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0장. 지화담
통현대륙에서는 그동안 수많은 무인들이 숨겨진 소현계를 찾아다니고 있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곳들이 많았다. 이런 소현계는 모두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으로 그 속에는 놀랄 만한 재물들이 숨겨져 있었다. 눈앞의 연단사와 그 동료도 운 좋게 그런 공간을 찾은 듯했다. 둘러서서 구경하는 이들은 모두 부러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중년 남성이 걸어왔다. 연단사의 동료로 보이는 중년 남성은 건곤대에서 끊임없이 햇수가 꽤 돼는 희귀한 약재들을 꺼냈다. 중년 남성이 물건을 꺼낼 때마다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무역 지역에 와서 약재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전문적인 안목을 가진 이들이라 당연히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떠들썩한 가운데 연단사와 동료는 한 사람은 약재를 팔고, 다른 한 사람은 정석을 받으면서 바삐 보냈다. 두 사람은 모두 온순하고 무던한 사람들이라 기회다 싶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지 않고 시장 가격에 조금 더 붙여 팔았다. 사 가는 사람들도 이 정도의 가격 인상은 모두 달갑게 받아들였다.
양준은 딱히 사고 싶은 물건이 없어 줄곧 지켜보기만 했다. 약재들 모두 질이 좋았지만,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때, 연단사의 동료가 둥글둥글한 불덩이 같은 물건을 꺼냈다. 이 물건이 나타나는 순간 주위의 공기가 뜨거워졌고, 특별히 강한 약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물건에는 심지어 인체의 경맥과도 같은 그물 모양의 경락이 촘촘하게 나 있었다.
양준은 눈이 번쩍 뜨여 재빨리 잡아챘다. 이와 동시에 안목이 있는 몇 사람들이 너도나도 손을 뻗었다. 순식간에 붉은색 약재에 뻗은 손이 열몇 개나 되었다. 비우는 아무 기척도 내지 않고 가볍게 발을 굴렀다. 무형의 기파가 그녀를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초범 경지 3단계 고수의 은밀한 움직임에 양준과 경쟁하던 이들이 모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바쁜 와중에 양준과 비우는 서로 마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곧바로 양준의 큰 손이 붉은색 약재에 닿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또 다른 손이 다른 한쪽에서 약재를 잡았다. 모든 이들 가운데서 양준과 그 손만이 비우의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고개를 들어 손의 주인을 바라보던 양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비우도 가볍게 ‘어!’ 하고 외마디소리를 냈다. 그 사람은 방금 전에 성급 단약 열 알로 빙심설련을 샀던 청년이었다. 상대도 양준을 바라보더니 싱긋 웃어 보였다.
사람들은 몸을 가누고서, 모두 두려움과 원망이 서린 눈빛으로 비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상대가 예쁜 여인인 것을 보자, 그들의 마음속에 치솟았던 분노가 금세 사그라들었다.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군.”
누군가 양준과 청년의 다툼을 보고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모두들 미묘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결국 누가 진귀한 약재를 얻을지 궁금해했다.
“안녕! 또 보네.”
청년이 양준에게 환히 웃어 보였다.
“그래! 이것도 가지려고?”
양준도 웃으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좋은 물건은 누구나 다 갖고 싶어 한다고 말했잖아.”
“좋은 물건이 이렇게 많은데, 나하고 같은 걸 다툴 필요는 없잖아?”
양준은 허물없이 말하며 상대에게 포기하라고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상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다른 물건들도 좋지만 내가 갖고 싶은 게 아니야. 난 꼭 이 지화담(地火膽)을 가지고 싶어.”
“그래. 나랑 똑같네.”
“그럼 어쩐다?”
청년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 역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물건 주인에게 물었다.
“지화담이 더 없나요?”
물건 주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나밖에 없다네. 그것도 우리 둘이 천 장은 되는 땅 속 깊은 곳에서 어렵사리 찾은 것일세.”
지화담은 오직 불꽃이 존재하는 지하에서만 생겨날 수 있었으며 그것도 확률이 아주 낮았다. 지하 불꽃의 담낭이라고 불리는 지화담은 지하 불꽃의 정수로 쓰임새가 아주 많았다. 그리고 고마 일족을 구하는 성급 단약을 만들려면 반드시 지화담이 있어야 했다. 청년이 지화담으로 무얼 하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태도로 보아서는 쉽사리 포기할 것 같지 않았다.
“어이, 조심해. 조금만 더 힘주면, 지화담이 망가질 수 있어.”
청년의 낯빛이 바뀌었다. 그 역시 양준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서 일이 좀 힘들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마찬가지야.”
양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방금 전에 빙심설련 같은 귀중한 물건을 샀으면, 이 지화담은 나한테 양보하는 게 어때?”
“아니, 이건 또 다른 문제지. 이렇게 하면 어때? 네가 양보하면 네 손실을 보상해 줄게. 지화담의 가격대로 너한테 배상하면 안 돼?”
양준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서는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양보하면 나도 보상할 수 있어.”
“허허!”
청년은 헛웃음을 두어 번 짓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보게들. 자네들이 이렇게 다투면 우리도 장사하기 힘드네. 어서 빨리 누가 살 것인지 결정하면 안 되겠나?”
