람이 모나긴, 너무 매정한 거 아니오.”
“잘난 척은! 이게 성급 단약 열 알의 가치가 되기나 해? 웃기는 소리! 돈에 환장한 것 같군!”
“오빠, 물건을 저한테 주면 저를 오빠한테 맡길게요. 어떠세요?”
어디선가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웬 여자가 이렇게 뻔뻔스러워. 지조라고는 없군!”
“뭔 대단한 미색인 줄 알았더만? 그 주제를 하고서 나대? 전혀 주제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너희들이랑 뭔 상관인데?”
싸우는 소리가 커지면서 장내는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