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48화 (747/853)

제 748장. 도망치다

푸른 바다 한가운데서 놀라운 원기 파동을 내뿜는 거대한 검이 뒤쫓아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살기에 양준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검 뒤로 남성고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그녀는 양준과 안령아를 죽일 기세로 쫓아오고 있었다.

바다 밑으로 내려가던 중, 양준은 급히 안령아에게 소리를 질렀다.

“살고 싶으면 힘 좀 내. 지금 슬퍼할 시간 따위는 없다고.”

그 말에 안령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양준의 몸에 진원을 주입했다. 순간, 양준의 온몸의 진원은 더욱 빠른 속도로 솟구쳤다. 구천성지 성녀의 수련 비법은 짧은 시간 안에 양준의 전투력을 향상시켜 주었다. 이는 양준이 안령아를 데리고 도망친 이유이기도 했다.

이내 진원을 폭발시키자, 양준의 손에서 현천검이 빛을 번쩍였다. 하지만 안령아가 도와줬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길이가 십여 장에 달하는 현천검밖에 만들어 내지 못했다. 게다가 남성고의 현천검과 비교하면 한참 위력이 떨어졌다.

서로 다른 구천신기의 초식은 마주해 날아가더니 잠시 뒤, 한데 부딪혔다. 굉음이 들리면서 양준의 현천검은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다. 주변의 바닷물이 무섭게 일렁이며 분출하는 힘에 양준과 안령아는 아래쪽으로 적지 않게 떠밀렸다.

남성고는 잠깐 흠칫했지만 곧 다시 쫓아왔다.

“구천성지 성녀의 약점이 뭐야?”

양준이 급히 물었다.

“힘으로 이기지 못하는 한, 약점이 없어. 내가 막을 수 있을지 한번 시도해 볼게.”

양준의 품에 안겨 아래쪽으로 내려가던 안령아는 이를 악물었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신식의 힘이 솟구치더니 남성고에게 쏘아졌다.

은연중에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노랫소리에 양준은 괜히 나른해졌다. 그는 곧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낯빛이 차가워졌다. 이 신혼기는 전에 신전지정에서 안령아가 시전했던 초식과 비슷했는데, 몸과 마음을 느긋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는 듯했다.

남성고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집념 하나로 움직이는 것이기에 이런 신혼기로 대적하는 것은 더없이 정확한 선택이었다. 양준이 감지해 보니 남성고도 신혼기의 영향을 받았는지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졌고, 몸의 진원 파동도 불안정했다.

“그 정도만 유지해 주면 되.”

양준은 생기를 되찾았다. 안령아가 남성고를 잡아 두기만 하면 그는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해.”

안령아는 창백한 얼굴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녀의 경지로 남성고를 신혼기로 상대하는 것은 스스로도 상처를 적지 않게 입는 듯했다.

양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도망치면서 시간을 끌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그가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와 경지 차이가 많이 났기에 일반적인 수단은 소용이 없었다.

신전지정은 성급 비보이므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시전하면 양준의 신혼도 백색 공간으로 들어가야 했고, 그는 그곳에서 남성고와 신식으로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멸세마안의 위력도 강했으나 남성고의 신식이 그의 식해로 들어오지 않는 이상, 멸세마안은 무용지물이었다. 멸세마안은 양준의 식해로 들어온 신혼의 힘을 정화시키는 것 외에, 무인이 죽은 뒤에 남긴 신혼만 흡수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남성고는 진정한 의미에서 죽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녀가 죽은 사람이라면 멸세마안은 진작 기능을 발휘했어야 했다.

양준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이때, 귓가에서 들리던 노랫소리가 멈췄다. 노랫소리가 끊기는 순간, 안령아는 피를 토하며 양준의 품에 쓰러졌다. 그녀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안령아의 견제가 사라지자, 남성고는 다시 예전의 속도를 회복했다. 쌍방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다행히 거대한 현천검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일정한 범위로 좁혀 오기 전까지는 안전할 듯했다.

아래로 잠수할수록 수많은 바다 요수와 물고기가 옆에서 노닐었지만 양준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안령아가 말한 것처럼 남성고는 지나는 곳마다 모든 생명체를 죽였다. 바다 요수와 물고기들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다. 남성고는 그것들을 죽이는 데 별로 힘을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추격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양준은 시간이 엄청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입성 경지의 고수가 거머리처럼 쫓아오는 탓에 언제든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하루가 일 년 같았다.

이때, 아래쪽에서 산호들이 오색찬란한 빛을 반짝였다. 양준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나지막하게 외쳤다.

“다 왔어.”

