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33화 (732/853)

제 733장. 바닷속에 들어가다

양준의 태도가 갑자기 싸늘해진 것을 느낀 성녀는 콧방귀를 뀌었다.

“네가 날 구해줄 거라 기대한 적 없으니까 스스로나 잘 챙겨.”

말을 마친 성녀는 씩씩거리며 한쪽 옆으로 걸어갔다. 더 이상 양준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양준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아래쪽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정말 큰 위험이 있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때 가서 성녀가 계속 옆에 따라붙는다면, 그도 행동하기 불편했다. 그로서는 남의 생사를 신경 쓰지 않고 혼자 다니는 게 훨씬 나았다. 성녀가 전에 그를 배에 남겨 주었지만 어디까지나 오다가다 만난 사이일 뿐이었다. 그에게는 성녀의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없었다. 또한 그가 보기에 성녀는 온실 속의 화초일 게 뻔했다. 그녀는 스스로 재주가 좀 있다 싶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는 듯했다.

‘고생 좀 해 봐야 세상이 험난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오랫동안 기다리고 나서야 7세가 연맹의 무인들은 겨우 의논을 끝냈다. 선택된 외부인들은 노인의 지시에 따라 7개의 대열로 나뉘었다.

양준은 등록할 때 임의로 한 가문을 선택했었는데, 지금 보니 마침 누런 얼굴의 노인이 속해 있는 해(海)씨 가문이었다. 이 대열의 외부인은 마흔 명 정도 되었는데 다들 실력이 낮지 않았고, 초범 경지가 한 명 있었다. 구천성지의 성녀는 다른 가문의 대열에 있었다.

누런 얼굴의 노인은 사람들 앞에 나서더니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전 7세가 연맹 해씨 가문의 호법 해만고(海萬古)입니다. 이번에 제가 책임지고 여러분들을 바닷속의 유적지로 안내하게 되었습니다. 불필요한 사상자가 생기지 않도록 다들 제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경거망동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을 제외하고 저희 해씨 가문에서도 고수 열댓 명을 파견해 함께 움직일 겁니다. 여러분들이 저희 해씨 가문을 선택하신 만큼 저도 최선을 다해 여러분들의 안전을 책임질 것입니다. 하지만 먼저 말은 해두어야겠습니다. 혹시 누군가 모두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그러고는 위엄이 넘치는 눈빛으로 한 바퀴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해만고는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생사는 각자 운에 맡기고 떠납시다.”

해만고는 말을 마치고 가장 먼저 날아올랐다. 마흔 명이 넘는 무인들은 해씨 가문의 고수들과 함께 그의 뒤를 바짝 뒤쫓았다. 이와 동시에 다른 여섯 가문에서도 움직였다.

양준은 날면서 몰래 해씨 가문에서 파견한 무인들을 살펴보았다. 열댓 명밖에 안 되었지만 해만고까지 더하면 초범 경지의 고수가 모두 세 명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신유 경지 정상이었다. 인원은 적었으나 총체적인 실력은 외부인보다 훨씬 강했다. 해씨 가문은 정예들을 파견해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었다. 다른 여섯 가문도 거의 같은 상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바다 위에 이르렀다. 해만고가 손을 내젓자 둥그런 접시 모양의 비보가 나타났다. 은색 빛이 흐르는 비보는 짙은 원기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 영급 비보인 것이 확실했다.

“여러분, 가까이 오십시오. 제가 여러분들을 데리고 아래로 내려가겠습니다.”

해만고가 사람들에게 외치자, 사람들은 다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해만고는 비보에 진원을 주입했다. 그러자 은빛 장막이 그를 중심으로 사방 이십 장 되는 범위를 감싸더니 그의 조종 하에 신속하게 바다 밑으로 잠입했다.

해만고는 대단한 비보나 무공을 펼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보 하나로 한꺼번에 몇십 명을 이끌고 바닷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의 능력에 놀라고 말았다. 조용히 사람들의 안색을 살피던 해만고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표정이 드리웠다.

주변은 온통 새파란 바닷물이었고 아래쪽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짙은 어둠에 사람들의 마음도 불안해졌다. 처음으로 바닷속 구경을 하게 된 무인들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안전감을 찾으려는 듯, 해만고의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섰다.

양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서 밝은 빛들이 보였는데, 이는 다른 여섯 가문의 무인들이 서로 다른 수단을 펼쳐 바닷속 깊은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해만고가 만든 은빛 장막은 견고해 바닷물이 전혀 침투하지 않았다. 가끔씩 장막 옆으로 알록달록한 물고기 떼들이 지나갔다. 사람들은 신기한 듯,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깊이 내려갈수록 해만고의 표정도 더 이상 홀가분해 보이지 않았다. 깊은 바다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압력은 커졌다. 때문에 설령 초범 경지인 해만고라고 해도 비보를 유지하려면 진원이 많이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은빛 장막도 큰 압박감 때문에 전처럼 둥글지 않았고 공간도 점점 작아졌다.

