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39화 (738/853)

제 739장. 냉정하게 지켜보다

눈앞의 유혹에 7세가 연맹 고수들의 숨겨져 있던 비열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들은 다짜고짜 살육을 저지르며 한순간에 열몇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또한 신혼을 흡수하고 직접적으로 이득을 취하자, 곧 마음속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외부의 무인들은 잠깐 숨을 죽이고 있다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때, 누군가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질렀다.

“진작부터 네놈들이 나쁜 마음을 가졌다는 걸 알아챘어. 자, 우리도 다 같이 덤비자.”

순식간에 백여 개의 신혼 영체들이 두 무리로 나뉘었다. 7세가 연맹과 외부의 무인들이 신전지정 안에서 목숨을 건 육박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비보도, 무공도, 육신도 없는 상황에서 모든 이들은 오직 신혼의 힘과 신혼기로만 싸워야 했다.

그렇게 두 무리의 무인들이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신혼 영체들이 끊임없이 흩어지며 기운으로 바뀌어 근처에 있던 무인들에게 흡수되었다. 무인들은 남의 신식을 흡수하고서 더욱 흥분한 상태로 살기등등해졌다. 하나같이 이곳의 이득을 독차지하기 위해 다른 이들을 모두 죽이고 싶어 했다.

전투는 7세가 연맹이 우위를 차지했다. 그들은 세력마다 초범 경지 무인이 한두 명씩 있었기 때문에 일격에 무인들을 손쉽게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외부 무인들 중에도 초범 경지가 몇 명 있었다. 그들이 손잡고 맞서자 일정 시간 버티면서 7세가 연맹에도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모든 이들이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살육을 저질렀고, 끊임없는 비명 속에서 신혼 영체들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성녀는 눈앞의 잔인한 광경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듯했다. 그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한쪽의 난투극을 지켜보느라, 누군가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양준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성녀가 도대체 어떤 재주가 있는지 보려고 냉정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위험이 닥쳐온 것을 감지한 성녀는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렸다. 이내 연약해 보이던 그녀의 신혼 영체에서 파괴성을 띤 힘이 폭발하더니 그녀에게 다가가던 무인의 신혼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죽은 무인이 남긴 신혼이 그녀의 곁을 맴돌았지만, 성녀는 남들처럼 그것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멀리하며 혐오감을 드러냈다.

양준은 몰래 감탄했다.

‘보아하니 꽤 능력이 있군. 게다가 눈썰미도 괜찮은데. 공짜로 얻으면 후환이 따라온다는 것도 알고.’

양준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성녀는 몰래 경계 어린 눈빛으로 양준을 곁눈질했다. 그녀는 양준이 다른 이들처럼 사람들을 죽이려 들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힘으로 양준을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양준에게서 압박감이 느껴졌다. 특히 그의 뜨거운 기운은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양준은 더는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덤덤한 얼굴로 흥미진진하게 난투극을 지켜보았다.

전투는 7세가 연맹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외부 무인들은 원래부터 흩어진 모래알처럼 결속력이 없었는데, 7세가 연맹의 공격에 하는 수 없이 손잡고 반격했을 뿐이었다. 초반에는 나름 막상막하였지만, 결국 절대적인 실력 차이 때문에 지고 말았다. 몇 명밖에 없던 초범 경지 무인들이 모두 죽자, 나머지 신유 경지 무인들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7세가 연맹은 그들의 처참한 비명과 목숨을 구걸하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잔인하게 웃으며 신혼 영체를 죽이고 기운을 흡수했다. 점차 백여 명 가운데서 7세가 연맹의 초범 경지 고수 열몇 명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신혼을 과다하게 흡수한 폐단이 발생했는지, 그들은 모두 광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신혼 영체는 하나같이 어지럽고 사악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그들은 다시 한번 싸움을 시작했다.

“어떡해, 어쩌지?”

양준이 한창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데, 성녀가 세 번째로 그를 찾아왔다. 양준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초조하고 무기력한 모습이 우스웠다.

“뭘 어떡해?”

“저들이 우리까지 공격하면 어쩌지?”

성녀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녀는 초범 경지 1단계지만 7세가 연맹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막아 낼 수 없었다. 때문에 양준이 두렵기는 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양준과 한배에 타야 했다.

“각자 알아서 해야지.”

양준은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손가락 하나를 세워서 까닥까닥 흔들었다.

“이곳에서 죽을까 두렵지 않아?”

“이판사판인데 두려워도 어쩌겠어?”

“뭐 하려는 거야?”

양준이 말하면서 아래위로 훑어보자, 성녀는 곧 경계심을 높였다. 그녀는 양준의 음흉한 눈빛에 소름이 끼쳐 얼른 말했다.

