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19화 (718/853)

제 719장. 주위를 둘러보시지요

양준이 중상을 입은 것을 보고 천월의 표정이 한층 누그러졌다.

이번 일에서 그녀는 찔리는 데가 있었다. 그녀가 소안의 존재를 부인하고, 양준이 소안을 만나지 못하게 한 것은 모두 사적인 욕심 때문이었다. 때문에 양준이 빙산 열몇 채를 부숴도 그녀는 살초를 펼칠 수가 없었다. 그냥 상대가 알아서 스스로 물러나기를 바랐다.

그녀는 소안을 내주기가 싫었다. 어렵사리 자질이 이처럼 뛰어난 이를 만났으니 당연히 자신의 제자로 삼고 싶었다. 게다가 지금 소안의 상태가 좋지 않아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천월은 양준에게 상처를 입혀 쫓아내려 했다. 그러나 날아가서 양준의 상태를 확인해 보려던 그녀의 낯빛이 다시 바뀌었다.

아래쪽에서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어야 할 양준이 다시 한번 황금빛이 반짝이는 진원을 감싸고서 솟구쳐 올라온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천월의 눈동자가 떨렸다. 방금 전, 자신이 얼마만큼의 힘을 썼는지 그녀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초범 경지 1단계 무인이 견딜 만한 힘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상대는 살짝 상처만 입었을 뿐,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거세져 있었다. 빙종을 아예 초토화시키려는 기세였다.

‘육신이 도대체 얼마나 단단하기에 이처럼 강한 공격을 받아 내고도 혼절하지 않는 거지?!’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빙산이 계속해 무너졌다. 천월은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자네, 지금 화를 자초하는 거야.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고 탓하지 말게.”

양준이 방자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저를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십시오. 제가 먼저 죽을지, 아니면 빙종의 재산이 거덜이 날지 봅시다! 소안을 보여주지 않으면 다 같이 죽을 겁니다.”

“무엄하다!”

천월은 빙종의 재산 가운데서 거의 1할이 훼손되자 살심이 일었다. 지금 양준을 죽이지 않으면 파괴 속도로 보아 한 시진이 안 되어 빙종은 본거지를 옮겨야 할 듯했다. 이처럼 엄청난 소란에 빙종의 다른 이들도 모두 놀랐다. 여러 고수들이 서로 다른 빙산에서 뛰쳐나와 한 곳에 모였다.

“천월, 무슨 일이냐? 어디에서 온 녀석이냐?”

한 중년이 어두운 낯빛으로 차갑게 물었다.

“오라버니, 자세한 이야기는 잠시 뒤에 하고 일단 그 녀석을 잡아 주세요.”

천월은 양준을 뒤쫓는 한편, 급히 소리를 질렀다.

중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젊은이를 대처하는 데 나서고 싶지 않았지만, 그가 미친 듯이 빙종의 재산을 부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분노가 치밀어 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순간 중년의 신형이 움찔하더니 양준의 앞쪽을 막아서며 차갑게 소리쳤다.

“이제 그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양준은 광풍을 휘감고서 그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꽈르릉-

중년의 등 뒤에 있던 빙산이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미쳐 날뛰는군!”

중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크게 움직이지도 않고 신비하게 양준의 곁에 나타나더니 손가락 하나를 내찔러 양준의 허리를 맞혔다.

양준은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고, 앞으로 내달리던 속도도 크게 떨어졌다. 동시에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기운이 맞힌 곳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진원의 운행 속도도 순식간에 늦어졌는데 마치 소택지에 빠진 것처럼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몸 표면에는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엷은 서리가 끼더니 머리카락마저도 얼어붙었다.

중년은 입성 경지 2단계였다.

양준은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는 억지로 몸을 꺾어 중년을 피했다. 이때 그의 몸속의 진원이 세차게 쏟아져 나와 몸과 마음의 한기를 해소시켰다. 곧이어, 그는 몸의 자유를 회복했다.

중년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저도 모르게 ‘어!’ 소리를 내었다.

“대단한 녀석이군!”

입성 경지 2단계인 그가 상대의 몸에 얼음 진원을 쏘았다. 만약 다른 이였다면 얼마든지 얼음으로 봉인할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양준은 행동이 잠시 방해받았을 뿐, 아무 문제도 없었다.

중년은 양준에게 일격을 날린 것만 해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또다시 공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그 같은 고수는 신분 때문에라도 약한 자를 괴롭히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오라버니, 어서 움직여 주세요.”

천월은 중년이 하늘에 서서 뒷짐 진 채 고고한 풍채를 선보이자 참지 못하고 다그쳤다. 중년은 미간을 찌푸리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게 무슨 꼴이람. 자네도 그만하게나. 나도 더는 공격하지 않을 테니까, 자네도 그만 행패를 부리게. 일이 있으면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다시 이야기해 보세.”

중년이 말하는 동안 빙종의 다른 두 입성 경지 고수가 양준의 퇴로를 막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양준을 공격하지 않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흥미진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입성 경지 고수 4명이라니, 이로써 빙종의 강한 저력을 엿볼 수 있었다.

양준은 포위권의 한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또한 상대의 실력으로 보아 이제 더는 제멋대로 날뛸 수 없을 것 같았다. 중년의 뜻을 감지한 그는 순간 신형을 멈추고 허공에 서 있었다.

“일이 있으면 당신께 말하면 됩니까?”

