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8장. 뜻밖의 단서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양준의 눈동자는 다시 맑아졌다. 그는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어 자신의 약 가마를 불러내는 동시에 검은 책 공간에서 약재 몇 가지를 꺼냈다. 곧이어 신식의 불꽃이 튀어나와 약재들을 감쌌고 뜨거운 기운에 약재들은 곧 약물로 응결되었다.
그리고 약물들은 다시 차례로 약 가마에 투입되었다. 신식의 불꽃은 다시 약 가마를 감쌌다. 약물들이 약 가마 내에서 새롭게 거듭나며 서로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잠시 뒤에 상큼한 단약 향기가 안채를 가득 채웠다. 이윽고 가벼운 소리가 들리더니 약 가마에서 동그란 단약이 튀어나왔다. 양준은 단번에 단약을 잡아채 자세히 감지해 보고는 미소를 떠올렸다.
영급 단약이었다. 전에 진원으로 연단할 때보다 더 쉽고 간편했다. 시간도 많이 단축되었다. 게다가 만약 신식의 불꽃을 사용하는 데 능숙해지면 단약의 질이 더 높아질 수도 있었다. 신식의 불꽃으로 연단하는 것은 진원으로 연단하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이서와 적요는 정신을 집중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적요는 내내 혀를 내둘렀다. 사부가 신식의 불꽃으로 연단하는 것을 수없이 봐 왔지만 여전히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신식의 불꽃이 없는 그로서는 당연히 양준의 저력이 부러웠다.
이서는 양준이 기특하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는 양준의 각성 능력과 자질을 확인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적임자에게 전해주었다고 생각했다. 양준은 반드시 그의 경험을 확실하게 깨닫고 그 바탕에서 다시 자신의 견해를 덧입혀 더욱 발전할 것이다.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양준이 영급 단약을 갈무리하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공수했다.
“허허! 너무 예의를 차리는군. 사실 자네한테 이런 것들을 전수하는 건 다 조건이 있다네.”
이서가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 이야기하십시오.”
“자네는 신식의 불꽃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가? 게다가 자네 신식의 불꽃의 강도가 나에 못지않은 것 같군. 자네 나이로 보아, 신식의 불꽃을 이 정도 수준으로 수련했다고는 믿기가 어렵네. 괜찮다면 나한테 소상하게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양준은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신식의 불꽃이 생기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일찍이 보옥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저는 그 속의 진령을 흡수해 경지와 전투력을 향상시키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흡수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신식의 불꽃을 수련하게 되었죠.”
“보옥 속의 진령이라? 자네 정말 배짱이 이만저만이 아니군. 그런 물건을 함부로 삼켰다니.”
“당시에는 그렇게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참 위험한 짓이었습니다. 다행히 진령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그때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양준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이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했다.
“보옥 속의 진령을 흡수해도 신식의 불꽃이 생길 수 있군. 하지만 그 방법은 너무 모험적이네.”
이서가 이런 것들을 묻는 것은 물론 적요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양준의 방법은 적요에게 맞지 않았다. 위험이 있나 없나를 떠나서, 설령 위험이 없다고 해도 적요에게 반드시 신식의 불꽃이 생긴다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우연적인 요소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양준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 신식의 불꽃의 강도가 어르신의 것과 막상막하를 이루게 된 것은 아마도 제가 다른 사람의 신식의 불꽃을 흡수해서일 것입니다. 제 스스로 힘들게 수련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의 신식의 불꽃을 흡수했다는 말인가?”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어떤 곳에서 신식의 불꽃을 가진 무인들이 많이 죽게 되었는데 그들의 신혼이 모두 보존되어 있었고, 제가 기연으로 그것들을 다 흡수하게 되었습니다.”
“네 기연이 시샘 날 정도야!”
적요가 부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한마디 했다.
세상에 변이된 신식을 가지고 있는 무인이 보기 드물다 하지만, 소수라도 존재했다. 그저 신식의 불꽃을 지닌 정상급 연단사가 양준과 이서 두 사람뿐인 것이었다. 신식의 불꽃을 지닌 다른 무인들은 연단술에 능하지 못했기에 그것을 오직 전투에만 사용했던 것이다.
“알겠네. 궁금증을 풀어주어 고맙군. 큰 도움이 되었네.”
“별말씀을요. 저 역시도 어르신한테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양준이 얼른 고마움을 표하고는 잠깐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방금 전에 저한테 무언가 말씀하려 하신 거 아닙니까?”
방금 전, 이서는 양준이 천소종에 가입한 지 얼마 안 된다는 것을 알아맞혔지만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다. 양준은 왠지 그 부분이 신경 쓰였다. 이서 같은 이가 뜬금없는 말을 할 리가 없었다. 그가 그런 말을 했을 때는 모두 연유가 있을 터였다.
“음, 그 일은 자네와 연관이 있을 수도, 혹 없을 수도 있네.”
이서가 웃으며 영급 단약 하나를 양준에게 건넸다.
양준은 단약을 건네받아 자세히 살펴보고는 놀라서 말했다.
“이건 제가 제련해 낸 영급 단약 아닙니까?”
이 영급 단약은 지난번 여인숙에서 적요와 겨룰 때, 양준이 제련해 낸 단문이 있는 단약이었다.
“자네, 괜찮다면 이 영급 단약을 제련할 때 사용했던 영진을 지금 그려 낼 수 있겠는가? 걱정하지 말게나. 자네의 연단술을 엿보려는 게 아니고 의문스러운 데가 있어서 그러네.”
