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15화 (714/853)

제 715장. 그런 사람이 없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에서 거대한 철선이 바람을 가르며 서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철선에는 수련 자원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선원은 모두 수신전의 제자였다.

양준은 뱃머리에 서서 멀리 서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소안과 쌍수공법을 수련하고 나서부터 지금처럼 오랫동안 떨어져 있은 적이 없었다. 때문에 그의 마음속 그리움은 마치 해묵은 술처럼 점점 더 깊어만 갔다.

양준은 수령도에 보름 동안 머무르다가, 마침 수신전과 빙종 사이의 무역 거래가 있어 함께 배에 올랐다.

보름 동안 수령은 양준을 살뜰히 보살피고 여러 편리를 봐주며 수신전에 들어오라고 끊임없이 설득했다. 그러나 양준은 끝까지 승낙하지 않았다. 떠날 당시에도 수령은 골이 나서 양준과 작별 인사를 하러 나오지도 않았다.

보름 동안에 양준은 수령을 통해 성급 단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약재도 한 가지 더 찾게 되었다. 수람성에는 없는 약재였지만, 수신전에서 그 약재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철선의 항행 속도는 양준의 비행 속도보다 늦었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았다. 게다가 철선은 비밀 공법으로 만들어졌는지 비보의 흔적이 있었고, 설령 바다에서 요수의 공격을 받아도 쉽게 망가지지 않았다. 또한 배에는 초범 경지 무인 몇 명이 자리를 지키면서 뜻밖의 변고를 대비하고 있었다.

음운도의 하보도 이번에 함께 길을 떠났다. 빙종과의 무역은 전적으로 그가 맡고 있었다. 빙종은 강하고 고수도 적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차가웠다. 역으로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거래에서 신용을 잘 지키기도 했다. 수신전은 빙종과 거래한 지 꽤 오래되었으며 서로 간에 믿음을 쌓아온 사이였다. 때가 되어 물자를 가지고 가면 빙종에서 얼음 속성 영초와 영약을 대량으로 바꿀 수 있었다. 게다가 빙종 쪽에는 얼음 속성의 광물들이 많았는데 그것도 수신전에 꼭 필요한 좋은 물건들이었다.

“양 공자!”

하보가 아부성 짙은 미소를 띤 채 양준의 곁에 나타났다.

“보름이 지나야 빙하가 있는 곳에 도착하네. 빙종은 빙하 세계에 있어서, 배에서 내린 다음에도 한참 날아가야 한다네.”

“빙종은 어떤 문파입니까?”

“나도 잘 모르네.”

하보가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모른다고요? 그들과 무역 거래를 자주 한 거 아닙니까?”

“무역 거래가 있다고는 하나, 한 번도 빙종에 들어가 본 적이 없네. 매번 거래는 빙하에서 진행된다네. 빙종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듯했네. 빙종의 사람들은 매정할 뿐만 아니라 매번 마치 우리가 돈이라도 떼먹은 것처럼 뚱한 표정을 하거든. 게다가 그들은 외부인을 꺼린다네. 빙종은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외부인들이 들어가면 그곳을 더럽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만약 누군가 그곳에 접근하면 사정을 봐주지 않을 걸세.”

“그러니까 빙종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모른단 말씀이시죠?”

양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보는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공주님께서는 이야기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으면 양 공자를 데리고 수령도로 돌아오라고 했다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했네.”

양준은 실소하고 말았다.

“계집애,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니.”

하보는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공주님을 감히 계집애라고 부르다니. 공주님과 보통 사이가 아닌가 보군!’

“밖에는 바람이 세고 파도가 거치니 이만 들어가세. 술과 음식을 준비해 두었으니 함께 즐기게나.”

하보가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보를 따라 선실로 들어갔다.

하보를 포함한 수신전 사람들은 양준과 수령의 구체적인 관계를 모르지만 둘 사이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만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당연히 양준과 친분을 쌓으려 했다. 양준도 기왕 배에 오른 김에 마음을 편히 가지기로 했다. 그는 곧 선원들과 어우러져 화기애애하고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술도 마시며 즐겼다.

하루하루가 지나며 공기가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 철선이 차가운 곳에 이른 듯했다. 해면의 파도도 많이 약해졌고 배 주위는 모두 엷은 얼음층이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런 상황은 점점 심해졌다. 빙하 세계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안 양준은 기대감과 흥분으로 가슴이 벅찼다.

보름이 지나 드디어 철선이 멈춰 섰다. 앞쪽 바다는 이미 모두 얼어 있었다. 함박눈이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었으며 해면의 얼음층은 몇 척이나 되었다. 철선은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하보는 능수능란하게 선원들을 지휘해 철선 위의 물자들을 건곤대에 넣고 빙하에 상륙할 준비를 했다. 다들 바쁘게 움직이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몇 사람을 남겨 철선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철선에서 내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서쪽으로 나아갔다.

