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43화 (742/853)

제 743장. 나쁜 자식

만 장 깊이, 유적지의 어느 한 곳.

그곳의 사방 백 장 이내에는 무인들 백여 명의 시체가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었다. 남녀 한 쌍의 몸에만 생기가 있었지만 여전히 혼미한 상태였다. 무인들의 앞쪽에는 빛이 번쩍이는 구체가 괴이한 기운 파동을 발산하고 있었다. 파동의 기복에 따라 빛무리도 어두워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하며 금방 꺼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던 와중, 문득 구체에서 황금빛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황금빛이 나타나는 순간, 공간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더니 황금빛은 강한 기세로 구체 전체로 퍼졌다. 구체는 마치 활활 타오르는 태양 같았고, 공기 속에는 뜨거운 기운이 점점 강해졌다.

짤그랑-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신혼 기운 두 갈래가 구체에서 튀어나오더니 허공에서 몇 바퀴를 돌다가 각각 아래로 내려왔다.

황금빛 구체는 점차 어두워지다가 한참 지나 더는 빛을 뿜어내지 않았다.

안령아는 가벼운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힘들게 눈을 떴다. 그녀는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켜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양준이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서 미소를 지었다.

신전지정 안에서 비보를 연화하는 방법을 결정지은 다음, 양준은 줄곧 자신의 강한 신식으로 네 글자를 불태웠다. 그 뒤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방금 전에야 비로소 비보를 성공적으로 연화할 수 있었다.

안령아는 동고동락한 양준이 이제 더는 눈에 거슬리지 않았고, 양준도 안령아가 이전보다 친근하게 느껴졌다. 바보같이 굴 때도 있지만 적어도 자신이 비보를 흡수할 때, 그녀는 조용히 멀리 숨어서 지켜보기만 했다.

신혼 비보를 연화하자, 신전지정을 빠져나오는 것도 쉬웠다. 의념을 발동하자 두 사람 모두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신혼 영체가 육신에서 떠난 시간이 길다 보니, 돌아오자마자 적응하는 것은 힘들었다. 양준은 신식의 경지나 육신의 강도가 안령아보다 훨씬 강했기에 그나마 괜찮았다. 반면 안령아는 양준도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땅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 조식하기 시작했다.

양준도 조금 쉬다가 자신의 몸에 어떤 문제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일어서서 신혼 비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비보는 이제 그의 소유였다. 비보 앞에 다가가서 의념을 발동하자 그것은 식해 안에 흡수되었다.

양준은 비보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래된 문파에서 남긴 보물답게 신혼 비보는 성급이었다. 게다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비보의 위력은 하나도 약해지지 않은 듯했다. 이제 양준의 식해에 저장해 두면 시간이 지나 원래의 위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양준은 이번 여정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전에 단운이 있는 단약 하나를 얻었고, 이제 자신에게 알맞은 신혼 비보까지 얻게 되었으니 성과가 대단했다.

양준은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안령아는 여전히 좌선하고 있었고, 해만고 일행은 진작 모두 죽어 있었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시체 옆에 다가가서 건곤대를 모두 거두었다. 그러고는 좋은 물건을 남기고 눈에 차지 않는 것들은 모두 던져 버렸다.

양준이 제자리에 서서 반나절을 기다리고 나서야 안령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다시 한참이나 숨을 고르고서야 기력을 완전히 회복했다. 양준이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고, 그녀는 방그레 웃었다. 마음속에는 영문 모를 달콤함이 샘솟았다. 그녀는 사뿐사뿐 걸어 양준의 곁에 오더니 물었다.

“이제 돌아갈 거야, 아니면 계속해 찾아볼 거야?”

“난 계속 찾아볼 거야. 아직 한 가지를 알아내지 못했거든. 넌… 맘대로 해.”

양준은 덤덤하게 말하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양준이 자신을 냉정하게 대하자 안령아는 입을 삐죽 내밀고서 조용히 뒤따랐다.

양준은 구체 뒤쪽에 있던 궁전으로 들어가 한바탕 살펴보다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해만고와 정씨 노인 일행이 전에 백여 명의 무인들과 협력해서 무형의 보호막을 깨뜨린 것은, 바로 궁전에 들어가 보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뜻밖에 보호막을 깨뜨리는 순간, 모든 이의 신혼 영체가 신전지정으로 끌려들어가게 되었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 양준과 안령아가 들어가 보니 진작 누군가 다녀간 듯했다. 궁전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어떤 가치 있는 물건도 없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와서 찾아봤나 봐.”

