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6장. 육색 온신련
구천성지가 잠시 머무는 궁전,
전령은 다시 한번 성녀에게 여정을 계속해야 한다고 독촉했다. 성녀가 돌아와서 지금까지, 그는 벌써 두 번이나 떠나기를 청했지만 안령아는 모두 거절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전령은 저도 모르게 화가 났다. 성지 내에서 성녀의 지위는 그보다 높았지만, 이번 여정을 나서며 그는 성녀의 안전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일행을 거느리고 나아갈 책임도 있었다.
“성녀님은 어서 성주를 찾으셔야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곳에 계속 머무는 것은 안 됩니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며칠 동안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요. 꼭 무슨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요.”
안령아는 창백한 얼굴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큰일이라고요? 어떤 큰일입니까?”
전령도 낯빛이 바뀌었다.
안령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저도 모르겠어요. 딱히 말하기…….”
전령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한동안 더 머물러야겠군요. 성녀님의 마음이 안정되면 그때 떠나는 걸로 하죠.”
“네, 좋아요.”
안령아는 전령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이마에 커다란 땀방울이 맺혔다. 방금 전에 한 말은 전령을 속이려는 게 아니었다. 확실히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요 며칠간 그녀의 눈앞에는 늘 좋지 못한, 피비린내 나는 환각이 나타나곤 했다. 처음에는 양준이 자신의 신혼 낙인을 빼앗았기 때문이라고 여겼으나 한참 동안 탐지해 본 결과, 그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
밀실,
양준은 열흘 간의 폐관 수련을 거쳐 겨우 성급 단약의 약 기운을 모두 흡수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단약이 만들어진 비밀과 단운의 생성 비결도 조금 알아낼 수 있었다. 정보가 많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성과가 있으므로 그것에 만족해야 했다. 또한 연단술에 대한 그의 이해도도 깊어졌다.
단약의 약 기운이 모두 흡수된 다음, 양준은 자신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몸이 가벼워졌고, 식해가 맑고 깨끗해졌으며 신식의 힘도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또한 식해 안에 미묘한 기운이 생겨났다. 이 기운이 생기면서 그는 신식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이전보다 손쉽고 편리해졌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얼른 식해 속으로 들어가 자세히 훑어보았다. 신혼 영체가 생성되자마자, 양준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폐관 수련하는 동안, 그는 줄곧 단운의 비밀을 파헤치느라 식해의 상황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 식해 안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활활 타오르는 바닷물 같은 신혼 기운이 더 짙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멸세마안과 신전지정도 아무 변화 없이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오색 온신련이 변한 섬에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섬에는 알록달록한 빛이 반짝이며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자세히 훑어보니 원래 다섯 가지 색으로 구성되어 있던 섬은 한 가지 색이 더해져 여섯 가지 색이 되어 있었다. 새로 더해진 색은 다른 색보다 옅었지만, 실제로 생겨난 것이 분명했다. 온신련이 육색 온신련으로 진화한 것이었다.
양준은 놀라는 동시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온신련을 얻을 당시에는 살아생전 온신련의 진화 과정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마가 말한 것처럼 그 과정이 너무나 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급 단약의 약 기운을 흡수한 결과, 오색 온신련의 등급이 올라갔다. 이제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최종 무지갯빛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한 가지 색이 더해질 때마다 온신련이 발휘할 수 있는 기능은 배가 되었다. 양준은 신혼을 강화하는 온신련의 효력이 전보다 많이 강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 효력은 언제든지 발휘될 수 있었다. 즉, 온신련을 가지고 있는 한, 양준의 신혼은 끊임없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이번에 얻은 성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온신련이 오색에서 육색으로 진화하는 데는 족히 십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양준은 많은 단약과 약재들을 복용했었다. 그리고 온신련의 원래 주인이 온신련에 제공한 자양분도 있었다.
살아생전 온신련이 무지갯빛으로 진화되는 것을 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육색으로 진화된 것만으로도 양준은 만족감을 느꼈다. 그는 여섯 가지 빛을 뿜고 있는 섬을 지켜보며 실실 배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식해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얼른 감지해 보았다. 그의 신혼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한쪽에 있던 안령아의 신혼 낙인에서 평범하지 않은 파동이 이따금씩 전해지고 있었다. 안령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그녀의 심경 변화에 따라 낙인에서 불안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무슨 위험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
양준은 의혹에 싸였다.
‘초범 경지 1단계가 높은 경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구천성지의 성녀잖아. 누가 감히 존귀한 신분의 성녀를 건드린 거지?’
양준은 의문을 품은 채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는 밀실 안의 금제와 결계를 파훼하고 나서야 밀실의 대문을 나섰다.
