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2장. 어떻게 죽고 싶으냐?
적요가 연단을 끝내고 잠시 뒤에 양준도 가볍게 약 가마를 두드리자 밤색 단약이 튀어나왔다. 그는 얼른 손으로 잡아챘다.
“대단하군!”
적요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상대의 약 가마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로부터 그는 영급 단약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체적인 등급은 더 자세히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대단한 것은 상대의 연단 속도가 자신에 못지않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연단 속도는 사부의 각박한 기준에도 부합할 정도였다. 자신은 철들어서부터 사부의 곁에 있으면서 연단의 도를 배웠고, 사부에게서 20년 동안 직접 가르침을 받아 오늘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이 녀석의 사부는 어떤 고수지? 어떻게 이리 대단한 제자를 키워 낸 거지?’
적요는 정말 양준이 궁금해 형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눈동자에는 승부욕과 호승심이 반짝이고 있었다.
“시간으로는 네가 이겼어.”
양준은 시간에서 졌다고 해서 그리 큰 실망감을 보이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단약의 질과 등급으로 비교하자.”
적요는 슬며시 미소를 짓고는 손을 펴 방금 전에 만들어낸 단약을 양준에게 보이며 자신 있게 말했다.
“영급 상품 단약이야!”
“내 것도 영급 상품이야.”
양준이 똑같이 손을 펴 보였다. 비우는 그 말에 얼굴빛이 흐려졌다.
똑같은 등급, 똑같은 질의 단약을 만들었지만 적요의 연단 시간이 더 짧았기에 이번 대결의 결과는 이미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하! 내가 이겼어.”
적요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닐걸.”
양준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너 지금 농간질하려는 거야?”
적요의 표정이 음침해지더니 매서운 눈길로 양준을 쏘아보는 동시에 출수하려고 했다.
“네 스스로 확인해 봐.”
양준은 자신이 만든 단약을 아무렇게나 적요에게 던져 주었다. 적요는 단약을 받아 들고 의문이 담긴 눈초리로 힐끔 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란 표정을 짓더니 엉겁결에 소리쳤다.
“단문?”
양준이 만들어낸 단약은 둥글고 윤이 났는데 그 표면에는 미세한 선들이 촘촘하게 나 있었다. 그것들은 원기 선으로, 마치 사람의 경맥처럼 안쪽에서 강한 약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면 마치 약 기운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양준은 단약의 약 기운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적요는 자신의 눈조차도 믿을 수가 없어 다시 한번 숨마저 죽이고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양준도 조급해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비우는 방금 전의 조마조마함을 떨쳐 버리고 점점 흥분하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적요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꼿꼿이 폈던 그의 허리가 순간 무너져 내리며 착잡한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너 정말로 대단하구나.”
이번에 단문이 생긴 단약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양준의 운이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의 뛰어난 연단 기법과 수단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단약의 약 기운을 최대치로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설령 운이 좋다고 해도 단문 같은 것이 생길 리가 없었다. 단약에 단문이 생기게 되면, 그 가치는 몇 배로 뛰게 되어 있었다. 때문에 조예가 깊은 연단사들은 단약을 만들 때 단문을 추구했다. 단문이 생겼다는 것은 곧 수집한 재료들의 가치를 수십 배나 끌어올렸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러나 적요의 사부마저도 단문이 있는 단약을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부도 오직 완벽한 상태에서만 단문이 있는 단약을 제련할 수 있었다.
단문이 있는 단약은 무인들이 쫓는 보물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무인들의 목숨도 구할 수 있어 그들의 안전을 책임져 줄 수 있는 강한 생명줄이기도 했다.
“내가 졌어.”
적요는 심호흡을 해 마음속 씁쓸함을 달래고는 곧 다시 환한 얼굴로 솔직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에게서 원망하거나 분노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양준은 사람 좋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비우가 말했다.
“네가 패배를 인정했으니까 지화담은 우리 사질의 것이야.”
“네. 맞습니다. 지화담은 양준의 것입니다.”
적요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비우는 지화담을 양준에게 건넸고, 양준은 그것을 받아 검은 책 공간에 넣었다.
“무례하지만 혹시 네 사부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을까?”
적요가 입꼬리를 실룩이며 물었다.
“미안, 그건 말할 수 없어.”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알겠어.”
뜻밖에도 적요는 더 캐묻지 않고 소탈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고수들은 원래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 싫어하지.”
양준은 짚이는 바가 있어 적요를 힐끔 보았다. 그리고 이내 적요가 고수의 가르침을 받고 있으며, 그 고수는 통현대륙에서 널리 이름을 날린 연단대사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리한 요구인지 알지만 부탁이 하나 있어.”
적요가 간절하게 양준을 바라보았다.
“무슨 부탁인데?”
“이 단약을 나한테 줄 수 있을까?”
“그래, 가져가.”
양준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단문이 있는 영급 상품 단약이 비싸다 하지만 그래도 지화담보다는 못했다. 게다가 양준은 적요가 마음에 들었기에 그 정도의 득실은 따지고 싶지 않았다.
“고마워!”
적요는 크게 기뻐하며 양준이 만든 단약을 얼른 갈무리했다.
