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21화 (720/853)

제 721장. 빙신쇄심

빙종의 종주 청아는 양준에게 어떤 불만이나 적의도 드러내지 않았고, 오히려 살갑게 대했다. 이에 양준도 더는 소란을 피울 수가 없었다. 원래 그는 빙종과 완전 척을 지고 이곳에서 행패를 부린 다음 소안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청아의 태도 때문에 그는 억지를 부릴 수가 없었다. 상대가 웃는 낯으로 대하는데 자신이 여전히 행패를 부린다면 그건 불량배나 다름없었다.

“소안을 찾으러 왔나? 전에 몽무애가 말한 적 있네.”

청아가 부드럽게 묻자,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소안에게 변고가 생겼네.”

그 말에 양준의 낯빛이 순간 차가워졌다. 그러자 청아가 얼른 한마디 덧붙였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생명에는 위험이 없다네. 그냥 스스로 자신을 봉인했을 뿐이네.”

“스스로 봉인했다고요?”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소안의 지금 상황은 스스로의 선택일세. 물론 우리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네. 나를 따라오게. 그녀를 만나 보면 상황을 알 수 있을 거네. 한두 마디로 설명할 길이 없구나.”

청아가 양준을 손짓해 불렀다.

“종주님……!”

천월이 저지하려는 듯이 소리 내어 불렀다. 그러나 청아가 힐끗 노려보자 그녀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아, 그전에 우리 제자들의 식해 속 벌레들을 거두어들이면 안 되겠나? 자네가 방출했으니 물론 거두어들일 방법도 있을 테고.”

청아가 미소를 머금고서 양준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사저의 상태를 확인하기 전에는 벌레들을 거두어들이지 않을 겁니다.”

양준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에게는 이 필살기밖에 없었다. 2백여 명 빙종 제자들의 목숨으로 협박해야만 장로들이 섣불리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청아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 서혼지충을 거두어들인 다음 상대가 갑자기 공격한다면, 양준은 입성 경지 3단계 무인의 손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조심성이 대단하군! 그렇다면 우리 제자들에게 변고가 생기지는 않겠는가?”

청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반 시진 안에는 생명의 위험이 없습니다.”

양준이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좋네. 먼저 나를 따라오게. 천월, 자네도 오게. 천호 자네들은 밖에서 제자들을 돌보고 있게.”

“예!”

사람들은 일제히 공손하게 대답했다. 천호는 차갑게 양준을 힐끗 보더니 위협했다.

“한번 더 꼼수를 부리면 아주 혼쭐을 내줄 걸세.”

양준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양준은 청아를 뒤따라 앞으로 질주하다가, 전에 소안의 기운을 느꼈던 빙산 앞에서 멈춰 섰다. 청아가 손을 휘젓자 빙산의 산허리에 대문이 나타났다. 대문 역시 빙정으로 조각되어 있었는데, 그 속에는 현묘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으며 은은하게 진법 문양이 보였다. 신식으로 탐지하는 것을 차단하는 진법인 듯했다.

빙산 내부에 들어서자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사방팔방에서 덮쳐 왔다. 양준은 살짝 당황하며 얼른 진원을 운행시켜 한기를 내몰았다.

천월은 양준 몸속의 뜨거운 기운을 감지하고 얼굴에 혐오감을 드러냈다. 빙종은 사람마다 얼음 속성 공법과 무공을 수련했기에 이처럼 상극인 기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빙산 안쪽은 맑고 윤이 났다. 안쪽에 나 있는 길도 마치 수정을 깐 듯 아름다웠다. 곳곳에 조명용으로 장식한 기묘한 돌들이 빙정 통로를 반짝반짝 비추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양준의 호흡이 점차 거칠어졌다. 그는 소안과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약 일각을 걸은 뒤, 세 사람은 거대한 빙실 앞에 도착했다. 청아가 양준을 힐끔 뒤돌아보며 말했다.

“소안은 안에 있네. 다만 너무 흥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게.”

“알겠습니다.”

양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청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서 빙실의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갔다. 그 뒤로 양준 그리고 천월이 뒤따랐다.

빙실 안에는 얼음 침대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소안은 얼음 침대 위에 눈을 꼭 감고 누워 있었는데 온몸은 모두 얼음덩이로 감싸여 있었다.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든 듯했다.

양준은 순간 눈을 가늘게 떴다.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솟아 올랐으나 가까스로 억누르고 천천히 얼음 침대로 다가갔다.

청아와 천월은 양준을 지켜보았다. 방금 전까지 제멋대로 날뛰던 양준은 소안을 보는 찰나, 험상궂던 얼굴이 평온해지며 눈동자에는 짙은 그리움이 배어났다. 그의 표정은 수시로 바뀌며 다채롭기 그지없었다. 그는 두려우면서도 기대감을 안고 한 걸음, 한 걸음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걸어가는 동안, 그의 표정이 다시 냉정해졌다.

양준은 얼음 침대로 다가가서 침대 위의 여인을 지켜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소안은 생명의 위험이 없었다. 하지만 얼음에 봉인되어 있어 양준이 와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양준은 손을 뻗었지만 그녀를 만질 수가 없었다. 그는 조용히 소안을 훑어보았다. 그녀는 평온한 얼굴로 두 손을 자연스럽게 평평한 아랫배 위에 얹고 있었다. 스스로 봉인하기 전에 큰 깨달음을 얻었는지 고통스러운 기색은 전혀 없었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몸속 진원은 빠르게 운행되고 있었다. 그녀가 수련한 공법은 여전히 운행 상태였으며 평소보다 더 빨랐다.

