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8장. 이거 재미있게 됐군!
모든 이들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가운데, 구천성지의 성녀가 양준의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녀를 훑어보다가 문득 빙그레 웃었다.
“재수 없게 왜 웃어?”
성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왜 또 왔는데?”
“여기서 아는 사람이라곤 너밖에 없잖아. 게다가 혹시라도 사람들이 내가 성녀라는 걸 알아차리면…….”
7세가 연맹의 고수들은 전에 섬에서 그녀를 접대했었기에 그녀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이곳에 들어온 다음 줄곧 숨어 다녔다. 성녀는 고귀함과 성스러움의 상징이었다. 만약 성녀가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성녀의 명예가 실추될 뿐만 아니라 구천성지의 위엄에도 손상이 갈 수 있었다.
성녀는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 두려워, 양준이 싫지만 그와 논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나가지 못할 거 같아.”
양준이 연신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하게 탄식했다.
“아니지? 정말 평생 여기 갇혀 있어야 하는 거야?”
“아마도.”
“겁주지 마. 난 아직 성주도 찾지 못했단 말이야…….”
성녀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양준은 성녀가 단순하고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녀의 지위 때문인 듯했다. 반면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을 떠나 세상을 떠돌다 보니 모진 세파를 겪었고, 그에 따라 어떤 일에 부닥쳐도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구천성지의 성주는 성녀들이 밖에서 찾는다면서? 성주를 선택하는데 무슨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양준은 문득 호기심이 동해 그녀에게 물었다.
“물론 나만의 방법이 있지. 그건 왜 물어? 그건 우리 구천성지의 성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알려줄 수 없어.”
성녀는 경계심을 높였다.
“그냥 궁금해서.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아.”
양준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성녀는 곧 침묵을 지켰다. 게다가 양준이 성지의 비밀을 계속해서 캐물을까 두려웠는지 몰래 거리를 두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백여 명의 무인들이 출구를 찾아다녔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점차 백색 세계에는 초조함, 두려움과 불안감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들로 인해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무인들은 출구를 찾으며 연신 나지막하게 욕설을 퍼부었다.
7세가 연맹의 고수들도 마찬가지로 표정이 암담했다. 그들 역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신혼이 구체에 이끌려 이상한 공간에 들어오게 되었다. 만약 출구를 찾지 못한다면 이곳에서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의 실력은 못해도 신유 경지 7단계 이상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은 신혼이 육신에서 떠나 있어도 큰 문제는 없었지만,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육신은 그대로 죽게 된다. 육신이 죽으면, 그들의 신혼은 뿌리 없는 나무와 마찬가지로, 만약 다른 육신을 찾아 들어가지 못하면 곧 사라질 수 있었다.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자, 분위기가 점점 미묘해졌다.
양준은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보며 곧 좋지 못한 일이 발생할 것을 직감하고 조용히 무리에서 떨어져 경계했다. 구천성지의 성녀는 이상하게도 줄곧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양준을 뒤따랐다. 양준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녀가 뒤따르게 내버려 두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들 출구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어디에도 출구는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암담한 표정으로 제자리에서 휴식을 취했다.
문득 한쪽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무인 사이에 말다툼이 생겼는데 서로 물러서지 않다 보니 고성이 오가고 거의 육탄전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다툼은 안 그래도 긴장 가득하던 분위기에 불을 댕겼다.
“다 노친네 때문이야. 만약 노친네가 보호막을 깨뜨리자고 하지 않았으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이제 다 여기에 갇히게 되었는데 어쩔 거야!”
누군가 정씨 노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의 질타에 많은 무인들이 합세했다. 다들 정씨 노인 때문에 이런 재난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심지어 7세가 연맹의 사람들도 언짢은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정씨 노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냉소를 지었다.
“그건 아니지. 내가 여러분을 불렀지만 보호막을 깨뜨리기 전에 누구도 반대하거나 저지하지 않았네. 자네들도 뒤쪽 궁전에서 보물을 찾으려 했던 거 아닌가? 이제 와서 모든 책임을 다 나한테 떠넘기려 하다니. 너무 억지가 아닌가?”
“어쨌든 당신이 우리를 여기로 불러 모은 건 사실이잖아. 만약 출구를 찾지 못하면 당신도 살아남지 못할 거야.”
“맞아. 당신네 정씨 가문에서 출구를 찾아야 해. 아니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7세가 연맹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
다들 노기를 품고 떠들어 대는 것이 마치 7세가 연맹에서 책임지지 않으면 죽기 살기로 싸울 듯했다. 화가 자신에게까지 미치게 되자, 해만고는 표정이 흐려졌다.
