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11화 (710/853)

제 711장. 희망을 보다

그쪽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치솟는 것이 고수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분명했다. 정씨 가문은 수람성에서 손꼽히는 세력이므로 가문에 초범 경지 고수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화원 쪽에서 전투의 파동이 전해지자 달려온 모양이었다.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고함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누가 감히 정씨 가문에서 행패를 부리느냐?”

양준은 눈썹을 치켜세운 채 제자리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 도망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 달려오는 이는 초범 경지 1단계로 양준의 경지와 비슷했다. 비록 두 명이라 하지만 양준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같은 경지의 무인과의 싸움에서 그를 이길 사람은 없었다.

잠시 뒤, 좌우 양쪽에서 두 명의 노인이 동시에 날아왔다. 그중 한 명은 황갈색 옷을, 다른 한 명은 옅은 남색 옷을 입고 있었다. 화원의 참혹한 광경을 본 두 사람은 순간 당황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두 노인의 사지가 멀쩡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 사람은 팔 하나가, 다른 한 사람은 왼쪽 다리가 없었다. 지금은 그 자리를 비보로 대체해 겉보기에는 문제없었지만, 금속 특유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자네가 한 짓인가?”

황갈색 옷을 입은 노인이 노기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양준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우리 정씨 가문 사람들을 죽인 것이냐? 우리 정씨 가문과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겐가?”

남색 옷을 입은 노인이 분노에 차서 울부짖었다.

“아무 원한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잔인한 짓을 한 것이냐? 우리 정씨 가문이 만만해 보이는 것이냐?”

두 노인은 말하면서 진원을 모았다. 죽은 사람들을 위해 복수하려는 것이었다.

양준의 담담하고 차분한 모습에서 그들은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신식으로 탐지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들은 왠지 모르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 출신이기에 어린 나이에 실력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거지?’

“오늘 제대로 된 해명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 정씨 가문과는 철천지원수가 될 것이다.”

황갈색 옷을 입은 노인이 얼굴이 뻘겋게 되어 이를 악물고 고함을 질렀다.

“철천지원수? 좋습니다. 그럼 먼저 싸우고 다시 이야기하죠. 전 아직 물을 것이 있습니다.”

양준이 나지막하게 냉소를 흘렸다.

몽무애와 하응상의 행선지에 대해 죽은 청년은 모르지만, 두 노인은 알 수도 있었다. 말하는 사이, 뜨거운 신식이 양준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모든 것을 불태울 듯한 기세로 그림자도, 형체도 없이 두 노인을 향해 덮쳤다.

두 노인도 수련해 온 시간이 긴 만큼 식해의 방어가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몸에 방어용 신혼 비보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몸에 지니고 있던 신혼 비보가 반짝이고 나서야 그들은 뜨거운 기운을 느끼고 얼굴빛이 크게 바뀌더니 알 수 없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양준은 이서의 가르침을 받고 신식의 불꽃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터였다. 신식의 불꽃은 연단할 때 유용할 뿐만 아니라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양준이 초범 경지에 오른 다음 첫 번째 전투로, 상대는 같은 경지의 무인 두 명이었다. 당연히 양준은 이 전투를 통해 자신의 현재 전투력을 점검해 볼 생각이었다. 때문에 그는 손속에 전혀 여지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두 노인은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았다. 식해의 방어가 손쉽게 무너졌고, 만약 방어 비보가 작용하지 않았다면 아마 일격에 그들의 신혼을 불태울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노인은 깜짝 놀라 식은땀을 흘리는 동시에 얼른 수단을 펼쳐 육신을 지켰다.

양준은 신식의 불꽃을 거두어들이고 번개같이 두 사람의 앞으로 다가갔다. 양준이 손바닥을 앞으로 뻗자 두 노인은 가볍게 나가떨어졌고, 허공에서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그들이 땅바닥에 떨어진 뒤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양준의 그림자가 눈앞에 닥쳐왔다. 양준은 마치 높은 산처럼 햇빛을 가렸고, 그들의 눈앞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전혀 반항할 힘이 없었다.

두 노인은 이런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양준도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같은 경지의 무인들을 상대해 자신의 전투력을 점검해 보려던 생각은 잘못된 듯했다.

두 노인은 위험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감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땅바닥에 쓰러진 채,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황갈색 옷을 입은 노인은 그나마 기개가 있었다. 그는 마음속 공포감을 억누르고 양준의 정체를 물었다.

양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누군지는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좀 물을 것이 있는데 대답이 만족스러우면 놔주겠지만, 만족스럽지 않으면… 정씨 가문은 오늘 멸문될 것입니다.”

냉혹한 양준의 말에 두 노인은 간담이 서늘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이 자신들을 상대한 수단으로 보아 그에게는 정씨 가문을 멸문시킬 재주가 있었다.

“2년 전, 정씨 가문에서 한 노인과 면사포를 쓴 소녀를 접대한 적이 있습니까?”

양준이 그들의 눈을 지켜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에 두 노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무슨 두려운 일을 떠올리기라도 한 듯이 그들의 눈동자에는 당황한 기운이 감돌았다. 황갈색 옷을 입은 노인이 말했다.

“그들과 같은 편이었군! 정씨 가문의 불효자가 잘못을 저질렀지만 이미 대가를 치렀고, 우리 두 사람도 연루되어 벌을 받았네. 이미 2년이나 지났는데 아예 씨를 말리려는 것이냐?”

남색 옷을 입은 노인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정씨 가문은 이미 침통한 교훈을 얻었다네. 그 일은 끝난 거 아니었나?”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가 자신을 오해한 듯했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두 분의 팔과 다리는 그 노인이 자른 겁니까?”

