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10화 (709/853)

제 710장. 자네도 그들을 찾고 있나?

상대 무리의 표정이 모두 좋지 않았기에 양준도 예의를 차리고 싶지 않았다. 마침 기분도 좋지 않았던 터라 누군가 건드리면 한바탕 화풀이하기 딱 좋았다.

“어떤 노친네와 소녀의 행방을 묻고 다닌다면서?”

중년 사내는 양준을 곁눈질하며 차갑게 물었다.

“본 적 있으세요?”

양준은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영감과 면사포를 쓴 소녀가 아닌가?”

중년 사내가 재확인하며 물었다.

“맞습니다.”

양준은 기쁜 나머지 눈앞의 사람들이 모두 정다워 보였다.

“본 적 있지. 근데 왜 그들을 찾아? 그들과는 무슨 사이야?”

“그건 알 필요 없습니다. 그냥 저에게 그들이 무슨 단서를 남겼는지 알려만 주십시오. 그럼 보수를 드리겠습니다.”

“보수라? 어떤 보수를 말하는 것이냐?”

사내가 괴이쩍게 웃으며 물었다.

“가치가 있는 단서를 제공하기만 한다면 정석이나 영급 단약을 드리겠습니다.”

사내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놀란 기색을 띠었다. 양준의 후줄근한 차림새에서 그가 부자라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건방지군! 우린 그냥 본 적이 있을 뿐,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어. 구체적인 상황은 잘 몰라.”

“그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양준은 기분이 상해 얼굴빛이 흐려졌다.

중년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따로 아는 이가 있어. 정말 알아보고 싶다면 우리랑 같이 가지 그래.”

양준은 눈을 반짝이다가 씩 웃었다.

“좋습니다. 그럼 상황을 아는 이에게 데려다 주십시오.”

중년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장서서 걸었다. 양준이 급히 따라나서자, 사내가 데려온 이들도 뒤따르며 조용히 양준의 퇴로를 차단해 버렸다.

양준은 이들이 악의를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몽무애와 하응상을 본 적이 있는 것은 확실한 듯했다. 아니면 그렇게 정확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몽 주인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저들이 몽 주인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거지?’

양준은 이러한 점들을 진작에 눈치챘지만 자신의 실력을 믿고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여유 있게 따라가며 몰래 주위의 상황을 살폈다. 그는 수람성에 한 달간 머물렀으므로 이곳에 입성 경지 고수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양준은 중년 사내를 따라 한참을 걸어서 대저택 앞에 이르렀다.

저택 안에 들어서자, 중년 사내는 양준을 이끌고 정원을 가로질러 화원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화원에는 음험한 표정을 한 청년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청년의 아래에는 여인 둘이 반쯤 꿇어앉아 애완 동물처럼 그의 몸에 기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양준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도련님,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중년 사내는 한참 넋을 놓고 있다가 금방 정신을 차리고 얼른 입을 열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청년은 외마디 대답을 하고서 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양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기운이 점차 험악해졌다.

청년은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그제야 여유를 부리며 양준을 힐끗 보고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네가 그 노친네와 소녀를 찾는 거냐?”

“그래.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알아?”

“몰라. 나도 그들을 찾고 있어. 너한테 만약 소식이 있으면 나한테 알려주지 않을래?”

청년이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도 그들을 찾고 있어? 왜 찾는데?”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주제 파악 좀 하지 그래. 그건 내가 너한테 할 질문이잖아? 하지만 네가 이미 물었으니 대답은 해 주마.”

청년이 낯빛을 흐리더니 불쾌해하며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두 손으로 의지 등받이를 두드리다가 진원을 폭발시켰다.

“내가 그들을 찾는 이유는 당연히 죽이려고 그러는 거지. 내가 이 몰골이 된 건 다 그 영감탱이 때문이거든. 자, 이제 너 하고 그들이 무슨 사이인지 말해 봐. 다만, 잘 생각하고 대답해야 할 거야. 만약 네놈이 그들의 친구거나 가족이라면 너한테 지옥이 무엇인지 경험시켜 준 다음,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줄 거니까.”

“몽 주인이 널 폐인으로 만들었다고?”

양준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몽무애가 어떤 신분인가? 무슨 특별한 일이 없었다면, 그가 후배를 저리 심하게 대했을 리가 없었다. 청년은 몽무애의 노여움을 산 것이 분명했다.

