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4장. 몽무애가 남긴 말
수령의 존귀한 신분 때문에, 류탁이 그녀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양준은 이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어쨌든 남의 세력 범위이므로 괜히 입을 잘못 놀렸다가 미움만 살 수 있었다.
수령은 양준에게 혀를 홀랑 내밀어 보이더니 류탁에게 말했다.
“가서 싸워. 저놈을 빨리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하지만 공주님…….”
류탁은 내키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직책은 수령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다른 것은 모두 부차적이었다.
“빨리 가지 않고 무슨 말이 그리 많아. 난 양준하고 이야기도 나눠야 한단 말이야.”
수령은 류탁을 노려보다가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 멀리 피해 있을게. 게다가 양준이 여기 있어서 설령 요수가 달려들어도 나를 어쩌지 못할 거야. 그지?”
마지막 한마디는 양준에게 묻는 것이었다.
양준은 웃으며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7급 요수는 몸집이 거대하고 실력도 낮지 않았지만, 그는 죽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남의 문파에서 나대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쓸데없이 남의 원한을 사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빨리 가. 계속 여기 서서 뭐 하려는 거야?”
류탁이 계속 움직이지 않자, 수령이 재촉했다.
류탁은 그제야 차갑게 양준을 보더니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공주님께 변고가 생기지 않게 잘 보살피고 있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류탁은 신법을 펼쳐 해면으로 날아갔다. 그가 가세하자 전투 상황이 곧 달라졌다. 초범 경지 두 명이 협공하고 신유 경지 무인들까지 협력하자 곧 싸움에서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무인들의 강한 공격에 바다 요수는 슬프게 울부짖었고 다리 여덟 개가 모두 상처를 입었다.
양준은 제자리에서 한참 동안 구경하다가 그쪽에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에 대한 부하들의 충성심이 대단하네!”
“다 내 사람인데 당연히 충성하지. 넌 내가 중도에서처럼 아직도 힘없는 줄 알아? 경고하는데 지금 또 날 괴롭히면 부하들에게 널 묵사발을 만들어 버리라고 지시할 거야.”
수령은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언제 널 괴롭혔다고 그래?”
“그건 네가 더 잘 알겠지! 몇 년 못 본 사이 많이 성장한 거 같은데, 지금은 무슨 경지야?”
“그건 왜 물어?”
양준은 딱히 수령에게 숨기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녀가 충격을 받을까 걱정되었다. 처음으로 수령과 만났을 때, 그녀는 신유 경지 8단계였고, 양준은 진원 경지 정상밖에 안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양준의 경지는 수령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그의 수련 속도가 너무나 빨랐던 것이다.
양준이 말하지 않아도, 수령은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환히 웃으며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어. 그런데 그런 수련 속도가 너에게 맞는 거 같아. 그리고 내 안목이 괜찮다는 것도 말해주지. 너 같은 사람은 어딜 가든 다 잘 풀릴 거야. 하지만 난 달라. 수신전을 떠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여자앤데 그런 높은 경지가 왜 필요해?”
“그 말은 그만하자. 어때? 우리 수신전의 부유함도 보았겠다, 혹시 들어올 생각 없어? 네가 수신전에 들어오면 가장 좋은 수련 환경을 제공해 줄게. 맞다. 나한테 섬도 많거든. 네 마음에 드는 섬을 골라 봐. 그럼 너한테 줄게.”
3년 전에도 수령은 양준을 수신전에 포섭하려 했다. 지금 다시 만나서도 그녀는 여전히 같은 생각이었다. 그녀는 여태껏 양준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을 주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살짝 미운 점도 있었지만 그의 재주와 자질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내가 이곳에 들어오면 오히려 망치는 거 아니야? 이곳은 물 기운이 이처럼 짙은데 나더러 어떻게 수련하라는 거야?”
양준이 웃으며 수령의 호의를 거절했다.
“수신전에도 네가 수련할 만한 곳이 있어. 저쪽에 있는 화산도는 날씨가 더워.”
“거절할게. 나 이미 자리를 정했어.”
“어떤 곳인데? 네 마음에 들어?”
수령이 흥미를 가지고 물었다. 양준은 곧 천소종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그곳의 창시자가 곧 능소각의 창시자라는 말에, 수령은 마음이 풀렸다. 능소각은 양준의 문파이므로 오늘날 그가 천소종을 선택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천소종은 통현대륙에서도 큰 세력에 속해, 수령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요수와의 전투도 끝이 났다.
류탁이 가세한 다음, 바다 요수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큰 상처를 입고 도망쳤다. 비록 요수를 죽이지 못해 아쉬웠지만, 수신전 쪽에 손실이 없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수령은 그들에게 뒤처리하라고 지시한 다음, 양준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
수령도(水靈島)는 비교적 큰 섬으로 영기가 짙었다. 이곳은 수령 휘하의 섬 가운데 하나로, 섬의 이름은 수령의 이름으로 명명한 것이었다. 평소 그녀는 이 섬에서 거주하며 수련했다.
섬의 주민은 대다수가 수신전 제자였는데, 그 외에는 제자들의 가족들이 있었다. 섬에는 집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섬의 가장 높은 곳에는 궁전 모양의 건물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수령의 행궁이었다.
