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91화 (690/853)

제 691장. 연단술로 겨루다

섭종은 비명을 지르더니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그의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그 모습을 본 구경꾼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누구도 이런 광경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양준의 주먹은 살기를 띠었지만 상대를 경고하는 차원이었지, 살초는 아니었다. 섭종의 손이 잘린 직접적 원인은 청년의 공격 때문이었다. 그리고 진원의 보호가 사라지자 끊어진 손은 양준의 기운 때문에 폭발해 버린 것이었다.

물건 주인은 입을 딱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네 놈들이 감히 나한테 상처를 입혀? 죽여 버릴 거야.”

섭종은 곧 정신을 차리고 다른 한 손으로 잘린 손목을 움켜잡은 채, 눈을 부릅뜨고서 양준과 청년에게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양준은 냉담한 표정으로 차갑게 그를 지켜보았고, 청년은 음산하게 말했다.

“난 분명 말해 줬어. 한 번 더 손을 뻗으면 끊어 버린다고.”

섭종은 순간 당황하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눈동자마저 파르르 떨렸다.

“이제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서면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청년이 차갑게 한마디 덧붙였다.

섭종은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통증을 가까스로 참으며 소리쳤다.

“너희들 기다려!”

그러고는 하늘로 솟구쳐 오른 뒤 그대로 달아났다. 섭종이 날아가는 길에는 피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양준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화근을 아예 없애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억누르고 자신의 경쟁 상대를 곁눈질해 보았다.

장내는 물 뿌린 듯이 조용했다. 모두의 시선이 양준과 청년에게 쏠렸고 다들 표정이 각양각색이었다. 고소해하는 사람, 동정하며 안타까워하는 사람 그리고 짚이는 데가 있다는 표정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두 사람에게 강한 뒷배가 있어 입성 경지 고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네들… 참!”

물건 주인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약재를 팔았을 뿐인데 이렇게 큰 풍파를 몰고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살짝 흥분했습니다.”

청년은 계면쩍게 웃고는 다시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리 큰 일을 저지르고도 안 두려워?”

“너도 안 두려워하는데, 내가 왜 두려워해야 하지?”

“재미있네. 정말 마음에 들어.”

순간 양준은 얼굴이 시커메지며 말했다.

“난 남자한테 흥미가 없어.”

청년은 곧 자신의 말이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손을 내저었다.

“오해야. 그냥 네 성격이 마음에 든다는 말이야. 친구하면 안 될까?”

“좋아, 그럼 지화담을 나한테 줘.”

청년은 이를 악물더니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다투면 누구도 양보할 거 같지 않은데.”

양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도 상대방의 성격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성격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갈등이 생겼을 때, 의견 통일을 이루기 어려웠다. 서로 자신이 원하는 방식만 고집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호흡이 맞을 수도 있었다. 방금 전 동시에 출수해 섭종을 대처할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방금 전 후환을 없애려는 생각을 가진 것도 똑같았다. 양준과 마찬가지로 상대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 연단사야?”

“너도 연단시지?”

“둘 다 연단사고, 약재 때문에 생긴 갈등이니까 연단술을 겨루면 어떨까?”

청년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나지막하게 제안했다.

“좋아!”

양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통쾌하네! 그럼 먼저 규칙을 정해 놓자. 대결에서 이기는 사람이 지화담을 차지하는 거야. 그 전에 지화담은 예쁜 낭자께서 보관하는 거로 하고.”

청년이 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비우는 깔깔깔 애교스럽게 웃더니 입을 가리며 말했다.

“말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네!”

“사실이잖아요.”

비우는 더욱 즐겁게 웃었다.

물건 주인에게 지화담의 가격을 묻고서 양준과 청년은 각각 절반의 정석을 내고 지화담을 샀다. 비우는 정중하게 지화담을 받아 들고 말했다.

“사질, 사숙도 너를 돕고 싶어. 하지만 연단술로 겨루겠다고 약속한 이상, 나는 이기는 사람한테 줄 거야. 네가 졌다고 사숙을 원망하지 마. 남자라면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해.”

“알겠어요.”

양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먼저 조용한 곳을 찾아보자. 이곳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이때, 물건 주인이 어이가 없어 하며 한마디 했다.

“자네들 어서 부운성을 떠나게. 섭종이 부상을 당하고 돌아가서 사람을 부를 게 뻔한데, 두 사람 지금 떠나지 않으면 금방 잡힐 걸세.”

“괜찮습니다.”

청년은 담담하게 고개를 젓더니 양준에게 말했다.

“네 처소로 가는 거로 하자. 내가 있는 곳은 좀 불편해.”

일행 셋이 자리를 뜨고 나서야, 물건 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둘 다 미친놈이야.”

“뭔 걱정이야? 저 둘도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한데. 섭종 그 자식이 이번에는 혼쭐이 날 거 같군! 흐흐! 정말 구경하고 싶단 말이야.”

물건 주인의 동료는 나지막하지만 독기 어린 웃음을 터트렸다. 그 역시 섭종을 싫어하던 터라 두 청년이 단단히 혼쭐내 주기를 바랐다. 그의 말에 적지 않은 이들이 동감을 표했다. 그리고 할 일 없는 이들은 곧장 세 사람을 뒤따르며 조용히 구경거리를 기다렸다.

*여인숙,

양준과 비우의 방 안에 들어서자 청년은 주위를 한참 둘러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고는 양준에게 한 손을 뻗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적요라고 불러. 넌?”

