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7장. 죽어서는 살인마가 된다
몇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양준이 이쪽으로 달려와 안령아의 곁에 다가서서는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령아는 눈물을 흘리다가 양준을 힐끔 보고는 급히 말했다.
“왜 아직도 여기 있어? 떠난 거 아니었어?”
“갈 수가 없어. 저 여자가 의념을 내 몸에 걸어 놓은 거 같아.”
양준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안령아는 입을 틀어막으며 동정 어린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저 여자는 도대체 누군데 날 노리는 거야? 혹시 너희들과 연관이 있는 거 아니야?”
양준이 화난 얼굴로 연신 질문을 던졌다.
“자네는… 그때 배에 올라탔던 젊은이가 아닌가?”
전령은 양준을 곁눈질하다가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 변고가 생겨 구천성지의 사람들 모두 골치가 아팠다. 그런데 양준까지 이곳에 나타나 끊임없이 질문하자, 그는 금세 화를 낼 것처럼 손을 휘저었다.
“저리 비켜서게. 자네가 나설 데가 아니네.”
동시에 그는 양준에게 진원을 쏘았다.
양준은 차가운 얼굴로 실력을 감출 겨를도 없이 아무렇게나 손을 저어 전령의 진원 공격을 막았다. 그는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어?”
전령은 깜짝 놀라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젊은이가 이렇게 쉽게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했다.
“당신들과 적이 될 생각 없습니다. 그저 저 여인이 왜 절 노리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양준은 짜증난 표정으로 전령을 차갑게 바라보고는 자신의 입장과 태도를 밝힌 뒤, 안령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전 아저씨……!”
안령아가 손을 들어 전령을 저지하고는 양준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가 남성고에게 찍힌 건 자초한 거야.”
“무슨 뜻이야?”
“아마 네가 구천신기를 배운 탓일 거야.”
이 말에 구천성지의 초범 경지 고수들은 낯빛이 크게 바뀌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당황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전령은 어안이 벙벙하여 양준과 안령아를 번갈아 보다가 엉겁결에 한마디 했다.
“어떻게 구천신기를 배우게 된 거지?”
구천신기는 성지의 고위층 인물들만이 배울 자격이 있었기에 전령조차도 배운 적이 없었다.
“너 죽으려고 환장했어!?”
양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령아가 이렇게 많은 이들 앞에서 비밀을 까밝히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그는 구천성지와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다 죽게 생겼는데, 저들이 알아도 상관없어.”
“전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전령이 급히 물었다. 의혹에 찬 표정이었지만, 속으로는 짚이는 바가 있는 듯했다.
“아저씨의 짐작이 맞아요. 눈앞의 남자가 제 시험을 통과하고 구천신기 세 가지를 각성했거든요.”
안령아가 눈물을 훔치며 가볍게 말했다.
모든 이가 입을 딱 벌린 채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 되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뒤, 전령이 정신을 차리고 힘겹게 말했다.
“그럼 성주의 적임자가 아닙니까?”
“맞아요.”
안령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양준을 바라보는 전령 일행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거기에는 공손함과 함께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요. 남성고가 여기까지 찾아왔잖아요…….”
안령아의 말에 전령 일행의 표정이 암담해졌다.
“성주고 뭐고 상관없어. 일단 눈앞의 상황에 대해 설명 좀 해주지 그래. 저 여인은 누구야? 아는 사이지?”
양준은 살기를 억누르고, 하늘에 우뚝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을 가리키며 물었다.
안령아가 이미 비밀을 폭로한 이상, 이제 와서 그녀에게 책임을 물어도 소용이 없었다. 양준은 갑자기 나타난 여인이 도대체 누구인지, 왜 말 한마디 없이 살육을 저지르는지, 왜 의념을 자신의 몸에 걸어 놓은 것인지 알고 싶었다.
“남성고야!”
안령아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남성고?”
“성지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전임 성녀야.”
“구천성지에서 내부 싸움이 일어난 거야? 왜 전임 성녀가 너희에게 적의를 가지지?”
안령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남성고는 나를 예뻐했어. 내부 싸움은 무슨… 내가 했던 말 기억해?”
“무슨 말?”
“구천성지의 성녀는 살아생전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그게 지금 상황과 무슨 연관이 있어?”
“그건 앞부분이고, 뒷부분에 한마디 더 있어…….”
안령아는 마음속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어서는 살인마가 된다.”
