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36화 (735/853)

제 736장. 신비한 보호막

양준은 지금의 실력으로 이번에 유적지에 함께 온 이들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서혼지충이 있는 한, 입성 경지 이하의 무인들은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전에는 이들의 힘을 빌려 유적지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줄곧 자신의 실력을 숨긴 채 뒤를 따르며 함께 움직였던 것이다. 지금은 상황도 대충 파악했으니 이들을 벗어나 혼자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는 양성 기운이 흘러나오는 근원지에 강한 호기심이 일어 그쪽으로 가서 도대체 뭐가 있는지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좋은 기회였다.

양준은 해만고의 심성으로 자신의 생사를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준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의 말을 들은 해만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안 되네. 자네 혼자 여기에 남겨둘 수는 없지.”

방금 전, 양준이 보여준 모습이 그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해씨 가문의 한 무인에게 분부했다.

“넷째야, 네가 남아서 돌보다가 병세가 호전되면 다시 뒤쫓아오거라.”

명령을 받은 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양준의 옆으로 다가가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다. 양준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해만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치료하고 넷째와 함께 따라오게. 우린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말을 마친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계속해 앞으로 나아갔다.

양준은 하는 수 없이 운기 조식하는 시늉을 했다. 넷째라고 불리는 무인은 말없이 양준과 멀지 않은 곳에 나무토막처럼 서 있었다.

반 시진 뒤, 양준은 다시 일어섰다.

“괜찮은 건가?”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 어서 뒤쫓아갑세.”

넷째는 다급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해만고가 남겨 놓은 흔적을 따라 달려가다 보니, 이 각이 채 안 되어 두 사람은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양준은 대열의 상황을 확인해 보고 깜짝 놀랐다. 스무 명쯤 되던 대열은 예닐곱 명이 줄어들어 있었다. 남은 사람들의 얼굴에도 아직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그가 상처를 치료하는 척하는 사이에 위험에 맞닥뜨린 것이 분명했다. 사라진 예닐곱 명의 결말은 짐작 가능했다.

‘유적지는 역시 안전하지 않아.’

사람들은 쉬고 있었다. 양준과 넷째가 돌아온 것을 봐도, 해만고는 고개만 가볍게 끄덕일 뿐 어두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넷째는 해씨 가문의 무인 옆으로 다가가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상대방은 여전히 공포에 휩싸인 얼굴로 대답했다.

“이곳에 알 수 없는 금제가 많은 것 같아. 그중의 하나를 잘못 건드렸다가 몇 사람이 죽었어.”

넷째는 안색이 변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말하는 사이, 먼 곳에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제자리에 앉아 있던 해만고는 눈을 번쩍 뜨더니 의아한 눈빛으로 그쪽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정(程)씨 가문의 사람이잖아?”

해만고는 다급히 일어서더니 손을 저으며 말했다.

“여러분, 저를 따라오십시오. 저쪽에 뭔가가 있는 듯합니다.”

해만고 일행이 쉬던 데서 5리 정도 떨어진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휘파람 소리를 듣고 몰려든 무인들이었다. 사람들은 앞의 광경을 바라보며 모두 놀라는 한편 더없이 흥분했다.

앞쪽에는 거대하고 투명한 구체가 놀라운 원기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 투명한 구체는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내뿜는 기운으로 미루어 보아 등급이 낮지 않은 비보인 듯했다. 게다가 손상된 곳 하나 없이 완벽했다. 하지만 앞쪽에는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길을 막고 있어 구체에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었다.

많은 무인들이 접근을 시도해 보았지만 모두 부드러운 힘에 떠밀려 나올 뿐이었다. 누구도 구체 근처 50장 이내에 다가갈 수 없었다. 해만고가 일행을 데리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적어도 몇십 명이 모여 이미 떠들썩한 상황이었다.

양준은 구체를 보고 마음이 동해 몰래 살펴보았다. 그리고 모여 있던 인파 속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기운을 쫓아 시선을 던진 양준은 저도 모르게 눈을 희번덕거렸다.

저쪽에서 구천성지의 성녀가 그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만 표정이 이상했다.

양준은 시선을 돌리고 그녀를 못 본 척했다.

성녀는 옷에 먼지 한 톨 묻지 않고 느긋한 것을 보아, 재주가 꽤 있는 듯싶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흥분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이번 바다 밑 모험에서 전에 느껴 보지 못했던 짜릿함과 쾌감을 맛본 듯했다.

“정씨,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해만고는 앞으로 나서더니 초범 경지 2단계의 노인 옆에 다가서며 물었다.

