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7장. 책임자를 찾아봐야겠네요
빙산 밖,
양준의 얼굴도 마찬가지로 일그러져 있었다. 눈을 감고 감지해 보면 소안의 평온한 기운으로 보아 생명의 위험은 없는 듯했다. 하지만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그녀는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그의 의념의 부름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곧이어 몇 갈래의 강한 생명의 기운이 기괴하게 나타나더니, 빠른 속도로 그에게 날아왔다. 양준은 눈을 번쩍 떴다. 그는 서슬 퍼런 눈빛으로 갑자기 나타난 빙종 제자들을 노려보았다.
잠시 뒤, 몇 사람이 양준의 앞으로 달려왔다.
“역시 네 녀석이었군!”
예인이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낯빛이 어둡고 살기등등한 것이 좋은 놈은 아니야.’
예인은 이런 사람에게 어떤 호감도 느낄 수 없었다.
“감히 날 추적해? 간땡이가 부었구나!”
그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불쾌해하며 말했다.
“수신전이 너 같은 소인배를 키우는 곳이었어?”
양준이 수신전의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을 본 그로서는 양준을 수신전 제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수신전은 저와 상관없습니다.”
양준은 크게 코웃음을 쳤다.
예인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양준을 흘겨보며 여유 있게 말했다.
“네가 어느 세력이든 상관없어. 이곳은 우리 빙종의 구역이니까,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 아니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소안을 만나기 전에는 어디도 가지 않을 겁니다.”
양준은 예인을 바라보며 언짢은 생각이 들었다.
‘분명 소안을 알고 있으면서 나한테 물어볼 기회도 안 줬었지. 그리고 또 지금은 곧바로 쫓아내려 하다니!’
양준은 울화통이 터졌지만 가까스로 참으며 공격하지 않았다. 몽무애는 빙종 종주와 친분이 있기에 호의로 소안을 이곳에 맡긴 것이었다. 만약 빙종에서 그에게 합리적인 이유를 말해 준다면 양준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지금 그냥 소안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이때, 예인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좋게 말할 때 그냥 가거라. 여기에 찾아와서 너처럼 말한 놈은 처음이구나. 이제 더 화를 돋우면 혼쭐을 내줄 것이다.”
“그럼 어디 한번 해보시죠.”
양준이 연신 냉소를 흘렸다.
그 말에 예인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
“원래 널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넌 화를 자초하는구나. 어린 녀석이 감히 이처럼 방자하게 나오다니, 그래 좋아. 오늘 이곳의 주인이 도대체 누구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마.”
말하는 동시에 예인의 눈이 반짝 빛나면서 흰빛이 두 눈에서 튀어나왔다. 백색 빙하 세계에서 이런 흰빛은 거의 알아보기 힘들었다. 차가운 냉기가 섞인 빛은 예리한 검처럼 순식간에 양준의 머릿속을 파고들어 식해의 방어를 찢어 버렸다. 단 일격에 양준을 무너뜨리려는 모양이었다.
“신식 공격……!”
양준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빙종의 제자들이 얼마나 대단한가 했더니 겨우 이 정도군요. 이 정도 수단밖에 없다면 실망할 거 같은데요.”
예인이 폭발시킨 신식 공격은 쉽사리 양준의 식해를 파고들었지만 뜨거운 열기에 순식간에 타버렸다. 이에 예인의 낯빛이 급변했다. 그의 곁에 서 있던 빙종 제자들도 모두 경악에 빠진 채 양준을 바라보았다.
예인은 초범 경지 1단계 고수로 전문적으로 신식의 힘을 수련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신식이 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 젊은 후배를 공격했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 상대는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유자적하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사제, 저 녀석 좀 이상하군!”
예인의 곁에 있던 다른 초범 경지 무인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예인은 무거운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천월 장로가 사람을 많이 데리고 나가서 양준을 쫓으라고 했을 때, 그는 장로가 괜히 요란을 떤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사형제 몇을 더 부른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니면 홀로 나왔다가 큰 봉변을 당했을 터였다.
이런 생각이 들자, 예인은 어두운 낯빛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꽤 재주가 있구나. 더 난감하게 하지 않을 테니, 그냥 물러가거라.”
“소안을 만나보기 전에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소안을 만나지 못하게 하면 당신들의 빙하 세계를 평지로 만들어 버릴 겁니다.”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냉혹한 표정으로 음산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방자하군! 빙종이 네가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느냐?”
“보아하니 당신들과 이야기해도 소용없겠군요. 빙종에서 지위가 높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럼 책임자를 찾아봐야겠네요.”
양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신형을 번쩍하더니 한 빙산 앞으로 질주했다. 빙산 속에서 강한 신식이 전해지는 것을 은은하게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이쪽 움직임을 탐지하고 있는 듯했다.
“꿈 깨!”
예인이 분노해서 고함을 지르며 진원을 폭발시켰다.
“빙봉천지(氷封天地)!”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순식간에 더욱더 음산해지며 양준의 주위에는 알 수 없는 기운이 나타나 그를 겹겹이 둘러쌌다. 곧 기운 속에서 얼음 기둥이 형성되더니 사방팔방에서 그에게 쏟아졌다. 얼음 기둥은 칼날처럼 예리하고 기세가 드높았으며 순식간에 그를 삼켜 버렸다.
그러나 예인의 낯빛은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더 어두워졌다.
