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6장. 기적이 정말 일어난 것 같구나
양준이 기운을 숨기지 않았기에 그들은 당연히 양준을 감지할 수 있었다. 여섯 명은 싸우는 와중에도 주변을 경계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양준이 적의가 없다는 것을 느꼈지만 여전히 한 쌍이 보조적으로 싸우며 양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혹시라도 그가 갑자기 튀어나와 방해할까 봐 걱정된 모양이었다.
양준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신에 대한 그들의 경계를 신경 쓰지 않았다. 밖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그것도 전투 중에 만나면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요수는 등급이 높지 않았는데 6급밖에 안 되었다. 네 명이 손잡고 공격한 덕분에 곧 요수를 죽일 수 있었다.
그들이 뒤처리를 다 하고 한참 회복한 다음에야, 양준은 다가가서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며 길을 물었다.
“부운성에 간다고?”
그중 한 여인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의아한 눈빛으로 양준을 훑어보다가 한쪽을 가리켰다.
“부운성은 저쪽이야. 이 방향으로 가다 보면 사흘 내지 닷새 정도면 도착할 수 있어.”
“고마워요.”
양준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나온 곳이 부운성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일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통현대륙은 너무 컸다. 만약 별 세계의 허공 통로를 통해 아주 먼 곳에 떨어졌다면 거의 1년 정도를 날아가야 할 수도 있었다.
“지금 부운성에 가서 뭐 하려고? 천년마화 쟁탈전은 이미 일 년 전에 끝났어. 아직도 소식을 모르는 건 아니지?”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가 말했다.
“일 년 전에요?”
양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기껏해야 별 세계에서 반년 정도 있은 줄 알았는데 어느새 일 년이 훌쩍 지났을 줄이야.
그가 깜짝 놀라자, 몇 사람은 오해하고 말았다. 양준이 정말로 천년마화 때문에 부운성으로 가려다가 시기를 놓친 줄 안 것이다. 여인 셋은 입을 가린 채 가볍게 웃으면서 바보를 보듯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래. 일 년 전에 이미 끝났어. 청년 둘이 먼저 올라갔다고 하더군. 그런데 그 두 청년도 행방불명이 되었지. 지금 많은 이들이 그들에게서 천년마화의 약물을 사려고 찾아다니고 있어. 지금 가면 너무 늦은 것 같은데.”
“정말 몰랐습니다.”
양준은 순간 경계심을 높였다. 이젠 얼굴에 쓴, 용모를 바꾸는 비보를 떼어 내야 할 때가 된 듯했다. 그러지 않고 괜히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어디서 왔어? 왜 이렇게 소식에 깜깜해?”
“시골 출신이라 정보가 좀 느리긴 하네요.”
양준은 대충 둘러대고 사내가 다시 입을 열기 전에 서둘러 공수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양준은 말을 마치고 여인이 가리킨 방향으로 질주했다.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야. 소식이 너무 늦은 거 아니야?”
사내 옆에 있던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남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요수의 내단 질이 어떤지나 보자고.”
여섯 명은 곧 기대 어린 표정을 지었다.
양준은 질주하면서 얼굴에 쓰고 있던 비보를 떼어 내고 원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두만이 준 비보는 정말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만약 이 비보가 없었다면 지금 그는 통현대륙에 있는 모든 초범 경지 무인들에게 쫓겨 다녔을 것이다.
양준은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적요가 사람들에게 쫓겨 다닐 걸 생각하면서 한참 동안 고소해했다. 하지만 이서의 보호를 받기에 적요는 혹시 발견되었다 해도 별일은 없을 것이다.
*
부운성, 성주부.
이서와 적요는 이곳에서 일 년 동안 묵고 있었다. 인간, 요족, 마족으로 구성된 성주들은 당연히 매우 기뻐했다. 두 사람이 왜 이렇게 오래 머무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이서가 이곳에 있는 것은 성주들에게 있어서 큰 영광이었다. 그들은 이서에게 웃어른 대접을 하며 매일 문안 인사를 드렸고, 적요도 살뜰히 보살폈다.
어느 날, 적요는 한창 열심히 사부의 가르침을 받으며 연단술을 익히고 있었다.
아홉 달 전부터 적요는 이미 통현대륙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별 세계에서 석 달 동안 있으며 상상할 수 없는 이득을 얻기도 했다. 이서도 별 세계에서 석 달이나 머무른 제자를 대견스러워했다. 기껏해야 한 달 정도밖에 머무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적요는 그의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던 것이다.
강의를 하던 이서는 적요가 정신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강의를 중단하고 넌지시 물었다.
“아직도 양씨 녀석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냐?”
“네. 그때 그냥 함께 움직일 걸 그랬습니다. 일 년이나 지났는데 안 돌아온 것을 보면 혹시…….”
“만약 정말 그렇게 되었다 해도 그것 또한 그 녀석의 운명일 것이다.”
이서는 자리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찻잔을 내려놓았다.
