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2장. 음운도
음운도(陰雲島)는 수신전 휘하 여러 섬 가운데 한 곳으로, 어떤 변고가 있었는지 하늘에는 일 년 내내 검은 구름이 뒤덮여 있어 해를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열흘 가운데 여드레는 비가 내려 공기가 매우 촉촉했다.
하보(何普)는 신유 경지 정상밖에 안 되었지만 대인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수신전에서 그리 높지 않은 경지로 총관의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지금 그는 음운도의 대소사를 모두 관리하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날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좋지 않았다. 하보는 하늘을 욕하면서 제자들을 지휘해 배로 실어 온 물자들을 나르고 있었다. 물자는 모두 수신도(水神島)로 보내져 최우수 제자들의 수련과 일상생활에 제공되는 것들이었다.
남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하보는 몰래 정석 두 개를 슬쩍 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해 사람들을 지휘했다.
“하 총관, 하 총관……!”
옆쪽에서 갑자기 떠들어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보가 고개를 돌려 보니 오적(烏賊)이라는 제자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하보는 뚱한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방금 정석을 슬쩍 했는데 누군가 부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온몸에 식은땀이 쫙 흘렀던 것이다.
수신전은 규칙이 엄했다. 설령 음운도의 총관이라 해도 만약 도둑질한 일이 발각되면 가볍게는 문파에서 쫓겨나고, 심하면 손발이 잘릴 수도 있었다.
“저쪽에 의심스러운 검은 점이 있습니다. 누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거 아닌가요?”
오적은 볼이 홀쭉하고 눈이 작았다. 오적도 그의 본명이 아니고 남이 지어 준 별명이었는데, 어느새 널리 퍼져 지금은 그의 본명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평소에도 모두 그를 오적이라고 불렀다.
“사람이 있다고?”
하보는 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쪽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바보는 우리 음운도가 어떤 곳인 줄 모르는 모양이군. 가만 놔둬. 좀 있다가 하늘의 위엄을 맛보게 말이야.”
“저… 혹시라도 죽으면 어떡합니까?”
오적이 걱정되는지 물었다.
“죽으면 죽는 거지, 무슨 상관이야? 음운도에 위험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섣불리 날아오는 것을 봐서는 아는 사람이 아니야. 그런 사람은 천 명이 죽어도 상관없어.”
하보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음울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욕을 퍼부었다.
“뭔 개떡 같은 날씨가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해.”
오적은 하보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곧 그 사람에 대한 걱정을 거두어들이고 오히려 그 사람이 얼마나 처참하게 죽는지를 지켜보기로 했다.
양준은 날아오면서 한눈에 음운도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섬 위를 뒤덮고 있는 먹구름이 이상해 보였다. 은연중 그곳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자세히 탐지해 보았지만 특별한 점은 없었다.
양준은 빛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음운도 쪽으로 다가갔다. 그쪽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발견했는지 해변에서 손가락질하며 뭐라고 떠드는 듯했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바닷바람이 강하고 파도가 출렁이는 바람에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잠시 뒤, 양준은 음운도 하늘에 이르렀다. 해변에 있던 무인들이 순간 말문을 닫고 하나같이 동정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사람들이 무얼 하려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에게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아래쪽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정수리 쪽에서 꽈르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에서 강한 전류가 내려와 그의 정수리를 적중했던 것이다. 전류가 어찌나 강한지 순간 그는 몸이 절로 굽혀지며 하마터면 바닷물에 떨어질 뻔했다. 온몸에 전류가 통한 것처럼 솜털이 빳빳이 섰고 머리카락이 위로 솟구쳤다. 양준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동시에 비할 데 없는 시원함을 느꼈다. 풍뢰우익이 우레의 힘을 흡수해 등 뒤의 오른쪽 견갑골에 저장한 듯했다.
아래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순간 다시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넋이 나간 것처럼 양준을 바라보았다. 팔뚝 굵기의 우레에 맞았는데도 머리카락이 곤두선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없다니, 사람들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음운도의 특별함은 일 년 사시장철 검은 구름에 뒤덮여 있는 것 외에, 구름 속에 방대한 양의 번개의 힘이 내재돼 있는 것이었다. 평소 먹구름은 밖으로 번개를 방출하지 않았지만 살아 움직이는 물체가 접근하는 순간, 번개의 힘이 뿜어져 나왔다. 때문에 수신전의 가장 외곽에 위치한 음운도는 물자 거래 지점일 뿐만 아니라 천연적인 방어 장벽이기도 했다. 내막을 모르는 이가 섣불리 날아왔다가는 번개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늘의 위엄은 수신전의 장로들마저도 견디기 힘들어했다. 반년 단위로 수신전의 장로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먹구름 속에 누적된 번개의 힘을 방출시켰다. 그러지 않고 번개의 힘이 너무 많이 누적될 경우, 아무 때나 폭발해 섬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보는 지난번 장로들이 번개의 힘을 방출한 때가 몇 달 전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동안 누적된 번개의 힘이라면 초범 경지 무인도 무시하지 못할 위력일 것이다.
‘그런데 왜 저 녀석은 멀쩡하지?’
