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18화 (717/853)

제 718장. 행패를 부리다

빙산 외곽,

빙종의 초범 경지 고수 몇 명은 협공하며 양준과 힘들게 맞서고 있었다. 원래 그들은 상대가 젊은 청년이어서 사형제 중 아무나 나서도 손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양준의 실력은 너무나 출중했고, 그의 공격에 점점 버티기 힘들어졌다. 이처럼 큰 반전에 빙종 제자들 모두 깜짝 놀랐다.

쌍방의 진원 속성이 서로 상극이라 하지만, 비교했을 때 상대의 진원이 더욱 순수하고 농밀했다. 싸우는 와중 그들이 펼친 무공이나 초식은 마치 햇빛 아래 봄눈처럼 상대의 몸에 접근하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

“오늘 저를 막는 사람은 모두 죽을 것입니다.”

공격을 이어가던 양준은 불현듯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차갑게 고함을 질렀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냉혹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예인은 가슴이 철렁하며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물러서며 방어 태세를 취했다. 양준의 살기등등한 위협에 그는 드디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준의 실력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는 젊은이 혼자 힘으로 사형제들을 제압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감히 빙종에서 네놈이 건방을 떨다니!”

예인은 마음속 두려움을 숨기며 이를 악물고 고함을 질렀다.

“방금 전에도 똑같은 말씀하신 거 같은데요. 빙종이 뭐 그리 대단합니까? 제가 제대로 한번 건방 떨어보죠!”

양준은 차가운 눈초리로 예인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람이 일고 우레가 쳤다. 이윽고 예인 일행의 주위에는 바람과 우레의 힘이 어우러진 살육의 장이 펼쳐졌다. 날카롭기 이를 데 없는 바람과 거대한 살상력을 품은 벼락이 그들 모두를 꽁꽁 감싸며 휘몰아쳤다.

몇 명이 손에 들었던 방어 비보는 깜빡깜빡하다가 영기가 대량으로 감소되더니 얼마 안 되어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온몸을 보호하던 얼음 속성 진원도 바람과 우레의 힘을 막을 수 없었다. 곧 옷들이 모두 찢기며 온몸에 상처 자국들이 가득 생겼다. 죽음의 기운이 밀려드는 순간, 예인 일행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두 가지 기운이 어우러진 살육의 장에 갇힌 그들은 도망칠 수조차 없었다.

양준은 천천히 한 손을 뻗더니 그들이 있는 위치를 내리쳤다. 그러자 하늘에 갑자기 커다란 손바닥이 나타났다. 금빛 찬란한 손바닥은 마치 태양이 추락하는 것처럼 살상력을 띤 뜨거운 기운을 품고서 무겁게 아래쪽을 내리눌렀다. 기세가 어찌나 거센지 손바닥이 채 닿기도 전에 빙하 세계가 녹아내리며 안개가 하늘로 치솟았다.

예인과 사형제들은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며 하마터면 땅바닥에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들은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커다란 손바닥을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만 멈춰!”

이때 누군가의 외침이 사람들의 귓가에 들려왔다. 흰 그림자 하나가 빙산 내부에서 튀어나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예인 일행이 있는 하늘로 날아가 손으로 양준의 공격에 맞섰다.

파악-

황금빛을 뿌리던 손바닥이 부서지며 양준은 몇 걸음 물러섰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입가에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그는 놀라는 대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갑자기 나타난 여인을 바라보았다.

나타난 이는 아름다운 중년 부인으로 흰색의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풍만한 몸매의 그녀는 성숙미가 흘러넘쳤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을 한 채 경계하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젊은 청년이 예인 일행을 쉽사리 이겼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예인과 사형제들은 모두 초범 경지 1단계로 빙종에서도 실력이 낮은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몇 명이 협공했는데도 이런 결과라니, 그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대륙에 언제 이렇게 대단한 젊은이가 나타난 거지?’

“드디어 책임자가 오셨군요.”

양준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천월 장로님!”

예인과 사형제들은 마치 구세주를 본 것처럼 기뻐하며 연신 외쳤다.

“너희들은 물러가거라.”

천월이 손을 휘휘 젓자 예인 일행의 주위를 감쌌던 바람과 우레의 힘으로 형성된 살육의 장이 순식간에 파훼되었다.

양준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여인은 입성 경지 고수로 이런 수단이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방금 전, 그가 기세등등하게 예인 일행을 죽일 것처럼 공격한 것도 여인을 유인해 내기 위해서였다.

여인은 방금 전 빙산 안쪽에서 그의 움직임을 탐지하던 이였다. 예인 일행은 빙종에서 결정권이 없지만 여인은 결정권이 있을 듯했다.

“어느 세력 소속인 겐가? 어떻게 세 가지 성질의 기운을 모두 능수능란하게 쓸 수 있는 거지?”

천월은 진한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는 진중하게 양준을 훑어보았다. 그녀는 그의 옷차림에서 단서를 찾아보려 했으나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가 이곳에 온 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빙종에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만약 그녀가 무사하다면 저는 조용히 그녀를 데리고 떠날 것이고, 이번 일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상태가 안 좋으면 빙종에서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방자하군! 빙종이 은거한 지 오래되어서 명성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함부로 소란을 피울 수 있는 곳은 아닐세. 자네가 찾는 사람은 이곳에 없네. 그냥 돌아가게나. 아니면 내가 공격했다고 탓하지 말게.”

