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13화 (712/853)

제 713장. 죽은 거 아니었어?

3년 전이면 양준이 수령과 독오성에서 헤어진 시점이었다.

수령이 신신당부했던 그 공자가 눈앞의 청년임을 확인하자, 하보는 좀 전의 무심한 태도를 버리고 곧 열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는 약삭빠른 사람으로 말주변이 뛰어나 양준을 젊고 잘생겼다느니, 실력이 진짜 강하다느니 하며 연신 추어올렸다.

양준은 그가 말하는 대로 내버려 두다가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을 잘랐다.

“제가 수령을 만나야 해서요. 지금 그녀가 있는 곳에 데려다 주실 수 있을까요?”

하보는 금세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라면 막내 공주님의 분부가 있었기에 영패만 보이면 곧바로 찾아갔을 것이네. 다만 지금은… 막내 공주님께서 자신의 섬에 계시지 않은 듯하구먼. 아니면 내가 사람을 보내 막내 공주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알아본 다음, 다시 데려다 주는 건 어떤가?”

“좋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수신전에 도착한 이상, 수령만 만나면 몽무애가 무슨 말을 남겼는지, 소안과 지마의 상황은 어떠한지 다 알 수 있었다.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괜찮네. 자네는 여기 앉아 있게. 잠깐 나갔다 오겠네.”

하보가 공손하게 말하고 물러가더니 다시 사람들에게 명해 술과 과일을 내오며 살갑게 접대했다. 그러고 나서야 그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급히 음운도를 떠났다.

음운도는 수신전의 가장 외곽에 위치한 천연 장벽일 뿐만 아니라 물자 환승 지점이기도 했기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북적거렸다.

반나절을 기다려서야 하보가 급히 되돌아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막내 공주님을 찾았네. 공주님께서도 자네를 빨리 만나고 싶어 하더군. 어서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네. 지금 가는 건 어떤가?”

“좋습니다!”

양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보를 뒤따라 나섰다.

평소 수신전 사람들은 음운도를 드나들 때 반드시 배를 타고 다녔다. 상공을 나는 순간, 하늘에 떠있는 먹구름 속에 누적된 우레와 번개의 힘이 내리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양준이 우레와 번개의 힘을 모두 흡수했기에 하보는 한시름을 놓고 양준과 함께 날아갈 수 있었다. 가는 길에 하보는 양준에게 수신전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사방 천 리 내 있는 크고 작은 섬 몇천 개가 모두 수신전의 것이었다. 섬에는 영기가 짙고 영초와 약재가 많아 수련 환경도 좋았다. 다만 섬이 넓게 분포되어 있기에 사람을 찾으려면 불편했다. 수령은 수신전의 막내 공주로 자신의 섬이 따로 있었다. 그곳은 수신전의 여러 섬 가운데서 가장 좋은 곳이지만, 오늘 따라 그녀는 자신의 섬이 아닌 운풍도(雲風島)라는 곳에 가 있다고 했다.

수신전의 본거지는 바다에 있어 세속의 소란스러움도, 도시의 시끄러움도 찾아볼 수 없어 매우 고요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수신전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골칫거리가 있었다. 바로 바다 요수였다. 바다 요수들은 수시로 섬에 찾아와 제멋대로 날뛰었다. 바다 요수는 육지 요수들과 달리 몸집이 거대하고 물의 오묘함을 꿰뚫고 있어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실력이 낮은 요수라면 그나마 대처하기 쉬웠지만, 실력이 강한 요수는 설령 수신전의 무인이라고 해도 큰 힘을 들여야 쫓아내거나 죽일 수 있었다.

*

같은 시각, 운풍도.

수령은 무인들을 지휘해 집 몇 채만한 크기의 요수 한 마리와 싸우고 있었다. 운풍도 근처는 암초가 산산조각 나고 파도가 세차 무척 위험해 보였다. 바다 요수는 기다란 다리 여덟 개를 휘적거리며 날렵하게 오갔다. 커다란 아가리로는 대단한 기세의 물 화살을 내뿜었는데 살상력이 만만치 않았다.

수령의 휘하에는 고수가 많았지만 바다 요수의 생명력이 워낙 질기다 보니 일격에 죽이지 못하는 경우, 쫓아낼 수조차 없었다.

방금 전 하보의 보고를 들은 수령은 양준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 머릿속이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따라서 지휘하는 데 차질이 빚어졌고 휘하 무인들의 움직임이 혼란에 빠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인명 사고가 날 뻔했다.

“류탁(劉卓), 여기 와서 지휘해!”

수령은 마음이 어수선하다 보니 요수에 미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기쁨과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제자리에 서서 까치발을 한 채 먼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류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지휘권을 인계받았다. 그가 일사불란하게 각종 지령을 내리자 혼란에 빠졌던 상황이 곧 진정되었다. 류탁은 몰래 고개를 돌려 수령을 훑어보았다. 그녀가 무척이나 기뻐하는 것 같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하보가 말한 그분은 누구십니까? 공주님께서는 왜 이리 신경 쓰는 것입니까?”

“친구!”

수령의 머릿속에 양준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중도에서 양준이 자신에게 했던 무례한 행동들을 떠올리자, 그녀는 돌연 이를 갈며 말했다.

“나쁜 친구야!”

류탁은 깜짝 놀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친구인데 나쁘다고? 도대체 뭐라는 거야?’