이윽고 대문을 나서는 순간, 귓가에 들리는 건 온통 사람들의 비명 소리뿐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굉음이 들려왔고, 천지가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엄청난 압박감이 머리를 내리눌렀다.
양준은 낯빛이 급변하며 얼른 진원을 돌려 횡포한 위압감을 막아 냈다.
섬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몰려들었고, 그들의 뒤에는 무서운 무언가가 뒤쫓고 있는 듯했다.
콰앙-
양준은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등 뒤의 밀실에서 우지직 소리가 들려오더니 포악한 기운이 휘몰아치자 곧 무너져 내렸다.
양준이 한참 동안 바라보았지만 적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서둘러 신식을 펼치자, 멀지 않은 곳에서 두려움이 느껴지는 기운이 감지되었다. 그는 얼른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고, 마침 하늘에서 백 장이나 되는 커다란 검이 내리꽂히며 어마어마한 기세로 공간을 찢고 있었다.
“현천검?”
양준은 놀라는 동시에, 한눈에 그것이 구천신기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안령아에게서 이 공법을 전수받아 사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 현천검은 신혼기였고, 눈앞의 것은 무공이었다. 진원으로 만들어진 현천검은 속성이나 위력이 그가 사용했던 현천검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지직-
커다란 검이 내리꽂히자, 섬은 가운데서 두 쪽으로 갈라졌다.
양준은 실눈을 뜨고서 허공에 나타난 아름다운 그림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현천검은 그 사람이 펼친 것이었다.
티 하나 없이 깔끔한 흰옷을 입고 예쁜 용모에 빼어난 몸매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의 기운은 안령아와 비슷하게 고귀하고 성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그것 외에도 왠지 옅은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양준은 영문도 모르게 두려움을 느꼈다.
여인은 작은 손에 커다란 현천검을 잡고서 마치 떡을 베듯이 아무렇게나 몇 번 휘둘렀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섬들이 산산조각 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섬 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엄청난 공격과 강한 위압감에 반항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내 사상자가 속출했다. 푸른 바닷물은 한순간에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세계의 종말을 방불케 하는 광경은 공포감을 자아냈다.
여인은 걸음을 옮겨 옆쪽 섬으로 가서 계속해 현천검을 휘둘렀다. 또 순식간에 섬 하나가 훼손되었다. 단 일각 사이에 섬 세 개가 그녀의 손에 산산이 부서졌다.
양준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여인의 노기가 자신이 있는 섬에 닿으려는 것을 보고, 그는 더는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신법을 펼쳐 뒤쪽으로 날아갔다.
양준이 움직이는 순간, 여인의 관심을 끌었다. 이내 그녀에게서 빛이 튀어나오더니 이빨을 드러낸 뱀처럼 빠르게 양준을 덮쳤다.
“유천쇄!”
양준은 깜짝 놀랐다. 여인은 구천성지의 사람이 분명했다. 게다가 고위층 인물일 가능성이 컸다. 아니면 구천신기를 수련했을 리가 없었다. 양준을 불안하게 한 것은 상대가 입성 경지 고수라는 점이었다. 그를 뒤쫓는 유천쇄는 빠를 뿐만 아니라 진원도 농밀하고 순수해 전혀 따돌릴 수가 없었다. 그는 더는 지체하지 않고 풍뢰우익을 활짝 펼쳤다. 그의 속도는 순식간에 빨라져 원래 자리에서 번개같이 사라졌다.
유천쇄는 양준이 움직이면서 남겨 둔 그림자를 묶었을 뿐이었다.
여인은 멀리서 양준의 뒷모습을 지켜보더니 얼굴에는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이윽고 그녀의 신형이 번쩍하더니 원래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곧 다시 양준의 등 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났다.
양준은 뒤쪽의 살기와 한기를 느끼고서 온몸의 솜털이 빳빳이 서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미처 공격하기 전에 그는 또다시 원래 자리에서 사라지는 동시에, 얼른 기운을 숨기고 몰래 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여인은 허공에 멈춰 서서 고개를 갸웃하고 눈동자를 굴리더니 정확하게 양준의 위치를 찾아냈다. 그녀는 양준을 찾은 뒤 서둘러 공격하지 않고 도리어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양준은 화가 치밀었다. 이런 고수가 도대체 왜 자신을 노리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왠지 안령아는 내막을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를 찾아 사실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
궁전 앞,
구천성지의 고수들이 모여 넋을 잃은 채 하늘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여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성고(楠聖姑)?”
안령아는 비명을 지르더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슬프게 눈물을 떨구었다.
“남성고께서 이곳에 오신 걸 보니, 성주께서 이미 유명을 달리하신 건가?”
전령은 입술을 바르르 떨더니 얼굴이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