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0장. 질문이 좀 많구나
곧 양준은 감방을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앞장서서 가던 사람이 다시 양준을 힐끗 뒤돌아보았다. 양준에게 뭔가를 당부할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양준의 모습을 확인한 그는 안색이 변하면서 입을 떡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너… 몸이…….”
“왜요? 문제가 있나요?”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물었다.
“너 곧 죽을 것 같은 모습이었잖아. 그런데 어떻게…….”
살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데다 관통된 상처까지 있는 양준을 보고 다들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양준의 몸은 완벽했다. 그 사람은 눈앞에 모습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 회복력이 일반인보다 좀 대단하긴 하죠.”
“너무 대단한데?”
그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양준을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상처를 치료하는 영단묘약이 있나 보군. 있다면 당장 내놔. 안 그러면 크게 고생할 거야.”
“없어요, 그런 거.”
양준은 덤덤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았으나 건곤대 같은 것이 보이지 않자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괜히 화가 났는지 이를 악물고 양준을 밀치락달치락하며 대전에 들어섰다.
대전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불그레한 안색에 기운이 넘쳐 보였다. 다들 정도는 다르나 뜨거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양준과 마찬가지로 양성의 공법을 수련하고 있었다. 게다가 경지도 낮지 않았다. 가장 낮은 경지가 신유 경지 8단계였고, 초범 경지도 여러 명 되었다.
대전에는 열몇 명이 있었는데, 족장으로 보이는 이는 양성 기운이 짙고 강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빨간 머리에 얼굴에 위엄이 서려 있었고 늙어도 기력이 왕성해 보였다. 노인의 옆에는 각진 얼굴의 청년이 서 있었다. 회색 옷을 입은 청년의 몸에서는 강한 진원 파동이 은은하게 전해졌다. 청년은 초범 경지 3단계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한창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다가 양준이 대전에 들어서자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며 방금 전까지 얘기하던 화제도 잊은 채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족장님, 데려왔습니다.”
양준을 데려온 사람이 공수하며 말하자, 상석에 앉아 있던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내저었다. 그 사람은 공손하게 물러갔지만, 물러가기 전에 얌전하게 있으라고 경고하듯 양준을 노려보았다.
“역풍(易風), 이 자가 바로 자네가 잡아온 인간인가?”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깊은 눈매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뜨거운 기운이 자신의 몸속으로 침투해 안팎으로 샅샅이 훑어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네, 족장님.”
노인의 옆에 서 있던 청년이 얼른 대답했다. 이내 양준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이 자는 곧 죽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이렇게 멀쩡하게 서 있는 거지?”
노인이 또 물었다.
역풍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자를 잡아올 때만 해도 곧 죽을 것 같았습니다. 전 이 자가 며칠 버티지 못하고 죽을 줄 알았습니다……. 이봐, 어떻게 된 거야?”
양준은 청년과 노인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미간을 좁혔다.
“당신들은 인간이 아닌가요?”
오직 다른 종족만이 사람을 인간이라고 불렀다.
“무엄하다. 묻는 것만 답하거라. 여기는 네가 말할 자리가 아니다.”
역풍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이내 그가 손을 휘젓자 세찬 기운이 그의 손에서 쏟아지더니 채찍처럼 양준의 몸을 후려쳤다. 찰싹, 소리와 함께 양준의 몸에는 핏자국이 생겼다. 진원이 봉인된 양준은 이런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양준은 꿈쩍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역풍을 바라보았다.
“용기가 가상하구나.”
역풍은 냉소했다. 다시 한번 그의 손에서 진원이 용솟음쳤다. 양준을 제대로 혼내 주려는 기세였다.
“그만하게.”
노인은 손을 들어 계속해 양준을 채찍질하려는 역풍을 저지했다. 그러고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녀석, 재주가 좀 있구나.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네 육신의 강도는 입성 경지의 고수 못지않군.”
“그럴 리가요? 이 자는 초범 경지 1단계밖에 되지 않습니다.”
노인의 말에 역풍의 표정이 변했다.
“끊임없이 육신을 단련해 오늘의 성취를 이루었을 것이야. 젊은 나이에 이렇게 강한 육신을 얻다니. 참으로 대단하군.”
노인은 찬사를 보내더니 또 물었다.
“어떻게 한 것이냐?”
“매일 수만 번씩 채찍질을 당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지요.”
양준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미련한 방법이긴 하지만 가능하긴 하지. 네가 인간이라 널 바로 죽이지 않고 살려 두었다. 네가 마족이었으면 이렇게 운이 좋지 못했을 것이다.”
노인은 양준이 아무렇게나 둘러댄 소리라는 것을 아는지, 더는 캐묻지 않고 부드럽게 말하다가 곧바로 차가운 낯빛을 하고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묻는 말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한다면 좀 더 살려 두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결과는 알겠지?”