“별 세계에서 일 년이나 있다니, 살아 있기 힘들 거야.”
적요가 성주부에서 양준을 기다리자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으면, 이서는 진작에 적요를 데리고 세상을 떠돌았을 것이다. 적요가 양준과 한 약속이 있었으나, 이서처럼 존귀한 신분으로 양준을 이만큼 기다린 것도 충분했다.
“양준은 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적요는 미간을 찌푸리고 확신이 없는 말투로 말했다.
“너는 그 녀석에게 꽤나 자신이 있는 모양이구나.”
“네, 별 세계에서 직접 그의 육신이 얼마나 강한지 보았습니다. 제가 별 세계에서 석 달 동안 수련했지만 여전히 그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리 쉽게 죽겠습니까?”
“일 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단다. 길을 잃었을 수도 있고, 다른 사고가 생겼을 수도 있지. 나도 그 녀석이 어린 나이에 요절하는 걸 바라지 않아. 하지만 정말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우린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 한곳에서 너무 오랫동안 머무르는 것도 좋지 않아.”
“사부님, 열흘만 더 기다려요. 열흘이 지나도 오지 않으면 그때 다시 떠나요.”
적요가 애원했다.
“그래, 열흘 더 기다려 보자. 녀석이 정말 기적을 이루는지 보자꾸나.”
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놀란 표정으로 바뀌었다.
“왜 그러십니까, 사부님?”
적요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그는 사부가 이런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사부가 경악할 만한 일이 생긴 듯했다.
“기적이 정말 일어난 것 같구나.”
이서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씀은…….”
적요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얼굴에는 온통 놀라움과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래.”
“하하, 전 그럴 줄 알았어요. 그 녀석이 죽을 리가 없다니까요. 지금 어디 있나요?”
“여인숙에 있단다.”
“제가 찾아가 보겠습니다. 그 녀석이 어떻게 되었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적요는 말을 마치고 빠르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잊지 말고 그 녀석을 데려오거라. 내가 해 줄 말이 있다.”
뒤에서 이서의 목소리가 들리자, 적요가 얼른 대답했다. 제자가 떠난 뒤에야 이서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녀석이 정말 일 년 동안 별 세계에 있었다고?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거지?”
별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서도 경험해 보았기에 잘 알고 있었다. 천 년 전이지만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별 세계는 여전히 별 세계였다. 아무나 발을 들일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반년 전, 이서는 양준이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적요가 기다리겠다고 고집하자, 그는 제자가 실망할까 봐 굳이 말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적요와 연단술을 겨룰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적요는 양준을 일생 최대의 경쟁자로 생각하고 있었고, 물론 이서도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서는 자신이 어이없게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처럼 나이가 들고 지혜로운 이들은 모두 특유의 안목을 가지고 있어 잘못 판단할 때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오늘 양준은 기적적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여인숙,
양준이 돌아온 것을 본 창염과 비우는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두 사숙도 줄곧 부운성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적요가 두 사람을 성주부에 초대했지만 거절했다. 아우구가 이서와 적요를 공손하게 대하는 것은 이서의 신분과 지위 때문이었다. 만약 창염과 비우가 가게 되면 아우구가 그들까지 대우해줄 리 없었다.
“녀석, 드디어 돌아왔구나.”
창염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마음속의 돌덩이를 마침내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비우는 얼굴이 상기된 채, 촉촉한 눈망울로 양준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또 술 드셨습니까?”
양준은 어이가 없었다. 방 안에는 짙은 술 향기가 맴돌고 있었다. 한눈에 비우가 한 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술 좀 마시는 게 뭐? 신경 꺼.”
비우는 빨간 입술을 실룩이며 양준을 노려보다가 또다시 생긋 웃었다.
“돌아왔으면 됐어. 비우가 너 때문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매일 술로 슬픔을 달래는데, 난 그 술 냄새에 죽을 지경이었어.”
창염이 억울함을 토로했다.
“역완 사숙과 비전 사숙은요?”
양준은 주변을 둘러보다 두 사람의 모습과 기운이 감지되지 않아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들은 천소종으로 돌아갔어. 네가 별 세계로 떠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아?”
“알고 있어요.”
“그래. 문파에 오랫동안 호법이 한 명도 없어서는 안 되기에 두 사람은 먼저 문파로 돌아가고, 나와 비우만 여기서 널 기다렸어. 두 장로와 미나도 거석성으로 돌아갔단다. 너도 돌아왔으니 우리도 이제는 문파로 돌아가야지.”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양준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일 년이 넘게 사라졌지만 사숙들의 얼굴에서는 의심의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그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한시름을 놓는 모습이었다. 다른 이였다면 그가 천년마화의 약물을 가지고 도망친 것으로 의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숙들은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나도 걱정했는데 나한텐 뭐라고 할 거야?”
밖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웃음소리와 함께 적요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는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머리를 긁적이고는 양준을 훑어보면서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양준은요? 분명 목소리를 들었는데? 이 사람은 누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