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4장. 단운
얼마 지나지 않아, 대열에서 몇 명이 뛰쳐나오더니 원기 파동을 내뿜고 있는 양옆의 무너진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해만고는 손을 저어 사람들을 멈추게 하고는 조용히 기다렸다. 뛰쳐나간 몇 사람은 해씨 가문의 무인들이었다. 이곳은 그들의 세력 범위인지라 외부의 무인들은 심상치 않은 상황을 감지해도 그들을 앞질러 움직이지 않았다. 위험이 있다면 해씨 가문이 앞장서 탐지하게 하는 것이 나았고, 이득이 있다 해도 해씨 가문이 먼저 차지하게 두는 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 해씨 가문의 무인들은 좌우 양옆에서 신속하게 돌아왔다. 왼쪽에서 돌아온 두 사람은 풀이 죽은 얼굴로 해만고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아무 수확도 없는 듯했다. 오른쪽에서 돌아온 몇 사람의 얼굴에는 흥분한 미소가 넘실거렸다. 그들은 소박해 보이는 물건을 해만고에게 건넸다.
모든 이의 시선이 그 물건에 고정되었다.
해만고는 그것을 받아 들고는 꼼꼼하게 먼지를 닦고 신식으로 살펴본 뒤, 눈썹을 치켜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비보군. 하지만 시간이 하도 오래 지나서 대부분의 영성을 잃었어. 겨우 현급 하품밖에 되지 않네. 아쉬운 일이야. 온전한 상태면 적어도 영급 상품은 되었겠는데!”
그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는 사실이었다. 많은 이들이 비보를 주목하며 신식으로 탐지했기에 해만고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적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비보를 찾아냈으니 시작은 좋은 셈이었다. 사람들은 이번 여정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비보는 일단 제가 먼저 가지고 있다가 돌아간 뒤 연기사에게 복구하라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영성을 회복해 등급이 오를 수도 있으니까요.”
해만고는 이렇게 말하면서 비보를 자신의 건곤대에 넣었다.
이미 내려오기 전에 찾은 물건은 모두 그가 보관하다가 돌아간 뒤에 다시 나눌 것이라고 말한 상태였고, 물건도 해씨 가문의 무인들이 찾아낸 것이었다. 때문에, 다른 이들은 이에 대해 뭐라고 반박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더욱더 보물을 찾는 데 열중했다. 그리고 탐색 범위를 넓히기 위해 해만고는 사람들을 세 소대로 나누었다. 각 소대는 해씨 가문 초범 경지 고수의 지휘 하에 서로 다른 세 방향으로 탐색해 나갔다. 양준은 여전히 해만고의 뒤를 따랐다. 한 소대의 인원은 스무 명도 되지 않았다. 해만고를 제외하고 오직 양준만 초범 경지일 뿐, 나머지는 모두 신유 경지였다.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쓰러진 집에서 수시로 놀라운 물건을 찾아냈다. 대부분은 비보였고, 가끔씩 공법이나 무공 서적 같은 것들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난 데다 공법이나 무공 서적들은 잘 보관하지 못한 탓에 손에 넣는 순간 바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단약도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시간이 많이 지난 바람에 약 기운이 모두 휘발되고 찌꺼기밖에 남지 않아 사용할 수 없었다.
반나절 뒤, 사람들은 영성이 크게 사라진 비보들밖에 찾지 못했다. 이런 결과에 다들 만족할 수 없었다. 이건 예상과 너무나도 차이가 컸다.
양준은 줄곧 소대의 맨 뒤에서 걸었는데 나서지도 않고, 일부러 자신을 숨기지도 않았다. 그저 신유 경지 7단계의 무인이 보일 법한 행동을 취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았다.
열몇 개의 비보를 찾아낸 데는 양준의 공로도 있었지만, 그는 비보에 관심이 없었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따로 있었다. 유적지는 오래전 대형 문파의 본거지인 듯했는데, 이 정도의 문파라면 내부에는 금제가 겹겹이 걸려 있어야 마땅했다. 외곽에 있던 바닷물을 막는 결계로 미루어 볼 때, 금제들은 여전히 작용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람들은 어떤 위험도 마주치지 않았다. 바로 그 점이 의문이었다.
양준은 점점 더 경계심을 높였다.
이때, 깡마른 몸집의 사내가 그에게 다가왔다. 양준은 눈썹을 찌푸리고 사내를 힐끗 보았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소리 없이 괴이쩍인 미소였다.
“무슨 일이야?”
양준이 물었다.
“녀석, 똑똑한데.”
사내는 앞서가는 해만고를 힐끗 보며 그가 이쪽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날 말하는 거야?”
양준은 갑자기 흥미가 동했다. 사내도 해만고를 따라 들어온 외부의 무인이었는데 신유 경지 정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서른 살 정도로 나이도 많지 않았다. 가늘고 긴 눈은 예리했고 독기 어린 빛을 내뿜고 있었다. 사내가 괜히 자신에게 접근한 건 아닐 터이니, 양준은 상대의 속내를 알 수 없어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넌 과묵하긴 하지만 눈이 빛나거든. 영리한 거지. 실력을 숨겼다가 한 건 하려는 거야?”