남에게 잡힌 지금, 양준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넌 마족과 무슨 사이냐?”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그런데 왜 이곳에 나타난 것이냐? 어디에서 들어왔는지 말하거라.”
“바다 밑에서요. 유적지 안에 허공 통로가 있었습니다. 저와 친구는 고수에게 쫓기다 하는 수 없이 허공 통로에 들어갔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에 와 있었습니다.”
양준이 말할 때, 노인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 살피는 것 같았다. 양준이 말을 마치자, 노인은 잠깐 침묵하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희들이 겪은 일을 자세히 말해 보아라.”
양준은 노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전에 겪은 일을 낱낱이 말해 주었다. 노인의 실력은 짐작할 수 없이 강했고, 다른 특수한 재주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괜히 거짓말을 했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었다.
“입성 경지 고수의 손에서 도망쳤다고? 실력이 대단하구나!”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습니다. 왜 제가 마족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겁니까? 그리고 제 친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녀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질문이 좀 많구나.”
역풍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노인도 양준의 질문이 많은 것이 내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성실히 대답해 주었다.
“이곳에는 마족들만 들어올 수 있다. 너희들은 이곳에 처음 들어온 인간이지. 네 친구는 걱정하지 말거라. 자유를 제한받았을 뿐,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노인은 이어서 역풍에게 말했다.
“자네는 이들을 찾은 곳으로 가서 살펴보게. 그곳에 다른 입구가 있는지 보고, 만약 있다면 바로 망가뜨리게.”
역풍이 대답하려고 하는 순간, 양준이 입을 열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오기 전에 제가 허공 통로를 망가뜨렸거든요.”
“네까짓 게 뭘 안다고?”
역풍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양준을 힐끗 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떠나갔다. 사람을 거느리고 삼림 쪽 상황을 살피러 떠난 것이 틀림없었다.
역풍이 떠난 뒤, 노인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양성 공법을 수련한 것이냐?”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인간이 양성 공법을 수련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네 모습을 보니 수련한 공법이 꽤 쓸 만한 것 같구나?”
양준은 흠칫 놀랐다. 그는 노인이 자신의 진양결에 관심을 가진 줄 알았지만, 뜻밖에도 노인은 더 캐묻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공법이어도 우리의 것과 비하면 한참 멀었지.”
노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고, 다른 이들도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니 양준의 공법을 하찮게 여기는 듯했다.
그 모습에 양준의 안색이 변하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모두 양성 공법을 수련하는 것 같군요. 당신들은 무슨 종족이고, 여기는 또 어딥니까?”
“우리 말이냐?”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인간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우리들의 선조는 인간이나 우리 세대에 이르러서는 이미 인간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
노인은 덤덤한 얼굴로 한마디만 하고 나서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곳은 우리가 사는 곳이다. 외부인들은 아마도 소현계라고 부르겠지.”
“감방에 많은 이들이 갇혀 있던데 아마도 다 마족이겠죠? 마족과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겁니까?”
“질문이 많군. 보아하니 넌 죽는 게 두렵지 않은 모양이구나. 마족과 우리는 절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 조만간 우리는 모든 마족을 소멸할 것이다. 널 당분간 죽이지는 않겠다. 네 몸이 좀 남다른 것 같으니 아마도 큰 쓰임새가 있을 거 같구나.”
말을 마친 노인은 악의를 띤 눈빛으로 양준을 훑어보더니 손을 내저었다.
“데려가거라!”
옆에서 바로 누군가 튀어나오더니 양준을 끌고 갔다.
*
양준이 떠나자, 대전 안의 사람들은 그제야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족장님, 저놈의 몸이 보통 좋은 게 아닙니다. 게다가 양성 공법까지 수련했으니 당나무의 자양분으로 만든다면 당나무가 한동안 조용할 것입니다.”
“당나무는 요즘 갈수록 불안정합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곧 우리를 보호하는 수호신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마족을 잡는 것도 영구적인 해법은 아닙니다. 지금 당나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만약 당나무가 없어진다면… 우리 일족은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다들 입 다물게.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싫어하는 것으로 보이나?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해결하라는 것인가?”
노인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말에 사람들의 낯빛이 암담해졌다.
잠시 뒤, 노인이 다시 분부했다.
“욱구(旭仇), 다른 이들에게 그 녀석을 잘 보살피라고 하게. 그에게 가장 좋은 음식을 먹이고, 금제도 풀어주게. 그리고 당나무의 열매도 한 알 주고. 그 녀석이 빨리 실력을 정상으로 회복하게 하게나.”
“네.”
욱구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족장이 내린 지시에서 그의 의중을 눈치채고 다들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이었다.