슈욱- 슈욱- 슈욱-
얼음 기둥이 끊임없이 공격했다. 그러나 얼음 속성 기운으로 감싸인 한가운데서 불길이 폭발하면서 놀라운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태양처럼 눈부셨다.
촤르륵-
빙봉천지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양준은 온몸을 붉은 빛으로 감싸고서 뜨거운 기운을 내뿜으며 하늘에 서서 냉담한 눈빛으로 예인을 바라보았다.
“초범 경지!”
예인은 안색이 크게 바뀌며 넋을 잃고 말았다. 양준의 진원의 파동을 감지하고서 그는 곧 상대의 경지를 알 수 있었다.
‘나이 어린 녀석이 나와 똑같은 초범 경지 1단계라니!’
게다가 양준의 진원은 그보다 더 순수하고 짙어 몇 배는 더 강했다. 그를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은 양준의 진원 속성이 그의 진원 속성과 상극이라는 점이었다.
“사제, 조심하게!”
예인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곁에 있던 무인이 소리치며 그를 와락 잡아챘다.
슈욱-
붉고 긴 창이 예인의 몸을 스치며 땅바닥에 꽂혔다. 창은 빙하 세계에 깊이가 몇백 장이나 되는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냈다. 오로지 진원으로만 만들어진 긴 창의 위력을 느끼자, 다들 얼굴빛이 급변했다. 그들은 모두 초범 경지의 고수였지만, 그 누구도 몸으로 이런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창에 맞았으면 아마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견딜 수 없이 뜨거운 기운이 확산되면서 사방 몇백 장을 뒤덮었다. 그 범위 안의 얼음 속성 공법을 수련한 이들은 모두 일정한 정도로 억제를 받았으며, 몸속 진원이 흐르는 속도도 순간적으로 많이 느려졌다.
양준은 허공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오더니 서슬 퍼런 눈빛을 하고서 담담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소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싸우려면 그냥 싸워. 우리는 소안을 본 적도 없고, 누군지도 몰라.”
예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소리쳤다.
“좋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곧이어 양액 한 방울이 손가락 끝에 배어 나오자, 그는 그것을 탁 튕겼다. 양액은 하늘에서 수많은 작은 물방울로 변해 하늘을 뒤덮는 기세로 빙종 제자들을 공격했다.
“빙막(氷幕)!”
“빙쇄(氷鎖)!”
“빙정전수(氷晶戰獸)!”
예인과 사형제들이 동시에 공격하자, 각종 얼음 속성 무공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차가운 기운을 품은 방어 장막이 그들 앞에 생겨났고 동시에 흰 기운으로 된 쇠사슬이 흔들거리며 양준을 향해 덮쳤다. 또한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빙하 위에는 별안간 몸집이 거대하고 험상궂은 모습의 요수들이 나타났다. 요수들은 모두 기운으로 만들어졌는데, 마치 정교하게 빚어진 얼음 조각 같았다. 땅바닥에서 뛰는 놈, 하늘에서 나는 놈 할 것 없이 모두 양준을 향해 맹렬하게 공격했다.
수많은 물방울로 변한 양액은 손쉽게 얼음 장막을 꿰뚫었다. 예인 일행은 사색이 되어 일제히 방어 비보를 꺼내 공격을 막았다.
흔들거리며 다가오던 얼음 사슬은 양준을 꽁꽁 묵었다. 하지만 빙쇄를 펼친 이는 미처 기뻐하기도 전에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족히 초범 경지 1~2단계의 무인을 묶어 둘 수 있는 빙쇄는 양준의 몸 밖 진양원기에 녹아내려 아무 기능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의 걸음조차도 늦추지 못했다.
양준은 나는 듯이 달려가 빙정 요수들을 상대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수혼인이 다시 한번 펼쳐졌다. 소와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지는 동시에 백호와 신우가 나타났다. 그것들의 황금빛 몸통은 더할 나위 없이 크고 튼튼했으며 타오르는 태양처럼 양준의 양옆을 뒤따랐다. 정면으로 달려오던 빙정 요수들은 양준과 두 수혼의 일격도 받아 내지 못하고 흩어지더니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 양준은 몇 사람의 앞으로 달려갔다. 빙종 제자들은 그의 들끓는 진원과 압도적인 기세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들은 동급 무인들 가운에서 누군가 혼자의 힘으로 자신들의 협공을 막아 낼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싸우는 가운데 상대는 전혀 열세에 처하지 않고, 도리어 여유를 부렸다.
양준은 몸속에서 흐르는 기운을 감지하고 통쾌함을 느꼈다.
빙종 제자들은 전투력이 바깥 세상의 동급 무인들보다 훨씬 더 강했다. 전에 수람성에서 상대했던 정씨 가문 초범 경지 1단계 두 명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경지는 같지만, 천도와 무도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기에 전투력 자체가 전혀 달랐다. 천도와 무도에 대한 이해도 방면에서 양준은 최고의 수준에 달해 있었다. 빙종 제자들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양준에게는 훨씬 못 미쳤다.
양준은 치명적인 초식을 연이어 날리며 이와 함께 노기도 방출되었는지 점차 냉정해질 수 있었다. 그가 빙종에 찾아온 목적은 싸우거나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소안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양준은 살기를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손속에는 여지를 두지 않았다. 예인 일행은 전력을 다했지만 양준을 막아 내지 못하고 오히려 밀리면서 무너지려는 조짐을 보였다.
이 광경에 그들은 공포감에 휩싸였고, 양준에 대한 태도도 은연중 바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