이를 눈치챈 무인들은 저도 모르게 안색이 변하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해만고를 바라보았다. 그가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되었던 것이다.

또 한참 내려가다가 해만고가 입을 열었다.

“부탁 좀 합시다. 진원을 돌려 비보의 운행을 유지해줄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바다 밑에 이르지 못할 것 같군요.”

그의 말에 많은 사람들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노친네, 아직 여력이 남아 있으면서도 힘든 척하긴. 진원을 많이 소모하지 않고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도움을 청하는 거잖아.’

은빛 장막이 몸에 닿을 정도로 작아지자 무인들은 내키지 않아도 진원을 돌려 해만고의 손에 든 비보에 주입할 수밖에 없었다.

해만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도 진원 몇 가닥을 내뿜는 척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콧방귀를 뀌었다. 다들 자신의 진원을 아끼려는 생각에 시늉만 할 뿐이었다. 남들이 힘과 정신력을 많이 소모해야 자신이 유적지 탐색에서 우선권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다 밑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리 신경전을 벌이는데, 정말 도착하고 나면 어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사람들의 진원을 받아들인 은빛 장막은 적지 않게 커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해만고는 다시 한번 부탁했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했지만 유적지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진원을 많이 소모한 사람들은 짜증이 나서 캐묻기 시작했다.

해만고는 느긋하게 해명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도착할 겁니다. 바다의 깊이는 여러분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으니까요.”

이 각이 더 지나서야 누군가 아래쪽을 가리키며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저 아래를 봐.”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본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래쪽에 오색찬란한 빛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빛에 둘러싸인 커다란 폐허가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유적지다!”

사람들은 흥분한 얼굴로 외쳤다.

“드디어 도착했군.”

해만고는 미소를 지으며 속도를 내어 아래로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오래된 유적지의 외곽에 도착했다. 밖에서 봤을 때, 유적지는 대략 사방 몇십 리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안은 스산했으나 궁전이 꽤 있었고, 줄줄이 정연하게 늘어선 집들은 대다수가 무너져 내려 담벼락만 남아 있었다. 거대한 유적지의 외곽은 알 수 없는 결계로 감싸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바닷속이라고 해도 유적지 내부는 건조해 물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유적지의 변두리에는 수많은 산호가 바닷물을 따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산호들이 내뿜는 알록달록한 빛에 유적지는 더없이 음산해 보였다. 사람들은 안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몰라 두려움에 휩싸였다. 하지만 해만고는 여유 있게 비보를 운행해 사람들을 거느리고 유적지 안으로 들어갔다.

외곽의 결계는 바닷물의 침입을 막았지만, 사람들의 침입에 대해서는 반응이 없었다. 몇십 명의 사람들은 손쉽게 유적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해만고는 비보를 거두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흥분한 얼굴로 기대 어린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들어왔으니 빨리 움직입시다. 다른 여섯 대열도 곧 올 테니까요.”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의 홀가분한 모습을 보고서 다들 늙은 여우의 속임수에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비보를 운행하기 위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원을 적지 않게 소모한 상태였다. 반면 해만고는 여전히 기운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지금 해만고가 이렇게 제안하는 것도 사람들에게 휴식 시간을 줄 생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

말하는 사이, 다른 가문의 사람들도 연이어 도착하는 것이 보였다.

무인들은 욕할 겨를도 없이 단약을 꺼내 입에 넣었다. 그들은 해만고의 뒤를 따르는 한편, 몰래 공법을 운행해 약 기운을 흡수함으로써 진원을 보충했다. 남들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양준도 아무 단약이나 하나 꺼내 입에 넣었다.

유적지에 들어온 뒤로 양준은 한 방향에서 짙은 양성 기운이 흘러나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양성 기운이 유적지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기에 이곳은 춥기는커녕 오히려 따뜻했다. 하지만 양준은 대열을 이탈해 그쪽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유적지는 은밀하고 신비로웠다. 때문에, 그는 일단 먼저 대열을 따라다니며 상황을 알아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길을 걸으면서 감탄을 연발했다. 유적지의 물건들은 보기만 해도 세월이 꽤 오래 지난 것들이었다. 적어도 몇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애당초 어떤 방대한 세력이 몰락해 바다 밑에 가라앉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주변을 예의 주시하며 신식으로 보물이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무언가를 찾게 되면 저한테 넘겨주시기 바랍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밖으로 나가게 되면 모든 물건들을 꺼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눌 것입니다. 저희 해씨 가문은 절대 이곳의 물건을 꿀꺽하지 않습니다. 물론, 공이 많은 사람일수록 가질 수 있는 이득이 많겠지요. 저희 해씨 가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만고가 호언장담했지만, 방금 전 그의 꼼수에 한 번 당한 사람들은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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