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89화 (688/853)

제 689장. 빙심설련

“다 꺼져!”

이때,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내는 순식간에 물 뿌린 듯이 조용해졌다. 다들 귀가 웅웅거렸고, 실력이 낮은 일부 무인들은 귓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가판대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물건 주인이 화를 낸 것이었다.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을 거요. 내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으면 여기서 떠나시오.”

물건 주인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초범 경지 3단계!”

인파 속에서 누군가의 낮은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물건 주인의 몸에서 발산된 은은한 기운에서 사람들은 그의 뛰어난 실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곧이어 조금이라도 이득을 취하려던 이들은 고개를 젓고 탄식하며 천천히 물러갔다. 물건 주인은 얼핏 보기에도 사나운 사내로 이런 사람에게서 이득을 보려 하면 결코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이들이 남아 어떡해서라도 가격을 깎으려 했다.

물건 주인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성급 단약 열 알을 고집했다.

가판대 앞에는 사람들이 점차 적어졌고 결국 한산해지게 되었다. 양준과 비우는 드디어 가판대 앞에 다가갈 수 있었다. 눈앞의 물건을 보는 순간, 두 사람 모두 깜짝 놀랐다.

그것은 마치 빙정으로 조각한 듯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얼음 연꽃이었다. 활짝 핀 연꽃은 싱싱한 잎을 가지고 있었고, 생기가 넘쳤으며 은은하고 상큼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양준이나 비우 모두 온몸이 개운해지며 정신도 평소보다 훨씬 더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

‘천재지보군!’

양준은 곧 확신할 수 있었다.

“빙심설련(氷心雪蓮)?”

비우가 놀라서 외쳤다. 그러고는 천천히 쭈그리고 앉더니 얼음 연꽃을 훑어보고서 한껏 숨을 들이켰다.

“만 년은 된 거 같군요?”

그녀의 말에 양준의 표정이 바뀌었다.

‘만년이라니?!’

어떤 약재든지, 설령 최하급 약재라고 해도 만 년 동안 자랐다면 그것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물이었다. 하물며 얼음 연꽃은 결코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무덤덤하던 물건 주인의 얼굴빛이 살짝 바뀌더니 고개를 들어 비우를 바라보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안목이 있는 사람이 나타났군.”

비우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안목이 있는 게 아니에요. 방금 전에도 일부는 좋은 물건인 줄 알면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뿐이에요.”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당연히 물건의 가치를 높게 말할 수 없었다. 물건의 가치를 낮춰 자신들이 이득을 취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꼭 성급 단약 열 알로 바꿔야 하나요?”

비우가 가볍게 물었다.

물건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우는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그녀로서는 성급 단약 열 알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성급 단약은 누구나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설령 성급 연단사라고 해도 성급 단약을 만들 때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때문에 성급 단약은 모두 비쌌고, 열 알이면 정말로 성곽 하나의 가치와 맞먹을 정도였다. 일반 무인들은 평생 가도 성급 단약 열 알을 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사숙, 이것으로 신혼을 보강할 수 있습니까?”

양준은 천재지보를 변별하는 데는 조예가 깊었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많은 보물들을 알지는 못했다. 반면 비우는 연단사가 아니지만 나이가 많았기에 안목과 식견이 양준보다 훨씬 나았다. 그녀가 한눈에 빙심설련과 그 햇수를 알아맞힌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 신혼을 보강하는 천재지보야. 단약으로 만들 필요 없이 직접 복용해도 모든 효력을 발휘할 수 있지. 빙심설련 하나면 누구든지 신식의 힘이 엄청 강해질 수 있어. 이상하네. 얻기 힘든 물건인데 왜 스스로 복용하지 않고 성급 단약 열 알과 바꾸려고 하나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물건 주인은 더 길게 말하려 하지 않았다.

“성급 단약이 충분하면 거래하고, 단약이 없으면 제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비우는 물건 주인의 태도에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양준은 잠깐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며칠만 시간을 주면 안 될까요?”

“며칠이 필요한가?”

“사흘요!”

“시간은 줄 수 있네. 하지만 사흘이 다 될 때까지 이것을 팔지 않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군.”

물건 주인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양준이 눈썹을 찌푸렸다.

“지금 저한테는 성급 단약 한 알밖에 없습니다.”

“그건 자네 사정이고.”

물건 주인이 매정하게 나오자 양준도 뭐라고 더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신혼을 보강하는 천재지보가 욕심났다. 그러나 성급 단약 열 알을 만들려면 그의 연단 수준으로는 시간이 필요했고, 또한 적어도 영급 상품 이상, 가장 좋은 것은 성급의 약재를 수집해야 했다. 그런 다음 영진과 만약영유를 더해 만들면 사흘 내에 성급 단약 열 알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물론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 수많은 재료를 낭비할 수도 있었다.

양준이 성급 단약을 만들까 말까를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옆에 누군가 쭈그려 앉았다. 양준은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보았다. 상대방은 준수한 외모를 가진 그와 나이대가 비슷한 청년이었다. 청년도 양준을 힐끔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쌍방은 서로의 눈에서 놀라움과 감탄을 읽을 수 있었다. 서로 상대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비우 역시 눈에 이채를 뿜으며 청년을 두어 번 훑어보았다. 청년은 부드럽게 웃었는데 미소가 사악하면서도 매혹적이었다. 그의 미소에 세상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빙심설련이 참 괜찮군요.”

