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3장. 헛수고
양준이 빙종에 온 지도 어언 보름이 지났다. 보름 동안 그는 줄곧 빙실에서 깊게 잠이 든 소안의 곁을 지키며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빙실에서 종주와 네 명의 입성 경지 장로들은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는데, 네 명이 모두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며 논쟁을 멈추지 않았다. 종주인 청아는 투명한 얼음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 침묵을 지켰다.
서혼지충에게 피해를 입었던 장로가 비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 녀석은 겉모습만 봐도 좋은 사람이 아니었소. 무슨 특별한 방법으로 서혼지충을 통제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제자들을 대하는 수단으로 보면 틀림없이 잔인하고 악랄한 인간이 분명하오. 이런 사람은 얼른 쫓아내야 하오.”
양준에게 당한 적이 있는 다른 장로도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
그들은 시선을 천호에게 돌리고 물었다.
“천호, 자네 남매의 뜻은 어떠하오?”
“그 녀석은 반드시 떠나야 하오. 빙종은 신성한 곳인데 녀석이 오자마자 싸움이 생겼잖소. 이런 사람은 언젠가 화근이 될 터이니 남겨 두면 안 되오.”
천호는 침묵을 지키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낯빛을 보면 그녀 역시 양준이 빙종에 남아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 듯했다.
“종주님! 녀석을 떠나보내야 할 때입니다. 녀석이 계속 빙종에 있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천호는 고개를 들고 청아를 바라보았다.
청아는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왜 양준을 다급히 쫓아내려고 하는 것인가? 그의 수단이 좀 과격하긴 했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아닌가? 게다가 양준은 우리 제자들을 대처할 때 손속에 자비를 두었네. 부상을 당한 제자들은 신혼이 전혀 다치지 않았지. 그저 한동안 쉬면 나을 것일세. 우리가 목적을 이루었다고 그를 내칠 수는 없잖는가. 게다가 그는 자신의 사저를 찾으러 온 것인데, 지금 소안이 잠에 빠져서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 우리가 기어코 내쫓는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것이네. 양준이 화가 나 서혼지충을 다시 풀면 어찌하겠는가?”
“그럼 어떻게 하죠? 녀석을 계속 빙종에 남겨 두시려는 겁니까?”
“아니면 녀석더러 소안을 데리고 떠나라고 합시다. 그때 그 노친네가 와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누군가 소안을 찾으러 온다면 순순히 보내주라고요. 그를 괴롭히지도 말고, 그의 잘잘못에 대해 따지지도 말고 그냥 소안을 데리고 떠나게 내버려 두면 어떻겠습니까?”
천호가 제안했다.
천월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라버니, 소안이 지금 같은 상황인데 어떻게 녀석에게 데려가라고 할 수 있어요? 전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천월은 양준이 미웠지만 소안을 진심으로 아꼈다. 그녀는 소안을 보호하려는 마음에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그 일은 허락할 수 없어요.”
“그만들 하게.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지. 가만히 보니까 양준도 정이 깊은 사람인 것 같더군. 그동안 꼼짝하지 않고 빙실을 지키고 있지 않나? 이렇게 하지, 내가 먼저 가서 그의 생각을 물어보겠네. 어쩌면 양준도 계속해 빙종에 있을 생각이 없을 수도 있지 않나?”
청아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네 장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세 명의 장로는 곧 자리를 떴지만 천월은 남아 있었다.
“종주님, 저도 함께 가요.”
청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안이 있는 빙산으로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들은 빙실 앞에 도착했다. 가볍게 문을 두드렸으나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하지만 청아는 심상치 않은 원기 파동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린 채,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같은 시각, 빙실 안에서는 차가운 한기뿐만 아니라 뜨거운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청아는 앞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양준의 두 손은 소안의 몸 밖에 있는 얼음을 덮고 있었는데 진원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천월은 호통을 치더니 몸을 날려 양준의 앞에 서서는 일장을 날렸다.
양준은 공격을 막지 않고 고개를 돌려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보았다. 천월은 흠칫 놀라 양준의 몸에 거의 닿으려던 손을 바로 멈추며 이를 악물고 물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무슨 상관입니까?”
양준이 콧방귀를 뀌었다.
청아도 다급히 다가오더니 걱정 어린 얼굴로 말했다.
“이러지 말게. 소안이 다칠 걸세.”
“제가 알아서 할 겁니다.”
양준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소안이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소안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한 다음에야 신중하게 손을 쓴 것이었다.
“지금 소안에게 연락을 취하려는 것인가?”
청아는 짚이는 데가 있어 물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소안이 수련한 음양합환공은 총 세 단계가 있었다. 첫 번째 단계는 몸을 섞어야만 수련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단계는 신체적 접촉이 없이 가까이만 있어도 진원의 융합이 진행되고, 심적 경지가 향상되며 수련을 하든, 싸움을 하든 둘 다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소안의 몸은 두꺼운 얼음층에 감싸여 있어 첫 번째 단계는 가망이 없었다. 얼음층은 소안의 온몸의 진원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양준도 그것을 깨뜨릴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두 번째 단계의 수련 방식으로 소안과 합환공을 수련해 혹시라도 그녀와 교류할 수 있을지 시도해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시도해 보아도 진척이 전혀 없었다. 소안의 진원은 그의 부름에 반응이 없었고 진원 융합도 불가능했다.