하보가 얼빠진 듯 서 있는 동안, 먹구름은 끊임없이 번개를 방출했다. 번개는 마치 굴을 벗어난 뱀처럼 마구 날뛰면서 모든 방향에서 양준을 공격했다.
우르릉- 콰앙-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대낮처럼 환한 빛이 번쩍이는 바람에 사람들은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하보는 실눈을 뜨고 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이러한 광경이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이윽고 먹구름이 방출하는 번개가 뜸해지고 위력도 처음보다 많이 누그러진 듯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다시 하늘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때, 또다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음운도에 무작정 뛰어든 청년은 여전히 하늘에 평온하게 서 있었다. 청년은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엇을 느끼는 듯한 황홀한 표정이었다.
“번개를 맞아 아예 바보가 된 거 아닐까요?”
오적이 하보에게 다가가서 나지막하게 물었다.
하보는 눈앞의 광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망연하기만 했다. 그가 번개를 맞아 바보가 된 게 아니라면, 이 정도 위력의 우레와 번개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강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장로들은 저 정도 하늘의 위엄은 초범 경지 3단계 무인도 온전히 몸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저 녀석은 기껏해야 스물서넛 정도밖에 안 되는 거 같은데. 정말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보가 또다시 넋을 놓고 있는데 하늘에 있던 청년이 천천히 고개를 젓더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음운도를 향해 내려왔다.
모두들 낯빛이 크게 바뀌어 진원을 돌리며 몰래 경계했다. 그들이 경계하는 것을 눈치챈 양준은 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사람 좋게 웃고는 섬에 착지했다.
“정체가 무엇이냐?”
하보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으며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낯선 얼굴로 처음 보는 이가 분명했다. 무릇 수신전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우선 음운도에 찾아오기에, 아는 사람이면 기억에 없을 리가 없었다.
“말씀 좀 물읍시다. 여기가 수신전 맞습니까?”
양준은 대답 대신 질문하며 눈으로 섬을 한 바퀴 훑었다. 섬에는 초범 경지 고수가 한 명도 없고 대다수가 신유 경지였다.
“맞네. 이곳은 수신전 음운도네. 자네는 누군가? 수신전에는 무슨 일로 찾아온 겐가?”
하보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양준이 방금 전에 보여준 상식을 벗어난 실력에 하보는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직책이 있는 만큼 상대의 신분과 찾아온 목적을 제대로 알아내야 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악의가 없습니다. 사람 찾으러 왔을 뿐입니다.”
양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람을 찾는다고? 누구를 찾는 겐가?”
“음, 수령이라는 낭자를 찾습니다. 제가 잘못 기억한 게 아니라면 수신전 전주(殿主)의 따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 막내 공주님을 찾는다고?”
하보의 눈동자가 살짝 튀어나오더니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다른 이들도 모두 애매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맞습니다. 괜찮다면 수령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수령이 있는 곳에 저를 데려다 주시면 더 좋고요.”
“자네가 어느 세력에 속하는지 모르겠지만 재주가 있는 것 같아 난감하게 하지는 않겠네. 그냥 돌아가게나. 막내 공주님은 자네 같은 사람이 가까이할 수 있는 분이 아닐세.”
하보가 미소를 띤 채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손을 휘휘 저으며 귀찮다는 티를 냈다.
양준은 미간을 구기고 잠깐 생각하다가 물었다.
“뭔가 오해하신 거 아닙니까?”
하보가 입을 삐죽이더니 말했다.
“이곳에 찾아온 사람들은 다 자네처럼 말하지. 지금 우리 막내 공주님을 어찌해 볼까 해서 찾아온 게 아닌가. 나도 다 그 나이를 지나온 사람이라, 자네 심정을 이해한다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걸세.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당장 떠나지 않으면 사정을 봐주지 않을 거네.”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실소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그를 정말로 오해한 것이었다. 수령이 나름 예쁘고 톡톡 튀는 성격이 사랑스럽다고 하지만, 양준은 시종일관 그녀에게 다른 마음을 품은 적이 없었다. 중도에 있을 때, 두 사람은 적에서 친구로 바뀌며 친분을 가지게 되었고, 다시 그녀를 데리고 통현대륙에 오면서 친분이 두터워졌다. 양준은 수령도 자신을 남자로서 좋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검은 책 공간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건넸다.
“이것 좀 보십시오.”
하보는 양준을 힐끔 보고는 물건을 되는 대로 받아 들고 자세히 살펴보더니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막내 공주님의 영패? 어디서 난 건가?”
“당연히 수령이 저한테 준 거죠.”
“자네에게 주었다고?”
하보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 머리를 탁 쳤다. 무슨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맞다. 자네가 바로 막내 공주님께서 그때 말씀했던 사람이군! 어이쿠, 이거 실례했구먼. 미안하네. 미안해. 진작 영패를 꺼냈으면 이리 자네를 난감하게 하지도 않았을 텐데.”
“괜찮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젓고는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수령이 뭐라고 했었습니까?”
“3년 전, 막내 공주님께서 돌아오셨을 때, 나한테 말씀했었네. 만약 젊은 공자가 자신의 영패를 가지고 이곳에 찾아오면 예를 다해 접대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