천월은 천천히 고개를 젓더니 조소 어린 눈초리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절 속이려 하지 마십시오. 소안이 빙종에 있다는 건 당신도, 저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양준은 천월의 말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냉담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네가 찾는 사람은 빙종에 없네.”

천월은 노기를 띤 채 점점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렇습니까?”

양준이 비웃는 듯한 웃음을 흘렸다.

“아니면 제가 소안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드릴까요?”

그러면서 그는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대략 십 리 떨어진 곳, 빙산 내부에 소안이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천월은 낯빛이 확 바뀌며 놀란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이 너무 정확하게 맞히는 바람에 천월은 오히려 그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제대로 알아맞힌 모양이군요. 소안이 도대체 어떤 상태인지 꼭 봐야겠습니다.”

양준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낱낱이 지켜보다가 차갑게 말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구나.”

천월은 곧 낯빛을 가다듬고 매정하게 말했다.

“당신이 꼭 막으려 한다면 저는 빙종을 뒤질 것입니다. 빙종에서 그 대가를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랄게요.”

양준의 표정이 포악해지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감히 행패를 부렸다가는 자네의 목숨을 조심해야 할 것이네.”

천월이 흰 이를 꼭 깨물고 위협조로 말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다음 순간 강한 진원이 폭발했다. 동시에 풍뢰우익이 활짝 펼쳐졌다. 아름답고 커다란 날개에 다들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들은 그것이 무공인지 비보의 위력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잠깐 넋을 잃은 사이, 양준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천월의 낯빛이 바뀌더니 신형이 번쩍하고 급히 양준을 뒤쫓았다.

콰아앙-

백 장 높이의 빙산이 갑자기 굉음을 냈다. 강하기 이를 데 없는 힘에 빙산은 허리부터 뚝 잘려 나갔고, 윗부분은 모두 얼음덩이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떨어졌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연이은 굉음과 함께 여파는 빙산 내부에까지 이어졌다. 예인 일행은 얼이 나간 채 지켜보기만 했다. 그들은 양준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신비한 날개를 펼친 뒤, 양준의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다. 그들은 신식을 펼쳐도 도저히 그의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림자가 움직임에 따라 빙산이 연이어 크게 손상을 입었다. 그는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처럼 빙산을 마구 덮쳤고, 자신의 육신과 진원으로 빙산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잠깐 사이에 백 장 높이의 빙산 대여섯 개가 무너졌다. 빙산 내부에서 수련하던 빙종 제자들은 날벼락을 맞고 욕을 퍼부으며 재빨리 뛰쳐나왔다. 그러나 위험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들은 눈앞이 캄캄해지며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예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영문 없이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천월은 이 모든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양준이 튀어나가는 순간, 그녀는 바로 뒤쫓았다. 그녀는 입성 경지 1단계지만 풍뢰우익을 펼친 양준을 따라잡기는 어려웠다. 바람 성질은 변화무쌍하고 우레 성질은 빠르므로 풍뢰우익은 양준의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주었다.

빙하 세계 상공에서는 그림자 두 개가 번쩍이며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많은 빙산들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면서 끊임없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양준은 처음부터 입성 경지 고수와 정면으로 싸울 생각이 없었다. 오늘날 그의 실력은 경지를 뛰어넘어 싸울 수 있었고, 예인 일행을 대처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그는 주제 파악이 확실했다. 자신의 지금 실력으로 입성 경지 고수를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입성 경지 고수의 몸속에서 흐르는 기운은 초범 경지 무인과 전혀 달랐다. 그들이 펼치는 무공과 공법의 살상력은 초범 경지 무인의 것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성급, 이는 초범 경지 이상의 경지였다. 입성 경지 고수와 대항하려면 적어도 초범 경지 3단계가 되어야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때문에 중년 부인과 싸우면 양준은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는 될수록 크게 소란을 피워 상대가 굴복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만 멈추지 못할까!”

천월은 화가 치밀었으나 양준을 따라잡지 못하자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분명 소안을 만나지 못하면 이곳을 전부 부숴 버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양준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고는 오히려 속도를 더욱 올렸다.

양준이 탄탄한 육신에 뜨거운 진원을 휘감고서 여지없이 빙산에 부딪치자, 그의 힘을 견뎌낼 수 있는 빙산은 하나도 없었다. 그가 지나간 곳마다 빙산이 힘없이 무너지며 난장판이 되었다.

천월은 울화통이 터졌다. 빙종의 천 년 동안의 재산이 소실되는 것을 지켜보는 그녀의 가슴은 안타까움과 분노로 가득 찼다. 이처럼 강경한 태도에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젊은이를 만나다니, 그녀는 재수가 옴 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양준을 뒤쫓던 천월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서슬 퍼런 눈빛으로 차갑게 양준의 그림자를 지켜보다가 고함을 질렀다.

“가격!”

천지의 기운이 순식간에 기괴하게 바뀌었다. 양준의 표정이 급변했다. 앞으로 질주하던 그의 몸이 우뚝 멈춰 서더니 급히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나 사방팔방에서 차가운 기운이 천천히 덮쳐오니 전혀 피할 곳이 없었다. 이는 입성 경지 고수의 신통력이었다. 양준은 어찌 된 영문인지 미처 확인할 사이도 없이 천월의 공격에 당하고 말았다.

양준은 하늘에서 끊임없이 뒹굴며 은은한 금빛을 띤 피를 흩뿌렸다. 그는 신형을 제어하지 못한 채, 아래쪽으로 곤두박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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