양준은 곧바로 하응상과 연결 지었다. 몽 주인은 하응상을 보물처럼 아끼는데, 만약 청년이 하응상을 건드렸다면 당연히 몽무애가 화냈을 것이다. 게다가 청년의 행태를 봐서는 부잣집 도련님이 틀림없었다. 하응상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누구라도 그녀가 경국지색의 미모를 가졌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그녀의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기질은 누구든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양준의 표정도 구겨졌다.

“우리 정(程)씨 가문에서는 그 노친네를 귀빈으로 대접했어. 그런데 그 노친네는 우리 집 도련님께 이리 험한 짓을 했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양준을 데리고 온 중년 사내가 차갑게 말했다.

“네 놈은 도대체 노친네와 무슨 사이냐? 감히 거짓말을 했다가는 가만두지 않을 테다.”

“몽 주인이 왜 댁네 도련님을 저렇게 만들었는지 말해 줄 수 있나요?”

양준은 고개를 돌려 서슬 퍼런 눈빛으로 중년 사내를 바라보았다.

중년 사내는 대수롭지 않게 코웃음을 쳤다.

“도련님께서 그 소녀가 마음에 들어 음식에 약을 좀 탔을 뿐이야.”

“약을 타? 흠, 댁네 도련님은 그런 짓을 하고도 남겠군요.”

양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응상은 약령성체라 약물로 그녀를 어떻게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응상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임을 알면서도 양준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몽 주인이 네놈을 폐인으로만 만든 건 손속에 자비를 둔 거야. 만약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야.”

양준이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네 이놈, 지금 뭐라는 것이냐?”

중년 사내의 얼굴빛이 차가워지더니 사납게 소리쳤다.

청년은 흥미진진하게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라면 어떡할 건데?”

“죽여야지!”

그 말에 다들 깜짝 놀라더니, 곧이어 일제히 조소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참 방자하구나. 감히 정씨 저택에서 이런 말을 하다니. 아직 죽음이 뭔지 모르는 모양이군? 수람성에서 우리 정씨 가문은…….”

중년 사내가 비웃는 표정으로 말을 미처 끝내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뚝 끊겼다. 이윽고 옅은 피비린내가 퍼져 나갔다. 중년 사내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빛이 붉어졌다. 그는 경맥과 혈액이 끊임없이 팽창하는 것을 느끼고, 재빨리 이를 막으려 애를 썼지만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었다.

퍼엉-

피와 살점이 하늘에서 흩날렸다. 그 누구도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한순간 중년 사내는 뼈도 못 추리고 사라졌고, 원래 그가 있던 자리에는 붉은 피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와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온몸에 살점들이 가득 튀었다.

아수라장 같은 광경에 다들 놀라서 제자리에 굳어진 채 넋을 잃고 말았다. 의자에 앉아 있던 청년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입을 딱 벌린 채 다물지를 못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물을게. 그 두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 알면 얼른 말해. 그러면 온전한 시체는 남겨 주지.”

양준은 냉혹한 눈빛으로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저놈을 죽여라!”

청년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버럭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 나머지 무인들은 그제야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바람이 일며 우레가 움직였다. 양준은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몸속의 진원이 폭발하면서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풍뢰우익은 겉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내재된 바람과 우레의 힘이 화원에서 하나로 어우러져 살육의 장을 만들었다. 신유 경지 무인들은 그 속에 휘말려 반항도 해 보지 못한 채,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야말로 참혹한 죽음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청년은 완전 얼이 나가고 말았다. 이번에는 악마를 잘못 건드린 듯했다. 양준이 나이가 어려 보여서 데리고 오라고 시켰는데, 상대의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초범 경지? 아닐 거야!”

청년은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의 가슴은 경악과 공포심으로 가득 찼다.

양준은 손쉽게 수많은 신유 경지 무인들을 죽이면서도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초범 경지 무인만이 이런 실력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젊은 초범 경지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매서운 표정을 한 양준이 점차 다가오자 청년이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나한테 오지 마. 난 그 두 사람의 행방을 몰라. 다가오지 말란 말이야.”

“그럼 그냥 죽어야지.”

양준이 섬뜩하게 웃었다. 그는 상대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곧 주먹으로 상대의 머리를 깨뜨렸다.

화원은 온통 피비린내가 진동했지만, 양준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런 전투는 그에게 있어서 전투라고 말할 수 없었다. 상대가 그를 건드린 것은 화를 자초한 것이었다.

청년의 곁에 있던 두 여인은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너무 놀란 나머지 퀭한 눈으로 양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들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양준은 그녀들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두 여인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별안간 양준이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한 방향을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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