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27화 (726/853)

제 727장. 골족

하늘에서 천호는 표정이 복잡하게 바뀌더니 물었다.

“자네, 이걸 어디에서 찾았나?”

“이곳과 반나절 정도 거리가 떨어진 빙산 안에서요. 왜 그러십니까?”

양준이 되물었다.

천호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그는 문득 하늘을 향해 휘파람을 불렀다. 휘파람 소리에는 짙은 경고의 뜻이 배어 있었다.

양준의 눈이 반짝였다. 자신이 뭔가를 잘못한 듯했다. 어쩌면 무의식중에 빙종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얼음에 봉인된 건 누구의 해골이지? 왜 천호는 강한 적이라도 맞닥뜨린 것 같은 얼굴을 하는 거야?’

천호는 경고음을 내는 동시에 신식으로 얼음을 봉인하며 경계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의 휘파람 소리에 빙종은 사람들로 떠들썩해졌다. 청아를 선두로, 초범 경지 이상의 고수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무슨 일인가?”

청아는 도착하자마자 급히 물었다.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천호가 이처럼 긴장할 리가 없었다. 그녀는 금세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챘다.

“따라오시죠.”

천호는 신속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온몸의 진원은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게 모아둔 상태였다. 양준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빙종의 사람들을 따라 내려갔다.

땅 위에서 빙종의 모든 이들은 시커먼 해골이 봉인된 얼음을 둘러싸고 있었다. 적지 않은 이들이 미간을 찌푸린 채, 해골을 훑어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양준처럼 영문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청아와 다른 입성 경지의 장로들은 해골을 보는 순간, 안색이 확 바뀌었다.

“다들 물러서게.”

청아가 다급히 명령했다.

초범 경지의 고수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더 묻지 않고 청아의 분부에 따라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곧 얼음 주변에는 청아와 네 명의 장로, 그리고 양준까지 여섯 명만 남게 되었다.

“어디에서 난 것인가?”

무거운 표정의 청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녀석이 가져온 겁니다.”

천호는 양준을 가리켰다.

“양준, 어디에서 찾은 건가? 또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나?”

청아는 자세히 물었다.

그녀의 진지한 모습에 양준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다급히 전에 벌어진 일들을 낱낱이 말해 주었다.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왜 그러십니까? 빙종의 제자가 아닙니까?”

양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인데 빙종에 골칫거리를 만들어 주었으니, 그도 난감했다.

“이런 마귀가 어떻게 우리 빙종의 제자란 말인가?”

천호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러고는 뼈에 사무치는 증오를 드러냈다.

“마귀라고요? 이 자가 빙종과 사이가 나쁜지 몰랐습니다. 그저 사고가 난 빙종의 제자라고 생각했지요. 아니면 제가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겠습니다.”

양준은 깜짝 놀라 말했다.

“건드리지 말게.”

청아는 다급히 양준을 저지하며 고개를 저었다.

양준은 실소를 터뜨렸다.

“지나치게 긴장한 거 아닙니까? 살아 있을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죽었는데 왜 그리 경계하십니까?”

“누가 저 자가 죽었다고 했나?”

천호가 콧방귀를 뀌었다.

양준도 웃음기를 거두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그는 죽지 않았네. 살아 있다고.”

천월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양준은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니 다들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사실인 모양이었다.

“죽지 않았다고요? 하지만 피와 살도 없이 해골과 경맥만 남았는데 어찌…….”

청아는 가볍게 숨을 들이쉬며 양준의 말을 잘랐다.

“세상에는 신기한 생명체가 많다네. 누구도 그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지만 기이한 생명체에는 피와 살로 만들어진 육신보다 더 강한 힘이 들어 있다네.”

양준은 문득 보옥 속의 진령을 떠올렸다. 보옥 속의 진령도 역시 생명체였지만, 육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 제대로 성장하면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을 실력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청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금방 받아들였다.

“하지만 긴장할 필요도 없다네. 이 녀석은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는군.”

청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장로들은 그제야 한시름을 놓았다.

“양준, 자네가 가져온 것이니 처리를 좀 부탁하네.”

청아는 또 양준을 바라보았다.

“네, 분부하십시오.”

“이 자를 불태우게.”

청아는 앞에 놓인 얼음덩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양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원을 돌렸다. 그러자 뜨거운 기운이 얼음을 감쌌다. 이내 얼음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녹아내렸다. 곧 얼음에 봉인되었던 해골이 드러났다. 양준이 힘을 더해 그것을 불태우려는 순간, 난폭하고 매서운 기운이 해골에서 전해졌다.

양준은 당황하다가 곧 안색이 크게 변했다. 해골의 두 눈구멍에서 마치 사람의 눈처럼 녹색의 빛이 반짝이며 위험한 기운이 내비쳤다. 동시에 해골이 기괴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몸부림을 치는 듯했다.

청아의 얼굴이 싸늘해지더니 서둘러 기운 몇 가닥을 쏘아 해골을 땅에 고정시켰다.

