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28화 (727/853)

제 728장. 바다 위 큰 배

바다 위에서 작은 빙산 하나가 정처없이 떠돌고 있었다.

양준은 빙산 위에서 가부좌를 튼 채, 편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소안을 찾았고 몽무애와 하응상도 무사하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그의 마음은 전보다 훨씬 느긋해졌다. 소안이 빙종에 남았지만 청아와 장로들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면 그녀의 실력은 더 크게 향상될 것이 분명했다.

기분이 좋아진 양준은 갈 길이 바쁘지 않았기에 빙산을 타고 진원을 조금씩 돌려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제 그에게는 더는 걱정거리가 없었다. 유일하게 해야 할 일은 천소종으로 돌아가 최대한 빨리 연단술을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마 일족을 구할 수 있는 성급 단약을 만든 다음, 설산에 있는 관노를 찾아가면 되었다.

양준은 이서의 가르침을 받고 나서 연단술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다. 또한 신식의 불꽃으로 연단하면 진원을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간편했다. 그리고 소안과 함께 신혼 융합을 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는데, 멸세마안이 강제로 흡수한 고수들의 깨달음과 결합해 천도와 무도를 새롭게 각성하게 되었다. 지금 양준의 머릿속에서는 각종 천도와 무도의 깨달음들이 빛처럼 맴돌고 있었다. 생각은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교차되었고, 그는 자신만의 천도와 무도를 각성했다. 그의 표정도 쉼 없이 바뀌었다.

드넓은 바다에서 양준은 여정 내내 아무런 지장도 받지 않았다. 그는 시간도, 장소도 잊은 채, 심오한 무도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그는 조금씩 강해져 가고 있었다.

빙산 아래에서는 이따금 몸집이 거대한 바다 요수가 지나갔지만, 양준은 기운을 모두 숨긴 탓에 요수들에게 발각되지 않았고 따라서 골치 아픈 일도 없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발 아래에서는 파도가 일렁였다. 양준은 통현대륙에 온 뒤, 처음으로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한두 달이 지나서야 양준은 천천히 눈을 뜨고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이번 깨달음으로 그의 실력은 적지 않게 향상되었다. 또한 초범 경지 이후의 경지에서 한 단계를 돌파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되었다.

초범 경지의 고수들은 모두 각종 고난을 겪고 생사의 문턱을 수없이 넘나들어야만 일반인을 뛰어넘는 경지를 가질 수 있었다. 이를 해내지 못한 사람들은 평생 무능하게 살거나 일찍 요절할 수밖에 없었다.

양준은 깊은 깨달음을 얻으면서 신식의 불꽃의 쓰임새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신식의 불꽃은 신식이 변이된 것이었다. 공격이나 방어를 막론하고 모든 면에서 일반 신식보다 훨씬 강했고, 또한 속임수로도 쓸 수 있었다. 그의 신식의 힘은 이미 충분히 강했다. 이처럼 강한 신식의 힘으로 자신의 몸을 감싼다면 외부인에게 잘못된 정보를 흘릴 수도 있었다. 심지어 상대가 그의 실력을 낮게 평가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뜻밖의 수확을 얻게 될 수도 있었다.

직접 속임수를 펼쳐 보니 매우 편리했다. 진원의 운행을 살짝 통제하고 신식의 힘으로 거짓 정보를 만든다면 염탐하는 이들을 가뿐히 속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수단은 어디까지나 꼼수로, 신식의 힘이 그보다 훨씬 강한 고수는 속이기 어려울 듯했다. 신식의 힘이 그보다 강하면 한눈에 꼼수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양준은 이번에 얻은 성과에 대해 대체적으로 만족했다.

빙산 위에 서서 기지개를 켠 양준은 멀리 내다보았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바다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내 그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속으로 ‘아뿔싸’를 외쳤다.

양준은 수련하면서 의식적으로 바다 요수와 미지의 위험을 피했지만, 수련에 심취된 나머지 현재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원래 그는 수신전으로 돌아가 수령과 만날 생각이었다. 수령이 그를 도와준 것도 있었고, 그녀는 그의 많지 않은 친구 중 한 명이었다. 그녀와 만나서 감사 인사를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수신전에서 다시 천소종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계획에는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양준은 빙산에 서서 잠깐 고민에 잠겼다가 곧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람을 만나 방향을 묻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일이었다. 그는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느긋한 마음으로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출렁이는 바닷물 속에는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지나갔다.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오색찬란한 산호들도 보였다.

사흘 뒤, 양준은 따분한 얼굴로 한가하게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방출된 신식에서 갑자기 생명의 기운이 그의 경계 범위 속으로 들어온 것이 감지되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서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멀리 바다 위, 검은 점 하나가 옆으로 몇십 리 되는 곳에서 지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큰 배였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배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다에서 운행할 수 있는 배는 보통 배가 아니라 귀한 광물을 더해 특별한 기법으로 만든 것이었다. 비보의 흔적이 보이는 큰 배는 방어력이 강한 비보와 견줄 만했다. 이러한 배만이 바다 요수의 난폭한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수신전에는 이런 배가 적지 않게 있었다.

