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9장. 그분이었군!
양준은 네 사숙의 보호를 받으면서 혼란스러운 전쟁터를 자유롭게 누볐다. 초범 경지 3단계 고수 네 명으로 이루어진 대열은 강한 편이었다. 주변의 사람들도 그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낀 건지 결코 건드리지 않았다.
비명소리가 곳곳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이렇게 큰 규모의 혼전이 벌어지자 사상자가 속출했다. 피가 흩뿌려지고 잘린 팔다리가 마구 날아다니는 광경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몇십 리밖에 안 되는 거리라 일각이 채 되지 않아 산기슭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양준 일행이 도착했을 때, 마침 누군가 급히 망천애 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창염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와 협력하기로 한 사람은 왔어?”
“아직 안 왔어요.”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적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먼저 올라갈까?”
역완이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좀 더 기다려 보자. 만약 사질의 짐작이 맞다면 그 녀석은 분명 남이 모르는 비밀을 알고 있을 거야. 그와 같이 움직인다면 우리가 우위를 차지할 수도 있어.”
창염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먼저 산봉우리에 올라간다고 해서 최후의 승리자라고는 할 수 없었다. 산봉우리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그들이 무사히 망천애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들은 제자리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 수시로 한두 개의 고수 무리들이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다들 흥분한 얼굴로 산림 속으로 몰려 들어갔다.
반 각 정도 시간이 흐르자 적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준!”
“이쪽이야!”
양준은 다급히 손짓하며 그가 데려온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순간, 양준의 눈이 반짝 빛났다.
적요의 능력은 그의 생각 이상이었다. 무려 일곱 명이나 거느리고 왔던 것이다. 그중 여섯 명은 각각 인간, 요족, 마족의 고수였는데 모두 초범 경지 2, 3단계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경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머리에 삿갓을 쓰고 있는 것이 사람들의 이목을 꺼리는 것 같았다. 드러난 피부로 보았을 때는 노인이었다.
한참 살펴보던 양준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무언가를 눈치챘지만 말하지 않았다.
천소종의 네 호법과 성주부의 고수들은 서로 훑어보고 나서 상대방의 경지에 꽤나 만족했다. 모두 상대방이 자신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표정도 한층 밝아졌다.
“이번 일은 중요한 거라서 여러분들께서 진심으로 협력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라도 불쾌한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고요. 저와 양준은 사이가 좋거든요.”
적요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그가 데려온 여섯 명의 고수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 공자, 걱정하지 마십시오.”
창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 마시게. 하지만 신중해야 하니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하겠네. 자네는 정말 천년마화의 약물이 필요하지 않나?”
“그렇습니다. 이 문제는 이미 양준에게 설명했어요.”
적요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객을 끄덕이고는 말했다.
“음, 그렇다면 문제가 없네. 이제 올라가지.”
창염은 아주 흡족한 듯했다.
“급하지 않아요. 좀 더 기다리지요.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적요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더 기다리라고?”
창염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역시도 이런 일은 조급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천지조화가 나타나고 천년마화도 곧 필 터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올라갔는데 더 시간을 끌다간 국물도 얻지 못할 것 같았다.
“아직 이릅니다. 지금은 천지조화가 나타날 징조일 뿐입니다. 천지조화가 진짜 나타난 다음, 올라가도 늦지 않습니다.”
적요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의 홀가분한 얼굴에서 긴장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창염 일행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창염은 한참 생각하다가 물었다.
“내가 자네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네는 천년마화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음, 전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압니다. 하하!”
적요는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남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양준은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노인을 의아한 눈빛으로 훑어보고 있었다. 노인은 적요의 사부인 것 같았다. 적요가 천년마화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도 사부 덕분인 듯했다.
노인은 양준의 시선을 의식한 듯, 입꼬리를 슬쩍 올리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가 바로 그날 연단 대회에서 최후의 승리를 따낸 친구인가?”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장차 미래가 기대되는 인재로군.”
노인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창염 일행은 의아한 눈빛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자신감이 넘치는군.’
“양준!”
이때 등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이 고개를 돌려 보니 미나와 두만이 다가오고 있었다. 미나는 그를 향해 열정 넘치게 손을 흔들었다.
양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물었다.
“너는 왜 왔어?”
두만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계집애가 어디 말을 들어야지. 굳이 구경하러 오겠다는 걸세.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아서 같이 왔다네.”
“이게 뭔 짓이야!”
양준은 정색하고서 한마디 했다.
미나는 혀를 홀랑 내밀고 애교를 부렸다.
“그냥 구경하러 온 거야. 올라가지 않을 거니까 위험하지도 않을 거고.”
