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07화 (706/853)

제 707장. 천장노인을 만나다

적요는 양준의 진짜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양준을 못 알아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양준은 웃음을 터뜨리며 인사를 건넸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적요는 드디어 알아채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넌 진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구나. 경계심이 대단한데.”

그러고는 실눈을 떴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눈빛에는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그는 나지막하게 물었다.

“전과 좀 달라진 것 같은데, 설마 이미 초범 경지에 진급한 거야?”

그는 안목이 뛰어나 바로 문제점을 파악했다.

“운 좋게도.”

양준은 웃으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굳이 적요에게 경지를 숨기지는 않았다.

창염과 비우는 흠칫 놀랐다. 그제야 그들은 양준이 초범 경지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금 전에는 양준이 돌아온 걸 기뻐하느라 그에 대해서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두 사람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녀석, 이십 년이 지나면 사숙인 날 따라잡겠어.”

창염은 크게 웃으며 양준의 어깨를 다독였다. 드디어 천소종에 후계자가 있어 안심한 표정이었다.

“정말 별 세계에서 일 년이나 있었던 건 아니지?”

적요는 확신 없이 물었다. 양준의 실력을 직접 보긴 했지만, 그가 별 세계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무사히 버텼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양준이 어떻게 그 짧은 시간 안에 큰 경지를 돌파했겠는가?

“맞아. 그곳에서 좀 변고가 생겨서 며칠 전에야 돌아오는 길을 찾게 되었어.”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적요는 충격받은 표정을 지은 채,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별 세계에서 죽기 살기로 겨우 석 달을 버티다 나중에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허공 통로를 통해 통현대륙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그는 사부한테 크게 칭찬을 받았고, 스스로도 자신의 성적이 충분히 뽐낼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준과 비교하자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별 세계? 방금 전에 별 세계라고 했어? 설마 너희들 그곳에 갔던 거야?”

창염과 비우는 그 말을 듣더니 연신 놀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앉아서 얘기하죠.”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다들 별 세계의 비밀을 알고 싶어했다. 창염과 비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리에 앉은 뒤, 양준은 그동안 별 세계에 있으면서 만났던 신기한 일들을 낱낱이 말해 주었다. 창염과 비우뿐만 아니라, 같이 별 세계에 다녀왔던 적요도 진지한 얼굴로 열심히 들었다. 양준이 말해 주는 다채로운 경험 가운데 그가 겪어 보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했다.

별 세계에 있는 석 달 동안, 적요는 대부분의 시간을 허공 통로의 근처에서 보냈다. 그는 육신을 수련하는 한편,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했다. 양준처럼 생사도 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별 세계 폭풍을 만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별 세계 폭풍이 몇백, 몇천 개의 운석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었다는 말을 듣자, 사람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들은 양준이 어떻게 그런 재난 가운데서 살아남은 것인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입성 경지의 고수라도 그런 별 세계 폭풍에 휘말려 들어가면 죽음뿐이었다. 하지만 양준은 살아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양준은 별 세계 폭풍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폭풍의 가장자리에 스쳐서 부상을 당했다고만 말했다. 대마신의 뼈와 피에 연관된 이야기이므로 함부로 발설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양준은 천년마화에서 채집한 약물 네 방울을 꺼내 창염에게 건넸다.

평소 침착하던 창염도 약물 네 방울을 받는 순간, 손을 덜덜 떨며 흥분을 금치 못했다. 천년마화 약물 네 방울만 있으면 천소종의 네 호법은 입성 경지에 진급할 확률이 훨씬 높아졌다. 입성 경지는 초범 경지와 한 단계밖에 차이 나지 않았지만 하늘과 땅 차이였다. 두 경지 사이는 초범 경지와 신유 경지의 차이보다 훨씬 컸다.

통현대륙에는 초범 경지의 고수가 적지 않았지만, 입성 경지의 고수는 극히 드물었다. 입성 경지의 고수는 모두 각자 문파의 기둥 같은 존재로 귀한 인적 자산이었다. 천소종에도 입성 경지에 이른 고수는 두 명뿐이었다. 창시자인 초능소를 제외하고 줄곧 폐관 상태인 사숙조(師叔祖)가 있었다. 뇌광신교 같은 세력에는 입성 경지의 고수가 아예 없었다.

“천년마화의 약물도 얻었겠다, 사질도 돌아왔겠다, 창염, 우리 이젠 문파로 돌아가자.”

비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기수봉에 가서 폐관하고 인생의 가장 큰 장벽을 넘고 싶었다.

“그래.”

창염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사질은 가서 이씨 어르신에게 작별 인사라도 해. 이번에 어르신이 아니었다면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을 테니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염이 말하지 않아도 그는 이서를 찾아 얘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세상에서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 연단사는 그와 이서 두 사람밖에 없었다. 그는 이서에게서 많은 유용한 지식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께서도 널 꼭 데려오라고 하셨어. 사부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 지금 가자. 두 분께서는 안 가시겠습니까?”

적요가 웃으며 물었다.

“우린 가지 않을게. 대신 어르신께 문안 인사를 전해줘.”

“네!”

적요는 대답하고 나서 양준과 함께 여인숙을 나서 성주부로 걸어갔다.

