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6장. 그냥 재미 삼아
성주부에 있는 적요를 찾아가 천년마화에 대해 논의하려던 일은 잠시 지체되었다. 어차피 급히 해결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양준이 두만의 부탁을 들어준 것은 첫째로 그동안 두만의 보살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거석성에서 두만이 여러 가지 편의를 봐주지 않았다면 그렇게 편하게 지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두만이 중간 고리 역할을 했기에 창염이 그를 찾을 수 있었다.
둘째로 양준은 이익에 유혹되었던 것이다. 현재 그는 성급 단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약재를 많이 수집했고 며칠 전에는 지화담마저 얻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몇 가지 희귀한 재료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두만의 친구들이 그 재료들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 정도 되면 재료들을 찾을 방법이 있을 수도 있었기에 연줄을 통해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양준은 나머지 몇 가지 약재를 수집하고 연단술을 좀 더 향상시키면 설산에 돌아가 고마 일족을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통현대륙에서 그는 자신의 조직과 힘이 필요했다.
부운성 서북쪽에 위치한 거대한 연무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연무장의 한가운데는 탁상들이 줄줄이 놓여 있었는데 서로간의 거리는 적어도 30여 장 정도 되었다. 또한 얼핏 보아도 탁상의 길이가 몇백 장은 되었다. 이는 모두 연단 대회에 참가하는 연단사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연무장 밖,
수많은 무인들과 연단사들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연무장 가장 앞쪽 무대에서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바삐 준비하고 있었다.
양준은 전혀 긴장하지 않고 마음이 평온했다. 반면 미나는 대회 규모가 이처럼 큰 것을 보고 끊임없이 감탄했다. 마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시골 소녀가 휘황찬란한 성곽에 처음 와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듯했다.
“양준!”
갑자기 누군가 양준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이 고개를 돌려 보니 적요가 이곳에 와 있었다. 그의 뒤에는 검은 갑옷을 입은 초범 경지 무인 두 명이 따르고 있었다.
며칠 전의 일을 겪은 다음, 성주부 쪽에서 그에게 호위 두 명을 붙여 준 것이었다. 적요를 아주 빈틈없이 보살펴 주는 듯했다.
“여긴 어떻게 왔어?”
양준이 웃으며 물었다. 정말 뜻밖의 상황이었다. 만약 방금 전에 곧바로 성주부에 갔으면 적요를 만나지 못했을 터였다. 오히려 이곳에 온 덕분에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었다.
“구경하러. 너도 구경하러 온 거야?”
“아니, 난 대회에 참가하려고.”
“아니지? 네가 참가하면 저 사람들은 어떡해?”
적요가 놀란 듯이 물었다.
젊은 세대 연단사들 가운데서 영급에 도달하는 이들은 자질이 매우 괜찮은 후계자들로 그 수가 적은 편이었다. 더욱이 양준처럼 영급 상품 수준에 이른 이는 더더욱 적었다. 이런 실력으로 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어쩌면 남들을 괴롭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냥 재미 삼아.”
양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적요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더니 곧 도전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네가 참가하면… 나도 참가할 거야.”
“양준, 이 친구는 누구야?”
미나가 적요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며칠 전에 나와 지화담을 다투던 사람이야. 적요라고 불러.”
양준이 미나에게 적요를 소개해 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두만과 미나를 가리키며 적요에게 소개했다.
“거석성 연단사 협회 두만 장로와 영급 하품 연단사 미나야.”
적요는 진지한 표정으로 얼른 공수하며 인사말을 건넸다.
“거석성 연단사 협회 주인이셨군요. 적요가 두 장로님을 뵙습니다.”
“나를 아는 겐가?”
두만이 자애롭게 웃으며 물었다.
“사부님께서 장로님에 대해 얘기하신 적 있습니다. 천하에서 몇 안 되는 성급 중품에 도달할 수 있는 연단 고수라고 하셨습니다.”
“사부님은…….”
두만의 표정이 흔들렸다.
“죄송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존함을 밖에 알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적요가 난감한 표정으로 해명했다.
두만은 실망했지만 얼른 낯빛을 가다듬고 말했다.
“괜찮네. 자네 사부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아마도 내 선배이신가 보네. 그럼 나를 대신해 한마디만 전해 주게나. 그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꼭 성급 중품 연단사가 될 거라고 말이네.”
“꼭 전해 드리겠습니다.”
적요가 정색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들이 다 대단하군. 양준이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 세대 연단사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자네를 보니, 내가 식견이 좁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자네도 양준 못지않구만.”
두만이 탄식하며 말했다.
“장로님, 어떻게 적요의 연단술 수준이 양준과 비슷하다는 걸 아셨어요?”
미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허허! 연단사는 다른 무인과 다르단다. 네가 나만큼 나이 들면 이런 안목이 생길 거다.”
두만이 웃으며 대답했다.
미나는 놀란 듯이 적요를 힐끔 보았다. 적요는 담담한 표정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두만의 칭찬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미나는 금세 입을 삐죽거리며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잘생기긴 했는데 너무 잘난 척해.”
“어, 내가?”
적요가 놀라서 되물었다.
미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네 연단술이 양준만큼 대단한지 지켜볼 거야. 장로님, 얘도 등록하고 참가시킵시다. 혹시 모르죠, 그냥 빛 좋은 개살구인지.”
“미나, 버릇없이 왜 그러느냐!”
두만이 한마디 꾸짖었다.
