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5장. 넌 죽음을 자초한 거야
옥병 속의 성급 단약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기나긴 세월 동안 단운이 줄곧 천지의 영기를 모아 단약을 보강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성급 단약은 이미 단순한 단약이 아니라 가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귀중한 보물이었다. 특히 양준 같은 연단사에게는 연구 가치를 지닌 물건이기도 했다. 만약 단운이 생긴 비밀을 밝혀낸다면 양준도 나중에 단운이 있는 단약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온갖 생각들이 양준의 머릿속을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그의 표정도 수시로 바뀌었다.
옥병 속 단약의 단운은 미묘한 흡입력을 발산해 천지간의 기운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양준은 고개를 돌려 싸늘한 눈빛으로 깡마른 사내를 힐끗 보았다. 상대방도 그를 보며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깡마른 사내의 손에서 녹색의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별실은 독 안개로 가득 찼다.
“바보 같은 놈, 매정하다고 원망하지 마.”
깡마른 사내는 양준이 꼼짝도 못하고 자신의 독 안개에 묻히는 것을 보고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손가락을 모아 칼 모양을 만들었고, 손에서 진원이 용솟음치자 양준의 가슴팍을 내찔렀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실력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며 양준을 단칼에 죽이려는 것이었다.
단운이 있는 성급 단약, 게다가 적어도 천 년 동안 보존된 것이었다. 양준뿐만 아니라 사내 역시도 이런 보물을 손에 넣고 싶었다. 성급 단약만 손에 넣는다면 이번 여정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남은 여정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녹색의 독 안개 속에서 사내의 얼굴은 광기로 일그러졌다.
양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슴팍에서 불꽃이 일었지만 피부도 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싸늘한 눈길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사내의 얼굴에 걸렸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눈에는 경악밖에 남지 않았다. 방금 전 공격에서 사내는 전력을 다했지만 양준을 죽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손가락이 부러지고 말았다. 양준의 가슴을 찌르는 순간, 사내는 강철을 찌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멍청하긴. 먼저 날 공격하지 않았다면 널 죽일 생각은 없었어. 넌 죽음을 자초한 거야.”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더니 옷에 진 주름을 펴며 말했다.
“어떻게… 뼈를 녹이는 독 안개는 초범 경지의 고수도 당해낼 수 없다고. 그런데 넌 왜 멀쩡한 거야?”
깡마른 사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더니 공포감에 휩싸였다.
“그걸 너한테 설명해 줄 필요는 없지.”
양준은 경멸 어린 미소를 지었다. 사내가 도망칠 자세를 취하자 양준은 몸을 날려 그의 앞길을 막고서 손날로 그의 울대뼈를 내리쳤다.
깡마른 사내는 눈알이 툭 튀어나오더니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목구멍에서 꺽꺽 소리만 날 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휘청거리며 몇 걸음 걷다가 그대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지금 양준에게 있어 신유 경지 정상의 무인을 상대하는 것은 너무나 손쉬운 일이었다.
양준은 남은 옥병을 손에 들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단운이 있는 단약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그제야 밖으로 뛰쳐나갔다.
“왜 그래? 안에 무슨 일이 생겼어?”
마침 들어오려고 하던 무인 세 명이 양준과 마주치자 다급히 물었다.
양준과 깡마른 사내는 은밀하게 대화했지만 방금 전 갑자기 진원이 폭발하는 바람에 그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빨리 도망쳐. 안에 있던 금제가 폭발했어.”
양준은 시퍼런 낯빛으로 소리쳤다.
세 명은 양준의 뒤를 힐끗 보았다. 방 안에 녹색 독 안개가 가득한 것을 보고 다들 안색이 변하더니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양준을 뒤따라 다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해만고는 네 사람이 허둥지둥 뛰어나오자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다급히 물었다.
“방 안에 금제가 걸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와 친구가 안에서 살펴보다가, 친구가 실수로 건드린 모양입니다.”
양준은 얼른 설명했다. 말하는 동안, 그의 안색은 수시로 바뀌었다.
“그 사람은 어찌 되었나?”
해만고의 안색이 변했다.
“죽었습니다.”
“죽었다고?”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이곳에 온 뒤로 반나절 동안 탐색했지만 아직까지 위험에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유적지가 안전한 곳인 줄 알았는데 영문도 모르게 사람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자 그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는 왜 괜찮은 건가?”
해만고는 번뜩이는 눈빛으로 양준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저는 좀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중독된 것 같지만요…….”
양준은 가볍게 기침을 했다. 그러자 그의 얼굴빛이 더욱 안 좋아졌다. 그 말에 사람들은 모두 독이 옮기라도 하듯이 너도나도 그를 멀리했다.
양준은 몰래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안도했다.
방금 전, 깡마른 사내가 공격하기 전에 독 안개를 먼저 내보낸 것도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었다. 아마 그도 남들이 물으면 양준이 말한 것과 같은 해명을 내놓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양준은 사내의 수단을 이용해 그의 죽음을 해명했을 뿐이었다.