“잊지 마. 전에 내가 널 구해 줬었잖아.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지.”

양준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걱정하지 마. 널 어쩔 생각은 없으니까,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성녀는 그를 믿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그녀는 눈을 똑바로 뜨고 마치 마음속을 꿰뚫어 볼 것처럼 그의 눈을 응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곧 긴장을 풀었다. 그녀는 양준이 자신에게 악의가 없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양준이 뭔 꼼수를 부리려는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한편 성녀는 마음속으로 후회막급이었다. 이번 여정이 이처럼 위험할 줄 알았으면,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바다 밑으로 따라오지 않았을 터였다. 게다가 여기까지 오려고 꼼수를 부려 성지의 두 고수를 따돌리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었다.

양준은 더는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고 계속해 신식 싸움을 지켜보았다.

7세가 연맹의 고수들은 서로 지피지기인지라 싸움도 격렬했다. 게다가 광증 탓인지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한 시진도 채 안 되어 승부가 갈렸다. 열몇 명 가운데서 두 명만 살아남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해씨 가문의 해만고와 전에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정씨 노인은 초범 경지 2단계로 이번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바탕 싸우고 나니 그들의 신혼 영체도 많이 힘들었는지 두 사람은 더 이상 싸우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숨을 골랐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성녀는 곧 양준을 부추겨 두 사람을 기습해 죽이려 했다. 양준은 자신이 담도 작고 실력도 안 된다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성녀는 화가 나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양준은 시종일관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들이 난투극을 벌이는 동안 심지어 흥미진진하게 싸움 구경을 했었다. 이런 행동은 보통 자신의 힘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오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었다. 그리고 양준은 어떻게 보아도 자신감이 넘치는 경우였다.

성녀는 양준이 이렇게 좋은 기습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서 기습하려 해도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제자리에서 그저 망설일 뿐이었다.

양준은 해만고와 정씨 노인을 죽이는 것이 매우 쉬웠다. 그러나 그는 외부인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생판 모르는 남이면 그냥 죽여서 입을 막으면 그만이지만, 구천성지의 성녀는 전에 그를 구해준 적이 있었다. 물론 그가 딱히 도움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때문에 그는 성녀를 죽일 수 없었다. 그는 아무 연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무뢰한이 아니었다.

양준도 이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그는 차라리 성녀를 혼절시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양준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창 궁리하고 있는데, 해만고와 정씨 노인이 드디어 이쪽에 아직 외부인 두 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양준과 성녀는 그전까지 멀리 피해서 난투에 참가하지 않았고, 아무 기척도 내지 않았기에 남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인원수가 줄어들자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었다.

해만고와 정씨 노인은 서로 마주 보더니 섬뜩하게 웃었다.

“저쪽을 먼저 해결하고 우리 사이 승부를 가르는 건 어떤가?”

해만고는 아직 이성이 남아 있는지 먼저 입을 열어 제안했다. 정씨 노인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마침 신혼을 좀 더 보충할 수도 있고 말일세.”

두 노인은 동시에 일어서서 섬뜩한 눈빛으로 양준과 성녀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조급해하지 않고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두 노인은 가까이에 이르러 양준과 성녀를 훑어보더니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멍하니 구천성지의 성녀를 바라보았다.

“혹… 혹시 성녀 전하 아니십니까?”

해만고가 성녀를 가리키며 미간을 잔뜩 구겼다. 정씨 노인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노인은 구천성지의 성녀를 알아보는 순간, 살기와 악의가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네, 맞습니다.”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녀께서 어떻게 이곳에 계십니까? 7세가 연맹과 함께 내려온 것입니까?”

해만고는 눈썹을 찌푸리고 묻다가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그냥 내려와서 경치를 감상하려 했는데 뜻밖의 변고가 생겼군요.”

성녀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럼 이 사람은…….”

해만고가 의문스러운 눈초리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성녀는 잠깐 망설이다가 얼른 대답했다.

“제 하인입니다.”

양준은 표정이 바뀌며 황당한 눈빛으로 성녀를 힐끗 보았다. 성녀가 이렇게 대답한 것은 어찌 보면 그를 구하려는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와 한배를 타기 위해서인 듯했다. 성녀의 하인이면 그 역시 구천성지의 사람이므로 해만고나 정씨 노인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과연 성녀의 말에 두 노인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아부하려는 듯하면서도 갈등하고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정서는 신혼 영체에서 전해지는 기운의 파동에 그대로 드러났다. 파동의 기복이 심해 때로는 평온했다가 때로는 위험한 기운을 내뿜기도 했다. 그들의 마음속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공손하지 않았고, 꿍꿍이를 꾸미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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