이곳은 온도가 매우 낮았다. 설령 하보 같은 무인이라도 방한용 옷을 가득 껴입어야 할 정도였다. 양준은 얇은 옷을 입었지만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얼굴이 빨갛고 윤이 났다. 이를 본 하보 일행은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어떤 경지에 이르렀기에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아무렇지도 않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흰색뿐이었다. 빙하 세계는 이물질이 하나도 없어 티 없이 맑았다. 일행은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앞장선 초범 경지 무인이 별안간 손짓을 했다. 다들 멈춰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흰 눈이 흩날리는 가운데, 앞쪽에 그림자 몇 개가 보이는 듯했다. 그들은 모두 흰옷을 입고 있어 흰 배경 아래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양준은 그 몇 사람이 발산하는 생명의 기운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지켜보고 나서야 앞장선 사람이 확인을 마치고 기쁜 표정으로 앞쪽으로 날아갔다. 잠시 뒤, 모두들 그 사람들이 있는 위치에 다다랐다. 그들은 빙종의 제자들이었다. 양준은 슬쩍 훑어보고 가슴이 살짝 서늘해졌다.

그들은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에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어 인정머리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경지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사람마다 진원이 순수했고, 온몸으로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환경이 열악할수록 그 속에서 단련된 무인들이 더욱 강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빙하 세계는 세상과 담을 쌓고 있었기에 빙종의 제자들은 강할 수밖에 없었다.

몽무애가 소안을 이곳에 보낸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소안의 성정과 맞는 곳이었다.

쌍방은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해도 빙종의 통솔자는 수신전의 사람들을 대할 때,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냉담하게 물었다.

“이번에는 왜 이렇게 늦은 것인가?”

하보가 연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여정이 지체되었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앞으로 이런 일이 없길 바라네.”

빙종의 통솔자가 차갑게 말했다.

하보는 말문이 막혀 연신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러나 그는 말을 아끼고 얼른 건곤대를 모아서 빙종의 사람들에게 건네 물자를 확인하게 했다.

한바탕 바삐 움직인 다음, 빙종의 통솔자는 수신전에서 보내온 물자가 만족스럽다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품속에서 건곤대 두 개를 꺼내 하보에게 건넸다.

하보는 물건들을 확인한 다음, 웃으며 말했다.

“이번 거래도 순조롭게 진행되었군요. 좋은 거래였습니다.”

빙종의 사람들은 인사치레 한마디도 없이 뒤돌아 떠나려 했다.

“잠깐만요!”

하보가 급히 불러 세웠다.

빙종의 통솔자가 뒤돌아보더니 불쾌해하며 물었다.

“또 무슨 일인가?”

“제가 사람을 찾고자 합니다.”

양준이 앞으로 나서며 공수했다.

“사람을 찾는다고? 누구를?”

빙종의 통솔자는 언짢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소안이라는 여인입니다. 빙종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안?”

“네. 2년 전에 빙종에 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괜찮다면 만나볼 수 있을까요?”

“빙종에는 그런 사람이 없네. 잘못 찾아온 것 같구먼!”

빙종의 통솔자는 양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저어 말을 자르고는, 곧이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양준은 화가 치밀었지만 가까스로 참으며 차갑게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 뒤, 그들은 눈보라 속에 모습을 감추었다.

“양 공자, 이를…….”

하보가 동정 어린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진작부터 빙종의 사람들과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냉담해도 너무 냉담했다. 그들은 상대가 말할 기회조차 전혀 주지 않았다.

“먼저 돌아가십시오. 수령에게는 감사했다고 전해주세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찾아가서 감사 인사를 할 겁니다.”

“공주님께서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공자가 이곳에서 괴롭힘을 당하게 않게 어떡해서든 같이 돌아오라고 하셨는데.”

“수령의 호의는 마음으로만 받겠습니다. 돌아가서 수령에게 제가 기어코 남겠다고 했다고 말해 주십시오.”

양준이 웃으면서 하보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하보는 양준의 인사를 받고 깜짝 놀라 웃는 낯으로 말했다.

“과분한 말일세. 그럼 양 공자의 일이 성사되기를 바라겠네. 만약 일이 잘 안 되면 일찍이 떠나게나. 빙종의 사람들은 만만치가 않다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만납시다.”

양준은 공수한 다음, 빙종 제자들을 뒤쫓아 재빨리 자리를 떴다.

하보는 사라져 가는 양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탄식했다. 그래도 그는 어쩔 수 없이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양준은 신식을 미묘하게 방출해 빙종 제자들의 몸에 고정시킨 다음, 멀리서 그들을 뒤쫓았다. 그는 그들이 소안을 알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통솔자가 빈틈없이 행동했지만, 그의 옆에 있던 젊은 여제자는 소안의 이름을 말하자, 눈동자를 반짝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빠르게 표정을 가다듬었지만 양준은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양준은 그들이 왜 소안의 존재를 부인하는지 알 수 없었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의 가슴속은 은연중에 불안감이 감돌며 꼭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안은 몽무애가 빙종에 맡겼다. 몽무애는 빙종 종주와 꽤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기에 그녀를 맡겼을 터였다. 그리고 양준은 몽 주인을 믿었다. 그렇다면 소안은 빙종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체할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그는 경계심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반드시 소안을 찾아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직접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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