“알겠습니다.”
양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서 정도의 인물 앞에서 그는 걱정할 게 전혀 없었다. 그는 곧 진원을 돌려 약 가마 안에 전에 사용했던 영진을 각인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양준은 영진 각인을 마치고 약 가마를 이서에게 건넸다.
이서는 약 가마를 건네받아 한참 동안 살펴보더니 얼굴에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약 가마를 적요에게 건네며 말했다.
“너도 좀 살펴보거라.”
적요는 망연한 표정으로 약 가마를 받아 들고 살펴보았다. 잠시 뒤에 그는 저도 모르게 ‘어!’ 소리를 내었다. 무엇인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듯했다.
“무슨 일인가요?”
양준은 두 사람의 반응에 더욱 오리무중에 빠진 느낌이었다.
“재미있네!”
적요가 빙그레 웃으며 양준을 훑어보았다.
“네가 사용한 영진은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영진과 미묘한 차이점이 있어. 네 영진은 오래전 기법인 것 같아.”
“맞아.”
“확실히 오래전 영진이지. 이미 실전된 것이기도 하고.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영진보다 더 편리하군!”
“매우 오래된 서적에서 배운 것입니다. 어르신께서 필요하시면 제가 알고 있는 영진을 모두 각인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서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네. 자네에게 이런 것들을 묻는 것은 자네 지식을 염탐하려는 게 아닐세. 일찍이 우리 두 사람이 같은 영진을 본 적 있기에 확인하려는 것뿐이었네. 혹여 자네와 연관있는 거 같아서.”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난 어려서부터 사부님과 산속에서 수련하면서 연단의 도를 배웠어. 그렇게 하기를 이십 년. 그리고 몇 년 전, 사부님은 나를 데리고 세상에 나와 경험을 쌓기로 하셨지. 난 줄곧 내 연단술이 동년배 중에서는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었거든. 하지만 부운성에서 너에게 패했지……. 근데 사실 2년 전에 난 또 한 사람에게 패했었어.”
양준은 그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너보다 연단술이 더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말이야?”
“그래. 그리고 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 상대가 어린 소녀였다는 거야.”
적요가 빙그레 웃으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별안간 무엇인가 떠오른 그는 눈동자를 빛내며 다그쳐 물었다.
“어떤 여인이야?”
“면사포를 하고 있어 말해 줄 수가 없어. 이마에 남색 보석이 박혀 있었고, 눈동자가 맑은 것이 아마 미인이었을 거야. 그리고 천진난만하고 귀여워 보였어.”
양준은 호흡이 가빠지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옆에 음흉한 눈빛을 한 노인도 있었어?”
“음흉한 눈빛이라? 아마도… 어쨌든 나잇값을 못 하는 느낌이었어.”
“혹시 몽씨는 아니고?”
양준이 심호흡을 하며 계속해 물었다.
“역시 자네와 연관이 있었군. 전에 적요가 가져온 단약에 사용한 영진의 흔적을 보고서 대강 짐작하긴 했지만 확신할 수 없었네. 이제 보니, 같은 영진을 사용하는 것이… 혹시 동문인가?”
“네, 맞습니다. 제 사저입니다.”
양준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2년 전 연단술로 적요를 이긴 사람은 하응상이 틀림없었다. 세상에 오직 하응상만이 그럴 능력이 있었다.
“도대체 어떤 문파기에 이리 대단한 거야? 그 여인은 타고난 체질이 달라 연단할 때 약 가마가 필요 없이 천지의 영기를 모아 연단할 수 있었고, 단문 같은 것도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었어. 연이어 세 차례 겨뤘는데 난 완패당하고 큰 충격을 받았었어. 너는 또 어떻고? 아니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니. 난 도저히 너희들과 비길 수가 없잖아.”
적요는 할 말을 잃은 듯한 표정이었다.
“사저는 확실히 연단에 적합한 체질을 타고났어.”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음속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 오랫동안 찾아다녔는데 드디어 유용한 단서를 찾게 되었던 것이다.
“약령성체겠구먼! 어쩐지… 결국 약령성체였군! 시간이 흐르면 자네 사저는 꼭 나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룰 것일세. 몽무애, 그 노친네가 왜 말해 주지 않는가 했더니.”
양준의 표정이 흔들렸다. 이서가 몽무애를 부르는 호칭으로 보아 두 사람은 진작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며 또한 동년배인 듯했다.
“그분들과 만났을 때,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까? 또 다른 사저 한 분과 친구가 있거든요.”
“모두 연단술에 능한 건 아니겠지?”
적요가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야.”
양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보지 못했네. 몽무애는 하씨 소녀만 데리고 있는 것 같더군.”
이내 양준의 얼굴빛이 흐려지더니 살짝 초조한 기색을 띠었다.
‘몽 주인이 사저만 데리고 있었다고? 그럼 소안은? 지마는? 그 둘은 어디 간 거지?’
지마는 원래부터 통현대륙 사람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마족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기에, 입성 경지 고수를 제외하고 그를 해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소안은 달랐다. 여인 혼자 몸으로 실력도 그리 강한 편이 아닌 데다가 절색의 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무척이나 위험했다.
‘무슨 연유로 소안은 몽무애와 갈라지게 된 거지? 아니면 불의의 사고라도 생겼나?’
양준은 마음이 끝없이 가라앉으며 저도 모르게 여러 가지 잡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