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6장. 빙종
빙하에서 흰옷을 입은 빙종의 제자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하보 일행과 거래했던 이들이었다. 통솔자인 중년의 인솔 하에 그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빙하에는 크고 작은 빙산이 많은 데다가 그들은 흰색 옷을 입고 있었고, 기운을 숨기는 수단 또한 묘했다. 자세히 탐지하지 않을 경우, 그들의 종적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중년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질주하면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왠지 계속 추적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신식을 펼쳐 살펴보면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어 괜히 마음이 불안해졌다. 반나절이나 달렸지만 그들은 빙종과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중년의 곁에 있던 젊은 여제자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예인(倪仁) 사숙, 왜 이 방향으로 가는 건가요?”
예인은 못 들은 척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젊은 여제자는 입을 삐죽거리며 다시 물었다.
“그리고 방금 전 그 사람이 소안 사매를 찾았는데 왜 빙종에 있다고 알려주지 않은 건가요? 분명 이곳에 있잖아요. 전 사매를 1년 전에도 봤거든요.”
예인은 그제야 차갑게 여제자를 힐끗 보았다. 여제자는 예인의 차가운 눈빛에 당황해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곁에 있던 젊은 청년이 그녀를 위로했다.
“사매, 그만 물어봐. 사숙께서 이리 하시는 건 다 이유가 있을 거야. 모두 우리를 위해서지. 외부인들은 하나같이 음험해. 그 녀석은 생긴 것만 봐도 좋은 놈이 아니야. 빙종에 사람을 찾으러 오다니, 무슨 심보를 품었는지 어떻게 알겠어.”
“알았어.”
젊은 여제자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으로는 납득이 안 되었지만 감히 더 묻지 못했다. 그때, 진중해 보이는 다른 제자가 잰걸음으로 예인에게 다가서더니 가볍게 물었다.
“사숙, 혹 우리가 누구한테 추적당하고 있는 건가요?”
예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모르겠다. 내 착각일 수도 있어. 그들 가운데 우리를 추적하면서도 나한테 발각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는 없었어.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좀 더 돌자꾸나.”
“알겠습니다.”
예인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 양준의 모습을 떠올리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것 같기도 했다.
‘그 녀석은 기질이 평범해 보이지 않았어. 젊은 세대 가운데서는 결코 만만치 않은 자였지. 하지만 나이가 어린데, 경지가 뭐 얼마나 높겠어.’
예인이 신경 쓰이는 것은 그가 찾는 이가 소안이라는 점이었다. 소안은 2년 전에 영문 모르게 빙종에 들어온 여인이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놀랄 만한 자질을 선보였다. 종주와 장로들은 시간이 좀 지나면 소안이 반드시 입성 경지 3단계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했었다. 게다가 그녀는 곧 사람들이 감탄할 수밖에 없는 성취를 이루었다. 문파에 올 때만 해도 신유 경지 8단계였으나 1년이 채 안 되어 놀라운 수련 속도로 초범경지에 오른 것이다. 천월(千月) 장로는 지난 1년 동안 소안이 빙설굴(氷雪窟)에서 폐관 수련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었다. 때문에, 지금쯤 그녀가 어느 경지까지 수련했을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빙종의 심오한 서적과 각종 비전 무공도, 그녀는 한 번 보기만 하면 금방 배웠고 또 능통했다. 이는 빙종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의 이러한 자질은 전설 속 특수 체질인 빙정옥체(氷晶玉體)와 거의 같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빙정옥체는 보기 드문 체질로 이러한 체질을 지닌 이는 아직 없었다.
예인은 소안을 몇 번 만나지 못했지만 천월 장로에게서 그녀가 빙종의 절학(絶學)을 수련할 수 있는 인재라는 말을 들었었다. 원래 종주는 떠밀려서 소안을 문파에 남긴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뛰어난 재능을 확인한 다음, 천월 장로는 그녀를 제자로 삼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문파의 서적과 무공을 모두 보여주는 동시에 빙설굴 같은 금지 구역에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했다. 아쉬운 것은, 소안은 빙종에 들어오기를 원치 않는 듯했다. 이 때문에 천월 장로는 그녀에게 애증이 교차되는 감정을 지니고 있었지만 딱히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양준이 소안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예인은 곧 경계심을 가졌다. 만약 다른 제자라면 예인도 이처럼 숨기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안에 관해서는 그래도 먼저 천월 장로에게 보고하고, 그녀의 뜻을 묻는 게 좋을 듯싶었다.
예인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끊임없이 빙하 세계를 누볐다.
멀리서 뒤쫓던 양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가에 냉소를 머금었다. 상대는 그가 추적하는 것을 느꼈지만 확신할 수 없어서 이처럼 길을 에둘러 그를 따돌리려는 듯했다. 하지만 양준의 강한 신식 앞에서 예인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사흘 뒤, 양준은 빙종 제자들이 빙산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생명의 기운이 한순간에 괴이쩍게 종적을 감추었다.
양준은 조용히 한참을 기다리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발이 가는 대로 빙산이 밀집된 지역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자세히 탐지했으나 여전히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빙산 내부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소안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음양합환공을 수련했기에 두 사람은 일정한 범위 안에 있으면 서로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서로의 몸속에 음양요삼의 기운까지 흐르고 있었기에 무형의 심적 연결이 한층 더 끈끈해진 상태였다.
