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1장. 오래된 유적지
통현대륙에 온 지도 3~4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양준은 여전히 이곳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직원의 말을 듣고 나서야 양준은 구천성지 성녀의 행차가 세상이 놀랄 만한 큰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구천성지에는 그가 본 성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녀는 모두 네 명으로 각각 다른 방향으로 행차한다고 했다. 성녀들의 여정은 인간이 사는 지역을 거의 모두 거치고 있었다.
성녀들은 어려서부터 구천성지에서 자란 이들로, 십몇 년 내지 이십 년 동안 양성한 다음 그중에서 고르고 고른 여인들이라 하나같이 젊고 아름다웠다. 또한 그녀들은 구천성지의 특별한 공법을 수련한다고 했다.
그녀들이 이번에 행차한 가장 큰 목적은 구천성지의 차기 성주를 찾기 위해서였다. 지금 구천성지의 성주는 나이가 많아 곧 유명을 달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네 명의 성녀가 이리 떠들썩하게 행차하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녀들이 어떤 방법으로 성주를 찾는지 전혀 몰랐다. 다만 구천성지의 성주는 모두 성녀들이 밖에서 찾아온 이들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아홉 명의 전 성주들은 성녀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몸담았던 직업도 다양했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미 천하에 이름을 드날린 젊은 호걸이었고, 어떤 이는 평범한 장사꾼이었다. 또 어떤 이는 별 볼 일 없는 무능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성녀들에게 선택받아 구천성지로 들어가면 그들은 하나같이 하늘이 놀랄 만한 큰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그들은 선택받았을 때 나이도 열몇 살부터 육십 살까지 각각 달랐다.
성녀들은 남다른 안목을 가진 듯했다. 바로 이 때문에 구천성지의 성녀가 행차하는 곳마다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자신을 나타내려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정말 성녀에게 선택받는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
사람들은 성녀가 어떤 방식으로 성주를 선택하는지, 성녀의 옆을 지키는 고수들이 이미 섬 전체를 감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에, 다들 최선을 다해 완벽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양준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여태까지 세상에 이런 신기한 일이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는 게 많네.”
“다들 아는 일입니다. 섬에서 아마 손님만 모르실 겁니다.”
“넌 다른 생각이 없어?”
양준은 의미심장하게 직원을 바라보았다. 성주로 선택되기 전까지는 대다수가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했으니 눈앞의 직원에게도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
“있죠. 왜 없겠어요? 하지만 성녀가 어떤 인물입니까? 제가 어찌 그분과 어울리겠어요? 그분이 절 마음에 들어한다면 제 복이지만, 저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 전 살던 대로 살려고요. 연기할 줄도 모르고.”
“대단하네!”
양준은 직원의 덤덤한 태도를 보고 놀란 얼굴로 공수했다.
“운이 피길 바라.”
“덕담 감사합니다.”
직원은 활짝 웃는 얼굴로 일하러 갔다.
여인숙에서 한참 먹고 마신 양준은 자신이 궁금하던 정보를 알아낸 뒤, 자리를 떴다. 지금 그는 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 없었고, 또한 구천성지의 성녀가 성주를 찾는 일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는 성녀가 도대체 어떤 사람을 찾게 될지 호기심이 동해 결국 남아서 구경하기로 했다.
근방의 스무 개가 넘는 섬은 모두 떠들썩했다. 성녀가 온 뒤로 젊은 남자들은 하나같이 들떠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양준이 이곳에 온 지도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그는 크고 작은 섬을 돌아다니며 각 곳의 상황을 살펴보고 약재도 많이 샀다. 안타깝게도 그가 주목하고 있는 일은 아직 진척이 없었다.
성녀는 이곳에 도착한 뒤 자취를 감추었고, 따라서 신비한 성주를 찾는 일도 감감무소식이었다.
*
양준이 주변의 섬들을 돌아보고 있는 사이, 그중 한 섬의 궁전 안에서 전씨는 공손하게 성녀 앞으로 다가가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전하, 아직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까?”
성녀는 고개를 저었다.
전씨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이미 저희가 찾은 여덟 번째 곳입니다. 성주께서 이곳에 안 계시는 모양이군요. 며칠 더 기다려 보고 다음 장소로 떠납시다.”
성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어깨에 짊어진 책임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와 다른 세 자매들 중 누군가는 사람들 속에서 차기 성주를 찾아내야 했다.
“전 아저씨, 이곳에 온 지 며칠이 되도록 여태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오늘은 패아랑 나가서 구경하고 싶어요. 안 될까요?”
성녀가 물었다.
전씨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다만 전하께서는 좀 꾸미는 게 좋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알아서 할게요.”
전씨의 허락을 받은 성녀는 기분이 훨씬 좋아진 듯했다. 한바탕 꾸민 뒤, 두 여인은 기쁜 얼굴로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녀들의 뒤에서는 초범 경지 2단계의 고수가 몰래 호위하고 있었다.