이윽고 청년은 시선을 거두고서 눈앞의 보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성급 단약 열 알이오.”

물건 주인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가격을 말했다.

“네. 그럼 저를 주세요.”

청년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양준과 비우는 깜짝 놀랐다. 물건 주인도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청년을 흘깃거리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먼저 성급 단약 열 알을 나한테 주면 이 물건은 자네 것이네.”

물건 주인은 나이 어린 청년이 한꺼번에 성급 단약 열 알을 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청년은 희미하게 웃더니 건곤대를 물건 주인에게 던져 주었다.

“확인해 보세요. 마침 열 알입니다. 더 요구하면 어쩔 수 없고요.”

물건 주인은 신식을 펼쳐 한참 동안 탐지하더니 기쁜 표정을 지었고, 곧바로 일어서서 성큼성큼 떠나갔다. 곧이어 그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물건 주인은 행동이 어찌나 깔끔한지 말 한마디도 더하지 않았다.

양준과 비우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청년은 히죽 웃더니 여인보다 더 길고 가느다란 손을 뻗어 빙심설련을 조심스럽게 잡아 다른 건곤대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우호적으로 양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친구, 미안. 이건 내가 억지로 빼앗은 게 아니야. 좋은 물건은 누구나 다 갖고 싶어 하잖아.”

“알아.”

양준은 그와 따지려 하지 않고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단약이 적어 남에게 빼앗겼으니 확실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럼 다시 만나자.”

청년은 인사말을 남기고 곧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저 녀석… 정체가 뭐지?”

비우는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성급 단약 열 알을 눈도 하나 깜빡하지 않고 꺼내다니.”

“배경이 있겠죠. 아니면… 아주 대단한 연단사든가.”

양준은 청년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의 손가락에서 단약 향이 났어요. 영급 단약의 향기예요. 아마 오랫동안 연단하면서 물든 걸 거예요.”

비우는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그럼 너하고 비슷하잖아?”

청년의 나이에 영급 단약을 만들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미나도 영급 하품 연단사지만 그녀는 양준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방금 전 청년은 달랐다. 그는 양준과 비슷한 나이였다.

“아니요. 연단술이 저보다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양준은 고개를 젓고서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비우는 경악에 빠져 말문이 막혔다. 원래 그녀는 양준 같은 ‘괴물’이 나온 것도 보기 드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부운성에서 또 한 명의 괴물을 만나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하지만 저 자식은 기생오라비같이 생겼고, 전 아니거든요!”

양준이 갑자기 씩 웃으며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비우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저었다.

“너도 참. 걔는 좀 예쁘장하게 생겼을 뿐이야.”

“그 자식이 앞머리를 내리면 절색일 거예요! 하하하!”

양준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남자가 여자처럼 생긴 것도 참 슬픈 일이야!’

“자, 좀 더 돌아보다가 좋은 물건이 없으면 우리도 이젠 돌아갑시다.”

양준이 손짓하자 비우가 급히 따라나서며 툴툴거렸다.

“너 술 사준다고 했잖아. 날 속인 거야?”

“술은 사서 여인숙에 가서 마셔요.”

방금 전에 운이 다했는지, 두 사람은 그 뒤로 무역 지역을 두 시진이나 더 돌았지만 좋은 물건을 찾지 못했다. 그들이 이제 막 여인숙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누군가 새로운 가판대를 열고 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건곤대에서 질 좋은 희귀한 약재를 끊임없이 꺼내 놓았다.

양준은 어쩐지 기대감이 생겼다. 그 사람은 연단사 명패를 달고 있는 것이 연단사인 듯했으나 등급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꺼내 놓은 약재는 모두 진귀한 것으로 보기 드문 것들이었다.

“좀 더 봅시다.”

양준은 비우에게 말하고 가판대 앞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

주위에서도 특별한 점을 알아차렸는지 얼마 안 되어 많은 사람들이 가판대로 몰려왔다. 연단사가 꺼내 놓은 약재는 짧은 시간에 불티나게 팔렸다. 장사가 폭발적으로 잘되었다. 이내 구경꾼들은 그의 건곤대가 빈 것을 보고 실망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동료가 곧 도착할 겁니다. 그에게도 좋은 물건이 많거든요.”

연단사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떠나려던 이들이 자리에 남아 손꼽아 기다렸다.

“자네들은 이 보물들을 어디서 얻은 것인가? 다 꽤 오래된 것들 같은데?”

누군가 호기심이 동해 한마디 물었다.

“허허, 어쩌다 보니 소현계를 발견했습니다. 그곳에는 다른 건 아무것도 없고 약재들만 자라고 있었죠. 이 물건들은 모두 그곳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참 운도 좋군.”

소현계는 큰 것도, 작은 것도 있었다. 고마 일족이 거주하고 있는 소현계는 비교적 큰 곳이었다. 일부 소현계는 아주 작은 공간으로, 입구가 숨겨져 있어 비밀스러운 장소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런 소현계 안에는 옛사람들이 남겨 놓은 보물이 있거나 천연적으로 자라는 천재지보가 있었다. 그리고 간혹 아무것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것은 소현계를 찾은 사람의 운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