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고, 2년 전의 일을 떠올리기 싫어하는 듯했다.

양준은 씩 웃었다. 그제야 몽 주인에 대한 불만이 조금 해소되었다. 누군가 하응상에게 약을 썼다면 몽무애의 성격으로 청년의 두 다리만 자르는 것으로 끝낼 리가 없었다. 보아하니 정씨 가문의 초범 경지 두 사람도 벌을 받은 듯했다.

황갈색 옷을 입은 노인이 입을 열었다.

“선배님은 우리 정씨 가문의 조상님들과 친분이 있었던 듯했네. 수람성에 왔을 때, 우리 정씨 가문에서 며칠간 손님으로 있었지. 우리 정씨 가문도 예를 다해 접대했는데… 뜻밖에 불효자가 그분의 제자에게 눈독을 들이고 음식에 약을 탔었네. 선배님은 화가 나서 불효자의 다리를 잘라 버렸지. 그때 수신전의 장로가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면 우리 가문은 진작 멸문되었을 걸세. 그렇다 해도 우리 역시 막대한 대가를 치렀다네. 결국 선배님은 우리 가문 조상님과의 친분을 생각해 우리 목숨을 살려주셨네.”

“수신전요? 방금 수신전이라고 하셨습니까?”

양준은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왜 그러나?”

황갈색 노인이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양준이 왜 갑자기 흥분하는지 알 수 없었다.

“노인과 면사포를 쓴 소녀가 혹시 수신전에 다녀왔던 건 아닌가요?”

“아마 그런 것 같네만. 당시 수신전 장로가 그들을 데리고 수람성에 왔었네. 게다가 이 성곽은 원래 수신전의 세력 범위에 속한다네. 우리 정씨 가문도 수신전 휘하의 세력일세.”

양준은 머리를 탁 치고는 멍하니 제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수시로 변하는 그의 낯빛을 지켜보며 두 노인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양준이 갑자기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 된 거였군!”

이 순간, 양준은 가슴이 탁 트이는 것만 같았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을 때, 뜻밖의 길이 생기고 또다시 희망이 보였던 것이다.

“자네……!”

황갈색 옷을 입은 노인은 두려움에 떨면서 양준을 불렀다. 혹시라도 양준이 불쾌해져 정씨 가문을 멸문시킬까 두려웠던 것이다.

“두 분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몽 주인이 멸문하지 않은 것을 보면 댁의 조상님과도 친분이 깊은 모양인데 제가 주제넘은 짓을 할 수는 없죠. 다만… 제가 가문의 부하들을 많이 죽였고, 그중에는 도련님인 듯한 사람도 있었는데 이 일은 어떻게 하죠?”

“불효자는 죽어도 아쉬울 게 없다네! 만약 그놈이 안하무인으로 날뛰지 않았으면 우리 두 사람이 어찌 지금 이 몰골이 됐겠는가?”

황갈색 옷을 입은 노인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온통 포악한 기운뿐이었다. 화가 어지간히 난 모양이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근을 없애려던 생각을 접고 담담하게 물었다.

“좋습니다. 수신전이 어느 쪽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저쪽일세. 끝없이 펼쳐진 해역의 모든 섬이 수신전의 것이네.”

황갈색 옷을 입은 노인이 양준에게 방향을 알려주었다. 노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양준은 번개같이 뛰쳐나가더니 사라졌다.

두 노인은 제자리에서 한참이나 기다리다가 양준이 멀리 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서로 눈빛 교환을 하고 느릿느릿 기어 일어났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새파랗게 젊은 청년에게 손쉽게 당하다니, 너무나 낯부끄러운 일이었다. 다행히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도 아마 사람을 죽여 입을 막아야 했을 것이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어이구.’

*

양준은 수람성을 벗어나자 진원의 소모를 전혀 개의치 않고 앞으로 질주했다. 수신전은 수령이 있는 곳이었다.

양준이 수령과 함께 폐토의 허공 통로를 거쳐 통현대륙에 온 지도 어언 3년이 다 되었다. 당시 독오성에서 헤어질 때 수령이 수신전에 초대했지만, 양준은 거절했다. 그는 그때 거절한 것이 괜히 후회되었다.

양준은 몽무애와 하응상이 수신전에 찾아간 것은 수령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혹여 몽 주인은 정보를 남겨 수령더러 그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을 수도 있었다. 중도에 있을 때부터 몽무애는 수령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몽 주인은 양준이 통현대륙에 와서 자신을 찾지 못하면 수신전밖에 갈 데가 없다고 짐작했을 것이다.

이는 양준의 추측이지만 사실일 수도 있었다. 정씨 가문 두 노인의 말은 양준의 추측을 확인시켜 주었다. 당시 수신전의 장로가 몽무애를 데리고 수람성에 왔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몽무애는 그전에 수신전에 가서 수령을 만났을 것이고, 양준이 통현대륙에 왔다는 사실도 확인했을 터였다.

양준은 조급한 나머지, 번개처럼 해면을 가로질렀다. 그가 일으킨 경풍에 바다는 양쪽으로 갈라졌다.

하루가 지나자, 멀리 섬들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섬들은 모두 흩어져 있어 마치 바다라는 바둑판에 바둑돌들이 불규칙적으로 널려 있는 것만 같았다. 섬은 큰 것도, 작은 것도 있었는데, 작은 것은 사방 몇십 리 정도 크기였고, 큰 것은 사방 몇백 리 내지 몇천 리씩이나 되었다.

양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신전이 있는 곳이 틀림없었다.

섬과 가까운 해면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드나들며 수신전의 물자를 나르고 있었다. 거대한 규모는 수신전의 지위를 드러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