*
양준이 점포에서 진귀한 약재들을 찾고 있는데,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놀라운 원기 파동이 전해지더니 굉음과 함께 섬 전체가 흔들렸다. 섬에 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 안색이 크게 변했다. 양준도 표정이 차가워진 채 얼른 점포에서 뛰쳐나와서는 하늘로 날아올라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때, 하늘로 솟구쳤던 물기둥이 바다 위로 천천히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방금 전, 바다 깊은 곳에서 큰 변고가 생긴 모양이었다.
일부 사람들이 바다 위에서 다급히 날아왔고, 또 영문을 모르는 많은 무인들이 그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양준은 편한 기분이 들게 하는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양성 기운으로 방금 전의 변고와 함께 바닷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그쪽으로 날아갔다.
바다 위의 영기는 매우 짙었기 때문에 보통의 경우 양성을 띤 물건이 생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겼다면 평범한 물건이 아닐 터였다. 양준은 무엇이 이런 기운을 내뿜는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바다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사람들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7세가 연맹의 무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해변에 방어선을 만든 뒤, 누구도 다가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외부에서 온 무인들이 많았지만 모두 귀찮은 일에 연루될까 봐 억지로 쳐들어가지 않았다. 다들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양준도 귀를 기울이고 한참 동안 들었으나 쓸 만한 정보는 없었다. 그저 이번 변고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곧 섬에 많은 고수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양준도 본 적 있는 이들이었다. 바로 구천성지의 배가 육지에 도착하던 날, 성녀를 맞이하러 왔던 이들로 7세가 연맹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한데 모여서 낮은 목소리로 뭔가 의논하고 있었는데, 다들 어두운 얼굴을 하고서 이따금씩 외부인들이 모여 있는 곳을 힐끔힐끔 보았다.
양준은 줄곧 지켜보기만 했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양성 기운이 점점 짙어지고 있어, 그는 호기심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양준은 반나절을 기다리다가, 밤에 몰래 바다에 잠입해 살펴봐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바로 이때, 드디어 7세가 연맹의 고수들이 결정을 내린 듯했다. 그중 누런 얼굴을 한 초범 경지의 노인이 외부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그는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서서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좀 전의 변고에 대해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어떤 이는 직접 보기도 했지요. 저희 7세가 연맹은 절대 속이지 않습니다. 멀리서 찾아온 여러분들을 손님으로 생각하고 좋은 것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에 알려드립니다. 이 섬의 아래쪽, 바다 한 곳에서 오래된 유적지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움에 찬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양준의 안색도 바뀌었다.
오래된 유적지라는 말에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누런 얼굴의 노인은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그들의 반응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오래된 유적지가 맞습니다. 전부터 저희 연맹은 무언가를 느끼고 사람을 파견해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금제를 건드려 이렇게 큰 소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돌아온 사람들이 이미 사실을 확인해 주었고요.”
“노친네, 무슨 꿍꿍이야? 설마 우리더러 내려가서 길을 살피게 하고, 당신네 연맹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건 아니겠지?”
모여 있던 이들 중 나름 자신이 영리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떠들어 댔다. 그의 말에 모든 이들이 경계 어린 얼굴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좋은 일을 7세가 연맹에서 이유 없이 외부인들에게 말해 줄 리가 없었다. 그들은 외부인들을 유혹해 유적지를 탐지하려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바닷속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아니면 7세가 연맹은 진작 저희들끼리 내려갔을 것이다.
누런 얼굴의 노인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뜻밖에도 통쾌하게 인정했다.
“그럴 생각이 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저희 7세가 연맹은 스스로 주제 파악을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득을 나누려고 한다면 저희들도 막을 수 없지 않습니까?”
“노친네, 주제를 잘 아는군.”
누군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성녀가 온 뒤로 이곳에는 외부인들이 너무 많았다. 다들 경지가 높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을 막기엔 7세가 연맹의 힘이 부족했다. 그들이 오래된 유적지에 내려가자마자 사람들이 뒤따를 게 뻔했다.
노인이 솔직하게 말하자, 되레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그래서 저희는 의논한 끝에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잘 들어주십시오.”
“시간 끌지 말고 어서 말해 봐.”
“저희 7세가 연맹이 앞장서 아래로 내려가 유적지에 뭐가 숨겨져 있는지 살펴볼 겁니다. 저희와 함께 가고 싶은 분들은 저쪽에 가서 등록하십시오. 혹시라도 이득을 얻게 되면 저희 연맹은 여러분들과 함께 나눌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마다 이득을 챙길 수 있으니, 기분 나쁜 일이 생길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사전에 한마디 귀띔하겠습니다. 유적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이익이 있는 곳에는 분명 위험도 있지요. 저희 연맹과 함께 움직일 분들께서는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겁니다. 혹여 목숨이라도 잃게 되면 저희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