안령아가 추측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백여 명이 신전지정에 끌려들어갔으나 유적지에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유적지는 진작 그들이 한 번 다 훑어보았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양준은 더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궁전을 떠나 곧바로 양성 기운의 근원지로 향했다.

바다 밑에 들어온 지 1~2개월이 지났지만 이곳의 양성 기운은 여전히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었다. 양준은 그곳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안령아는 양준에게 미움을 받을까 입을 꾹 다물고 얌전하게 뒤따랐다.

양준은 그녀가 구천성지에 함께 가자고 설득하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고의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걸어서야 두 사람은 양성 기운의 근원지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런데 양성 기운의 파동 가운데는 특별한 기운 파동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허공의 힘이었다. 양준은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아무 수확도 없을 듯했다.

양준은 한 모퉁이에서 걸음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린 채 무기력한 표정으로 앞쪽을 바라보았다. 안령아는 그의 이상한 표정을 보고서 얼른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눈에 그것을 알아보고 입을 틀어막으며 소리쳤다.

“허공 통로?”

앞쪽 멀지 않은 곳, 지면과 약 2장 정도 떨어진 곳에 칠흑같이 어둡고 깊은 구멍이 나 있었다. 바로 허공 통로였다. 양성 기운과 허공의 힘은 모두 그 구멍에서 발산된 것이었다.

“이곳에 어떻게 허공 통로가 있지?”

안령아는 무척이나 놀랐다. 허공 통로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허공 통로는 아주 오래전에 고수들이 싸우면서 공간을 찢어 생긴 흔적이라고 했다. 또 다른 설로는 허공 통로가 스스로 생겨난 것이라고도 했다.

허공 통로의 비밀을 탐지하고 연구한 결과, 오늘날 일부 고수들은 허공의 힘을 이용해 허공 통로와 유사한 것을 만들어내 순식간에 만 리 밖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천소종의 초능소였다.

하지만 이는 정력이 많이 소모되는 일로, 설령 초능소 같은 인물도 쉽사리 허공 통로를 구축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수들이 구축한 허공 통로는 본래 존재했던 것들과 달리 안정성이나 이동하는 거리에서 많이 뒤처졌다.

유적지에 허공 통로가 있자, 안령아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허공 통로가 어떤 곳과 닿아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통현대륙의 어느 한 곳과 이어져 있는지, 아니면 독립된 소현계에 닿아 있는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돌아가자!”

양준이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 양성 기운의 근원지가 궁금한 것은 사실이나, 경솔하게 허공 통로 속으로 뛰어들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별 세계로 이어져 있는 거라면, 다시 돌아올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양준은 안령아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위쪽으로 몸을 날렸다.

“기다려.”

안령아가 얼른 뒤쫓았다.

얼마 안 되어 두 사람은 유적지의 결계에 도착해 결계를 뚫고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순간, 양준은 사방팔방에서 밀어닥치는 거대한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당장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거대한 압박감에 그는 얼른 진원을 돌려 주위의 바닷물을 밀어냈다. 그러자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았다.

안령아는 약삭빠르게 양준의 진원 방어막 속으로 뛰어 들어와서는 마음 편하게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참 여자가…….”

양준이 그녀를 흘겨보았다.

“왜 그래?”

“성녀들은 고귀하고 성스럽다면서? 어떻게 잘 모르는 남자 옆에 아무렇게나 가까이 있을 수가 있어. 이건 아니지 않나?”

“어떻게 ‘아무렇게나’야? 넌 성주 자격이 있다고 말했잖아. 만약 네가 그런 자격이 없었다면 난 죽어도 너와 같이 있지 않았을 거야.”

안령아는 절대 지려 하지 않았다.

“너 계속해서 그 일을 입에 담으면, 정말 널 어떻게 해버릴지도 몰라.”

양준이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너 말만 그렇게 하지, 그럴 마음 없잖아.”

안령아는 마치 양준의 본성을 꿰뚫어 본 것처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양준은 이를 악물고 그녀를 쏘아보며 냉소를 지었다.

“계속 해봐, 지금 당장 널 처리할 수도 있어.”

“네가 감히!”

안령아가 눈을 부릅떴다.

양준은 환히 웃으며 순식간에 많은 진원을 거두어들었다. 그러자 두 사람을 감싼 방어막이 비좁아졌다. 안령아는 비명을 지르더니 바닷물에 빠질까 두려워 얼른 양준의 곁으로 다가섰다. 양준이 계속해 진원을 거두어들이자 방어막은 더욱 작아졌다. 안령아는 점점 더 양준에게 바싹 붙더니 이내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움켜쥔 채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몰래 이를 악물면서도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쁜 자식! 이 악마 같은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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