별실에는 아직도 독 안개가 가득한 탓에 누구도 들어가 살펴보려고 하지 않았다. 또한 양준은 일부러 독 안개를 조금 흡입했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안에 금제가 있다고……?”
해만고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안에서 얻은 건 없는가?”
“옥병 몇 개밖에 없었습니다. 나오기 전에 모두 챙겼습니다.”
양준은 말하면서 옥병을 모두 해만고에게 넘겨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옥병을 많이 찾았지만 안에 쓸만한 단약은 없었다. 해만고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미덥지 않은 눈빛으로 양준을 훑어보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들은 금제를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금제가 있다는 말은 별실 안에 보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게 아니면 주인이 왜 금제를 걸어 놓았겠는가?
“뭔가를 몰래 숨기지 않았나?”
해만고는 실눈을 뜨고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양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전 건곤대도 없는데 어디에 숨기겠어요?”
해만고는 신식으로 그의 몸을 훑어보고 나서,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건곤대는 편리한 저장 비보이긴 했지만, 통현대륙에서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독오맹에 있을 때도 양준이 만난 사람들 중 독오맹의 대장들만 건곤대를 소지할 자격이 있었다. 이번에 7세가 연맹을 따라 바다로 내려온 무인들 중에서도 대다수는 건곤대가 없었다.
“어르신은 제 말을 못 믿으시는 건가요?”
양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해만고를 바라보았다.
해만고는 덤덤하게 해명했다.
“의례적으로 묻는 것이네. 너무 신경 쓰지 말게.”
말을 마친 해만고는 더 이상 양준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옥병들을 열어 보았다. 그는 옥병에서 무언가를 찾아낼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옥병을 열던 그는 갑자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중 한 옥병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와 동시에 다른 이들도 향긋한 약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어?”
해만고는 깜짝 놀랐다. 그는 옥병 안의 단약들을 모두 쏟아냈다. 모두 열몇 알 정도 되었지만 대다수가 폐품이었다. 하지만 그중에는 특별한 단약 두 알이 섞여 있었다. 두 알의 단약에는 단문이 있어 영기가 짙었다. 단문이 있기에 그것들은 약 기운을 잃지 않고 완벽하게 보존되었던 것이다.
“영급 단약이다.”
해만고는 엉겁결에 외쳤다.
사람들도 흥분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뜨거운 눈빛으로 단약을 바라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단문까지 있는 영급 단약은 일반적인 단약보다 몇 배나 가치 있었다.
양준은 옆에 서서 싸늘한 얼굴로 사람들의 표정을 지켜보았다.
방금 전, 그는 옥병을 살펴보고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았지만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다. 단문이 있는 영급 단약은 그에게 있어 가치가 크지 않았고, 스스로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는 단운이 생긴 성급 단약만 챙기면 되었다. 옥병 몇 개를 내놓기로 한 그의 결정은 탁월했다. 과연 사람들은 모두 단약에 시선을 돌리고 더는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해만고는 떨리는 손으로 다른 옥병들을 열어 보았다. 예상대로 단문이 있는 단약 몇 알을 더 찾을 수 있었다. 그중에는 영급짜리도 있었고, 현급짜리도 있었는데 모두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저 방에 좋은 물건이 있긴 했군.”
해만고는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7세가 연맹은 모두 작은 가문이어서 대단한 연단사를 고용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단문이 있는 영급 단약을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여러 알을 얻었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여러분들도 이런 옥병을 발견하게 되면 더는 무시하지 마십시오. 어쩌면 이런 단약이 들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해만고는 단약을 챙기면서 사람들에게 당부했다.
사람들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그들은 이런 쪽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젊은 친구가 큰 공을 세웠군.”
다른 외부의 무인들도 친근하게 양준의 어깨를 다독이며 찬사를 보냈다. 죽은 사내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오늘 처음 본 사이였다. 죽으면 죽은 거지, 슬퍼하며 눈물을 흘려 줄 사람은 없었다.
양준은 끊임없이 헛기침을 하며 고통스러운 얼굴로 짐짓 슬픈 척했다.
“안타깝게도 저와 함께 들어간 친구는 나오지 못했지만요…….”
해만고는 그를 힐끗 보더니 속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 돌아가면 그의 몫도 있을 것이니. 만약 그의 친구나 가족들의 소재를 파악하면 내 꼭 그의 몫을 전해줄 것이네. 이 얘기는 나중에 하고, 어서 해독 단약을 먹게. 이건 우리 해씨 가문의 수석 연단사가 만든 것이니 자네에게 도움이 될 거네.”
보물을 얻게 되자 해만고는 양준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살갑게 대했다. 그는 말하면서 단약 하나를 양준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양준은 단약을 받아 들고 슬쩍 살펴보았다. 그는 해만고가 건넨 단약이 해독하는 단약이 맞고, 손쓴 흔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짐짓 운기 조식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먼저들 가세요. 전 조금 있다 따라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