행궁에 이르자, 곧 젊고 예쁜 시녀들이 살갑게 맞이하더니 술과 음식을 올렸다. 모두 산해진미였고 다들 양준을 열정적으로 접대했다. 그러나 양준은 마음이 울적해 음식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수령도 이런 점을 눈치채고는 시중들던 하인들을 물러가게 한 다음 입을 열었다.
“네가 왜 날 찾아왔는지 알고 있고, 또한 네가 원하는 소식도 알고 있어.”
양준은 숨이 가빠지며 형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몽 주인이 너한테 말을 남긴 거 맞지.”
“그래. 2년 전, 몽 주인이 연단술에 능통한 네 사저를 데리고 수신전에 찾아와 너한테 전해줄 말들을 남기고 급히 떠났어. 그래서 독오맹 쪽에 너를 찾으러 갔었는데 운훤한테서 네가 죽었을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지.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몽 주인이 무슨 말을 전하라고 했어?”
“지마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그들과 헤어졌대. 말로는 마강 쪽에 가서 세력을 발전시키고 주인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겠다고 했다던대.”
“지마도 참…….”
양준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다만 지마의 큰 뜻은 이룰 가능성도 있었다. 지마는 일반인과 다르게 마두의 육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그의 가장 강한 저력이기도 했다. 만약 잘 이용만 한다면 마족 내에서 일이 순조롭게 풀릴 수도 있었다.
“그럼 소안은? 소안은 어디 있어?”
수령은 그를 힐끗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구체적인 위치는 안 알려줄 거야. 하지만 무사하게 잘 지낸다는 것만은 확실해. 몽 주인과 네 사저는 따로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어. 그래서 몽 주인의 오랜 친구가 몸담고 있는 세력에 부탁해 잠시 동안 그곳에서 수련하게 했대. 그 세력이 있는 장소는 소안이 수련하기에 매우 적합해. 소안은 아무 위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아마 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왜 구체적인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데?”
“말하면 너 찾으러 갈 거잖아. 그 세력은 아무나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야.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무척 매정해. 세력도 우리 수신전보다 더 크고, 고수도 엄청 많아. 네 성격으로 만약 찾아갔다가 소안을 만나지 못하면 소란을 피울 거잖아. 그렇게 되면 너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뭐 그렇게까지? 사저를 만나러 갔는데 그들이 왜 날 난감하게 해?”
“그곳 사람들은 매정해서 상식으로 따질 수 있는 게 아니야.”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가볍게 중얼거렸다.
“몽 주인이 소안을 그 세력에 맡긴 다음, 수신전에 찾아와 너한테 말을 남겼어. 그러면 그 세력은 이 근처에 있겠군. 소안은 빙심결을 수련했으니, 그녀에게 적합한 환경이라면 매우 차가운 지대일 거고… 수신전 근처, 차가운 지대에 위치한 문파면서 수신전보다 세력이 더 크다…….”
“됐다. 됐어.”
수령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양준은 한두 마디로 소안이 있는 위치를 추측해 냈다. 그녀는 더는 숨길 수 없다는 걸 알고 매섭게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 너 총명해!”
“그러니까 그냥 말해 줘.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두서를 잡지 못하면 또 남한테 물어봐야 할 거 아니야.”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는 아직 통현대륙의 세력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진작 그곳이 어딘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빙종(氷宗)이라고 들어봤어?”
수령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수신전에서 몇천 리 떨어진 서쪽 방향에 있어. 그곳은 빙하 세계인데 빙종은 그곳에 위치하고 있어. 그들은 외부인들과 거의 접촉하지 않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 그래서 그들이 매정하다는 거야.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우리 수신전이야. 그래서 나도 그들에 대해 조금 알고 있지. 이따금씩 우리 문파에서 그들과 거래도 해. 하지만 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얼음장처럼 차가워. 네 그 얼음 인형 같은 사저가 그곳에 간 건정말 딱 맞는 곳으로 찾아간 거야.”
“몽 주인은 왜 사저를 그런 곳에 보냈을까?”
“몽 주인이 빙종 종주와 친분이 있어서 소안을 부탁한 거 같아. 빙종에 찾아갈 거야?”
수령이 말을 마치고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곳에서 소안 일행을 찾아 몇 년을 헤맸다. 이제 드디어 확실한 소식을 알게 되었으니, 당연히 찾아가서 소안이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만약 빙종이 그녀에게 적합하다면 그녀가 그곳에서 수련하게 남겨 두어도 괜찮았다. 그러나 만약 그녀가 자신을 따르겠다고 한다면 양준은 그녀를 천소종에 데려갈 생각이었다. 초능소는 능소각의 창시자이기에, 소안에게도 조사였다.
“언제 갈 건데?”
“지금 갈 거야.”
“너 빙종이 어디 있는지 알아? 며칠만 더 기다려. 괜히 그쪽에 가서 헤매면서 시간 낭비하지 않게 길을 아는 사람을 딸려 보내 줄게.”
“고마워.”
양준은 수령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길을 안내해 준다면 스스로 찾아 헤매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