물건 주인이 난처해하며 재촉했다.
“잠깐만요. 이 친구를 설득해 볼게요.”
청년이 말했다.
하지만 그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인파 속에서 한 사람이 뛰쳐나오더니 건방지게 주위를 둘러보고는 지화담에 손을 뻗으며 말했다.
“다툴 필요 없어. 이 지화담은 내가 찜했거든.”
양준과 청년은 동시에 얼굴빛이 변했다. 지화담을 다투기 위해 두 사람 모두 손에 적지 않은 힘을 실었기에, 지화담이 받아 낼 수 있는 힘의 한계치에 다다랐던 것이다. 만약 지금 끼어든 사람까지 힘을 더한다면 지화담은 곧 망가질 터였다. 상대의 손이 미처 닿기도 전에 양준과 청년은 동시에 출수해 끼어드는 사람을 물리쳤다.
끼어든 사람도 청년이었는데 옷차림새에서 그의 우월한 신분을 알 수 있었다. 배경이 있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뒤로 밀려난 청년은 노기를 띤 채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감히 나한테 손을 대? 간땡이가 부었구나. 부운성 안에서 감히 나한테 손대는 사람이 없거든. 너희들 내가 누군 줄 알아?”
“누구면 어쩔 건데? 한 번 더 손을 뻗으면 아주 그냥 잘라 버릴 거야.”
양준과 지화담을 다투던 청년이 난폭한 표정으로 말했다. 청년은 양준과는 평정심을 유지한 채 각각의 수단으로 지화담을 다툴 수 있었지만, 갑자기 끼어든 이는 왠지 탐탁지 않았다. 양준은 눈을 반짝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기운도 점차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구경꾼들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이보게들.”
물건 주인이 후에 끼어든 청년을 몰래 훑어보고 나서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 분은 섭종(聶從) 공자네. 자네들이 감히 건드릴 수 있는 분이 아닐세.”
“대단한 사람인가요?”
양준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구경꾼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섭종을 보자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고, 가까이에 있던 이들은 서둘러 그와 거리를 두었다. 상대의 실력은 신유 경지 6, 7단계로 그리 높은 경지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청년을 두려워하는 것은 분명 그의 배후의 힘 때문일 것이다.
물건 주인이 두려운 표정으로 섭종을 바라보자, 섭종은 거드름을 피우며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 아마도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두 하룻강아지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혀 물러나게 하라는 뜻인 듯했다.
물건 주인은 곧 마음을 다잡고 나지막하게 설명해 주었다.
“자네들은 부운성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구먼. 그러니 모를 수도 있겠군. 이 성곽에는 성주 한 분과, 부성주 두 분이 계시는데 모두 입성 경지의 고수들이라네. 그중 인간 고수인 부성주 주량에게는 초범 경지 1단계인 섭추봉(聶雛鳳)이라는 여인이 있지. 섭종 공자는 바로 섭추봉의 조카일세. 그리고 부성주인 주량은 섭추봉을 무척이나 아낀다네.”
“아, 그렇군요.”
양준과 청년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섭종은 입성 경지 고수를 뒷배로 두고 있었고, 게다가 그 고수가 부운성의 패자이기도 했기에 이처럼 횡포를 부리고 다녔던 것이다.
섭종이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알겠지? 그렇다면 지화담을 얼른 내놔. 지금 내놓으면 무사히 떠날 수 있을 거야.”
양준이 놀라며 다시 물었다.
“부운성에서는 싸움하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어느 곳에 싸움이 없겠나.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규칙을 지킨다고 해도, 극소수는 규칙 밖에 있지.”
물건 주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무심코 섭종을 힐끔 보았다. 섭종은 규칙을 지킬 필요가 없는 부류였다.
“이제 문제의 심각성을 알겠지? 알았으면 어서 손 놔. 그러지 않고 섭종 공자가 화를 내면, 넌 살아서 이곳을 떠나지 못할 거야.”
예쁘장하게 생긴 청년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넌 왜 안 놓는데?”
“너 참… 말이 안 통하네. 진짜 죽는 게 두렵지 않은 거야?”
“내가 먼저 죽을지, 네가 먼저 죽을지 아직 모르잖아?”
양준은 추호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비우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몰래 진원을 모으며 언제든지 출수할 준비를 했다.
두 사람이 서로 다투는 동안, 섭종의 안색이 점점 더 험악해졌다. 눈앞의 두 사람은 자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신의 신분과 배경을 알고서도 여전히 지화담을 다투고 있었다. 이에 섭종은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들이 어디서 왔든, 정체가 무엇이든 상관없어. 부운성 안에서는 나한테 결정권이 있거든.”
섭종은 말하면서 다시금 손을 뻗어 지화담을 잡으려 했다. 그의 손에서는 진원이 날름거리고 있었다. 지화담을 빼앗지 못하면 아예 망가뜨리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양준은 순간 화가 치밀어 상대가 뻗어 오는 손에 주먹을 내질렀다. 동시에 청년도 기다란 손을 살짝 움직였다.
섭종은 순간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의 표정은 다채롭기 그지없었다. 곧이어 핏빛이 활짝 피어올랐다. 뻗었던 그의 손목이 끊어졌고, 손은 미처 땅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허공에서 폭발해 핏빛 안개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