양준은 진원을 더욱 난폭하게 내뿜었다. 곧이어 귓가에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잔인하고 난폭한 의념이 사람들의 주변을 맴돌더니 머릿속으로 들어가 심신을 어지럽히려 했다. 빙종의 입성 경지 무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양준 또한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줄곧 그를 주목하고 있던 청아는 깜짝 놀랐다. 양준은 얼마간 영향을 받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귓가에서 맴도는 울부짖음은 갈수록 더 처량해지고 급박해졌으며 깊은 절규가 배어 있었다. 이윽고 울부짖는 소리가 점차 약해지더니 곧 사라졌다. 시커먼 해골은 드디어 불이 붙더니 한순간에 재가 되었다.

양준은 기이한 광경을 바라보며 현실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여태까지 육신이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종주님,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양준은 미간을 좁히고 청아를 바라보았다.

“뭘 그런 걸 꼬치꼬치 묻나?”

천호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청아는 손을 내젓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나도 아는 게 많지 않네. 빙종의 선조들에게서 들은 건데, 이는 아마도 골족(骨族)이라는 종족일걸세.”

“골족이요?”

“그들은 피와 살이 없이 해골과 경맥만 있지. 하지만 그들 중의 고수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네. 빙종이 쇠약해진 것은 골족과 연관이 있다네. 골족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네. 골족 말고도 다른 기괴한 생명체들이 있었는데, 오래전에 통현대륙에 괴이쩍게 나타났다고 하더군. 전에도 말했다시피 변고가 나타나 큰 세력들이 몰락했다고 하지 않았나? 기괴한 생명체들이 나타난 것과 큰 연관이 있네. 우리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도 일부분은 그들 때문일세. 선조들은 일부 골족이 여기로 도망쳐 온 것 같다고 하셨네. 우리는 이곳을 지키면서 그동안 봉인된 골족을 찾아내 적지 않게 죽였다 하더군. 하지만 내가 종주가 되고 나서부터는 이번이 처음 발견한 것일세. 아마 그중 달아난 자들도 있는 듯하군.”

“그것 참 재미있는 일이군요.”

양준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이건 재미있는 일이 아니네. 자네가 오늘 발견한 것은 힘이 약한 골족이었기에 망정이지, 강한 자라도 만났다면 오늘 빙종은 큰일이 생겼을 것일세.”

천호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런데도 여기에 남아 계십니까?”

양준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골족에는 강한 자도 있지만 다 강한 것은 아니네. 그리고… 우리도 약하지 않다네. 우리가 이곳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밖에 나가 말썽을 부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일세.”

청아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대륙 전체를 위해 묵묵히 희생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그저 선조들의 유언을 따르는 것뿐일세. 게다가 밖은 너무 시끄러워 이곳을 떠나고 싶지도 않다네.”

청아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양준은 존경심이 들었다.

“골족의 잔당이 남아 있을 수도 있으니 사람을 데리고 주변을 샅샅이 뒤져 보게.”

청아는 네 명의 장로들에게 분부했다.

“네!”

장로들은 일제히 대답하고는 초범 경지의 고수들을 불러서 각각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양준은 제자리에 서서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소안이 여기에 있으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걱정하지 말게나.”

청아는 멀리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있는 한, 소안은 괜찮을 거네. 또 골족이 있다고 해도 아무 짓도 못할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양준은 저도 모르게 안심이 되어 얼른 검은 책 공간에서 얼음 구슬을 꺼내 청아에게 건넸다.

“이건 제가 빙산에서 찾은 겁니다. 소안이 얼음 속성 공법을 수련하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하더군요.”

“한빙옥정?”

청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깜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니지. 이건 한빙옥수(寒冰玉髓)군.”

“그게 뭔가요?”

“바깥층은 한빙옥정이고, 안의 액체야말로 정수(精髓)로 한빙옥수라네. 이것을 찾아내다니, 참 운이 좋군. 이게 있으면 소안의 실력은 더 빨리 향상될 것일세. 이건 얼음 속성의 공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물이라네.”

청아는 놀란 눈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걸 내게 주면 내가 꿀꺽할까 걱정되지도 않나? 이건 나에게도 크게 도움이 된다네.”

양준은 싱긋 웃더니 소탈하게 말했다.

“꿀꺽하셔도 괜찮습니다. 소안이 여기서 종주님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는데 제가 종주님께 드리는 감사의 선물이라고 치죠, 뭐.”

“말은 참 잘한다니까.”

청아는 그를 흘겨보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 소안이 깨어나면 반드시 전해주겠네. 난 어린 후배의 물건을 탐내는 사람이 아닐세.”

“소안을 잘 좀 부탁드릴게요.”

양준은 진지한 얼굴로 공수했다.

청아는 문득 그의 의중을 깨달은 듯, 물었다.

“한 번 더 보고 가지 않겠나?”

“아니요. 소안이 무사하면 됩니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떠나갔다.

“몽무애를 만나면 전해 주게나. 내게 진 빚은 언젠가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청아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양준은 손을 크게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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