청아와 천월은 지금 양준의 심정을 알고 있기에, 눈치 있게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청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천월은 인내할 수가 없었다.

2백여 명의 빙종 제자들이 재난을 당했다. 만약 반 시진 뒤에 양준이 서혼지충을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그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천월이 끝내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

“언제까지 볼 건가? 아무리 봐도 깨우지 못할 걸세. 소안은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의식마저도 봉인했다네.”

양준이 문득 뒤돌아서 냉랭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천월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저도 모르게 양준의 시선을 피했다.

“이건 일종의 무공이죠?”

양준이 청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빙종의 비전 무공으로 빙신쇄심(氷身鎖心)이라고 하네. 그 무공을 펼치면 온몸의 진원이 굳어지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봉인하고 순식간에 모든 감각을 잃게 되네.”

“그런데 사저의 공법은 왜 여전히 운행되고 있습니까?”

“빙신쇄심은 수련을 보조하는 기능을 하네. 빙종 제자들은 이 무공을 펼쳐 강제로 무념무상의 상태에 진입하지. 그런 상태에서 수련하면 평소보다 속도가 더 빠르네. 많은 제자들이 폐관 수련할 때도 이 무공을 펼친다네. 빙신쇄심을 펼칠 때, 사용한 진원과 깨달음이 다름에 따라 무공이 유지되는 시간도 다르다네.”

“사저의 무공은 언제까지 유지될 것 같습니까?”

양준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청아는 낯빛을 흐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명확히 말해 주기 어려워. 십몇 년이 될 수도, 몇십 년이 될 수도 있네. 아니면 영원할 수도……. 소안은 지금 수련하면서 생기는 진원도 모두 몸 밖의 봉인 상태를 유지하는 데 쓰고 있다네.”

양준이 실눈을 뜨며 물었다.

“왜 그녀가 스스로 봉인하려 한 건가요? 혹시 빙종에서 억울함을 당하거나 학대를 받은 건 아닌가요?”

그러고는 언짢은 눈빛으로 천월을 바라보았다.

“왜 날 보는 겐가? 내가 소안을 얼마나 아꼈는데, 학대라니?”

천월이 금세 화를 냈다.

“조바심 내지 말게. 천월 장로는 소안을 학대하지 않았네. 자네 사저를 제자로 삼고 싶어 했으니까.”

청아가 얼른 나서서 천월을 대신해 해명했다.

“저분한테는 그런 복이 없는 듯합니다.”

양준은 마음속으로부터 천월이 싫었다.

“다만 이 일은 천월 장로와 조금 연관이 있다네.”

청아가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소안이 이렇게 된 데는 천월 장로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네.”

천월은 어두운 낯빛으로 고통스러워하며 말했다.

“저도 소안이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언제 빙신쇄심을 배웠는지도 모르고요. 진작 이럴 줄 알았다면… 저도 강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휴!”

그러면서 양준을 힐끗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소안을 강요한 건 부인하지 않겠지만 그것도 다 소안을 위해서였네. 결코 해하려는 마음은 없었네.”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양준은 눈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물었다. 천월이 그렇게 말해봤자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일방적인 주장이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는 자세히 알아보아야 했다.

“천월, 자네가 이야기하게.”

청아가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천월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곧 소안이 빙종에 들어온 이후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년 전, 몽무애가 하응상과 소안을 데리고 종주 청아를 찾아와 소안을 잠시만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빙종은 빙하 세계에 은거하면서 본래 외부인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몽무애는 청아와 친분이 있었고, 노친네가 파렴치하게 생떼를 부리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수락하고 말았다. 소안을 청아에게 부탁한 뒤, 몽무애는 하응상과 함께 떠났다.

“노친네는 자신이 위험한 일을 처리하러 가는데, 제자는 괜찮지만 소안까지 데리고 갈 수는 없다고 하더군. 그래서 몰래 소안을 이곳에 남겨 두고 떠났다네. 노친네가 떠난 다음에야 소안은 내막을 알게 되었고, 하는 수 없이 빙종에 남게 되었네.”

천월이 설명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몽 주인이 이처럼 처리한 것은 나무랄 것이 없었다. 몽 주인은 소안에게 빙종에 온 목적을 숨겼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안의 성격으로 분명 몽 주인을 따라가서 도우려 했을 터였다. 그녀는 결코 빙종에 남아 안락한 생활을 할 성격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는요?”

“종주님께서는 소안을 나한테 맡겼네. 처음에 나도 그 애한테 그리 신경 쓰지 않았었지. 소안이 이곳에 올 때 실력이 낮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높지도 않았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소안이 타고난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수련 속도가 빨랐고, 더욱 기쁜 것은 그녀가 수련하는 공법이 우리 문파와 마찬가지로 얼음 속성 공법이었다는 거지. 다시 생각해 보니, 노친네는 진작 따로 생각이 있어서 소안을 빙종에 맡기려 했던 걸세.”

양준은 입꼬리를 실룩였다. 몽무애가 계략이 없었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통현대륙에서 아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초능소와도 아는 사이였지만 그는 소안을 천소종이 아닌, 이곳으로 데려왔다. 분명 빙종의 저력을 노린 것이었다.

몽무애는 아마 빙종에서 소안을 가르쳐 주기를 바랐을 것이었다. 양준이었다면 그 역시도 몽 주인처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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