“오기 전에 분명 이익이 있는 곳에는 위험이 따르니, 각자 알아서 제 목숨을 챙기라고 했네. 분명 이번 여정에 위험이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 다들 이익 때문에 따라온 거 아닌가? 우리 7세가 연맹에서 자네들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는 없지. 자네들의 생사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 말은 시한폭탄을 터트린 것과 같았다. 원래 사람들은 불안정한 상태였는데, 해만고의 발뺌하는 말에 분위기가 더욱 악화되었다. 그때, 정씨 노인이 섬뜩하게 웃으며 방금 전 그에게 책임지라고 하던 무인에게 차갑게 말했다.
“날 죽이려고? 아직 그런 재주가 없을걸.”
곧이어 그의 신혼 영체에서 날카로운 신식의 힘이 튀어나가더니 혀를 날름거리는 뱀처럼 그 무인의 몸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무인은 비명 소리와 함께 꼼짝도 못 하고 신혼 영체가 흩어졌다. 그는 신유 경지 8단계밖에 안 되었기에 초범 경지 1단계인 정씨 노인에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 장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다들 떨리는 눈빛으로 그 무인이 사라진 위치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정씨 노인이 두말하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죽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망한 무인의 곁에 서 있던 몇 사람의 낯빛이 이상해졌다. 그들은 이내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은 것처럼 그들의 신혼 영체가 더 단단해진 것 같았다.
“어허?!”
해만고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놀란 낯빛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모든 초범 경지 고수들은 뜻밖의 사실을 알아차렸다. 죽은 무인의 신혼 영체는 기운으로 바뀌어 근처에 있던 몇몇 무인들에게 흡수되었던 것이다. 신혼의 힘을 흡수했기에 몇 사람의 신혼 영체도 눈에 띌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다.
양준도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떠올리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거 재미있게 됐군!”
“무슨 일이야?”
성녀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양준의 뒤에 서 있었기에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양준이 갑자기 한마디 하자, 그녀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 같은데.”
양준이 냉소했다.
그 사이 7세가 연맹의 초범 경지 고수들의 얼굴빛이 수시로 바뀌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빛에서 욕망을 읽을 수 있었다. 보통 신혼의 힘을 수련하는 것이 육신을 수련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만약 좋은 신혼 공법이 없다면 오직 신혼을 강화하는 단약을 복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단약도 장시간 동안 복용해야 효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 공간에는 알 수 없는 법칙이 존재해, 죽은 신혼 영체가 남에게 흡수되는 듯했다. 이는 모든 무인들에게 큰 유혹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은 위험도 동반하고 있었다. 신혼 영체가 흩어지고 남긴 기운에는 개인의 생전 모든 기억과 경험이 담겨 있었다. 만약 이런 것들을 너무 많이 흡수하면 자신의 심성이 영향을 받아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릴 수도 있고, 이성을 잃어 미치지 않으면 바보가 될 수도 있었다.
양준은 남의 신혼을 흡수할 때 모두 멸세마안으로 이물질을 정화시킨 다음, 순수한 기운만 남겨 흡수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역시 진작 자신을 잃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얻는 이득이 적을 수 있지만 후환이 없었다. 게다가 상대의 살아생전 천도와 무도에 대한 깨달음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은 많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여태껏 남의 신혼을 직접 흡수해 자신을 강화하는 공법도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극히 드물었다. 죽은 무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이 이득을 얻은 것을 확인한 7세가 연맹의 고수들은 끝내 유혹을 견뎌 내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하나같이 섬뜩하게 웃었다.
한순간 초범 경지 무인들의 신식의 힘이 동시에 폭발했다. 그들의 육신이 이곳에 없었기에 그들도 쓸 수 있는 비보가 없었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이 수련한 신혼기뿐이었다. 이내 각종 형태의 신혼기가 인파를 덮쳤다. 외부의 무인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열몇 명이 목숨을 잃고 신혼 영체가 흩어졌다.
7세가 연맹의 고수들은 모두 뛰쳐나가 죽은 무인들이 남긴 신혼의 힘을 미친 듯이 흡수했다. 정씨 노인이든, 해만고든 얼굴이 흥분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한순간 그들은 모두 자신이 강해진 것만 같았다. 한 사람의 신혼을 흡수했을 때 그 효력이 1~2년간 힘들게 수련한 성과와 맞먹었기 때문이었다.
7세가 연맹은 원래부터 외부 무인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겼고, 모두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면 유적지에서 얻은 보물을 외부인들과 나눌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자, 그들은 당연히 살육을 서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