류탁은 수령의 시위로서 사적인 일을 꼬치꼬치 캐물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양준에 대해서 호기심이 일었다. 그는 몇 년간 수령의 곁에서 일했지만, 오늘처럼 다양한 표정을 짓는 수령을 처음 봤던 것이다.

대략 반 시진이 지나, 하늘에 검은 점 두 개가 나타났다. 수령은 번뜩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바라보았다. 하보가 한 사람을 데리고 그녀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좀 더 가까워지자, 수령은 드디어 그 사람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순간 그녀는 가슴이 따끔거리며 눈물이 차올랐다. 양준은 몇 년 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좀 더 성숙해지고 몸도 더 단단해진 듯했다.

양준은 하늘에서 수령을 발견하자 속도를 끌어올려 하보를 멀리 떨어뜨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수령의 앞에 착지했다.

“오랜만이야!”

양준은 싱글벙글 웃으며 친근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수령은 그의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이었다.

“나쁜 자식!”

수령은 이를 가볍게 악물고 마치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더니 양준을 마구 두들겼다.

양준의 뒤를 따르던 하보와 사람들을 지휘하고 있던 류탁은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입을 딱 벌렸다. 그들은 막내 공주가 이처럼 젊은 남자와 장난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어리둥절해졌다.

“왜 이래?”

양준은 피하지 않고 그녀의 주먹세례를 그대로 받아주며 놀라서 물었다.

“너 죽은 거 아니었어? 어떻게 또 살아난 거야?”

“내가 죽었다고? 누가 그래?”

양준이 화를 내며 물었다.

“독오맹의 그 미인이 말해 줬어.”

수령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지난번 독오맹에 운훤을 찾아갔는데 네가 누군가에게 잡혀간 다음 아무 소식도 없다고 했어. 아마 죽었을 거라고 하던데!”

이곳에는 보는 눈이 많은지라 수령은 관을 멘 사람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괜히 양준을 번거롭게 만들까 봐 두려웠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인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도망쳐 나왔어?”

수령이 놀라서 물었다.

“운이 좋았어. 그 사람이 나를 놔주던데.”

양준은 되는 대로 둘러댔다.

“역시 나쁜 놈은 오래 산다니까.”

수령이 입을 삐죽거렸다.

“그때 운훤이 나한테 사실을 말해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달파하던데, 둘 사이에 뭔가 있지? 아니면 네가 죽었는데 운훤이 그렇게 슬퍼할 리 있겠어? 내가 떠날 때만 해도 너희 둘 사이가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서 빨리 말해 봐. 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너 혹시 운훤을… 어떻게 한 거 아니야?”

죽었다던 양준이 살아서 찾아오자 수령은 기쁜 나머지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냈고, 생뚱맞은 문제들을 연이어 물었다.

“그런 걸 물어서 뭐 하려고?”

“그럴 줄 알았어.”

“호색한, 가는 곳마다 여자들이나 홀리고 다니지. 그때 운훤이 너와 가까이하는 걸 말렸어야 했는데, 괜히 운훤을 해쳤잖아.”

“사고, 그냥 사고였어.”

양준은 왠지 난감했다. 그때는 매요의 신식에 중독되어 어쩔 수 없이 생긴 일이었다.

“누가 네 말을 믿어.”

수령이 콧방귀를 뀌었다. 잠시 뒤 그녀는 얼굴빛을 가다듬고 진지하게 말했다.

“어쨌든 네가 살아 있으니, 많은 이들이 기뻐할 거야.”

“너도 기뻐?”

양준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음험한 표정을 지었다.

“난 네가 하루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수령은 입을 삐죽 내밀더니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하보와 류탁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보아하니, 막내 공주님과 사이가 돈독한 모양이야! 저 녀석은 도대체 정체가 뭔데, 평소 예의 바르던 막내 공주님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지?’

“너희들, 뭔가 바쁜 모양이야.”

양준이 주위를 둘러보고 말했다. 해변에서는 무인들이 거대한 몸집의 요수와 싸우고 있었다. 무인들은 실력이 낮은 편이 아니었는데 초범 경지 한 명이 지휘하는 외에, 나머지는 모두 신유 경지였다. 7급 요수는 바다에서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기다란 발 여덟 개의 기세가 드높고 살상력이 강해, 한 번 철썩이면 바닷물이 하늘까지 치솟을 정도였다.

무인들은 요수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를 가득 냈지만 어떡해도 죽일 수가 없었다. 상처에서는 옅은 남색 피가 흐르다가 피와 살이 꿈틀거리면 금방 완치되었다.

양준은 잠깐 보고서도 그들의 수준으로 요수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수의 생명력은 너무나 질겼다.

“저 놈이 운풍도의 영초를 눈독 들이고 얼마나 많이 훔쳐 먹었는지 몰라.”

수령이 화가 나서 요수를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

“공주님, 아마도 사람을 더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류탁은 형세가 안 좋은 것을 보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수령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왜 싸우지 않나요?”

양준은 놀라서 류탁을 바라보았다. 류탁은 초범 경지 1단계로 만약 그까지 가세한다면 힘이 들겠지만 요수를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류탁은 이곳에 자리를 지키고서 지휘할 뿐, 싸움을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류탁이 양준을 바라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나까지 싸우면, 공주님의 안전은 누가 책임지는가?”

양준은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령은 아직 신유 경지 정상밖에 안 되었다. 그때 당시 양준과 헤어질 때도 지금과 같은 경지였는데 3년이 지난 지금, 아직 장벽을 무너뜨리지 못한 듯했다. 이로써 신유 경지에서 초범 경지를 돌파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