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42화 (741/853)

제 742장. 비보를 연화할 생각이야

성주와 대등하려면 적어도 입성 경지 3단계가 되어야 했다. 안령아는 양준이 그 정도까지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양준이 소년의 패기로 큰소리친다고 여겼다.

“두고 봐.”

양준은 자신이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좀 더 생각해 보지 그래?”

“필요 없어. 그런데 성주를 선택하는 방식이 너무 경솔한 거 아니야? 큰 세력의 주인을 이렇게 얼렁뚱땅 결정하다니.”

“경솔하지 않아! 우리가 수련한 공법은 성주를 찾는 것과 연관된 것들이야. 만약 적임자를 만나게 되면 일정 범위 안에서 우리 성녀들이 모두 감지할 수 있거든. 너 같은 경우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선택된 거야. 만약 첫 번째 방식으로 성주를 찾지 못했을 경우, 성지에서 나서서 자질이 있는 젊은이를 찾은 다음, 너한테 한 것처럼 주입하는 방식으로 그들이 성지의 신혼기를 각성할 수 있는가를 봐……. 오늘의 일은 뜻밖이지만 너도 내 시험을통과한 거나 마찬가지야. 성지에 들어갈 자격이 있지. 음, 너는 특별히 우수하고 자질도 뛰어난 편이야.”

안령아가 흥분하며 반박했다.

그러자 양준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선택된 사람이 너희 성지에 충성심이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 혹 다른 마음을 품으면?”

“장담할 수 있어! 성지에 들어가면 생각이 바뀔 테니까.”

안령아가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은 실눈을 떴다. 내막을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구천성지에서 특수한 방식으로 선택된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것이 틀림없었다.

“됐어.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양준은 구천성지의 비밀을 더 캐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런 비밀은 많이 알수록 안 좋았다. 말하는 사이, 양준의 신혼 영체에서 갑자기 오묘한 기운이 튀어나가더니 안령아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녀를 감쌌다.

“지금 뭐 하려는 거야?”

안령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자신이 멀쩡하게 말하다가 갑자기 움직일 수 없음을 발견했다. 상대의 신식의 힘이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또한 그녀의 신혼 영체를 감싼 힘에는 뜨거운 기운이 내재돼 있었다.

양준은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복잡한 눈빛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내 성격대로라면 널 죽여서 입을 막았을 거야.”

“뭐? 날 죽이겠다고? 네가 구천성지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안령아는 사색이 되었다.

“그것도 하나의 원인이지. 내가 비밀을 이렇게 많이 알고 있는데, 만약 네가 살아서 돌아가면 구천성지에서 날 가만두겠어? 나를 잡아다가 너희들 성주로 삼거나, 나를 죽여 성지의 비밀을 지키려 하겠지. 그런데 두 가지 상황 모두 내가 바라는 건 아니야.”

양준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넌 무슨 의심이 그렇게 많아? 내가 오늘 일을 말하지 않으면 되잖아. 그리고 너 잊었어? 난 전에 널 구해 준 적이 있어. 너 어떻게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있어?”

안령아는 눈썹을 찌푸리며 원망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일은 그만 좀 말해. 사실 나도 도대체 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정말 너를 죽이면 괜히 평생 마음의 응어리가 될 것 같고, 그렇다고 너를 데리고 나가자니 찜찜하단 말이지.”

양준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안령아는 양준의 말에 긴장을 풀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럼 지금은 어떻게 할지 결정한 거야?”

“그래, 맞아!”

양준이 씩 웃으며 한쪽 손을 내밀어 그녀의 신혼 영체를 잡았다. 안령아는 두려운 마음에 발버둥 치며 반항하려 했지만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양준은 안령아에게 채 닿기도 전에 갑자기 손을 거두어들였다. 곧이어 그의 손에서 도저히 막아 낼 수 없는 흡입력이 전해졌다. 안령아는 순간 눈앞이 아득해지더니 신혼 영체에 힘이 빠져 쓰러졌다. 그녀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들고서 증오에 찬 눈길로 양준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너 신혼기 두 가지만 각성한 게 아니었구나.”

“미안, 사실 세 가지야. 이건 균천인(鈞天引)이지?”

안령아는 입을 꼭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현천검, 유천쇄, 균천인… 구천성지의 신혼기들이 정말 좋네. 편리하고 실용적이야.”

양준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디가 편리해? 그건 내가 십몇 년간 고된 수련을 거쳐 각성한 거란 말이야.”

안령아는 양준의 평가에 화가 치밀었다.

양준은 대수롭지 않게 손바닥 위에 놓인 미묘한 신혼 기운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안령아의 신혼 영체에서 분리해 낸 기운으로, 그녀를 몇만 분의 일로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지금 그것은 양준의 손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꼼짝 않고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깜찍하면서도 장엄한 불상 같았다. 이는 안령아의 신혼 낙인이었다.

신혼 낙인을 가지고 있으면, 양준은 안령아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었다.

