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1장. 들어가다
적요는 나름 먼저 예의를 차린 것이었다. 그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상대방은 그의 말에 표정이 변하더니 창염 일행을 힐끗 보았다. 그들은 쪽수로 뒤지지 않았고 경지도 엇비슷했지만 두 대열인지라 단합이 어려웠다. 때문에 싸우면 창염 일행도 힘들겠지만 그들도 피해를 면하기는 어려웠다. 두 대열의 고수들은 서로 눈빛 교환을 하고서 곧바로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이내 한 대열이 다른 한 대열 쪽으로 자리를 옮기며 자리를 내주었다.
적요는 눈앞이 밝아졌다. 너무나 뜻밖의 상황이었다. 그저 시험 삼아 말해 본 것인데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풀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얼른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고맙습니다.”
말하는 사이, 일행은 자리를 찾아 내려섰다. 꽃잎을 밟는 순간, 양준은 단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천년마화는 실물이 아니라 순전히 원기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기운이 짙어 실물과도 같았다.
“자리를 내주었으니 약물을 만드는 방법을 말해 줘야지?”
상대편의 고수가 경계 어린 시선으로 창염 일행을 바라보며 적요에게 말했다.
“좀만 기다리세요.”
적요는 웃으면서 곧바로 방법을 말해 주지 않았다. 이에 두 대열의 고수들은 금세 안색이 나빠졌다. 그들은 몰래 진원을 모으며 언제든지 공격할 준비를 했다.
잠시 뒤, 꽃술의 한가운데서 갑자기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원기 파동이 일었고, 파동이 퍼짐에 따라 모든 이들이 경계하기 시작했다.
적요는 양준에게 다가가 조용히 귓속말을 했고, 양준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곧이어 적요는 또 창염 일행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의 움직임은 두 대열의 고수들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그들 중 누군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우리를 속인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적요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곧 어떻게 약물을 만드는지 알게 될 겁니다. 전 당신들을 속이지 않아요.”
“그러길 바라지.”
그러는 사이 꽃술에서 시작된 원기의 파동은 점점 더 잦아졌고, 간격 또한 촘촘해졌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끊임없이 돌멩이를 던지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꽃술에서 잔물결이 한층, 한층 밖으로 퍼져 나가며 현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가자!”
적요가 갑자기 소리쳤다. 양준은 대답과 함께 몸을 날려 꽃술로 날아갔다. 두 사람은 속도를 한계치까지 폭발시켜 한순간에 잔물결이 퍼지는 꽃술 정가운데에 도착했다. 곧이어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질 광경이 나타났다. 두 사람이 파동이 일어나는 중심으로 뛰어들더니 바로 사라진 것이다.
두 대열의 고수들은 줄곧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이렇게 기괴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막으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들은 화를 내며 창염 일행을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자 창염이 말했다.
“잠깐 기다리지.”
“도둑놈들, 무슨 할 말이 더 있어?”
“자네들의 연단사도 들여보낼 수 있어. 약물을 만들려면 안으로 들어가야만 가능하거든. 하지만 자네들은 반드시 우리와 함께 입구를 지키고 있어야 해. 자네들도 많은 적수들이 들어가기를 바라지는 않겠지?”
창염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손에 들린 성급의 커다란 검은 강한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두 대열의 고수들은 당황해하다가 길게 생각하지 않고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들어가세.”
창염이 말했다.
두 대열의 영급 연단사 두 명은 적요와 양준과 마찬가지로 꽃술 안으로 들어갔다. 곧 그들도 모습을 감추었다.
네 명의 영급 연단사가 모두 꽃술 안으로 모습을 감추자 자연스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곧 다들 문제의 핵심을 파악했다. 은연중에 이것이야말로 천년마화의 약물을 만드는 정확한 방법이라는 것을 눈치챘던 것이다. 탐욕스러운 시선들이 일제히 꽃술 쪽으로 쏠리더니 곧이어 셀 수도 없이 많은 대열들이 몰려왔다.
창염은 씩 웃었다. 곧이어 손에 들린 성급 검이 갑자기 울부짖는 화룡으로 변해 기세등등하게 공격해 오는 사람들을 덮쳤다. 비전이 시위를 당기자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강한 화살이 수없이 쏟아졌다. 역완은 작은 몸으로 눈부신 금빛을 폭발시켰다. 순식간에 짤막한 몸이 거인처럼 커져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비우는 빨간 입술을 살짝 벌리고서 끊임없이 물안개를 뿜어냈다. 이내 물안개는 이빨을 드러낸 독사로 변해 사람들 사이를 누볐다. 그것에 물린 무인들은 술에 취한 것처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머리가 어지러워져서 휘청거렸다. 공기 중에는 사람을 혹하게 하는, 짙은 술 향기가 퍼져 나갔다. 천소종의 네 고수는 한꺼번에 모든 기술을 선보이며 꽃술 근처의 다른 초범 경지의 고수들을 놀라게 했다.
