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44화 (743/853)

제 744장. 오래된 성급 단약

양준은 안령아의 부끄러움을 타면서도 화난 모습을 지켜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기분이 상쾌해졌다.

“성녀 전하, 어떤 느낌이십니까?”

그는 말하는 한편 고의로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입김을 불었다. 안령아의 귓불이 순간 빨갛게 물들더니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구천성지의 성녀는 어려서부터 성지에서 자라고 교육받아 왔었다. 그녀들은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자신들의 삶은 성주를 위한 것이며, 모든 것은 성주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는 이념으로 세뇌된 상태였다. 구천성지에서 성녀는 고귀함과 성스러움의 상징이었기에 남자와 이처럼 가까이한 적이 없었다.

양준의 몸의 단단함과 우람함이 느껴지자, 안령아는 심장이 콩닥거렸다. 그녀는 자신이 어쩌다가 이런 나쁜 놈을 건드렸는지 후회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나쁜 놈이 그녀의 시험을 통과하고, 구천신기를 한꺼번에 세 가지나 각성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정말 하늘도 눈이 멀었나 보다!’

안령아는 입술을 꼭 깨물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양준은 그녀의 억울한 듯한 모습을 보고서는 더는 놀리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한 채로 계속해 위로 날아올라갔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두 사람은 해수면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안령아는 놀란 토끼처럼 재빨리 양준의 곁에서 벗어나 숨을 헐떡이면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지하게 다시 말할게. 구천성지 사람들에게 바다 밑에서 있었던 일을 절대 말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정말 죽여 버릴 테니까. 그리고 나도 약속하지. 절대 구천성지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을 거고, 너희들의 비밀도 누설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 서로 다시 만나지 말자. 이건 서로에게 좋은 일이야.”

양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신신당부했다.

“알았어. 절대 입 밖에 꺼내지 않을게.”

안령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만. 네가 하루 빨리 성주를 찾길 바라.”

양준은 환히 웃어 보이고는 빠르게 떠나갔다.

안령아는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누군가 성주 자리를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성주를 찾는 순간, 상대가 기뻐하며 한시라도 빨리 성지로 가 부귀영화를 누리려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양준의 반응과 태도는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양준은 아무 미련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정말로 성주가 될 마음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어머! 큰일났네!”

안령아는 문득 자신이 실종된 지 꽤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깜짝 놀랐다.

‘전 아저씨는 아마 속이 타 죽을 지경이겠지.’

*

그 시각, 바다 위 여러 섬들에서는 한창 긴장감이 돌며 야단법석이었다.

7세가 연맹과 구천성지의 사람들은 지난 한 달여 동안 근처의 23개 섬을 이 잡듯이 다 뒤졌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성녀의 행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구천성지 사람들의 노기에 7세가 연맹은 가슴을 졸였다.

7세가 가주들은 한 궁전에 모여 있었다. 궁전은 원래 구천성지 사람들이 잠시 거처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전령(錢寧)은 암담한 표정으로 7세가 연맹의 가주들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호통쳤다.

“한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 성녀의 행적을 찾지 못하다니……. 사흘의 시간을 더 주겠다. 만약 사흘 뒤에도 성녀를 찾지 못하면 모든 섬을 부숴 버릴 것이다.”

“전 호법, 노여움을 푸십시오. 사람을 더 많이 보내 어떻게 해서든 성녀 전하를 찾아내겠습니다.”

7세가 연맹의 초범 경지 1단계 무인이 쩔쩔매면서 이마의 식은땀을 연신 훔쳤다.

원래 구천성지의 사람들이 찾아온 것은 7세가 연맹에게 있어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뜻밖의 변고가 생겨 그들도 연루되고 말았다.

“전 호법, 성녀 전하께서 전에 그 사람들과 함께 바다 밑으로 내려간 건 아닐까요?”

누군가 추측했다.

“바다 밑에 내려갔다고? 성녀 전하께서 왜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하시겠는가?”

전령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바다 밑을 제외하고 모든 곳을 다 찾아보았습니다만…….”

“바다에 내려갔던 사람들도 진작 사흘 전에 다 돌아온 거 아닌가? 그중에 성녀 전하의 종적이 없었어. 만약 정말 바다 밑에 내려갔다고 해도 진작 돌아왔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바다 밑에서 사상자도 많았으니 혹시라도 성녀 전하께서 이미…….”

“무엄하다! 성녀 전하께서 어떤 분이신데, 너희들처럼 출신이 미천한 이들도 모두 살아서 돌아왔는데 그분이 어떻게 잘못될 수 있단 말이냐? 어떤 방법을 취하든지, 사람을 얼마나 보내든지 상관없으니 사흘 내에 반드시 성녀 전하를 찾아오거라. 그렇지 않으면 그 결과는 너희들도 잘 알 것이다. 모두 나가.”

전령이 대노하여 고함을 질렀다.

7세가 연맹의 가주들은 그의 태도에 속으로 화가 났지만 차마 내색하지 못했다. 그들처럼 작은 세력은 구천성지에서 온 전령에게 맞설 배짱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미처 떠나기도 전에 시녀가 급하게 뛰어 들어오더니 희색이 만면하여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전 호법님, 성녀께서 돌아오셨습니다.”