양준은 얼이 나간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성지의 성녀는 살아생전 어떤 생명체도 죽일 수 없어. 하지만 죽은 뒤 시체를 제때 처리하지 못하면 수라도에 떨어져 감지되는 모든 생명체를 죽여. 그것이 아마 우리가 수련한 공법의 문제점인 거 같아. 때문에 성녀가 죽은 다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체를 곧바로 태워야만 해. 우리가 출발할 때만 해도 남성고는 멀쩡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양준은 그제야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가 되었다. 여인에게서 옅은 죽음의 기운이 느껴진 것은 안령아의 말대로라면 여인이 이미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양준은 죽은 사람이 활동하는 것을 처음 보는 게 아니었다. 관을 멘 사람도 산송장이었다. 그는 진작 오래전에 죽었지만, 집념이 남아 있어 강한 경지와 집념으로 사후에도 계속해 자신의 책임을 이행하면서 고마 일족을 위해 구원자를 찾아 다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성고도 마음속에 강한 집념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남성고와 성주는 한마음 한뜻입니다. 아마 성주께서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남성고도…….”
전령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구천성지에서는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이런 위험한 사람을 내버려 두다니.”
양준은 화가 치밀었다. 입성 경지 고수에게 찍혀서 앞으로 계속 생명에 위협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자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있어? 같은 공법을 수련한 연유로 남성고께서 나를 찾아온 모양이야. 근처 섬의 사람들이 그녀를 막아 내지 못하면 아마 전멸될 거야. 나를 죽인 다음, 그녀는 또 다른 세 자매를 죽이러 가겠지. 그녀의 시체를 없애야만 살육을 멈출 수 있어. 그전까지 남성고는 모든 생명체를 적으로 생각할 거야.”
근방에 있는 섬들 중에서 가장 강한 실력을 가진 이는 전령으로, 그는 기껏해야 초범 경지 3단계밖에 안 되었다. 입성 경지인 전임 성녀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성녀 전하와 미래의 성주께서 잘못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령이 단호한 표정을 짓더니 진지하게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는 아직 성지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성녀님의 시험을 통과하였으니 조만간 성주가 될 것일세. 성녀님을 데리고 어서 이곳을 떠나게나.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해도 자네만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네. 성녀님께서 목숨으로 자네의 안전을 지킬 것이네.”
양준은 냉정한 표정을 지었다. 전령의 말에 느끼는 바가 있었지만, 그는 구천성지의 성주가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어서 빨리 떠나게. 우리가 막아 볼 테니까.”
“상황 파악을 못하는군요. 그건 죽음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와 안령아가 어디로 도망친단 말입니까. 근처에는 전혀 도망칠 곳이 없는데…….”
순간 양준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멀리 바다 한가운데를 바라보았다. 안령아도 같은 생각을 떠올렸는지 양준을 바라보았다. 곧 서로 간의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몇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남성고는 하늘에서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망설이는 표정이 떠올랐다. 생전의 이성이 그녀의 행동을 저지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그녀의 몸에서 점차 차가운 살기가 배어 나왔다.
“살아남으면 꼭 성지에 가서 성주가 되어 주게나. 성지에는 하루라도 성주가 없으면 안 된다네.”
전령은 양준의 어깨를 퍽퍽 두드리며 의미심장하게 당부했다.
양준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빨리 가게나. 될수록 멀리 도망치게.”
전령이 심호흡을 하고서 고개를 번쩍 들더니 하늘에 있는 남성고를 바라보았다.
남성고의 표정은 수시로 변하다가 점차 포악함이 망설임을 대체했고, 짙은 살기를 내뿜었다. 섬들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해 음산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양준은 더는 지체하지 않고 안령아를 와락 끌어안고는 등 뒤의 풍뢰우익을 펼쳐 번개같이 날아갔다. 두 사람이 움직이는 동시에 남성고가 손을 휘저었다. 공격이 폭풍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전령은 구천성지의 고수들을 거느리고 어두운 표정으로 맞섰다.
“전 아저씨는…….”
안령아가 고개를 돌리며 다급하게 말했다.
“아마 죽었을 거야.”
양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속도를 끌어올려 눈 깜짝할 사이 안령아를 데리고 바다 위로 날아갔다. 그리고 다시 진원으로 두 사람을 감싸고는 재빨리 바다 밑으로 내려갔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동시에 그는 틈을 타서 위쪽을 힐끔 보았다. 마침 전령 일행이 하늘에서 폭발해 피 안개가 되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남성고의 공격을 얼마 버티지 못했다.
남성고는 전령 일행을 죽이고도 멈출 생각이 없이 현천검을 계속해 휘둘렀다. 이내 전령 일행이 있던 섬이 뭉텅뭉텅 썰려 나가 바다 속에 가라앉으며 도탄에 빠졌고, 사상자는 셀 수도 없었다. 곧이어 남성고가 커다란 현천검을 던졌다. 현천검은 강한 기세로 바닷물을 가르며 양준과 안령아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양준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진원이 난폭하게 요동치며 속도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렸으나 여전히 현천검의 추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현천검은 바닷물에서 전혀 방해를 받지 않았고, 아예 푸른 바다를 두 쪽으로 갈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