다른 이들도 방심하지 않았다. 연단사를 들여보낸 두 대열의 초범 경지 고수와 성주부에서 보내온 여섯 명 모두 일제히 자신의 필살기 무공을 펼치고 강한 비보를 꺼내들었다. 순간, 무공과 비보의 빛이 피어오르며 천년마화의 꽃잎 위에서 세상을 뒤흔드는 전투가 펼쳐졌다.
창염 일행은 원래 인원수가 적지 않은 데다가 두 대열까지 더해 18명이나 되었고, 다들 실력이 낮지 않았지만 늑대 떼처럼 달려드는 사람들을 막아내기는 힘들었다. 몇백 명의 초범 경지 고수들이 쉴 새 없이 공격하자 그들은 곧 버틸 수 없게 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은 모두 어느 정도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선두에 선 역완은 이미 수많은 공격에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창염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다른 이들과 함께 꽃술을 보호하는 한편, 그것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네 명의 영급 연단사가 들어간 뒤, 꽃술에서 시작된 파동은 전보다 훨씬 느리게 퍼지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느려졌다. 또 한참 지나자 더 이상 파동이 일지 않았다.
“갑시다!”
창염은 높게 소리를 지르더니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역완을 덥석 잡고서 번개처럼 떠나갔다. 비우, 비전 그리고 성주부의 여섯 고수도 창염의 뒤를 바짝 쫓았다. 남은 두 대열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했다. 그들은 창염 일행이 왜 포기하고 물러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창염 일행 없이 그들만으로는 기세등등한 적수들을 상대할 수 없으므로 그들 역시 다급히 도망쳤다.
꽃술 쪽에는 순식간에 사람이 한 명도 없이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달려들던 무인들은 이 광경에 크게 기뻐하며 너도나도 꽃술 쪽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싸우는 한편 자신들이 데려온 연단사를 꽃술 안으로 들여보내려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파동이 더 이상 일지 않은 탓인지, 아무리 애를 써도 누구도 더는 꽃술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사람들은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때, 창염 일행은 이미 산기슭에 내려가 있었다. 그들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비우도 머리가 흐트러진 채로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꽃술 쪽에서 일각이 좀 넘게 지키고 있으면 되었다. 시간이 좀 더 길었다면 아마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 다쳤지만 역완의 상처가 가장 심했다. 금빛의 거인 같은 몸이 사라지자 그는 바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이서는 얼른 다가가 그들에게 단약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창염 일행은 감사 인사를 한 뒤, 다급히 단약을 복용하고 운기 조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어느 정도 몸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역완의 상태도 많이 안정되어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어르신, 이리하면 된 겁니까?”
창염은 고개를 돌려 여전히 공중에서 자태를 뽐내는 천년마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도 꽃잎 위에는 수많은 고수들이 머물면서 꽃술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렇네. 나머지는 녀석들의 운을 봐야지.”
이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두 명의 연단사도 들어갔습니다. 들여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창염은 불만이 가득 찬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괜찮네. 그들은 들어가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네.”
이서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적요에게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창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이 안에 있는 이상, 들어간 두 외부인은 뭔가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양준 녀석은 초범 경지 2단계의 고수도 둘이나 죽였었지.’
“정말 감사드려요. 어르신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우리도 이번에 저들처럼 헤맸을 거예요.”
비우는 생각할수록 겁이 났다.
천년마화의 약물을 만드는 게 이리 까다로울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다들 꽃이 핀 다음, 그냥 연단사가 약물을 만들면 되는 줄 알고 있었다. 다행히 운 좋게도 양준은 적요와 친분을 쌓게 되었고, 그 덕분에 이서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순조로울 리가 없었다.
“난 그저 자네들보다 좀 더 살았을 뿐일세. 여기서 기다릴 필요없다네. 부운성으로 돌아가세. 그들도 한동안 있어야 나올 테니까.”
이서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서와 함께 부운성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이서는 양준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창염에게 양준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외부인도 자리에 있었지만 창염은 그의 질문에 되도록이면 대답해 주었다.
“그렇다면 그 친구는 외진 곳에서 왔다는 말인가? 그랬었군.”
“웬 촌구석에서 온 녀석이 이렇게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을 줄은 저희도 몰랐습니다.”
창염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양준과 비교하면 천소종의 핵심 제자들은 쭉정이인 셈이었다.
“출신이 비천한 사람을 얕보지 말게나. 그런 곳에도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네. 다만 여러 가지 제약을 받아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게지. 하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면 일반인들보다 훨씬 뛰어난 모습을 보일 것일세.”
이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의 말씀이 맞습니다. 예전에는 믿지 않았지요. 하지만 사질을 만난 뒤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질에게는 사저 두 명이 있는데 그보다 더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창염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사저가 두 명 있다고?”
이서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되물었다.
“네, 사질은 줄곧 그녀들을 찾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두 사람을 찾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