“돌아왔다고?”

전령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서둘러 뛰쳐나가 시녀에게 급히 물었다.

“어디 있느냐?”

시녀가 뒤돌아서서 가리켰다. 시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바라보니 안령아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내 전령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그는 기쁜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내내 가슴을 짓누르던 걱정을 드디어 내려놓게 되었던 것이다.

“무사하다니 잘 됐습니다. 혹시 부상을 입진 않으셨죠?”

전령은 긴장을 풀었는지 미소를 띠고서 물었다.

안령아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어디 계셨던 겁니까?”

“저번에 밖으로 나갔다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게 되었어요. 근처에서 조용한 곳을 찾아 폐관 수련하다 보니 한 달이 지난 것도 몰랐네요.”

안령아는 어색한 표정으로 가볍게 말했다.

전령은 의혹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성녀가 거짓말한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사람이 무사한 것이 다행이라 생각되어 더는 캐묻지 않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참 잘됐습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시녀에게 분부했다.

“패아, 성녀님께서 쉴 수 있도록 모시거라.”

“네!”

패아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7세가 연맹의 가주들은 서로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여러 섬들 중 한 곳, 양준은 정석 몇 개를 납부하고 밀실에 들어갔다. 밀실은 7세가 연맹에서 개설한 것으로 무인들이 깨달음을 얻고 폐관 수련할 때 사용하는 곳이었다. 물론 사용료도 일반 여인숙보다 훨씬 비쌌다.

그러나 밀실에는 금제와 결계가 많이 설치되어 있어 외부의 방해를 피할 수 있었다. 또한 7세가 연맹에서 밀실에 들어온 이들의 안전을 책임져 주었기에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곳은 외부 무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했다.

보통 성곽에는 모두 이런 밀실이 있었다. 무인들은 문득 깨달음을 얻을 때가 종종 있어 밖에 나갔다가 폐관 수련이 필요하면 이런 밀실이 편리했다.

양준은 밀실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밀실 안에 설치된 금제와 결계는 단단할 뿐만 아니라 일정한 정도의 충격을 견뎌 낼 수 있었으며 더욱이 경고 기능도 있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운이 있는 단약을 꺼내 손바닥에 놓고 세밀하게 탐지했다.

양준이 이곳을 급히 떠나지 않은 원인은 우선 성급 단약이 어떻게 제련되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다음으로 이곳에 남아 안령아의 움직임을 지켜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가 소인배인 것이 아니라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었기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안령아가 그를 팔아 넘기면, 그는 구천성지와 적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큰 세력과 척을 지게 되면 앞으로 후환이 끊이지 않을 게 뻔했다.

양준은 영문도 모르고 구천성지의 신혼기 세 가지를 배우게 되었다. 이 정도의 비전 공법이 외부인에게 전해진 걸 알면 구천성지는 그를 죽여 입을 막거나 아니면 그를 성주로 모시려고 할 것이 틀림없었다.

안령아의 신혼 낙인을 빼앗은 것도 사실은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였다. 신혼 낙인을 통해, 안령아가 하는 모든 일을 감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녀의 감정 상태를 미묘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신혼 낙인으로 그녀를 감시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곧 양준은 단약에 정신을 집중했다. 이는 성급 중품의 단약이었다.

성급 단약을 제련해 내는 연단사는 어느 연대에서든지 보기 드물었다. 두만처럼 명성이 높은 인물도 성급 하품에 지나지 않았고, 그의 수단으로는 성급 중품의 단약을 제련할 수 없었다. 물론 행운이 따르면 어쩌다 하나 제련해낼 수도 있었다. 양준이 아는 인물 가운데서 천장노인 이서만이 쉽게 성급 단약을 제련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뛰어난 연단사는 단약의 흔적과 약의 배합을 보고 약을 제련한 이의 수준을 추론해 낼 수 있었다. 양준은 손바닥 위의 단약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경험이 풍부한 편은 아니지만 애당초 연단사가 이 단약을 얼마나 쉽고 여유 있게 제련해 냈는지 알 수 있었다. 단약은 둥글고 윤이 나며 향이 짙었다. 이는 연단사의 연단 수준이 절묘한 경지에 올랐음을 말해 주었다. 아마 이서와 비교해도 막상막하일 듯했다. 그러나 너무 오래된 것이고, 유적지가 어떤 세력이 남긴 것인지 알 수 없었기에 연단한 사람의 신분은 탐지할 수 없었다.

또한 가장 값진 것은 단운이 정말 구름처럼 단약을 짙은 영기로 감싸고 있어, 약 기운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세월이 흐르는 동안 끊임없이 천지의 영기를 모아 단약을 보강시킨 듯했다. 지금 단약에 내재된 기운은 어마어마하게 강했다. 아마 입성 경지 고수가 이 단약을 복용해도 그것이 폭발하는 기운을 버텨 내지 못할 듯했다. 단약의 약 기운이 이 정도로 강해진 것도 전례 없는 일일 터였다.

양준은 정신을 집중해서 애당초 연단한 사람이 사용한 기법과 단약의 형성 과정을 감지하며 추론해 보았다. 은연중에 마치 오래전의 광경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지만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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