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2장. 왜 나한테 접근한 거야?
누런 얼굴의 노인은 더 길게 말하지 않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옆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의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으나 오래된 유적지라는 말에 모든 이들의 마음이 흔들렸다. 유적지라면 보통 보물이 있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방금 전에 금제를 건드려서 일어난 소동도 다들 알고 있었다. 한데 모여서 의논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더욱 많은 이들은 양준처럼 홀로 서서 경계 어린 눈초리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7세가 연맹도 어쩔 수 없어 이런 대안을 생각해냈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외부인들을 끌어들여 앞장서 탐색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손실을 최대한 줄이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들 역시 유적지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모르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양준은 빠른 두뇌 회전으로 곧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갈까, 말까?’
아래쪽에는 분명 위험 요인이 있었다. 하지만 양준은 짙은 양성 기운의 근원지가 너무나 궁금했다. 지금 양준은 이미 초범 경지가 되었지만 아직 그럴듯한 비보가 없었다. 뼈 방패는 별 세계 소용돌이에 의해 훼손되었고, 지금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비보는 식해 안의 신혼 단검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혼 단검은 천급 상품밖에 되지 않아 중도에서나 가치가 있지,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만약 양성의 기운을 내뿜는 물건이 대단한 비보일 경우, 양준의 진원 속성과 일치하기에 그것을 흡수한다면 실력이 적지 않게 향상될 게 뻔했다. 비보가 아니라 진귀한 재료라고 해도 그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양준은 결국 바다 밑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와 같은 결정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인파 속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와 7세가 연맹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중에는 양준도 있었다. 하지만 더욱 많은 이들은 여전히 머뭇거리며 지켜보기만 했다.
상황을 보고, 줄곧 침묵을 지키던 누런 얼굴의 노인이 갑자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네요. 이번 일에 7세가 연맹이 앞장서는 것은 맞으나 인원 제한이 있습니다. 무제한적으로 여러분들을 다 받을 수 없으므로 가문당 서른 명씩만 받겠습니다. 실력은 높을수록 좋지요. 신유 경지 이하의 무인은 빠져 주세요.”
“거 참 노친네, 그런 건 진작 말했어야지.”
인파 속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지켜보기만 하던 무인들은 늦어서 자리를 빼앗길세라 득달같이 몰려들었다. 누런 얼굴의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의 꼼수에 만족하는 듯했다.
7세가 연맹의 사람들이 각각 한 명씩 앞에 서 있었다. 무인들은 따르고 싶은 가문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었다. 일곱 개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적어도 이천 명은 되어 보였다.
양준은 일찍 와서 아무 이름이나 대충 둘러댔다. 그리고 위장한 신유 경지 7단계의 실력을 보여주고 손쉽게 합격한 다음, 다른 곳에서 기다렸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많은 무인들이 7세가 연맹의 고수 앞에서 실력을 선보였으나 대다수는 실력이 약해서 거절당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은 양준처럼 선택을 받았다.
한 시진이 채 안 되어 무인들의 실력 검사가 끝났다. 하지만 선택된 무인들은 누런 얼굴 노인의 예상을 넘어서 거의 삼백 명이 되었다. 그들 중 실력이 가장 약한 이도 신유 경지 7단계였으며, 초범 경지의 고수도 꽤 있었지만 인원수가 열 명을 넘지 않았다.
7세가 연맹의 무인들이 한곳에 모여서 의논을 벌인 뒤에, 누런 얼굴의 노인은 또다시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들의 열정 어린 참여에 감사드립니다. 실력 검사에 통과된 분들은 저희와 함께 바다로 내려갈 겁니다. 대신 나머지는 바닷가에 남아 있기 바랍니다. 이 말을 어기는 사람은 절대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실력도 높지 않았다. 그들이 감히 소란을 피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노인도 아까처럼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쨌든 이곳은 7세가 연맹의 세력 범위였다. 그가 금세 태도를 바꾸는 것을 보자, 탈락한 무인들은 속으로 욕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7세가 연맹의 고수들은 또다시 한데 모였다. 내려갈 준비를 하는 듯했다.
양준은 구석진 곳에 서서 싸늘한 시선으로 주변 사람들의 실력을 탐지했다. 대다수는 그와 같은 행동을 보였다. 아마 서로를 경쟁 상대로 인식하는 듯했다.
양준은 이 상황에 실소를 터뜨렸다. 아직 보물을 찾지도 못했는데 분위기가 이토록 팽팽하다니, 정말 좋은 물건이라도 찾으면 바로 싸움이 터질 게 분명했다.
‘7세가 연맹이 묘수를 두었군.’