양준이 중년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

중년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빙종의 천호(千皓) 장로네.”

양준은 중년 부인을 힐끔 보고 비웃듯이 말했다.

“저분도 빙종 장로이신데, 당신들이 한통속이 아닌지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천월은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려다가 천호에게 저지당했다. 천호가 웃으며 말했다.

“천월은 나와 남매 사이네. 한통속인지 아닌지 자네가 말해 보게.”

“오라버니!”

천월이 천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자네는 선택지가 없네. 자네는 빙종의 수많은 재산을 훼손했네. 해명을 하지 않으면 내가 자네를 놔주겠나? 이렇게 날뛴 연유가 있기를 바라네. 아니면 자네한테 갖은 혹형을 다하다가 천천히 피 말려 죽일 테니까.”

천호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양준은 냉소하고서 풍뢰우익을 거두어들였다. 그러고는 천월을 힐끔 보며 말했다.

“제가 사람을 찾으려는데 저분이 갖은 수를 써서 막았습니다.”

“사람을 찾는다고? 누구를 찾는가?”

천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소안을 찾습니다.”

그 말에 천호와 다른 두 입성 경지 고수들이 모두 눈썹을 꿈틀했다.

“전에 그 노친네가 말했던 그 녀석인 거 같아요.”

천월이 천호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천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불쾌해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왜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냐? 왜 꼭 이런 소동을 벌여야 했느냐?”

“소안에게 변고가 생겼어요.”

천월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변고라니? 어찌 된 일이냐?”

천호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는 빙종의 장로였지만 몇 년간 줄곧 폐관 수련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 문파의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 오늘 양준이 이처럼 크게 소동을 벌이지 않았다면 그는 나와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해명할게요. 다만 지금 소안은 확실히 사람을 만날 상황이 아니에요. 게다가 저 녀석은 성격이 거칠고 잔인한 것이 좋은 놈이 아닐 거예요. 소안이 저런 녀석과 만나게 할 수 없어요.”

“그런데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지내는 사이인 듯한데.”

천호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그냥 저 녀석이 제 분수를 모르는 거죠.”

천월이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양준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혐오감이 짙어졌다.

여동생이 양준을 달가워하지 않자 천호도 뭐라 말하기가 무엇했다. 이번에 여동생이 먼저 잘못된 행동을 했지만 양준도 빙종을 안중에 두지 않고 많은 빙산을 훼손했다. 만약 정말 이대로 넘어간다면 제자들에게도 해명하기가 어려웠다.

천호는 다시 냉랭하게 말했다.

“그 일 때문에 지금 이렇게 빙종의 재산을 마구 훼손한 것인가?”

“제가 언짢은데, 남들이 맘 편하게 가만둘 리가 없죠.”

“방자하군. 다만 자네가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자네를 죽이지 않고, 두 가지 선택지를 주겠네. 빙종에 들어와서 노예로 일하며 빙종의 손실을 배상하든가, 아니면 내가 자네의 두 손을 자를 걸세. 하나를 선택하게.”

그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양준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했다.

“어느 것도 싫습니다.”

천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자네 마음대로 할 수 없지. 자네 자질이 괜찮은 거 같은데 그냥 첫 번째를 선택하게나. 자네 공법이 우리 빙종과는 상극이지만 어쨌든 인재이니만큼, 인재를 망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네.”

그때, 무형의 기운이 순간적으로 폭발하며 양준을 봉인했다.

양준은 피할 생각이 없는지, 천호가 자신을 묶게 내버려 두었다. 그는 전혀 놀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승기를 잡은 듯이 가볍게 냉소를 지었다.

“자네, 왜 웃나? 이제부터 자네는 내 곁에서 시중을 들게. 걱정하지 말게나. 절대 자네를 홀대하지는 않을 걸세. 빙종에 들어와서 노예로 일하다 보면 언젠가 자네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거네. 그러려면 우선 자네가 얌전히 일하며 본분을 지켜야 하네. 아니면 큰코다칠 걸세.”

천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더러 당신을 시중들라고요? 당신께 그럴 복은 없는 듯한데요.”

양준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천호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나를 시중들라 한 것도 다 자네를 높이 산 것이네. 주제 파악을 좀 하게나.”

다른 입성 경지 고수도 고함을 질렀다.

“천호 형님도 자네의 재능을 아껴서 그러는 것일세. 괜히 호의를 무시하지 말게.”

또 다른 고수도 한마디 거들었다.

“천호 형님의 화를 돋워 봤자 자네한테 좋은 점이 없을 거야.”

천호는 흥미진진하게 양준을 훑어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왜 빙종에 왔는지, 여기서 어떤 억울함을 당했는지 상관없네. 자네가 이곳에서 행패를 부린 것은 사실 아닌가? 자네를 죽이지 않은 게 가장 큰 자비라네. 무슨 자격으로 지금 나와 흥정을 하려는 건가? 자네 실력으로 내 손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은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시죠.”

양준은 입가에 조소 어린 미소를 머금고 담담하게 일깨워 주었다.

그 말에 입성 경지 고수 네 명은 알 수 없다는 듯이 주위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곧이어 네 사람의 표정이 일제히 크게 바뀌었다. 방금 전부터 그들은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모두 양준에게 정신을 집중하다 보니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 양준의 말에 다시 한번 탐지해 보니 주위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어쩔 수 없이 빙산에서 뛰쳐나왔던 빙종의 제자들은 어떤 기척도 내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혼절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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