지금 보이는 배는 양준이 전에 탔던 배보다 훨씬 화려했고, 뱃머리가 높이 쳐들린 채 파도를 가르며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배 위에는 산뜻한 색상의 많은 깃발들이 펄럭이며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양준은 큰 배와 자신이 탄 빙산의 속도와 방향을 가늠해 보고, 조금 더 지나면 십몇 리 떨어진 곳에서 서로 스쳐 지나게 될 거라고 판단했다. 그는 더욱더 많은 진원을 내뿜어 타고 있는 빙산의 속도를 올렸다.

잠시 뒤, 양준은 신식을 거두었다. 그는 감히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지만, 배 위에 입성 경지의 고수는 없고, 초범 경지는 몇 명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초범 경지 3단계의 고수도 있었다.

양준은 서혼지충을 가지고 있기에 대담해졌다. 그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빙산에서 일어선 뒤, 크게 소리를 지르며 상대의 주의를 끌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뱃머리에 사람 그림자 몇 개가 나타났다. 그들은 양준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손가락질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를 발견한 듯했다. 하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아서는 양준을 그냥 무시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배의 속도도, 방향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렵사리 지나가는 배를 봤는데 당연히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바다에서 갈 길을 잃은 그로서는 누구에게든 방향을 물어야만 했다.

곧이어 양준이 탄 빙산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더니 큰 배를 향해 직진했다. 뱃머리에 서 있던 사람들은 안색이 바뀌면서 너도나도 소리를 질렀다.

기척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놀라 갑판 위로 뛰어와 구경했다. 그중에는 초범 경지의 고수도 있었다. 눈앞의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한 초범 경지의 고수는 화를 내며 손을 내저었다.

“어디서 온 녀석이기에 이토록 방자하게 구는 것이냐? 저놈이 탄 빙산을 깨부숴라. 감히 성지의 배에 이런 짓을 하다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군. 우선 목숨은 살려 두고, 사로잡아서 정체가 뭔지, 어찌 된 상황인지 물어라.”

초범 경지 고수의 명령에 사람들은 팔을 걷어붙였고, 뱃머리에 서 있던 사람들이 무공과 비보의 위력을 선보였다. 몇 갈래의 기운이 빛의 속도로 뱃머리에서 쏘아졌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상대가 이렇게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을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얼른 바다 속으로 숨어들었다.

굉음과 함께 한두 달 동안 양준을 태우고 다녔던 빙산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면서 얼음덩이가 바다에 흩뿌려졌다. 배에 있던 사람들은 두리번거리며 양준을 찾았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하게 되자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사람은?”

초범 경지의 고수도 순식간에 양준을 놓치게 되자 일그러진 표정으로 물었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때, 한 제자가 말했다.

“온몸이 가루가 된 건 아닐까요? 나이도 어려 보이고 실력도 강하지 않은 것 같던데요.”

“허튼소리! 혼자서 이렇게 큰 바다에서 떠도는데 실력이 낮을 리가 있겠어? 적어도 신유 경지는 될 것이다. 정말 가루가 되었다면 바다 위에 피를 흘린 흔적이 없을 수 있겠느냐? 녀석은 어딘가에 숨은 게 분명해. 잘 찾아봐.”

초범 경지의 고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찾지 않아도 됩니다.”

나지막하지만 화가 난 듯한 목소리가 뱃전에서 들려왔다. 곧이어 온몸이 흠뻑 젖은 양준이 갑판 위로 기어오르더니 우뚝 서서는 미간을 찌푸린 채 좋지 않은 낯빛으로 물었다.

“당신들과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왜 갑자기 저를 공격하는 겁니까?”

“널 공격한 게 아니라 네 발밑의 빙산을 깨뜨렸을 뿐이다. 정말 널 공격했다면 네가 어찌 이리 무사하게 여기에 서 있겠느냐?”

초범 경지의 고수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도 방금 전의 공격을 보아서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를 공격한 게 아니었고 살의도 없었다. 아마도 그의 행동이 상대방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모양이었다. 하지만 양준도 빙산으로 그들의 배와 부딪칠 생각은 없었다. 지금 해명해도 아무 소용이 없기에 그는 말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

“물어볼 것이 몇 가지 있으니 솔직하게 대답하거라. 숨기는 것이 있다면 지금 바로 널 물고기밥으로 던져 버릴 테니까.”

초범 경지의 무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원을 돌려 몸의 물기를 말렸다. 그리고 적의가 전혀 없는 온순한 모습을 보였다.

“넌 누구고 왜 바다 위의 빙산에 있었던 것이냐?”

“저는 별 볼 일 없는 일반인으로, 조심하지 않아 바다에서 길을 잃었을 뿐입니다. 물에 빠져 죽지 않으려고 빙산에 올라갔던 것이고요.”

“쳇!”

초범 경지 무인은 콧방귀를 뀌었다. 양준이 자신의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아 언짢은 듯한 눈치였다.

“그럼 성지의 배에는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냐?”

“제가 여러 날 동안 기다렸지만 이 배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방향과 위치를 묻고 싶었을 뿐입니다. 가능하다면 저를 육지로 데려가 아무 곳에나 내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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