잠시 뒤, 두 사람은 성주부에 도착했다. 적요의 안내 하에 두 사람은 막힘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성주부 뒤뜰에 있는 안채에 도착하자, 적요는 발걸음을 멈추고 공손하게 말했다.

“사부님, 양준이 왔습니다.”

“들어오너라.”

안에서 이서의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진지한 얼굴로 옷을 단정히 하고는 적요를 따라 들어갔다. 이서는 양준의 진짜 얼굴을 보고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는 진작부터 눈치챈 듯 허허 웃으며 손짓했다.

“앉게.”

“어르신을 뵙습니다.”

양준은 공수한 다음, 그의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적요는 직접 두 사람에게 차를 따른 다음, 양준의 옆에 앉았다.

차를 음미하고 있다 보니, 방 안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이서가 침묵을 지키자 양준도 섣부르게 입을 열 수 없었다.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은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 성인(聖人)과 같은 존재였다.

한참 뒤, 이서가 갑자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기운이 안채를 감쌌다. 안에서 밖의 기척을 살필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의 기척을 조금도 탐지할 수 없게 한 것이었다.

양준은 흠칫 놀라며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눈앞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최정상의 연단사일 뿐만 아니라 경지가 높은 고수였다.

“요에게 듣자 하니 천소종의 제자라며?”

“네.”

“자네는 천소종에서 태어난 건가, 아니면 최근에야 천소종에 들어간 건가?”

이서는 느닷없는 질문을 했다.

양준은 놀란 얼굴로 이서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어르신께서는 어떻게 아신 겁니까? 전 천소종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됩니다. 기껏해야 일 년 반 정도지요.”

“역시 그랬군. 구체적인 이유는 잠시 뒤에 말해줄 걸세. 한 가지 더 묻겠네. 신식의 불꽃이 있는 건가?”

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질문을 이어 갔다. 이 말을 들은 적요는 놀란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웃으며 대답했다.

“안목이 과연 날카로우십니다. 전에 뵀을 때 이미 눈치채셨지요?”

“맞네.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지. 실력이 높을수록 그 느낌이 더욱 강하다네.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나. 자네가 함부로 신식의 불꽃을 쓰지만 않는다면 입성 경지의 고수도 알아보기 힘들 걸세.”

“너 정말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어?”

적요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 정말… 부러워 죽겠네.”

적요는 쓴웃음을 지었다. 신식의 불꽃은 그가 오매불망 가지고 싶어 하던 것이었다. 사부에게서 신식의 불꽃이 지닌 현묘함과 신비함을 보기도 했고, 연단할 때 신식의 불꽃이 어떤 도움이 되는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질이 뛰어난 연단사로서 적요가 어찌 탐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신식의 불꽃은 욕심낸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신식의 불꽃은 신식의 수련 과정에서의 변이 현상으로 우연히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동안 이서도 적요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고, 많은 노력을 들였었다. 하지만 적요의 신식은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신식의 불꽃으로 뭘 할 수 있는가?”

이서가 또 물었다.

양준은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 기습하는 데 쓰고 있습니다.”

이서는 웃음을 터뜨렸다.

“좋네, 괜찮군. 이 또한 신식의 불꽃의 쓰임새 중 하나지. 변이된 신식은 일반적인 신식보다 살상력이 훨씬 강하다네. 자네보다 실력이 강한 적들도 무방비 상태에선 된통 당할 거야. 심지어 신혼도 불에 탈 수 있지. 이는 누구에게나 큰 위험일 터. 하지만 이건 신식의 불꽃의 쓰임새 중 하나일 뿐이네. 신식의 불꽃의 가장 큰 쓰임새는 연단하거나 연기(煉器)하는 것이라는 건 알고 있는가?”

“생각한 적은 있지만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모릅니다. 어르신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양준은 진지한 얼굴로 공손하게 말했다.

이서는 미소를 지었다. 양준의 배우려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이번에 자네를 부른 것은 바로 이쪽의 경험을 전수해 주고 싶어서야. 자, 식해의 방어를 풀어 보게나.”

이서가 가볍게 말했다.

이에 양준의 안색이 변하더니 얼른 숨을 죽이고 식해의 방어를 풀었다. 이서의 표정도 덩달아 진지해지더니 천천히 중지를 내밀었다. 손가락 끝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오면서 반짝반짝 빛을 뿌렸다. 곧이어 이서가 중지로 양준의 이마를 가볍게 내리눌렀다.

양준은 온몸을 흠칫 떨었다. 순간 순수한 기운이 방대한 정보를 지니고서 그의 식해로 흘러들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살펴보았다. 정보들은 모두 이서가 여태까지 신식의 불꽃을 연구하면서 얻은 경험이었다. 어떻게 신식의 불꽃으로 연단하고, 어떻게 신식의 불꽃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는지 등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각종 깨달음과 경험들은 귀하기 그지없었다.

양준은 홀린 듯이 탐지하면서 점차 연단하는 데 있어서 신식의 불꽃의 쓰임새에 대해 자기만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이처럼 방대한 정보를 모두 탐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이서의 몇백 년간의 경험의 결정체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남김없이 모든 것을 양준에게 전수해 주었다.

시간은 흐르고 방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이서든, 적요든 침묵을 지키며 양준을 방해하지 않고, 숨을 죽인 채 조용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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