“양준이야.”

양준도 자신의 이름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비우를 소개했다.

“이 분은 비우 사숙이야.”

“천년마화 때문이 이곳에 온 거야?”

“맞아. 너도?”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목적은 달라. 그러니까 너하고 천년마화를 다툴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 혹시 그때 가서 우리 서로 손잡을 수도 있을 테니까.”

“손잡는다고? 어떻게?”

양준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그 일은 나중에 말하자. 혹시 네가 망천애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잖아. 우선 눈앞의 일부터 정리하자.”

적요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겨룰래?”

양준이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향로를 꺼냈다. 향로는 검은 책 세 번째 장에서 얻은 것이었다. 양준은 최근 연단할 때 주로 이 향로를 약 가마로 사용했다.

적요는 향로를 보는 순간, 눈앞이 밝아졌다.

“역시 고수였군! 이리 작은 약 가마도 보기 힘들어.”

연단사는 연단할 때 약 가마에 각종 영진을 각인해 도움을 받았는데, 약 가마가 클수록 영진을 각인하기 쉬웠고, 약 가마가 작으면 영진을 각인하기 무척 어려웠다. 때문에, 연단술이 능숙한 연단사는 약 가마가 클 필요가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연단사가 사용하는 약 가마가 작을수록 연단술이 뛰어났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적요는 말하면서 자신의 약 가마를 불러냈다. 그의 약 가마는 무척이나 정교했는데 세련된 기법으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연기 대사의 작품임이 틀림없었다. 크기는 양준이 쓰는 것과 별반 차이 나지 않았다.

양준의 약 가마는 적요의 것과 비교했을 때 고풍스럽고 소박했다. 하지만 누구든지 양준의 향로가 등급이 더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요는 부러운 눈빛으로 양준의 향로를 바라보며 연신 혀를 내둘렀다. 그의 약 가마는 사부가 선물한 것으로 세상에 이름난 약 가마였다. 사부가 젊은 시절 사용하던 것이었는데 그는 여태껏 자신의 것보다 더 좋은 약 가마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자신의 것보다 더 좋은 약 가마가 있었다.

“한 알로 승부를 가르자. 어떤 단약을 만들든지, 오직 단약의 등급과 질, 그리고 연단한 시간을 보는 거야.”

적요가 정신을 가다듬고 규칙을 말했다.

“좋아.”

양준이 통쾌하게 대답했다.

“그럼 시작!”

적요는 말을 마치자마자 정색하고는 재빨리 여러 가지 약재를 꺼냈다. 동시에 양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검은 책 공간에서 여러 희귀한 약재들을 끊임없이 꺼냈다.

무형의 기운이 방 안에서 감돌았다. 두 청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원을 돌려 자신의 약 가마를 감싸고 약 가마 안에 영진을 각인하기 시작했다.

비우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둘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입을 가리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눈앞의 두 청년은 놀랍게도 동작이 일치했고, 영진을 각인하는 속도도 막상막하였다.

‘세상에! 연단술에서 사질과 비견되는 이가 있다니? 적요는 도대체 정체가 뭘까?’

비우는 어리둥절했다. 이윽고 그녀는 숨을 죽인 채 정신을 집중해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일 각이 채 안 되어 두 사람은 약 가마에 영진을 완벽하게 각인했다. 둘은 동시에 약재 하나를 꺼냈고 손에서는 진원이 날름거렸다. 양준의 진원은 강한 양성 원기였고, 적요의 진원은 창염과 마찬가지로 뜨거운 불꽃이었다. 두 가지 모두 연단하는 데 적합했다.

약재가 진원 속에서 들볶이며 약물이 응결되었고, 동시에 이물질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제거되어 깔끔하게 증발되었다. 곧이어 약물은 진원 속에서 빗방울처럼 춤췄고, 움직일 때마다 더욱 순수하고 진해졌다. 두 사람 모두 손을 살짝 털자 응결된 약물이 정확하게 각자의 약 가마에 떨어져 들어갔다. 두 번째 약재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비우는 눈동자에 이채를 띤 채 눈여겨보았다. 두 청년은 온전히 연단 세계에 빠져들어 주위의 모든 것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나무랄 데 없이 진지한 모습이었다.

‘남자가 진지하면 역시 또 다른 멋이 있구나!’

비우는 두 청년을 번갈아 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나중에 필시 큰일을 해낼 것이고 누구도 오르지 못한 높이에 이를 것이 분명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 방 안에는 점차 단약 향기가 자욱해졌다. 두 사람은 진원으로 각각 약 가마를 감싸고 있었다. 마지막 단계에 이른 것이었다.

이때, 갑자기 적요가 기쁜 표정을 짓더니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윽고 그는 손을 뻗어 약 가마를 쳤고, 황금빛의 동글동글한 단약이 튀어나왔다. 그는 얼른 손으로 단약을 잡았다. 적요는 단약의 질과 등급을 확인하고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시간에 쫓기고 긴장했지만 자신의 연단 수준을 완벽하게 발휘한 듯했다.

양준 역시 마지막 중요한 순간에 이른 듯했다.

비우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시간적으로 양준은 이미 뒤처진 상황이었다. 이제 질에서 적요를 뛰어넘지 못하면 양준은 지고 말 것이다. 비우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두 젊은 연단사 간의 대결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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