소안은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빙산 내부에 있었다. 그녀는 기운이 평온한 것이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양준이 아무리 의념을 발동해도 그녀는 어떤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
양준의 낯빛이 음침해졌다.
소안에게 변고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여기까지 찾아온 걸 알았다면, 그녀는 진작 뛰쳐나왔을 것이다. 양준은 화가 치밀었다. 그는 순식간에 살기를 내뿜으며 덩달아 시선도 사나워졌다.
*
빙산 안쪽, 곳곳이 투명하고 반짝였다.
빙종의 본거지는 끊임없이 이어진 빙산 가운데 있었다. 아주 먼 옛날, 빙종도 통현대륙에서는 널리 알려진 큰 세력이었다. 하지만 뜻밖의 변고를 당하면서 빙종은 이곳에 은거하게 되었고, 더는 외부와 접촉하지 않고 외부인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십몇 년을 단위로 빙종의 장로들은 밖으로 나다니면서 근골이나 자질이 뛰어난 제자들을 찾아서 문파에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 제자들은 하나같이 부모 없이 떠돌아다니는 고아들이었다. 제자를 선택하는 엄격한 조건 때문에 빙종의 제자들은 모두 뛰어난 저력과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빙종은 인원수가 많지 않았다. 종주까지 포함해서 약 5백 명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고수가 많았다. 입성 경지 고수도 여러 명 되었으며 초범 경지는 2~30명이나 되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빙종의 강한 제자 양성 방식과 제자를 선택하는 뛰어난 안목을 알 수 있었다.
그 시각, 빙산 중심부의 한 빙실(氷室) 안.
예인은 천월 장로에게 이번 거래에 대해 보고하고 있었다. 천월은 아름다운 중년 부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젊어 보였지만 사실은 입성 경지 1단계 고수로 비우처럼 젊은 외모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천월은 예인의 보고를 듣고 나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다들 수고했어. 제자들과 함께 물자를 받아서 수련하러 가거라.”
“고맙습니다. 장로님!”
예인은 공손하게 대답한 뒤 곧장 물러가지 않고 입을 벙긋거렸다.
“또 다른 일이 있는 것이냐?”
천월이 예인을 훑어보더니 날카롭게 무언가 감지했다.
“이번 거래를 할 때,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말해 보거라.”
“한 젊은 남자가 소안에 대해 물었습니다. 어디에서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소안이 빙종에 있는 것을 아는 눈치였습니다.”
“소안을 찾는다고?”
천월의 얼굴이 차가워지더니 까만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어떤 모습이었느냐?”
예인은 얼른 양준의 모습을 말해 주고서 한마디 덧붙였다.
“나이가 젊은데 괴이쩍은 점이 있었습니다. 제자가 무능하여 그의 실력을 탐지할 수 없었고, 저에게 압박감을 주었습니다.”
“녀석이 너에게 압박감을 주었다고?”
천월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잠깐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
“그 노친네가 종주님께 말했던 녀석이 찾아온 건가? 어떻게 이리 빨리 찾아왔지?”
그때 몽무애는 소안을 빙종 종주에게 맡기면서 언젠가 젊은 남자가 소안을 찾아올 거라고 말했었다. 그러면서 때가 되면 종주더러 꼭 소안을 놔주라고 했다. 아니면 큰 골칫거리를 만들 수 있다고 했었다. 종주와 그녀는 그때 소안의 자질이 그리 뛰어난 줄 몰랐기에 언짢아하며 승낙했다. 그러나 지금, 소안의 총명함을 알게 된 이상, 소안을 빙종에 남겨 두고 싶었다. 소안의 재능이면 반드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고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천월이 씁쓸한 것은, 지금 소안은 문제가 생겨서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찾아온 젊은 남자는 소안과 친밀한 사이일 터였다. 만약 그가 지금 소안의 상태를 본다면 어떤 사달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천월은 저도 모르게 머리가 지끈거려 이마를 문질렀다.
“빙종까지 쫓아왔느냐?”
“아닙니다.”
예인이 고개를 저었다.
“우선 장로님께 보고드려야 할 거 같아서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잘했다.”
천월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어 마디 칭찬을 해주려던 그녀는 순간 낯빛이 바뀌더니 신식을 펼쳐 탐지하고 나서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예인, 참 무능하구나! 너를 뒤쫓아 여기까지 왔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단 말이냐?”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인은 깜짝 놀랐다.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특별히 밖에서 며칠간 빙빙 돌았거든요. 그리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다시 문파로 돌아왔습니다. 그자가 어떻게……!”
천월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왔다고 하잖느냐! 게다가 그 녀석은 우리 문파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구나! 기운이 아주 포악한데.”
“장로님, 진정하십시오. 지금 나가서 쫓겠습니다.”
예인이 얼른 대답했다. 그의 얼굴은 노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돌아올 때 충분히 경계심을 높였지만 상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앞까지 쫓아왔다. 그의 체면이 여지없이 구겨진 것이었다.
“가 보거라. 사람을 좀 많이 데리고 가거라. 녀석이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 같구나. 그리고 그냥 좀 혼내 주면 돼.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
천월이 신신당부했다. 어쨌든 몽무애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었다. 괜히 죽였다가는 몽무애나 종주에게 해명할 수가 없었다.
예인은 얼른 대답하고서 허리를 굽혀 물러갔다. 천월의 낯빛은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소안에게 변고가 생기는 바람에 이미 종주에게 한바탕 꾸지람을 들었었다. 천월은 다시 한번 꾸중을 듣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