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8장. 움직임이 보이다
“맞네. 난 통이 큰 사람이야.”
상씨 노인은 안색이 퍼레졌지만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두만에게 몰린 그는 차마 후배 앞에서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대답하는 그의 얼굴이 실룩S거렸다. 두만을 두들겨 패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뿐이었다.
“그럼 이 두 가지로 하겠습니다.”
양준은 건곤대에서 약재 두 가지를 꺼냈다.
상씨 노인은 그것을 보고 안도의 표정을 짓더니 양준의 손에 들린 건곤대를 잡아채며 대범하게 말했다.
“가져가게. 가져가!”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자신이 신경 쓰는 물건이 아니라 안도하는 것 같았다.
양준은 그렇게 악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건곤대에서 성급 재료 두 가지를 취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했다. 이 두 가지 약재를 사용하면 성급 단약 두 알을 만들 수 있었다.
첫 번째 건곤대의 물건을 꺼낸 뒤, 양준은 다시 두 번째 건곤대를 살폈다. 신식으로 훑어본 그는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이 건곤대에는 노응초(露凝草)가 있었다. 려용이 그에게 준 목록에는 노응초도 포함되어 있었다. 노응초는 성장 환경에 대한 조건이 까다로워, 대륙의 어떠한 곳에서도 뿌리내릴 수 있지만 제대로 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지금 건곤대 안에 있는 노응초는 모양새나 햇수로 봤을 때 좋은 약재였다.
양준은 전혀 사양하지 않고 노응초를 취했다. 그리고 이 건곤대에서 다른 성급 약재도 꺼냈다. 세 번째, 네 번째 건곤대에서는 큰 수확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각각 약재 두 가지를 얻었을 뿐이었다.
양준은 마지막 건곤대 안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잠시 뒤, 그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 건곤대에는 그가 원하는 재료가 없었다. 아무거나 두 가지를 꺼내려다가, 순간 그의 표정이 바뀌더니 건곤대 안의 무언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참 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두 가지로 하죠.”
그는 말하면서 두 가지 물건을 꺼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꺼낸 두 가지 중 하나는 성급 약재로서 전의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검은색 둥근 돌이었다.
“이게 뭔가?”
두만은 돌에 시선을 돌리며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다른 노인들도 살펴보았지만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검은색 둥근 돌이 무슨 물건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건곤대의 주인도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네. 그저 돌이 이상하게 생겨서 건곤대에 넣어 둔 것일세.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이것이 무슨 용도가 있는지 모르고 있네. 자네는 아나?”
그는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도 모릅니다. 그저 신기하게 생겨서 꺼낸 겁니다.”
“음, 그럼 자네에게 선물하겠네. 아무튼 몇십 년이 지나도록 나도 그것의 재질을 파악하지 못했으니.”
건곤대의 주인이 통쾌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양준은 웃으며 검은 돌을 검은 책 공간에 넣었다. 그러고는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뛰어내렸다.
노인들은 그를 설득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 그가 떠나게 내버려 두었다.
“두만, 자네 절대 저 녀석이 나쁜 길에 들어서게 하면 안 되네. 저 녀석은 반드시 연단술에서 성취를 얻어야 하네. 보기 드문 인재인데 망치는 걸 보고 싶지 않구만.”
“그래, 두만. 돌아가서 잘 좀 얘기해 보게나. 자네가 안 된다면 내가 저 녀석을 삼천성에 데려갈 걸세.”
“최선을 다 해보지.”
두만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양준이 왜 무도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는 8할의 사람들이 수련을 했고, 다들 무인이라 불렸다. 하지만 연단사는 매우 적었다. 만 명의 무인들 중 연단사가 한 명 있을까 말까였다. 그중에서 연단술에 자질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적었다. 자질이 뛰어나고 조예가 깊은 연단사는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녀석이 무인과 연단사의 차이점을 모를 리 없는데.’
*양준은 비우와 함께 여인숙에 돌아온 뒤, 창염 일행에게 적요와 상의한 결과를 말해 주었다.
양준의 말을 들은 창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우리의 승산이 커졌어. 그 녀석이 아우구의 귀빈이니 아우구는 분명 그를 잘 보호할 거야. 아무리 못해도 초범 경지 3단계가 한 명 정도는 있을 테니까.”
“사숙, 천년마화가 언제 피나요?”
“구체적인 시기는 나도 몰라. 기록에 따르면 천년마화가 피기 전에 반드시 천지조화가 일어날 거라고 했어. 때 되면 알겠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산에 자리를 잡고 천년마화가 피기를 기다리고 있잖아. 심지어 망천애에 올라가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천년마화와 가까이 있을수록 더 위험해. 우리는 급할 것 없으니까 그동안 먼저 푹 쉬어. 때가 되면 널 데리고 갈게.”
“네.”
다시 방으로 돌아온 양준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련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검은 책 공간에서 검은색 돌 두 개를 꺼냈다.
“어? 이건 지난번에 동굴에서 얻은 돌이잖아? 왜 하나 더 늘었지?”