그들은 외부인들이 바다로 내려가 살펴보는 것을 막지 못할 줄 알고 일부러 회유책을 쓴 것이었다. 겉보기에는 그들이 외부인들과 함께 유적지의 비밀을 나누는 것 같지만 사실상 외부인들은 서로 견제하느라 바빠 유적지에서 무언가를 하기 힘들었다. 때문에 7세가 연맹의 무인들은 조용히 구경하다가 어부지리를 챙기면 되었다. 즉, 대부분의 이득을 챙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손실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양준은 몰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양준이 한창 상황을 살펴보고 있는데, 문득 익숙한 기운을 담은 향기로운 바람이 옆쪽에서 불어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한 여인이 생글생글 웃으며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던 양준의 안색이 변했다.
“당신은…….”
“쉿!”
여인은 손가락 하나를 세워 입술에 대고 그에게 눈짓했다.
양준은 눈을 껌뻑이다가 신식을 풀어 주변과 눈앞의 여인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낭자, 왜 여기 있나요?”
“저인 것을 어떻게 확신하세요?”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양준은 낮게 웃고는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향으로 여인을 알아본다는 말이 있죠. 여인의 몸에서 나는 향은 각자 다릅니다. 낭자는 용모도 바꾸고 자신의 원래 기운도 감췄지만, 향만은 바꿀 수 없지요.”
“개코네요. 경험이 풍부한 것을 보니 소녀들을 꽤나 홀린 모양이네요.”
여인은 상기된 얼굴로 양준을 흘겨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전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하거든요. 그런 파렴치한 짓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양준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여인은 한참이나 몸을 들썩이며 웃다가 말했다.
“안 믿어요.”
양준은 그녀를 흘겨보았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초범 경지 2단계 무인 두 명이 날아왔다. 두 사람은 신식을 펼친 채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탐지해 보아도 아무 단서도 찾지 못하자 어두운 얼굴로 돌아갔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성녀이신데 이곳에는 왜 오신 거죠? 낭자를 찾고 있는 것 같군요.”
양준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두 고수가 떠난 방향을 가리켰다.
“그쪽을 보지 마세요. 저들은 경계심이 높거든요. 발각되기라도 하면 큰일이에요.”
여인은 다급히 양준의 옷을 잡아당겼다.
방금 전, 여인의 신분을 눈치챈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배 위에 있던 구천성지의 성녀였다. 그녀는 알 수 없는 교묘한 수단으로 온몸의 기운을 완벽하게 숨겼을 뿐만 아니라 용모도 바뀌어 있었다. 여인이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면 양준도 성녀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구천성지의 성녀에게 이런 재주가 있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초범 경지 2단계의 고수 두 명을 따돌리고 몰래 이곳에 숨어든 거군.’
“이곳에 왜 오셨는지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물었다.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궁금증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양준은 콧방귀를 뀌면서 이상한 눈빛으로 성녀를 바라보았다.
성녀는 순간 화를 내며 말했다.
“왜 아무것도 모르는 게 제 발로 죽으러 가는 거 같아? 너처럼 신유 경지 7단계도 갈 수 있는데 나는 왜 안 돼? 실력은 내가 너보다 훨씬 강하거든.”
“이봐, 성녀의 예의와 교양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잖아.”
양준은 입을 딱 벌렸다. 눈앞의 성녀는 전에 봤던 조용하고 부드러운 대갓집 규수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지금의 모습이 그녀의 진정한 모습인 것 같았다.
“무슨 상관이야?! 너를 성주로 선택할 것도 아닌데.”
“나도 성주가 되고 싶지 않거든.”
양준은 입을 삐죽거렸다.
성녀는 갑자기 담담한 낯빛을 하고서 말했다.
“날 폭로하지 마. 널 믿어서 접근한 거야.”
“걱정하지 마. 나도 남의 일에 관심 없어.”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다시 경계하며 물었다.
“그런데 성녀인 네가 왜 나 같은 사람한테 접근한 거야?”
성녀는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미소를 지었다.
“자꾸만 네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넌 신비로운 장막에 감싸인 것처럼 꿰뚫어 볼 수 없단 말이야. 마침 난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거든.”
양준은 안색이 차가워지더니 사악하게 웃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 역시도 성녀의 경지를 알 수 없었다. 그녀와 가깝게 서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는 남이 탐지하는 것을 막는 신비한 힘이 있는 듯했다.
“웃으니 사악해 보이네.”
성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더니 또 한숨을 내쉬었다.
“난 어려서부터 성지에서 자랐어. 이번에 행차 나온 게 처음 성지를 벗어난 거고. 하지만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어서 짜증나 죽겠어. 난 그저 한 번쯤 내 뜻대로 해 보고 싶어서 그들을 따돌린 거야.”
“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 난 남의 일에 관심이 없거든. 유적지에서 나한테 기댈 생각은 하지 마. 정말 위험이 닥치면 남이 구해 줄 거라 생각하지 말고 혼자 알아서 해.”
양준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