“그럼 조심해.”
양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나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생글거리며 물었다.
“너희들은 왜 안 올라가? 다른 사람들은 다 올라간 것 같던데.”
“기다리고 있어.”
양준이 대충 둘러댔다.
“뭘 기다려?”
“진정한 천지조화가 나타날 때까지.”
“진정한 천지조화?”
두만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년마화에 대해서는 그 역시 아는 게 적었다. 그는 곧 삿갓을 쓴 노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한참 생각하다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감히 존함을 여쭈어도 될까요?”
조심스러움에 긴장감까지 섞인 말투였다.
양준의 눈빛도 반짝였다.
“하하, 내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네.”
노인은 가볍게 웃었다.
두만은 몸을 흠칫 떨더니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노인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당신은…….”
“쉿!”
적요는 다급히 손가락을 세워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두만은 흥분한 표정을 짓더니 더없이 경건한 표정으로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제자 두만, 대사님을 뵙습니다.”
양준과 창염 일행은 모두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 입을 떡 벌렸다. 두만은 거석성 연단사 협회의 주인으로 통현대륙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성급의 연단사가 극히 드문 탓에 그는 어디를 가든 항상 귀빈으로 예우받았다. 항상 남들이 그를 공손하게 대했었는데, 지금은 두만이 다른 이에게 아랫사람으로서의 예를 다하며 자신을 제자라고 칭하지 않는가. 이건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멍해졌다. 심지어 적요가 데려온 여섯 명의 초범 경지 고수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명령을 받고 움직인 거라 적요와 노인의 신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노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럴 것 없네. 괜히 이목을 끌 걸세. 이렇게 꽁꽁 감싼 것도 이목을 끌기 싫어서야.”
두만은 꿈에서 깬 것처럼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며 자책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대사님께서 용서해 주십시오.”
“괜찮네. 어떻게 날 알아본 것인가?”
“기억 안 나십니까? 제가 어렸을 때, 대사님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짧은 열흘이었지만 전 항상 대사님의 모습과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지요.”
“그랬군.”
이때, 창염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그분이었군!”
두만의 말을 듣자, 창염도 노인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또 성주와 부성주들이 왜 적요를 보살피고, 심지어 초범 경지 고수를 여섯 명이나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적요의 사부가 이렇게 대단한 인물일 줄이야! 이런 인물만이 적요 같은 제자를 키워 낼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구야?”
비우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역완과 비전 역시 호기심 어린 얼굴로 창염을 바라보았다.
창염은 노인이 그를 저지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낮게 소곤거렸다. 세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양준도 창염의 입 모양을 보고 읽을 수 있었다.
‘천장노인!’
그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인간, 요족, 마족 세 종족의 존경을 받는 최상급 연단사로, 양준과 마찬가지로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었다.
창염이 그의 신분을 눈치챈 건 전에 두만이 그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때 두만은 일찍이 천장노인의 문하에서 열흘 동안 연단술을 배운 적이 있었다고 했었다. 방금 전 두만이 그 얘기를 꺼내자 창염은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모두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전설로만 듣던 천장노인이 바로 눈앞에 있다니, 창염 일행은 저도 모르게 자신들의 강한 기운을 거두고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모두 동경의 빛이 어려 있었다.
양준도 전설 속의 인물을 몰래 살펴보았다. 그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매우 적었고,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 연단사는 더더욱 적었다. 아마 세상에서 그와 천장노인뿐일 것이다. 이런 공통점 때문에 그는 천장노인에게 신식의 불꽃에 관한 비밀을 묻고 싶었다.
양준은 신식의 불꽃을 활용할 줄 몰랐다. 하지만 천장노인은 달랐다. 오랫동안 살았으므로 경험이든 이력이든 그보다 훨씬 풍부할 것이다. 만약 교류할 수 있다면 분명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말해도 되느냐였다.
양준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천장노인이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
“이미 들켰으니 나도 가리지 않겠네.”
“평생 대사님을 한 번만 더 뵙고 가르침을 받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두만은 흥분한 얼굴로 울먹였다.
“이 일이 끝나고 난 뒤에 다시 얘기합세. 자네의 성취를 보니 나에게도 위로가 되는군. 내가 자네를 열흘밖에 가르치지 않았는데 이 정도까지 성취를 이룬 것은 다 자네 능력일세.”
천장노인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두만은 깜짝 놀라 다급히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대사님이라고 부르지 말게나. 남들이 들으면 안 좋네. 내 이름이 이서(李瑞)니 그냥 이씨 어르신이라고 부르게나.”
“네.”
두만은 공손하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