“아니야. 그런 생각 없어.”
“아니라고 하지 마. 다들 같은 생각이야. 저 노친네가 모든 물건을 자신의 건곤대에 챙기는데 무슨 생각인지 누가 알겠어? 정말 밖에 나가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안 줄 수도 있다고. 아니면 쥐꼬리만 한 이득을 나누어 주든가 하겠지. 여긴 7세가 연맹의 세력 범위인데 제멋대로 굴 게 뻔해.”
“난 원하는 게 크지 않아. 콩고물이라도 있으면 돼.”
“그렇게 쉽게 만족할 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남자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목소리를 더욱 낮춰 물었다.
“어때? 나와 손잡지 않겠어?”
“손잡고 뭐 할 건데?”
남자는 바보를 보는 듯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여기는 별로 위험한 것 같지 않아. 그러니까 아예 대열을 이탈해 우리 둘이서 찾아보자고. 그러면 좋은 물건을 찾아도 우리 둘이 챙길 거 아니야? 굳이 저들의 뒤를 따라다닐 필요가 있겠어?”
“어? 좋은 생각인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우리 둘이 함께 움직이다가 좋은 걸 발견하면 반으로 나누자. 그러면 누구도 손해 보지 않잖아. 난 공정한 사람이거든.”
“좋은 생각이긴 한데, 난 그래도 저들을 따라다닐 거야. 사람이 많으면 안전하잖아.”
양준은 머뭇거리는 척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사내는 초조한 얼굴로 연신 설득했다. 양준이 끝까지 동의하지 않자 사내도 포기하고 경멸 어린 말투로 말했다.
“멍청한 녀석, 저들을 따라다니다간 큰코다칠 거야.”
양준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사내는 겉보기에도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혼자서는 용기가 부족해 양준을 끌어들이려는 것이었다. 정말 위험에 부닥칠 경우, 어쨌든 혼자보다 두 사람이 나았다. 그리고 보물을 찾으면 신유 경지 정상의 실력을 가진 그로서는 양준 같은 젊은이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적어도 사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바보로 보이나 보지?’
양준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몇 사람은 앞에 있는 집들을 살펴보십시오.”
해만고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앞에 있는 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그쪽으로 걸어갔다. 양준도 사람들의 뒤를 따라 오른쪽으로 갔다.
이쪽에는 모두 다섯 명이 함께 들어갔다. 집 밖에서 무인 셋이 상자들을 뒤지고 있었다. 양준은 바깥쪽에 별다른 게 없을 것 같아 고개를 숙인 채,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때, 그의 옆으로 누군가 번쩍 하고 지나갔다. 그에게 말을 걸던 깡마른 사내가 앞질러 들어간 것이었다.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대다수의 물건들은 이미 부식되어 가루가 된 상태였다. 그리고 별실의 한 모퉁이에 옥병 몇 개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깡마른 사내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옥병 하나를 집어 들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런 옥병은 전에도 많이 찾아냈는데 모두 단약이 담겨 있었다. 다만 단약들은 하나같이 진작 약 기운을 잃고 폐품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깡마른 사내는 단번에 표정이 바뀌더니 눈빛이 뜨겁게 변했다.
“좋은 게 있어?”
양준의 표정이 흔들렸다.
사내는 흠칫 놀랐다. 그제야 그는 옆에 양준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옥병을 건넸다.
“이걸 봐!”
양준은 옥병을 받아 들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속에 담긴 단약을 본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옥병 속 단약은 일반적인 단약과 달랐다. 동그란 단약의 겉면에 구름 같은 것이 뒤덮여 있었는데 구름은 순수한 영기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투명한 보호막처럼 단약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단약의 약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짙어져 있었다. 단약에서 취할 것 같은 향기가 전해졌다.
냄새를 맡는 순간, 양준은 성급 단약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단약의 등급을 차치하더라도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단약 겉면을 뒤덮고 있는 구름 같은 영기였다.
“단운?”
양준은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현재 그는 뛰어난 연단사로, 연단할 때 종종 인체의 경맥 같은 문양이 나타나는 단약을 만들어 내고는 했다. 이는 단약의 경맥으로 사람들은 ‘단문’이라고 불렀다. 단약에 단문이 나타나면 그 가치는 몇 곱절 뛰었고, 얼마나 오랫동안 보존하든지 조건만 적절하다면 약 기운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다.
때문에, 뛰어난 연단사들은 모두 단문을 추구하며 단문을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 하지만 아직까지 단약마다 단문이 생기게 하는 방법은 없었다. 단문이 나타나는 건 운과도 큰 연관이 있었다. 그리고 단문보다 더 대단한 것이 바로 전설 속 단운이었다.
양준은 지금 연단할 때, 자주 단문이 있는 단약을 만들어 내고는 했다. 하지만 단운이 나타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단운이 어떤 것인지 보게 된 것이다.
단운은 단약의 약 기운을 몇 곱절 상승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게 해준다고 전해졌다. 또한 수시로 천지간의 영기를 모아 단약을 보강해 준다고도 했다. 즉, 단운이 있는 단약은 오래 보존할수록 약 기운이 강하고 가치가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