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4장. 신혼 융합
시간이 지나고 빙종은 예전의 고요함을 회복했다. 입성 경지의 고수들은 소안이 잠들어 있는 빙산 안에서 뜨거운 기운이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청아의 당부 때문에 찾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열흘, 한 달, 두 달이 지났다.
뜨거운 기운은 줄곧 끊기지 않았고, 수시로 활짝 피어오르기도 했다. 그들은 양준을 좋게 보지 않았으나 그의 끈기와 의지력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 청아와 천월은 그쪽 빙산으로 시선을 던진 채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기도 했다.
*
빙실 안,
양준은 기계적으로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진원과 의념이 시시각각 소안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처음 며칠 동안에는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서서히 심상치 않은 기척이 감지되었다. 한 가닥의 신식이 그의 부름에 대답하려고 했지만, 시종일관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를 감지한 양준은 기운이 나서 열성을 다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젠 그마저도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다.
순간 신식은 어둠을 감지했고, 마치 끝없는 나락으로 빠진 것처럼 방향을 잃고 말았다. 살을 에는 한기가 신혼에서 느껴졌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멀리 바라보자 주변은 끝없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마음까지 시리게 만드는 한기만이 또렷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곳은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양준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어렴풋하게 들을 수 있었다. 흠칫 놀란 그는 그제서야 여기가 소안의 정신 세계라는 것을 알아챘다.
빙신쇄심을 펼친 그녀는 자신의 모든 감각을 가두었다. 그녀의 정신 세계는 어둡기만 했다. 하지만 무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 양준의 부름에 대답하려 했으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어둠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양준은 쉬지 않고 열심히 찾아 다녔다. 하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그의 신식은 미친 듯이 용솟음치며 어둠의 공간을 가르고 사방팔방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했다. 그러자 한 곳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이 전해졌다. 양준은 제자리에 멈춘 채, 눈을 감고 감지해 보았다. 잠시 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앞쪽 어둠 속에서 옅은 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양준은 씩 웃었다. 그의 신혼 영체는 빠른 속도로 빛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바로 소안의 신식의 힘이었다.
빛은 점점 더 밝게 빛났다. 양준이 빛을 가로질러 지나가자 어둠이 한순간에 걷히며 주변이 환해졌다. 이윽고 그는 눈에 들어오는 광경에 깜짝 놀랐다.
그곳은 너무나 익숙한 곳으로, 바로 능소각이었다. 그가 예전에 살던 오두막, 소안의 다락방, 공헌당 등 익숙한 건물들이 있었다. 심지어 길도 똑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사람이 한 명도 없이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도처에 얼음이 드리워져 있어 차갑기 그지없었다.
여기는 소안의 정신 세계였다. 모든 것은 그녀의 생각과 뜻대로 구성될 수 있었다. 양준의 식해 중 오색 온신련이 오색 섬으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소안의 정신 세계에서 능소각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그녀가 문파에 있던 시절을 그리워했기에 무의식중에 정신 세계를 이렇게 꾸민 것이었다. 이는 그녀가 일부러 만들어 낸 모습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양준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도 여전히 소안의 종적을 찾지 못했다.
제자리에 서서 한참 생각해 본 양준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곧 소안이 어디에 있을지 알아차렸다. 그의 신혼 영체는 오랫동안 걷지 않았던 길에 다시 올라섰다. 그는 문파 안의 여러 길을 가로질러 능소각 뒤쪽에 있는 곤룡골에 도착했다.
거대한 곤룡골 옆에는 과일 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의해 흔들리고 있었는데, 새빨간 열매가 몇 알 달려 있었다. 나무들은 양준이 직접 심은 것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사주가 곤룡골에서 빠져나올 당시, 나무는 훼손되었다. 하지만 지금 소안의 정신 세계에서는 그대로 자라고 있었다.
과일 나무 옆에 선 양준은 한참 동안 추억에 잠겨 있다가 몸을 날려 아래쪽으로 뛰어내렸다. 이내 반쯤 내려가다가 익숙한 몸놀림으로 곤룡골의 암벽에 난 동굴로 들어갔다.
그곳은 양준의 동굴이었다. 아직 힘이 약할 때, 그는 무진 애를 써서 이곳에 동굴을 만들었었다. 동굴 속의 암석 하나하나는 모두 그가 진원으로 힘들게 파낸 것이었다. 동굴은 방 두 개의 크기로 크지 않았다. 바깥 쪽에 있는 방은 양준이 평소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련하는 곳이었고, 돌 침대가 놓인 안쪽 방은 휴식을 취하는 곳이었다. 하응상은 늘 돌 침대에서 잠깐씩 쉬곤 했었다.
바깥 방을 가로질러 안쪽 방으로 들어간 그는 돌 침대에 누워 있는 익숙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신 세계에서도 소안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빙종의 비전 공법을 펼친 뒤, 그녀의 신식도 봉인되었던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양준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천천히 다가간 양준은 돌 침대 옆에 멈춰 서서는 천천히 쭈그리고 앉았다. 그는 깊게 잠든 소안을 한없이 부드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누군가 왔다는 것을 느낀 건지, 소안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다가 잠시 뒤 입가에 홀가분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긴 속눈썹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순간, 그녀는 눈을 번쩍 뜨고 자신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양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소안은 입을 다문 채 생긋 웃었다. 그녀의 미소에 주변의 추위가 가시는 것 같았다.