비우가 놀라서 물었다.
“방금 전, 연단사 선배님의 건곤대에서 찾아낸 거예요.”
양준이 해명했다. 두 돌의 재료와 크기가 같아서 이 돌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용도가 있나요?”
“나도 몰라. 나도 처음 봐.”
비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네.”
양준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 연단사도 이 돌이 무슨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무슨 용도가 있는지 몰랐다. 그의 말로는 이 돌을 얻은 지 몇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비밀을 전혀 파헤치지 못했다고 했다.
두 돌은 결코 평범한 돌이 아닌 듯했다. 양준은 진원을 돌려 열을 가해 보기도 하고, 신식으로 내부를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한참 동안 애쓰다가 그는 하는 수 없이 돌의 정체를 알아내려던 것을 포기하고 돌들을 갈무리했다.
남은 시간 동안 양준은 여인숙에 틀어박혀 아무 곳도 가지 않았다. 그는 항상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며 앞으로 다가올 전투를 기다렸다. 네 명의 사숙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새벽,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양준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순간 천지 기운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천지 기운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린 것처럼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가 미처 알아보기도 전에 상황은 더욱 심해졌다. 방 안에 있는 데도 광풍이 휘몰아치는 것이 느껴졌고, 창문이 찌익, 찌익 소리를 냈다.
비우도 다급히 눈을 뜨고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이게…….”
말하는 사이, 그녀는 창문 옆으로 다가가 이채가 어린 눈동자로 멀리 내다보았다. 그리고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천년마화가 곧 피려나 보다.”
양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옆방에서도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염 일행이 움직이는 듯했다. 양준과 비우는 서로를 마주 보고는 머뭇거리지 않고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이와 동시에 부운성 전체가 들끓었다. 수많은 무인들이 사방팔방에서 뛰쳐나와 거리에 모여서는 몇십 리 밖에 있는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년마화가 피려나 보군.”
누군가 소리 높여 외치자, 그 말을 들은 사람들 모두 흥분했다.
양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산봉우리를 바라보았다. 하늘가에 오색찬란한 노을이 나타나더니 눈부신 빛을 뿌렸다. 천지간의 기운이 끊임없이 그쪽으로 모여들자 부운성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가자!”
창염은 나지막하게 말하고서 몸에 무지갯빛을 두른 채 그쪽으로 날아갔다. 다른 이들도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솨솨솩-
수많은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 망천애 쪽으로 질주했다.
순간, 양준은 이번 쟁탈전이 얼마나 힘들지 예상이 갔다. 초범 경지의 고수는 이곳에 많고 많았다. 초범 경지 3단계의 고수는 적었으나, 그래도 지금 인원수는 창염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부운성 안에서 뛰쳐나간 초범 경지 고수만 해도 3~4백 명은 족히 되었다. 산에 죽치고 있는 사람들까지 더하면 더욱 많았다. 최소한 5백 명이 되는 초범 경지 고수가 이번 쟁탈전에 참여한 것이다.
무시무시한 숫자에 양준은 머리털이 곤두서는 기분이 들었다.
성주부,
아우구, 주량, 금각은 높은 곳에 서서 무거운 얼굴로 산봉우리의 기척을 살피고 있었다.
“대사님께서도 가신 것 같습니다.”
금각은 성주부 안에서 뛰쳐나가는 그림자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뭐라고요? 대사님은 입성 경지 고수가 아닙니까? 그분이 가신다면 천년마화는 피지 않을 텐데요.”
주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사님께서 무슨 단약을 드셨는지, 일시적으로 경지를 낮출 수 있는 듯합니다. 지난번에 천년마화가 폈을 때도 어르신이 약물을 만든 거라 이쪽으로는 그분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 아실 겁니다.”
아우구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주량과 금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노인과 처음 만났지만 그에게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큰 이득을 얻었다. 노인이 만든 성급 단약 한 알로 그들의 육신과 신혼이 많이 강해졌던 것이다. 경지는 전보다 크게 향상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강해진 것은 확실했다.
노인이 부운성에 행차한 것은 그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행운이었다. 노인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성주들은 성주부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파견해 그의 제자를 보호했다. 인간, 요족, 마족으로 이루어진 총 여섯 명의 초범 경지 무인들이었다. 그중 두 명은 초범 경지 3단계, 네 명은 초범 경지 2단계였다. 무척이나 호화로운 호위 부대였다.
아우구, 주량, 금각은 원래 천년마화의 약물을 쟁탈할 생각이었다. 그들 자신은 필요하지 않지만 친구나 가족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노인이 왔으므로 그들은 쟁탈전에 뛰어들 수 없었다.
*부운성에 있던 초범 경지 고수들은 일제히 산봉우리로 질주했다.
산기슭에 이르기도 전에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누구도 남에게 선수를 빼앗기려 하지 않았고, 서로 간에 모두 적이었다. 인내심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먼저 공격하려 했다. 작은 갈등도 소규모의 전투로 이어졌다. 그러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이 가면서 전투의 규모가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