방금 전 휘파람 소리는 바로 노인이 낸 것이었다. 7세가 연맹은 근처의 섬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되어 서로간에 특별한 연락 방법이 있었다. 때문에 해만고는 상대방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그가 조력자를 소집한다는 것을 알아챘던 것이다.

해만고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초범 경지의 고수들은 하나같이 정씨 노인의 옆에 서서 나지막하게 물었다.

“사람이 다 모이면 그때 다시 설명하겠네.”

정씨 노인이 말했다.

사람들은 더 캐묻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끊임없이 사람들이 합류했다. 모두 근처에서 보물을 찾던 사람들이었다. 이내 인원이 많아져 족히 백 명이 넘게 모이게 되었다. 또 한참 기다렸지만 더는 오는 사람이 없자, 그제야 정씨 노인이 입을 열었다.

“아마도 더 오는 사람이 없을 것 같군.”

“정씨, 왜 우리를 불렀는지 말해 주게.”

“당연히 저 비보 때문이지.”

정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구체를 가리켰다.

“저 비보의 위력은 짐작할 수 없고, 무슨 기능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여러분도 보셨다시피 이처럼 보이지 않는 보호막에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저희 정씨 가문의 힘만으로는 보호막을 파훼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함께 힘을 합쳐 눈앞의 난관을 헤쳐 나갑시다.”

해만고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힘을 합치는 건 괜찮으나 비보가 하나밖에 없는데 보호막을 파훼한 뒤, 비보는 누가 가지나?”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고. 비보의 뒤쪽은 궁전이네.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곳은 옛 문파에서 중요한 곳이었을 거네. 그게 아니면 이렇게 비보로 보호하지도 않았겠지. 눈앞의 보호막만 파훼한다면 안에서 얼마든지 좋은 것을 찾을 수 있지 않겠나? 어쩌면 안에 더욱 좋은 비보가 있을 수도 있고.”

정씨 노인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구체의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그건 자네의 짐작일 뿐이지 않나.”

“시도해볼 만한 거 같은데요.”

누군가 정씨 노인의 말에 동의했다.

많은 고수들은 다급히 의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합의를 보았다. 해만고도 의혹을 제기하기는 했으나 눈앞의 비보에 혹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합의를 본 사람들은 서둘러 준비하기 시작했다. 초범 경지의 고수들은 모두 인원수가 각각 다른 대열을 이끌고 있었다. 적으면 열 명, 많으면 스무 명 정도 되었다.

해만고는 양준 일행의 앞으로 돌아와 방금 전의 결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여러분, 보호막을 파훼할 수 있도록 힘을 써 주십시오. 만약 보호막을 파훼할 수 있다면 저 신비한 비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뒤쪽에 있는 궁전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이득이 많이 있을 테니 꼭 전력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꼭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자 바로 누군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모습에 해만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백여 명의 사람들은 모두 보호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선 채, 하나같이 숨을 죽이고 준비하고 있었다.

정씨 노인이 앞으로 나서더니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뒤, 제 구령에 맞춰 움직여 주십시오. 이 보호막은 방어법이 좀 특별해 반드시 가장 큰 힘으로 순식간에 공격해야 파훼됩니다. 아니면 어떻게 공격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씨 노인은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엄숙한 얼굴로 천천히 한쪽 손을 쳐들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진원을 모으며 공격할 준비를 했다.

순간, 정씨 노인의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의 신호와 함께 무공과 비보의 위력이 남김없이 폭발하며 일제히 앞쪽으로 향했다.

쿠구궁-

유적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인들 중 초범 경지는 열 명이 채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신유 경지 7단계 이상이었다. 하지만 인원수가 많아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힘이 한데 모이자 놀라울 정도였다. 수많은 기운이 보이지 않는 보호막을 공격하자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잔물결이 허공에서 겹겹이 퍼져 나갔다.

보이지 않는 보호막은 탄성이 좋아 사람들의 공격에 안쪽으로 푹 꺼져 들어갔지만 파훼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다시 조용해지자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방금 전의 공격으로도 눈앞의 보호막을 뚫지 못한 것으로 볼 때, 보호막이 어지간히 단단한 듯했다.

이때, 정씨 노인이 손뼉을 치며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리고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 더. 이번에는 힘을 남김없이 사용해야 합니다. 빨리 보호막을 뚫어야 여러분들에게도 이득이 있어요. 다들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는 게 싫으시죠?”

정씨 노인은 방금 전 공격의 위력이 대단했으나 대다수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호막의 방어력을 얕본 것이었다. 그의 말에 방금 전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무인들은 더는 요행을 바라지 않고 다음 번에는 전력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한참 동안 준비를 한 뒤, 정씨 노인은 다시 손을 들었다. 그는 엄숙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이들마다 하나같이 모든 진원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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