“좋습니다. 양준이 참가하면 저도 참가할 겁니다. 두 장로님, 저도 그럼 거석성 연단사 협회 이름으로 대회에 참가하겠습니다.”
적요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두만이 그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친구들이 재산을 많이 날리게 생겼군.”
원래 양준만 참가해도 그는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적요까지 참가한다면 다른 이들은 전혀 이길 기회가 없었다. 두만은 친구들이 너무 충격을 받지 말기를 바랐다.
적요가 대회에 참가하려 하자, 양준도 그냥 적요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두만이 무대 쪽으로 가서 등록 수속을 마치자 양준과 적요는 각각 번호패를 받았다. 두 사람은 다른 연단사들과 달리 전혀 긴장하거나 흥분하지 않았고 표정이 담담했다. 마치 정말 재미 삼아 참가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몇몇 노인들이 선두에 서고 뒤에는 젊은 연단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양준은 노인들이 바로 두만이 말했던 친구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리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서로 간에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노인들은 모두 다년간의 친분이 있어 감정이 두터웠다. 하지만 젊은 세대 연단사들은 서로를 바라볼 때, 모두 짙은 적의를 품고 있어 분위기가 미묘했다. 노인들은 이를 눈치챘지만 전혀 저지하지 않고 오히려 말로 젊은이들을 더욱 자극했다.
이때, 양준과 적요의 담담함이 노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들은 두만에게 두 사람에 대해 알아보려 했지만, 두만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으면서 노인들의 궁금증만 불러일으켰다.
별안간 악대가 연주하면서 떠들썩해지자, 사람들의 수군거리던 소리가 잦아들었다.
무대에서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부운성 연단사 협회 류복(劉福)입니다.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이렇게 찾아주신 여러 연단사분들을 환영합니다. 오늘 이곳에는 방방곡곡의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우리 연단사 총부에서는 연단 대회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재주를 마음껏 펼쳐 천하의 연단사들과 제대로 한 번 겨뤄 보십시오.”
그 다음 류복은 대회의 규칙, 절차, 상품 등에 대해 한참 동안 설명했다.
성급 약 가마가 나타나자 수많은 연단사들의 눈동자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미나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성급 약 가마를 가지지 못하면 절대 그만두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장내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자, 류복은 주위를 둘러보고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그럼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받은 번호패대로 자신의 위치로 가십시오.”
류복의 말이 끝나자마자 광장에는 몇백 명의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다. 모두 젊은 세대 연단사들로 가장 나이가 많은 이도 마흔을 넘기지 않았다. 대부분 현급 이상이었고, 영급은 1할 정도밖에 안 되었다.
양준과 적요는 서로 힐끗 보고는 천천히 광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두 사람은 맨 나중에 등록했기에 자리도 모퉁이였고 탁상도 임시로 더한 것이었다. 두만이 나서지 않았다면, 둘은 대회에 참가할 자격도 없었다. 하지만 이는 양준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는 이 기회에 적요와 협력 문제에 대해 의논해 볼 생각이었다.
탁상 위에는 건곤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양준은 건곤대를 들고 신식으로 그 안을 탐지해 보았다. 안에는 적지 않은 약재와 약 가마 하나가 담겨 있었다. 약 가마는 현급 중품이었고 약재의 등급도 그리 높지 않았다. 영급 약재가 가장 많았다.
연단 대회는 몇 개 항목으로 나누어서 겨뤘다. 첫 번째 항목은 약물을 만드는 것으로 규정된 시간 안에 약물을 많이 만들고, 등급이 높을수록 우위를 차지했다. 모든 이들이 가진 물질적 토대는 똑같았다. 어떤 성적을 낼 수 있는지는 오로지 자신의 수단에 달려 있었다.
류복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연단 대회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양준은 일단 모든 약재를 꺼내 놓고 손 가는 대로 몇 가지를 집어 손바닥에 놓고는 진원을 돌려 응결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이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이윽고 양준은 적요를 곁눈질해 보았더니, 적요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력이 뛰어난 연단사는 약물을 만들 때, 동시에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할 수도 있었다. 꼭 약재를 한 가지, 한 가지씩 정신을 집중해 응결할 필요가 없었다.
미나는 장내 가운데쯤에 있었는데 그녀 역시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그녀는 양준과 비교하면 자신이 없었지만, 다른 연단사들과 비교하면 본인 또한 우수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진원의 불꽃이 날름거리자 약재들이 빠른 속도로 약물로 응결되고 이물질이 제거되었다. 모든 움직임이 일사분란하게 이어졌다.
“적요! 전에 얘기했던 협력 말이야.”
양준이 움직이는 한편, 조용히 한마디 건넸다.
“그래, 생각해 봤어?”
적요도 나지막하게 말하면서 손의 움직임을 전혀 늦추지 않았다.
“협력할 수 있어. 다만, 천년마화의 약물이 목적이 아니면 너는 그곳에 왜 가려는지 알려줄 수 있어?”
“내가 말했잖아. 약물을 만드는 게 너한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나한테도 마찬가지야. 나도 당연히 가서 약물을 만들어야지. 물론 만든 약물은 다 네가 가져. 네 사숙들께서 약물이 필요한 거잖아?”
“맞아. 만일 괜찮다면 도대체 나한테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말해 주면 안 될까?”
“말해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나도 잘 몰라. 난 그냥 사부님의 말씀에 따르면 돼.”
적요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띤 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