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0장. 천년마화가 피다
“저 어르신은 도대체 누구신데 장로님께서 자신을 제자로 일컫는 거지?”
미나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양준을 잡고서 물었다.
“나중에 두 장로님께 물어봐.”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대단한 비밀이야?!”
미나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녀의 성격상 앞으로 나서며 ‘어르신, 뭐 하는 사람이세요?’라고 소리쳐 물었을 터였다. 하지만 두만이 정중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는 그녀도 감히 제멋대로 굴지 못했다. 그녀는 당돌하긴 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양준이 천장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르신, 적요가 알고 있는 천년마화에 관한 정보는 모두 어르신이 말씀해 주신 거죠?”
“맞네.”
이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애롭게 양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한테서 나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이번 일이 끝나면 나와 얘기 좀 나누어 보겠는가? 괜찮다면 나도 자네한테 말해 주고 싶은 게 많다네.”
창염 일행은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양준에게 얼른 대답하라고 눈치를 주었다.
양준은 연단사였다. 그리고 눈앞의 천장노인은 세계 최고의 연단대사였고, 누구든 그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했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나타났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양준은 쓴웃음을 금치 못했다. 방금 전까지 그는 자신이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는 비밀을 상대방에게 털어놓을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방은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상대에게서 어떤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그래, 그래.”
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 천년마화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다들 궁금한 것이 많아 사부님께서 궁금증을 풀어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적요가 제안했다.
사람들은 얼른 이서를 바라보았다.
이서는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음, 적요더러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한 것은 내 뜻이 맞다네. 천년마화도 지금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을 걸세. 대략 반나절 정도 걸린다네. 그때 올라가도 늦지 않을 것이네. 지금 위쪽은 혼란스러운 전쟁터로 변했을 터이니 올라가도 아무 이득이 없다네.”
“천 년 전에 천년마화가 피었을 때, 사부님께서 약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누구보다 더 잘 아시는 거죠.”
적요가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창염 일행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들은 이에 대해 들은 적이 없었다.
천 년 전이면 천장노인은 아마 양준이나 적요처럼 한창 재능을 꽃피울 때였을 터였다. 또한 지금처럼 뛰어난 지위로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차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고, 세상 사람들은 그의 이름 대신 천장노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전의 일은 이미 사람들에게 거의 다 잊힌 상태였다.
이서는 껄껄 웃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천년마화는 별 세계 물건이라고 전해지고 있다네. 전해 듣기로는 오래전에 종자 하나가 망천애에 떨어져 천년마화가 열렸다고 하더구먼. 그 약물은 초범 경지에서 입성 경지로 진급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그래서 천 년이 될 때마다 이곳은 떠들썩해지고 또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한다네. 많은 고수들이 천년마화를 독점하려고 했었지.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든, 또 누가 오든 시간이 되지 않으면 천년마화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네. 망천애는 예전에 높이가 만 장에 달했지만 지금은 팔천 장밖에 안 되네. 고수들이 천년마화를 찾느라 망천애를 밟고 또 밟았기 때문일세.”
사람들은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들었다.
“왜 못 찾은 거죠? 저도 항상 궁금했는데요. 이 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계속 망천애에만 있는데 왜 파 가지 않은 걸까요?”
미나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천년마화는 뿌리 없는 꽃이기 때문이네. 게다가 실물도 아닐세.”
이서는 그녀를 웃는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실물이 아니라고요?”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맞네. 이건 천지의 영물로서 현묘한 힘이 내재돼 있지. 좀 더 기다리면 자네들도 보게 될 테니, 때가 되면 내 말뜻을 이해하게 될 걸세.”
이서는 숨길 생각이 없는 듯, 알고 있는 사실들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그놈은 무척 예민해 입성 경지 고수의 기운을 감지하기만 하면 절대 나오지 않는다네. 일찍이 몇 번이나 입성 경지 고수 때문에 천년마화가 피지 않았었지. 그래서 최근 몇 번은 입성 경지 고수가 오지 않았던 걸세.”
“그럼 저희가 올라간 뒤에 어떻게 하면 됩니까?”
창염이 다급히 물었다.
“두 녀석을 꽃술 안까지 데려다 주면 되네. 나머지는 녀석들의 운에 맡겨야지, 자네들은 도울 수 없다네.”
창염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서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설명하기 어려운데 나중에 보면 알게 될 걸세.”
창염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묻지 않았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이, 산봉우리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원기 파동이 끊임없이 느껴졌다. 산 전체가 이미 전쟁터가 된 듯했다. 초범 경지의 고수들은 일행의 연단사를 보호해 앞으로 나아가는 한편,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들과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점차 싸우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다들 천년마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듯, 더 이상 전처럼 난폭하게 싸우지 않았다.
