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37화 (736/853)

제 737장. 신전지정

정씨 노인은 사람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준 뒤, 다시 한번 손을 내렸다.

슈슉- 콰광-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난폭한 기운과 함께 수많은 공격이 보이지 않는 보호막으로 향했다. 빨리 보호막을 뚫고 뒤쪽의 궁전을 탐색할 생각에 사람들은 여력을 남기지 않고 전력을 다했다. 양준조차도 자신의 진짜 실력을 조금 발휘했다.

보호막이 완벽한 상태였다면 지금 사람들의 경지로는 몇십 년간 노력해도 뚫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유적지는 하도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라 금제의 위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눈앞의 보호막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맹공격이 쏘아지자 보호막은 또 안으로 쑥 꺼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보호막의 한계치에 도달한 듯했다.

찌직-

공중에서 기괴하게 미세한 틈이 가득 생기더니 순식간에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예의 주시했다. 그들의 눈에는 기대가 어려 있었다.

촤락-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깨졌다. 보호막이 깨지는 순간, 모든 무인들은 준비하고 있있던 것처럼 초범 경지 고수의 명령을 기다리지도 않고 하나같이 신법을 펼치며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대열을 이끌던 초범 경지의 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7세가 연맹의 고수들은 하나같이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구체를 바라보았다. 다들 손을 뻗어 구체를 자신의 손에 넣으려고 했다. 방금 전까지 힘을 합쳤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서로 암투를 벌이며 난리를 쳤다. 진원이 요동치고 사람들은 뒤처질 세라 서로 밀쳐 댔다.

양준은 움직이지 않고 차가운 눈길로 경계하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구천성지의 성녀도 움직이지 않았다. 두 사람 말고도 의심이 많은 무인들은 모두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실력이 부족하다고 여겨, 달려든다고 해도 비보를 차지하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본능적으로 앞쪽에 위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경거망동하지 않고 남들이 상황을 알아보기를 기다렸다.

과연 사람들이 구체에 접근하기도 전에 새하얀 빛무리가 구체를 중심으로 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빛무리는 신비로운 원기 파동을 지녔는데 속도가 번개처럼 빨랐다. 앞으로 달려들던 무인들은 이 광경을 보자 모두 안색이 변했다. 다들 위험에 대비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빛무리에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사람들은 온몸이 굳어지더니 땅에 픽픽 쓰러졌다. 반항할 여력도 없었다.

양준은 안색이 크게 변하면서 냅다 도망쳤다. 빛무리가 앞쪽 무인들을 스치는 순간, 무인들 몸속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와 구체에 흡수되는 듯했던 것이다. 양준의 지금 속도로는 빛이 퍼지는 속도를 따돌리기 힘들었다. 곧이어 멀리 가지 못하고 빛무리가 그를 뒤덮었다. 그러자 신혼이 흔들리며 식해 안이 일렁였다. 양준은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신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는 감히 지체하지 못하고 얼른 몸을 가누고 숨을 가다듬고서 흔들리는 신혼을 진정시켰다.

바쁜 와중에 양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 경계심을 갖고 비보를 빼앗으러 달려들지 않았던 무인들조차 모두 해만고 일행처럼 땅에 쓰러져 있었다. 심지어 구천성지의 성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오래 버틴 듯했다. 그녀는 쓰러지기 전에 제자리에 서 있는 양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였다.

양준은 그녀가 자신에게 구원을 요청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지금 제 코가 석 자인데 그녀를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알 수 없는 빛무리에 뒤덮인 그는 보이지 않는 큰 손이 신혼을 잡고서 식해 밖으로 끌어내려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양준은 도대체 빛 속에 무슨 현묘한 힘이 내재돼 있는지 알 수 없어 신혼을 얼른 식해에 잠갔다. 그와 동시에 멸세마안이 순간적으로 떠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액운을 피할 수 없었다.

*

양준은 잠깐밖에 버티지 못했고, 순간 눈앞이 아찔하더니 신혼이 식해를 벗어나 백색 세계로 들어갔다. 이윽고 하나, 또 하나의 모습들이 양준의 앞에 나타났다. 모두들 불안하고 겁에 질린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들은 방금 전까지 함께 모여 있던 무인들의 신혼 영체였다.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백여 명이 모두 이곳에 있었다.

“이봐!”