“안전을 기하기 위해 네 신혼 낙인은 내가 가지고 있을게. 이곳에서 나가면 우리 서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음, 언젠가 내가 너희들 성주와 비견될 수 있을 때, 구천성지에 찾아가서 낙인을 돌려줄게.”

양준은 말하면서 그녀의 신혼 낙인을 자신의 신혼 영체에 갈무리했다.

안령아는 씩씩거리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반항할 힘이 없었다. 그녀도 균천인에 능숙하지만 신식의 힘이 양준보다 약하기에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나쁜 자식, 너무하잖아.’

그녀는 분명 양준에게 유리한 제안을 했다. 그런데 양준은 수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녀를 통제하려고 했다.

“난 정말 너한테 악의가 없어. 그러니까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

양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저었다.

“나쁜 놈!”

안령아는 이를 악물고 마음속 억울함을 토해 냈다.

“그래, 그래. 내가 나쁜 놈이야.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이지. 그만 화내고 좀 쉬고 있어.”

양준은 안령아의 신혼 낙인을 손에 넣고 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하면 안령아에게 조금 피해가 가지만, 한참 동안 쉬면 괜찮아질 수 있었다. 신혼 낙인만 꺼냈기에 그녀의 신혼 영체에는 크게 위험이 없었다.

안령아는 토라져서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련한 모습으로 한쪽에 앉아 있었다.

양준은 그녀를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몸을 날려 날아갔다. 백색 세계는 신혼 비보의 내부였다. 양준은 비보의 기능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그들이 처한 상황처럼 강제적으로 남의 신혼 영체를 신비한 공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듯했다. 양준에게 있어서 이 비보는 좋은 물건이었다.

오늘날 그의 신식 경지는 육신의 경지보다 강하므로 강한 적을 만났을 경우, 이 비보를 사용해 상대가 자신과 신식 싸움을 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때문에, 양준은 비보를 연화할 생각이었다.

전에 들어왔던 백여 명이 이곳을 몇 번이고 훑었으나 특별한 곳을 찾아내지 못했었다. 이제 남은 곳이라고는 하늘에 새겨진 ‘신전지정’이라는 커다란 네 글자뿐이었다. 양준은 네 글자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 안령아도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커다란 눈을 껌뻑거리며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사뿐히 날아와 양준의 곁에 섰다.

“출구를 찾는 거야, 아니면 비보를 연화하려는 거야?”

“화 풀렸어?”

양준이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건망증이라도 있는 건가? 전에도 여러 차례 냉담하게 대하면 화를 내고 갔다가 다시 찾아오더니만.’

“아니! 하지만 잠시 너한테 화내지 않기로 했어. 일단 먼저 살아서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안령아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영리하구나! 이 비보를 연화할 생각이야. 신혼 비보니까 신식으로 연화하면 될 텐데,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어. 넌 따로 생각나는 방법 없어?”

양준이 웃으며 물었다.

안령아는 자세하게 살펴보더니 잠깐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면 글자들을 연화해 봐. 비보의 중심 부분인 것 같으니까. 네 글자를 신식의 기운에 각인시키면 연화할 수 있을 거 같아!”

“같은 생각이야. 그럼 넌 좀 멀리 가 있어.”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안령아는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보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얌전하게 그의 말에 따라 외곽으로 멀리 피했다.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양준의 신혼 영체가 허공에 꼼짝 않고 단정하게 앉아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내 포악하고 사람을 공포에 빠뜨릴 정도의 뜨거운 기운이 양준의 몸을 중심으로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눈부신 금빛이 순식간에 피어오르자 신전지정이 흔들리는 듯했다.

네 글자는 순간 훨훨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였다.

안령아는 입을 딱 벌린 채 넋을 잃고 그쪽을 바라보며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는 양준이 무슨 특별한 신혼기를 수련했거나 아니면 신혼 비보를 지녀서 신혼 영체가 뜨거운 기운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광경을 보고서야 양준의 신혼 영체가 뜨거운 것은 온전히 그의 신식의 기운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변이된 신식의 기운… 신식의 불꽃?’

안령아는 경악하고 말았다. 게다가 양준의 모습을 보아서는 신식의 기운을 사용하는 수준이 무척이나 높았다.

‘어쩐지 신혼 낙인을 쉽게 가져간다고 했어! 성지의 비밀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래 자신의 신식의 기운이 강했군! 그래서 내가 자신의 비밀을 지켜주길 바라는구나! 이제 나갈 수 있을 거 같네. 신식의 불꽃의 위력은 일반 신식과는 전혀 다르지. 게다가 저 녀석의 실력도 만만치 않은 거 같으니까. 신혼 비보가 아무리 등급이 높다고 해도 저렇게 태우면 버티지 못할 거야.’

안령아는 기쁜 나머지, 머릿속으로는 여전히 어떻게 해야 양준을 성지에 데려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신식의 불꽃을 지닌 성주라, 이는 성지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런 자질과 토대로 성주가 되면 반드시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성주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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