반나절 뒤, 하늘가에 오색찬란한 노을빛이 뿜어져 나왔고, 곧이어 아름다운 꽃봉오리가 나타났다. 꽃봉오리는 엄청나게 커 몇십 리 떨어진 부운성에서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공중에 떠 있었는데 아래쪽은 바로 망천애였다. 꽃봉오리는 실질적인 형태가 없이 순수하게 원기로 이루어진 것으로 현묘하기 그지없었다.
꽃봉오리가 나타나자 사방 몇백 리 범위에 천지 간의 기운이 미친 듯이 꽃봉오리 쪽으로 흘러가더니 끊임없이 꽃봉오리 속으로 흘러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전투에서 살아남은 고수들도 일제히 꽃봉오리를 향해 날아갔다. 몇십 개의 대열, 몇백 명의 초범 경지 고수들은 젖 먹던 힘까지 짜냈다. 방금 전에 멈췄던 전투가 또다시 폭발했다. 이번에는 전보다 더욱 잔혹하고 처참했다. 고수들이 끊임없이 하늘에서 떨어졌고, 혼란스러운 무공과 비보의 위력에 몸이 부서지고 신혼이 파괴되었다. 심지어 그들의 보호를 받던 연단사도 무사하지 못했다. 잠깐 사이에 몇 개의 대열이 전멸되었다.
사람들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번 쟁탈전의 참혹함을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르신……!”
창염은 긴장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
“급하지 않네!”
이서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창염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서 마음속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꽃봉오리 옆으로 다가갔다. 첫 번째로 도착한 대열은 기뻐하기도 전에 뒤이어 따라온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꽃봉오리 주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쉼 없이 혈투를 벌였다. 일부 영리한 사람들은 전투를 피한 채, 꽃봉오리 옆으로 다가가 천년마화의 약물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방법을 알 수 없어, 결국 그들도 꽃봉오리 곁을 맴돌다가 다시 전투에 휘말렸다. 천년마화 하나 때문에 적어도 몇십 개의 세력이 막대한 사상자를 내며 큰 손실을 입었다.
또 한 시진가량 지난 뒤, 천지 간의 기운이 모두 천년마화에 흡수된 것처럼 점점 희박해졌다. 반면 양분을 한껏 흡수한 꽃봉오리는 드디어 필 것 같은 조짐을 보였다.
“때가 되었네.”
이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갑시다!”
창염이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사람들은 양준과 적요를 가운데 보호한 채, 신법을 펼쳐 신속하게 꽃봉오리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일행 열두 명 가운데서 양준과 적요를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모두 초범 경지의 고수였다. 초범 경지 3단계 여섯 명에, 초범 경지 2단계 네 명이었다. 이런 인원수와 실력은 모든 대열 사이에서 단연 돋보였다. 하지만 창염 일행은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고 양준과 적요를 물 샐 틈없이 둥그렇게 감쌌다.
모든 이들의 시선은 거대한 꽃봉오리에 쏠려 있었다. 점차 꽃잎이 빠른 속도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창염 일행이 아직 반 정도밖에 날아가지 못했는데 천년마화는 거의 활짝 핀 상태였다.
노을빛이 만개하면서 천지 간에 형언할 수 없는 원기 파동이 일렁였다. 이 기운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침착해졌다. 남아 있는 고수들도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천년마화의 꽃잎 위로 가서 각자 자리를 찾았다. 그들은 경계를 띤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연단사에게 약물을 만들게 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연단사들은 하나같이 어디서부터 손을 대면 좋을지 몰라 했다. 그들은 진원을 내뿜어 꽃잎을 감쌌지만 약물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에 모든 이들은 가슴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죽기 살기로 이곳까지 왔는데 아무런 진척도 없다니, 지금까지 한 모든 일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창염 일행이 도착했을 때, 공중에 떠 있는 천년마화 위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해 발붙일 곳이 없었다.
“꽃술로 갑시다.”
적요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할 줄 모르고 있던 창염은 그 말을 듣고 다급히 꽃술 쪽으로 날아갔다.
꽃술이 있는 곳은 가장 눈에 띄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실력이 괜찮은 두 대열이 자리를 차지한 채, 약물을 만들 방법을 찾고 있었다. 창염 일행이 기세등등하게 날아오자 곧바로 그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사나운 얼굴로 전투 태세를 취했다. 이때, 서로 적수였던 두 대열의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
상대의 인원수와 경지를 파악한 창염은 미간을 찌푸렸다. 다시 손을 내밀어 부르자 성급의 커다란 검이 그의 손에 잡혔다. 검에서는 불길이 활활 타올랐는데 울부짖는 화룡(火龍)처럼 기세가 놀라웠다.
“싸울 필요 없어요.”
적요는 이렇게 말하면서 생글거리며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다.
“자리를 좀 내주면 안 될까요? 여러분들께 천년마화의 약물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드릴게요.”
“자네가 안다고?”
아래쪽 사람들 가운데서 누군가 바로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아마도요. 하지만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면 싸울 수밖에 없어요.”
적요는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