옆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경계 어린 눈초리로 돌아보았다. 구천성지의 성녀가 구석진 곳에 숨어서 그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가 그녀의 연이은 독촉에 못 이겨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신혼 영체였다. 용모를 바꾸는 수단이 사라지자 그녀의 원래 모습이 드러난 상태였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

성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속으로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남보다 훨씬 더 오래 버티던데, 네 진짜 실력은 신유 경지 7단계가 아니지?”

성녀는 눈썹을 찌푸리고 양준을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네 신혼 영체는 왜…….”

양준과 가까이 있었기에 그녀는 양준의 몸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양준은 싸늘하게 그녀를 흘겨보았다. 성녀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함부로 말하지 않을게. 너 특별한 신혼기를 수련한 거지?”

“그런 셈이야.”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그는 신혼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는 비밀을 숨길 수 있었다. 신식 싸움을 벌일 때도 그가 신식의 불꽃의 힘을 드러내지 않는 한, 남들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신혼 영체가 식해를 벗어난 지금, 뜨거운 열기가 겉으로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양준은 말하면서 눈앞의 성녀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성녀의 몸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 그가 탐지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때문에 양준은 그전까지 그녀의 경지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신혼 영체로 있는 지금, 그는 성녀의 경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초범 경지 1단계였다.

‘나보다 나이가 그리 많지도 않은데 이런 수준에 이르다니, 구천성지는 정말 대단한 세력인가 보군!’

“우리 서로 협력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생각은 어때?’

성녀가 제안했다. 그녀는 이렇게 많은 이들이 함께 바다 밑으로 내려가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었다. 하지만 탐색하는 와중에 자꾸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 생겼다. 그제야 그녀는 유적지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다가 신혼 영체까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온 지금, 성녀는 동맹을 찾아 서로 협력하는 게 안전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짐이 생기는 건 별로야.”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녀는 입을 삐죽거렸다.

“너무 잘난 척하는 거 아니야. 내 실력을 본 적도 없으면서 왜 내가 네 짐이 될 거라 생각해? 어쩌면 네가 내 짐이 될 수도 있잖아. 정말 위험이 닥치면 누가 누굴 도울지 어떻게 알아?”

“그럼 네 실력을 보여줘. 보고 나서 다시 너랑 손을 잡을지 생각해 볼게.”

양준은 미소를 지으며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녀는 얼굴이 굳어지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더는 양준과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동년배 남자와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세상에 이토록 성격이 괴팍하고 자신만 잘난 줄 아는 남자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세상에 혼자 잘났지. 남들은 다 자신보다 못하고 말이야. 정말 얄미워.’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7세가 연맹과 그들이 소집한 무인들도 수군거리며 눈앞의 상황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위쪽을 봐!”

그때, 갑자기 누군가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보았다. 하얀 허공에서 금빛 찬란한 글자들이 눈부신 빛을 뿌리고 있었다.

신전지정(神戰之庭)!

네 글자는 힘있게 쓰여 있었는데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을 담고 있었다. 게다가 글자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쓴 것이 아니라 신식의 힘으로 새겨진 것이었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네 글자에서는 짙은 위엄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괜스레 겁을 먹고 힐끗 본 뒤,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계속 바라보고 있다가는 신혼 영체가 사라질 것만 같았던 것이다.

“신전지정? 신식이 싸우는 곳이라는 건가?”

“그럼 구체는 신혼 비보라는 말이지?”

“우리들의 신혼 영체를 강제적으로 이곳으로 끌어들인 것도 우리를 싸우게 하기 위해서라는 건가?”

사람들은 수다스럽게 떠들다가 곧 갈피를 잡았다. 양준의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만고는 손을 휘저으며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 뒤, 입을 열었다.

“여기가 정말 비보의 내부이고, 우리의 신혼 영체가 강제적으로 끌려온 것이라면 출구를 찾아야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가만히 있지 마시고 숨겨진 무언가가 없나 잘 찾아보십시오.”

그의 말에 사람들은 나눠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텅 빈 새하얀 공간은 보기에는 거대하고 드넓기만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공간이 기괴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떻게 가도 사방 몇 리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한참을 찾았지만 누구도 출구를 찾지 못하자, 다들 기운이 빠졌다. 7세가 연맹의 초범 경지 무인들도 출구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일반인을 뛰어넘는 신식의 힘으로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하지만 하얀 공간은 밀실처럼 사람들을 가두어 두고 출구를 막아 버린 듯했다.

“찾았어?”

성녀는 다시 양준의 옆에 다가오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물었다. 전에 양준과 다툰 일을 새까맣게 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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