그 말에 안령아는 눈을 뜨고 힘겹게 물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네 이름이라도 말해 줄래? 적어도 내가 누구의 품에 안겨서 죽는 건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

그 말에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안령아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이렇게 한심한 질문이나 하다니.’

하지만 이번엔 거짓으로 둘러대지 않고 진짜 이름을 말해 주었다.

안령아는 파리하게 웃더니 물었다.

“살아남으면 나랑 같이 성지로 가지 않을래?”

“꺼져. 또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면 널 여기에 버려둘 거야.”

양준은 매정하게 거절했다.

“매정한 녀석!”

말하는 사이, 그들은 유적지의 결계 앞에 도착했다. 양준은 망설임없이 바로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 결계에는 잔물결만 일뿐, 그를 전혀 막지 못했다.

결계 안으로 들어가자, 바닷물의 압력이 사라졌다. 그 덕분에 양준은 원래의 속도를 회복했고, 등 뒤의 풍뢰우익도 바람과 우레의 힘을 폭발시켰다. 양준과 안령아는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전에 봤던 허공 통로로 날아갔다.

잠시 뒤, 남성고도 결계 안으로 쳐들어왔다. 그녀는 눈 깜짝할 새에 멀리 나아갔는데 속도가 양준 못지않았다. 남성고의 무시무시한 압박에 양준은 도망치기만 할 뿐, 그녀와 싸울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허공 통로에서 전해지는 양성 기운이 점점 짙어졌다. 허공 통로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듯했다.

양준을 이를 악물고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때, 뒤에서 진원이 폭발했다. 남성고가 공격한 것이다. 양준의 안색이 바뀌더니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이내 앞쪽에서 커다란 그물 모양의 물체가 나타나 두 사람을 덮쳤다.

“나천망(羅天網)! 얼른 피해. 걸려들면 신혼도 도망치지 못할 거야.”

안령아가 소리쳤다. 그녀가 굳이 귀띔해줄 필요도 없었다. 양준은 이 공격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지만 전투 경험이 풍부한지라 진작 방향을 틀어 나천망의 공격을 피했던 것이다.

한 수를 피하자, 뒤에서 또다시 놀라운 원기 파동이 전해졌다.

하늘에서 수만 배 커진 손바닥이 천천히 내려왔다. 커다란 손이 양준의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하늘 전체가 손에 뒤덮인 듯한 착각이 들었다. 도망칠 곳도, 피할 곳도 없이 그의 눈앞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차천수(遮天手)!”

안령아는 사색이 되어 중얼거렸다.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이번에는 남성고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틀림없이 죽을 거라고 생각한 듯했다.

“입마!”

문득 양준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천지가 뒤흔들리고 난폭한 마기가 그의 몸에서 퍼져 나왔다. 마기는 마문으로 변해 그의 피와 살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고, 기혈이 끝없이 팽창함과 동시에 그의 기세는 미친 듯이 향상되었다.

안령아는 눈을 번쩍 뜨고 몸을 떨며 자신을 꼭 끌어안고 있는 양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순간, 그녀는 양준이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사악하고 잔혹한 느낌이 들었으나 전보다 훨씬 믿음직해 보였다. 그의 장대한 몸집은 어떤 재난에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양준은 차천수의 위압감을 뚫고, 파괴성 짙은 공격이 닿기 전에 간신히 피했다.

쿠웅-

유적지 안의 수많은 집들이 무너졌다. 눈에 보이는 기파가 양준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갔고, 유적지의 가장자리까지 퍼져 나가 바닷물마저 일렁이게 했다.

양준은 창백한 얼굴로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안령아도 얼굴의 습기를 느끼고 손을 들어 닦아 보니 양준의 입가에서 흘러내린 피였다. 양준은 방금 전의 차천수를 완전히 피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서 있었다.

“망할!”

양준은 제자리에서 피하는 한편, 자신의 복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린 안령아는 입을 틀어막고 소리를 질렀다.

“주천모(誅天矛)!”

양준의 복부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화살이 꽂혀 있었다. 이 역시 구천신기 중 하나였다. 방금 전 차천수를 피하느라 정신이 팔린 탓에 안령아도 공격을 눈치채지 못했고, 양준도 미처 피하지 못해 몸이 꿰뚫린 것이었다. 곧 피가 옷을 적셨고, 자세히 살펴보면 은은한 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안령아는 겁에 질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 일말의 희망마저도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그녀는 구천신기의 위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것도 남성고가 펼친 것이라 손속에 전혀 자비를 두지 않았다. 양준이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다 해도 이런 공격에 몸이 관통되었으면 오장육부가 모두 가루가 되어 곧 죽을 터였다.

‘아직 쓰러지지 않고 열심히 뛰는 건 마지막 기운일 거야.’

안령아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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