“사숙, 차라도 가져다주시면 안 되겠어요? 적요와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양준이 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생에 이 같은 지기는 만나기 힘들었기에 양준은 적요와 친분을 쌓고 싶었다. 사실 양준에게 여성 친구는 많았지만, 마음이 맞는 동성 친구는 별반 없었다. 이런 사실을 떠올리면 그는 왠지 낯이 뜨거웠다.
“미안한데 차를 마실 기회는 없을 거 같네.”
비우는 표정을 흐린 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양준은 눈을 반짝이다가 곧 골칫거리가 찾아왔다는 것을 감지했다. 여인숙 밖에는 사람들이 무리 져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살기부터 느껴졌다.
“정말 사람을 부른 건가?”
적요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뭘 믿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자초한 일이니 남의 도움을 받을 생각하지 말고 너 스스로 해결하도록 해. 부운성의 부성주는 나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거든.”
비우가 방그레 웃으며 한마디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두 분이 이 일에 말려들게는 하지 않을 겁니다.”
적요는 말하면서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려다보았다. 바깥의 상황을 확인한 그는 가볍게 휘파람을 분 뒤 말했다.
“사람이 제법 많네요.”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양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중에 만나서 얘기하자. 그리고 망천애 쪽은 꼭 가야 해. 천년마화를 응결시킨 약물은 너한테 아주 큰 도움을 줄 수 있어. 너와의 협력이 무척 기대되네.”
양준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그가 다시 자세한 상황을 물어보려 했지만, 적요는 이미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없었다.
“저 녀석……!”
비우는 느긋하게 창가에 기대서서는 아래쪽의 긴박한 상황을 지켜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 녀석은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알고 있는 거 같아요.”
양준은 눈썹을 찌푸린 채 적요가 떠나기 전에 남긴 말들을 떠올렸다. 괜히 신경이 쓰였다.
이번에 부운성에 온 것은 천년마화의 약물 때문이었다. 천년마화의 약물이 초범 경지에서 입성 경지로 진급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요의 말을 들어 보면 약물은 그에게도 좋은 점이 있는 듯했다.
‘약물을 만드는 데 나한테 무슨 좋은 점이 있지?’
양준은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창가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여인숙 앞쪽 거리와 양옆의 집들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지금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무역 지역에서부터 뒤따라온 이들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곧 싸움이 벌어질 것을 알고 미리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는 소문을 듣고 몰려온 이들이었다.
그 외에 나머지는 중년 부인이 데리고 온 무인들이었다. 중년 부인은 날카로운 기운을 뿜고 있었고 아름다운 얼굴은 험상궂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갑자기 나타난 적요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여인의 곁에는 방금 전 손 하나를 잃은 섭종이 끊어진 팔을 매만지며 서 있었다. 그 역시 증오와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적요를 죽여 버릴 듯이 쏘아보고 있었다.
“허! 재미있는 녀석이야. 도망치지도 않고 오히려 먼저 모습을 드러내다니.”
적요가 나타나자 인파 속에서 누군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가 말했잖아. 저 녀석, 배경이 있어서 섭추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얼마나 대단한 배경인데? 그래도 여긴 부운성이잖아. 저 녀석 혼 좀 나겠군.”
“저 녀석도 참, 왜 괜히 섭종을 건드려서. 부운성에서 섭종이 저 여인의 아들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외부인이나 고모와 조카 사이인 줄 알지. 아들놈의 손을 잘랐는데 섭추봉이 가만둘 리가 있겠어?”
인파 속에서 숙덕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다들 섭종과 섭추봉의 관계를 훤히 아는 듯했다. 그 소리가 섭추봉의 귀에 전해지자, 그녀는 살기를 띠고서 차갑게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화를 자초할까 두려워 얼른 입을 다물었다.
“네놈이 종아(從兒)의 손을 자른 것이냐?”
섭추봉이 적요를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
“맞습니다.”
적요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랬느냐?”
섭추봉은 이를 악물고 다시 물었다.
“한 번 경고했는데 말을 듣지 않으니 저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제 약재를 망가뜨리면 다 죽여 버릴 거거든요.”
적요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비릿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간땡이가 부었구나. 그깟 약재 하나가 우리 종아의 손과 비교할 수 있느냐?”
섭추봉이 냉소를 흘렸다.
“고모,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시고 그냥 제가 저 자를 죽이게 해주세요.”
섭종이 험상궂은 얼굴로 울부짖었다.
섭추봉은 적요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차갑게 다시 물었다.
“다른 두 사람은 어디 있느냐? 그들도 불러 내거라. 너희들 한꺼번에 죽여 버려야겠다.”
“사내가 자신이 한 일에 책임져야죠. 이 일은 그들과 상관없습니다.”
적요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좋아.”
섭추봉이 심호흡을 하고서 눈으로 한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어떻게 죽고 싶으냐? 말하면 그 요구는 들어줄 테니까.”
“전 아직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적요는 전혀 긴장하지 않고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건 네 마음대로 될 거 같지 않구나.”
곧이어 섭추봉이 천천히 한 손을 들어 올렸고, 그녀의 손바닥에는 점차 비취색 진원이 모였다. 순간 공기 속에서 구토를 유발하는 썩은 냄새가 풍겨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