“헛수고를 하지 말게. 둘이 어떤 합환공을 수련했는지 모르겠지만 빙신쇄심은 우리 문파의 비전 공법이네. 이 공법을 펼치면 모든 감각을 잃지. 자네들의 합환공이 빙신쇄심보다 강해 이 속박을 깨뜨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천월이 옆에서 찬물을 끼얹었다.
양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못 들은 척했다.
보름이나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이제는 세 번째 단계의 수련 방식으로 다시 시도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면 그도 어쩔 수 없이 소안 스스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양준은 지금 소안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빙신쇄심을 시전해도 그녀에게 이득뿐이니 굳이 깨울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저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화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만약 소안이 빙종에 있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양준은 지금이라도 당장 그녀를 데리고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소안이 이곳에 남고 싶다고 한다면 그녀의 뜻에 따를 생각이었다. 이곳은 소안이 수련하는 데 적합한 곳이었다. 이처럼 그녀의 수련에 어울리는 환경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양준이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 천월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지만 더 이상 그의 화를 돋우지 않았다. 청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양준, 마음이 급하면 될 일도 안 된다는 말이 있으니 자네도 너무 조급해하지 말게.”
양준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들고 물었다.
“빙종에는 이런 공법만 있고 해제할 방법은 전혀 없습니까?”
청아는 고개를 저었다.
“공법을 펼친 사람이 직접 해제하지 않는 이상, 외부인은 어찌할 수 없다네. 그와 교류하는 건 더욱 불가능한 일이고. 빙신쇄심을 펼치면 모든 감각을 잃기에 우리 제자들의 수련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네.”
“알겠습니다.”
“자네에게 물어볼 것이 있네.”
청아는 잠깐 주저하다가 난감한 얼굴로 입을 뗐다.
“제가 언제 갈 건지 묻는 것인가요?”
양준은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으며 정곡을 찔렀다. 청아는 순간 당황했다. 그가 이토록 눈치가 빠를 줄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통쾌하게 인정했다.
“쫓아내려는 게 아니라 우리 문파가 예로부터 외부인을 받은 적이 없어 그러네. 소안은 그렇다 쳐도 자네가 계속 있는 것은 문파의 규칙에 어긋나는 일일세.”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계속 이곳에 남아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요. 추운 곳에서는 제가 수련하는 공법도 제한을 받습니다. 다만 당분간은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한동안 폐관을 할 터이니 저를 방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양준은 입을 삐죽거리다가 말했다.
“여기서 폐관을 하겠다고? 설마 계속해 소안과 연락을 취할 생각인가?”
청아는 뭔가를 알아채고 물었다.
“얼른 포기하고 일찍 떠나는 게 좋겠네. 누구도 빙신쇄심을 펼친 이와 연락을 취한 적이 없었네. 헛수고를 하지 말게. 소안이 이곳에 있는 한, 빙종에 들어오든 아니든 내가 잘 보살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천월은 양준을 무시하는 얼굴로 말했다.
“당신의 보살핌은 필요 없습니다.”
양준은 그녀를 싸늘하게 힐끗 보고는 다시 청아에게 말했다.
“종주님, 제 부탁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지. 여기서 폐관하게.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이네. 자네가 폐관을 마치는 날, 소안의 상태와는 무관하게 자네는 반드시 이곳을 떠나야 할 것일세. 자네가 소안을 데리고 가든, 아니면 이곳에 남겨 두든 모두 자네 마음에 달린 것이니 우린 막지 않겠네.”
청아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주님, 감사합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청아는 천월보다 말이 통했고, 젊고 예쁜 데다가 목소리도 나긋나긋했다.
‘설마 몽 주인과 애인 사이는 아니겠지?’
하지만 그녀와 몽무애가 함께 서 있는 장면을 상상하자 어쩐지 청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의 눈빛이 이상해졌다. 청아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더는 묻지 않고 천월을 데리고 얼른 떠나갔다.
그녀들이 떠난 뒤, 양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얼음 속에서 자고 있는 소안을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한참 바라보던 그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소안의 몸 밖에 있는 얼음층 위에 가져다 댔다. 순간 양준의 신식이 폭발했다.
합환공의 세 번째 단계는 심심상인으로 신혼의 융합이었다. 양준과 소안은 헤어질 당시, 이미 심심상인 단계에 이르렀었다. 다만 여태까지 신혼 교류로 쌍수공법을 펼쳐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지금, 그는 이 방식으로 소안과 연락을 시도해 볼 수밖에 없었다.
양준은 가까운 거리에서 끊임없이 신혼을 내보내 소안을 불렀다. 그는 두 손으로 진원을 미묘하게 방출했다. 진원은 기괴하고 두꺼운 얼음층을 뚫고 소안의 경맥 안에 주입되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소안은 정말 모든 감각을 잃은 것처럼 몸도, 의식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의 그녀는 깊은 잠에 빠진 얼음 인형 같았다.
양준은 조급해하지도, 실망하지도 않고 이처럼 따분하고 단조로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는 소안과 자신의 깊은 관계라면 충분히 빙신쇄심의 봉쇄를 뚫고 그녀와 정신적 유대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