“소안……!”
양준은 입을 떡 벌렸다.
“허락 없이 함부로 남의 식해에 들어오다니. 용기가 대단하네.”
소안은 양준을 흘겨보며 이를 살며시 깨물었다.
“어… 어떻게 깼어요? 빙신쇄심을 펼친 거 아니었어요?”
양준은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
소안이 천천히 일어나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맞아. 하지만 빙신쇄심 상태에 들어가기 전에 금제를 걸었거든.”
“어떤 금제요?”
“만약 네 신식이 내 식해에 들어와 날 찾는다면 잠깐 깨어날 수 있도록.”
“잠깐 깨어난다고요?”
“그래. 신식만 잠깐 깨어나는 거지, 몸은 여전히 빙신쇄심 상태를 유지하는 거야. 이건 천월 장로님도 모르실 거야.”
소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는 빙신쇄심을 확실하게 각성해 갖가지 묘한 기능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월은 그녀가 가장 기초적인 빙신쇄심만 펼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 건가요?”
양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수련하면 더 빨라. 사제도 더 강해졌구나. 내가 열심히 수련하지 않으면 괜히 사제의 짐이 될 수도 있잖아.”
소안은 양준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말했다. 양준은 실소하고 말았다. 그제야 그는 소안이 왜 빙신쇄심을 펼쳤는지 이해가 되었다.
“혹여라도 다른 사람이 사저의 식해에 들어온다면요?”
양준은 갑자기 무시무시한 가능성이 떠올랐다. 소안은 깊은 잠에 빠져 바깥 세상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만약 누군가 나쁜 의도로 그녀의 식해에 들어온다면 그녀는 전혀 반항을 못할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은 내 식해에 들어올 수 없어. 사제만 가능한 거야. 어쩌면 대단한 고수들은 내 신식의 방어를 파훼할 수도 있겠지. 정말 그렇게 되면 그자와 같이 죽어야지. 절대 그자가 어떤 짓도 못하게 할 거야.”
소안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뭔 소리예요.”
양준은 괜히 두려운 마음이 들어 소안을 질책했다. 소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손을 뻗어 양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네.”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줄곧 보살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생하지 않았어요.”
“그럼 됐어. 바깥 세상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어?”
“사저가 잠든 지 일 년밖에 안 지났어요.”
“겨우 일 년인데… 벌써 찾아왔네…….”
소안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한테 상을 줘야 하지 않겠어요?”
“어떤 상을 받고 싶은데?”
“사저 생각에는요?”
소안의 하얀 목덜미가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그녀의 눈에도 물기가 촉촉해졌다.
“우리 합환공 세 번째 단계의 수련을 해 본 적이 없죠?”
양준은 뜨거운 눈길로 소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짙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사제……!”
소안은 당황하며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세 번째 단계는 신혼의 융합이었다. 소안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진작 양준과 실질적인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하지만 신혼 융합까지 하려니 괜히 주저되었다. 신혼이 융합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일말의 비밀이 없이 모든 것을 공개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소안……!”
양준은 다짜고짜 소안의 손을 덥석 잡고는 끊임없이 주물렀다. 그의 두 눈은 눈밭에서 먹이를 찾는 늑대처럼 시퍼런 빛을 띠고 있었다. 소안은 손을 빼는 척만 하다가 곧 얌전해졌다.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입술을 깨문 채, 돌 침대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양준도 더는 눈치 보지 않고 돌 침대에 뛰어올라 소안과 마주하여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잡은 채, 음탕하게 웃었다.
전설로만 들어오던 혼교가 아닌가. 양준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혼교는 육체의 융합보다 더 즐거운 것으로 그 쾌감은 중독성이 강해 한 번 해 보면 헤어나올 수가 없다고 했다.
“시작하죠.”
양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소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합환공을 운행했다. 다음 순간, 둘의 신혼 영체가 갑자기 반딧불로 바뀌더니 석실에 흩뿌려졌다. 반딧불은 한데 엉켜서 서로 쫓고 쫓겼다. 어렴풋하게 음란한 소리가 천지간에 울려 퍼졌다.
양준은 취할 것만 같았다. 마치 꿀 단지에 빠진 것처럼 달콤함에 흠뻑 취했다. 심신의 즐거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를 들뜨게 만들었다. 육체적인 접촉은 없지만 이런 쾌감은 전해 듣던 것보다도 훨씬 더 강했다.
소안의 신혼은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신혼의 접촉에 따라 튀어오르는 불꽃에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신혼 깊숙한 곳에 들어갔지만 상대방의 비밀을 훔쳐보지는 않았다. 설령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고 해도 말이다.
두 사람은 완벽한 영혼의 융합에 흠뻑 빠져서 육신을 넘어선 정신적 쾌감을 만끽했다. 그리고 신혼이 융합하는 과정에서 둘의 신혼 영체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